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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석장리구석기유적지[公州石壯里舊石器遺蹟地, 사적 제 334호]
석장리는 공주시 장기면의 금강 북안(北岸)에 있는 마을이며, 1963년 지표조사시 처음 깬석기가 채집되어 유적의 존재가 알려졌고, 1964년부터 1992년까지 13차에 걸쳐 연세대학교 및 한국선사문화연구소에 의하여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한반도에서 최초로 발견된 최대의 선사문화 유적지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타제석기와 아울러 노지등의 유적이 밝혀졌다.
이 석장리유적은 중기,후기까지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서식한 동물의 화석은 발견되지 않았다. 현재 유적지 일대는 모두 전답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이 경작지대는 해발 약 13m~17m상의 단구에 놓여 있는데 과거 60년 전부터 벌채가 심하여 산사태가 잇달아 일어났고 매년 항우기에 따르는 토사의 퇴적으로 하상면의 상승으로 초근에는 심한 홍수시 해발 15m까지 수위 가 높아져 1~2주동안은 유적지가 완전히 물속에 잠겨버리는 일도 있으며, 겨울에는 지층이 얼었다가 봄에 녹으면서 부분적으로 문화유적이 붕괴될우려가 있어 유적지보존대책수립이 요구되고 있다. |
박물관 입구를 들어서니, 옛 사람들이 살았을 것 같은 움집이 넓은 잔디밭에 세워져 있습니다.
석장리에서 조사된 후기 구석기시대에 속하는 평지의 집자리는 비교적 상세하게 조사가 이루어짐으로써, 구석기인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생활하였는가를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집자리는 담을 쳐서 집을 바깥과 구별하고, 출입하는 문을 만들었으며, 기둥을 세우고 움막을 쳐서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였습니다. 그 안에 살던 사람의 수는 8~10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는데, 혈연관계에 있는 가족들로 구성되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공동체생활을 하면서 집단적인 협동을 통해 동물을 사냥하고나 사나운 맹수 등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선사시대 주거지>
주거지 내부에서는 화덕자리가 조사되었는데, 화덕은 둥그스럼한 자갈돌 7개를 둘러 놓았다. 석장리인들은 불을 이용하여 요리를 하고, 추위도 막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집 앞에서는 잔격지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 석기를만들던 곳이었음을 보여준다.
석장리 주거지에서는 고래를 땅바닥에 새긴 것, 물고기 머리를 둘을 떼고 선으로 새기고 눈을 둥글게 돌려 굼파기 한 것 등 예술작품으로 추정되는 유물들도 출토되어 구석기인들의 예술활동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비록, 공주지역에서 구석기시대 주거유적이 석장리에서만 조사되었지만, 당시 금강주변에는 석장리와 같은 생활유적들이 곳곳에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동굴유적인 반포면 마암리의 속칭 '용굴'이란 곳에서도 구석기시대의 생활흔적이 조사되었다. 이 동굴유적은 금강 남안, 계룡산 북쪽 산줄기 사면에 위치한다. 동굴은 높이 20m 가량의 위치에서 입구를 동쪽으로 하고 있으며, 굴 입구의 크기는 너비9m, 높이1m이었으나. 그 안은 길이 24m, 너비 7~12m, 높이 3m이며, 30~50cm 정도의 퇴적층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고 한다. 이 곳에서는 석영반암(石英斑岩)의 석재로 만든 찍개, 찌르개, 긁개 및 돌날형 박편 등의 석기가 출토되었는데, 석장리유적의 상층과 연결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이 동굴유적은 석장리유적과 함께 공주지역에서 생활한 구석기인들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이외에도 공주시 시목동,소학동,장기면 금암리 등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수습되었는데, 이들 지역은 모두 금강과 인접한 곳이다.
이와 같이 공주지역은 다양한 구석기시대 유적이 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존속시기도 구석기 전기부터 후기까지 지속되었다. 구석기인들은 수렵·채집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활동영역이 농경인들에 비해 매우 넓은데, 주 생활근거지는 대부분 물이 풍부한 강이나 호수 주변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금강을 끼고 있는 공주지역은 구석기인들의 생활에 적합한 자연환경을 제공하고 있었을 것이며, 금강유역에 분포하고 있는 구석기유적은 바로 그러한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움집안으로 들어가보니 밖으 날씨가 쌀쌀해서인지 꽤 아늑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옛사람과 만나는 곳, 석장리 박물관
전시관은 건축가 이응묵의 작품으로 중앙기둥에는 석장리를 상징하는 주먹도끼 모형이 있습니다.
박물관 출입구의 오른쪽에는 사냥하는 구석기인 동상과 반구대 암각화 모형이 있습니다.
외부의 왼쪽에는 석기 떼는 구석기인 동상과 석장리 출토 대표석기 5점의 모형이 있습니다.
내부에는 구석기에서 청동기에 이르는 선사문화를 ‘자연, 인류, 생활, 문화, 발굴’ 이라는 5가지 테마로 전시 연출한 상설전시와 일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특별 전시 될 기획전시, 영상실, 기념품을 판매하는 뮤지엄 샵, 각종 정보검색과 쉴 수 있는 편의시설인 휴게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선사문화 엿보기>
박물관에는 이해를 돕기 위해서 긴 설명보다는 인형을 통해서 당시의 수렵 모습이나, 불을 얻는 모습, 무기를 만드는 모습 등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진화>
오늘날까지 발견된 뼈화석을 통해서, 사람은 남쪽원숭사람, 손쓰는사람, 곧선사람, 슬기사람, 슬기슬기사람의 차례로 진화한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탄자니아의 라에돌리에서 발견된 옛사람의 발자국은 370만년 전에 이미 두 발로 걷고 있었음을 생생히 보여줍니다. 석장리 박물관에서는 유인원 -> 오스트랄로피테쿠스 -> 호모하빌리스 -> 호모에렉투스 -> 호모사피엔스 -> 호모사피엔스사이엔스 순으로 인류의 진화과장을 뇌의 크기와 함께 비교 전시하고 있습니다.
구석기인들은 주로 나무열매나 뿌리 등을 채집하거나 동물을 잡아서 먹고 살았는데, 이 때 돌을 깨뜨려 만든 도구 또는 동물의 뼈나 뿔을 다듬어서 만든 골각기 등을 사용하였습니다. 이들 도구의 종류는 용도에 따라 다양한데, 사냥도구로는 주먹도끼, 찍개, 찌르개 등이 있으며, 요리도구로는 긁개, 밀개, 공구로는 새기개 등이 있습니다.
석장리에서 출토된 흑요석으로 만든 석기
울산 반구대암각화 탁본
공룔알 화석
석기시대의 물고기 화석
퀴즈를 맞추듯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볼 수 있게해 관람객들의 흥미를 끌 수 있게 꾸며 놓았습니다.
<석장리박물관 가는길>
버스 고속 : 서울 강남터미널(서울<->공주)30분간격,2시간20분 소요
공주 석장리박물관
관람시간 09:00~18:00(평일, 주말)
휴관일 설날, 추석 당일, 시장이 박물관의 관리운영상 정하는 휴관일
관람료 어린이 700원, 어른 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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