말라기라는 의미는 주님의 사자(메신저)라는 의미이다. 말1:1은 "주님의 사자(엘리야)를 통해서 이스라엘(이긴자들)에게 보내는 여호와의 경고"라고 서론에서 밝히고 있다.
말1:6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만민의 아버지"임을 밝히고 있다.
말 4:5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엘리야가 올것인데 엘리야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할것임을 미리 예언하고 있다. 말라기서에서 "돌이키다"라는 단어는 3회 나타나고 있다. 말3:7,18,4:6.
말3:7에서 여호와께서 말씀 하시기를 "너희는 내게로 돌이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이키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는것이 돌이키는것이니이까 하도다" 이 때에 여호와께서 대답 하시기를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모든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니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여호와께서는 온 기독교가 하나님의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하고 있기 때문에 "저주" 아래 있다고 분명히 밝히시고 있다. 저주가 없는 나라는 "새 예루살렘"이다. "다시는 저주가 없으며"(계22:3). "나의 집"은 바로 여호와의 집이며 이는 새 예루살렘을 일컫는다. 계 18:3은 "음행의 포도주로 인하여 모든 나라가 무너졌다"라고 선포한다. 기독교인 인구 약 25억에 달하는 신도들이 매달 혹은 매주 교회에 가서 십일조와 헌물을 바치고 있다.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하지만 실상은 그 십일조와 헌물들은 여호와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바벨론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나라가 저주 아래 있다고 말씀 하시는 것이다. 여호와의 집은 새 예루살렘을 의미한다. 살렘은 평화를 뜻한다. 주님께서 아빕월 18일에 부활 하셨을 때에 "너희에게 평강(살렘)이 있을 찌어다" 라고 선포 하셨다. (요 20:19,21).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교회는 "요나의 아들"이 세우는 교회이다. 마 16:17~19에서 "요나의 아들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너는 반석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나의 교회를 건축 하리라".라고 하셨다. 새 예루살렘은 "요나의 아들" 위에 세워지는 건물이다. 요나의 아들은 "요나" 즉, 비둘기의 표적을 깨닫고 이해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요나의 표적이 곧 인자의 표적(징조)이다. 인자의 임함은 번개가 치는것처럼 온다고 하셨다.(마24:27). 번개는 등불에서 흘러 나온다. 번개는 보좌에서 흘러 나온다. (눅11:36,계4:5). 등불은 엘리야이다(요5:35). 새 예루살렘은 "인자가 3낮3밤 땅속에서 지내리라"라는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로 구성되는 도성이며 나라이다. 현 기독교는 바벨론의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여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아빕월 16일에 부활 하셨다고 착각하고 있다. 아빕월 16일 부활 이론을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 십일조와 헌물을 바벨론 왕국에 바치고 있으며 사단의 사업에 도움을 주고 있는 상태 가운데 있는 것이다. 엘리야의 사명은 주님의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자녀들이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방법은 바벨론이 아닌 여호와의 집에 십일조와 헌물을 바쳐서 여호와의 집에 양식이 많아 그 양식을 온 세상에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도록 하라는 부르심이며 사명인것이다.
"충성되고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어서 그 집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서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마24:45). 여기에서 말씀 하시는 청지기는 엘리야를 가리키고 있다. 원어 성경을 보면 "회복하다" 와 "맡기다" 가 어근이 동일하다. "내가 나의 모든 소유를 엘리야에게 맡기겠다"(마24:47). 엘리야가 모든것을 회복하리라.(마 17:11). 회복은 일곱째 천년기에 성취 하리라.(막 3:2~5).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눈감아 주셨으나 이제는 온 천하를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느니라"(행 17:30).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
"복음이란 주님께서 성경대로 제3일에 부활 하신것이 복음이다"(고전 15:1,4).
"제 3일 부활은 아빕월 18일 부활의 비밀을 일컫는다".
주님께서는 이 엄숙한 심판의 시기에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요나의 아들"이 세운 교회에 십일조와 헌물이 흘러 들어가게 해야 한다고 명령 하시고 있다. "요나의 아들아, 네가 목자다, 네가 나의 어린양들을 먹여라"(요21:15). 스트롱 코드 #721.
"보좌 가운데에 일어서 있는 어린양이 목자가 되어 저들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 하리라"(계5:6,7:17). 스트롱 코드 #721.
요나의 아들이 세우는 교회가 새 예루살렘이며 요나의 아들이 먹이는 양이 목자가 되고 보좌 가운데에 일어서게 된다.
주님은 보좌 우편에 일어서 계시거나 앉아 계신다. (행 7:55, 히 12:2). 하지만 주님이 세우시는 목자는 "보좌 가운데에 일어선 자"이다. 보좌는 "보름달" 이다.(히브리어 참고). 주님은 일주일의 가운데에서 죽으셨다. (단 9:27). 가운데에서 죽으셨다. (요19:18). 주님께서는 온 기독교단이 바벨론의 음행의 포도주인 "금요일 십자가설"을 버리고 "수요일 십자가 일요일 부활(AD30)" 진리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시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자녀들이 자신들의 십일조와 헌금을 "수요일 십자가 일요일 부활(AD30)" 진리를 믿는 교회로 흘러 들어가기를 바라신다. 왜냐하면 현 기독교를 회개 시켜서 구원 할 수 있는 유일의 길은 주님이 보혈로 닦아 놓으신 유일한 영생의 길 "3낮3밤 땅속에서"를 회복하는 길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요 14:6). 주님이 친히 닦아 놓으신 유일한 영생의 길은 "3낮3밤 땅속에서"이다. 이것이 주님의 잔이다.
주님의 무덤=3낮3밤 인봉됨(마27:66, 마12:40).
사단의 무덤=1낮1밤 인봉됨(계20:2,3). 금요일 십자가설은 사실상 사단이 걸어가는 길을 설명하고 있다. 사단은 6째날 끝에 큰 쇠사슬에 붙잡히고 일곱째날 무저갱에 갇히고 여덟째날 불못에 들어간다. 이것이 곧 사단의 길이다.
고전 10:21에서 언급하신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주님께서 마신 잔은 "3낮3밤"이다. 하지만 사단이 마시는 잔은 "1낮1밤"이다. (천년간 무저갱에서 지냄).
온 기독교는 지금 현재 귀신의 잔에 취하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기독교인들은 십일조와 헌물을 거짓된 교리에 취해 있는 바벨론 교회들에게 열심히 바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나라가 여호와의 저주 아래 있는 것이다.
엘리야는 2013년 1월 23일 부터 오늘날까지 "주의 길을 곧게 하라" 라고 외치고 있다. 주님은 서기 30년 부터 서기 3030년까지 새 예루살렘을 건축 하신다. 그리고 이 교회는 요나의 아들들이 건축하는 건물이다. 주님께서는 십일조와 헌물이 요나의 아들들로 구성된 교회로 흘러 들어가기를 바라신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참된 교회에 진리의 양식이 풍성해 지고 온 세상이 경고를 받는것이 가능해 지기 때문이다.
주님은 약속 하셨다. "너희가 만일 십일조를 바벨론 교회가 아닌 참 나의 교회에 흘러 들어가게 하면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주겠다"라고 하셨다. "하늘문"은 계 4:1에 나타난 하늘의 열린 문을 말한다. 하늘이 열리고 보좌가 보이고 무지개가 보이도록 축복 하시겠다는 의미이다. 이는 영생의 축복이며 십사만사천인으로 부르시는 축복이다. 그대가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이키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때로 그대의 십일조를 새 예루살렘 교회에 바치도록 하라. 그리하면 주님께서 그대의 마음의 하늘문을 열어 주시고 진리의 말씀을 깨달아 보좌와 무지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