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환 9단이 시간패를 둘러싼 상황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상황을 판정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편안한 의자로 교체했다.
제21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12국
박정환, 판팅위 상대로 승리 직전에서 '사고'
온라인 대국으로 전환된 제21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최종 라운드에서 사상 초유의 '재대국'이라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대회는 한중일에서 5명씩 출전해 연승전으로 겨루는 국가대항전으로 '바둑 삼국지'로 불린다.
사건의 내용은 이렇다. 20일 오후에 열린 제12국에서 한국팀의 마지막 주자 박정환 9단이 중국팀의 3번주자 판팅위 9단과 대국하는 중에 '시간패'하는 상황을 맞은 것. 하지만 박정환 9단의 상황 설명은 달랐다. 클릭했는데 입력되지 않았다는 것.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대국의 전 장면을 녹화하고 있는 주최측은 당시의 장면을 중국측에 전달해 판독을 요청했으나 돌아온 답변은 인정하기 어렵다는 반응.
▲ 착점 입력이 되지 않자 박정환 9단이 당황한 모습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빨간 동그라미의 곳에 클릭했다.
판독 결과 한국기원과 중국기원이 이견을 보이면서 결국 재대국으로 결정했다. 대회 규정상 문제 발생시 20분 안에 해결할 수 없을 경우 잠시 중단하고 각 기원(한ㆍ중ㆍ일) 판정위원의 만장일치로 승패를 결정할 수 있지만 한 명이라도 동의하지 않을 경우 재대국하게 된다는 것이 한국기원 측의 설명이다.
당시 화면을 한국측에서 확인한 결과는 초읽기 '여덟과 아홉 사이' 정도에서 클릭(123의 아래쪽)하는 소리가 들렸고, 화면에 수가 나타나지 않자 박정환 9단이 여러 차례 반복해서 클릭하는 모습이 잡혔다.
▲ '흑 시간승'이라는 화면이 떴다
재대국 시간은 21일 오전 10시. 각자 제한시간 1시간으로 새로 대국하게 된다. 박정환 9단이 이긴다면 오후 3시에 후속 대국을 벌인다(규정상 재대국은 당일 진행으로 되어 있으나 판독 결과 한국기원과 중국기원의 이견이 생기면서 시간이 지체되어 다음 날 열기로 양국 기원과 선수들의 협의로 정했다).
대국 중단부터 최종 협의까지는 1시간 30분 이상 걸렸다. 코로나 시대에 바둑은 '온라인 대국'이라는 강점이 있지만 부정행위, 접속장애 등의 소지도 안고 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아직 불분명하지만 그 같은 우려가 '바둑 삼국지'로 불리는 중요한 대회에서 발생했다.
▲ 박정환 9단이 당시 상황을 관계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아래는 인터넷 대국을 채택한 이번 대회의 세부 규정.
*대국 중 인터넷 환경이나 프로그램의 오류 등으로 인하여 대국을 진행할 수 없을 경우 해당 대국을 일시 중지한다. 주최국의 판단에 따라 20분 안에 해결할 수 있는 경우는 대회를 재개하며, 20분 안에 해결할 수 없을 경우 대회를 잠시 연기한다.
*단, 인터넷 환경이나 프로그램의 오류 등으로 중지된 바둑 가운데 재개가 어렵다고 판단되는 바둑 중에서 형세 반전이 어렵다고 판단될 만큼 진행된 대국은 각 기원(협회) 판정위원에게 종국 결정에 대한 의견을 구하여 결정한다.
▲ 화쉐밍 중국바둑협회 부주석이 한국기원으로부터 받은 영상을 판독하고 있다.
*다만 판정위원 3명이 만장일치로 승. 패 결정에 동의할 경우 판정을 내리고, 한 명이라도 동의하지 않을 경우에는 재대국을 한다. 재대국은 당일 바로 진행하며, 제한시간은 동일하게 각자 1시간, 초읽기 1분 1회로 실시한다.
*또한 대국이 중지된 상황에서 선수는 자리를 이탈해서는 안 된다. 재대국은 기존 대국을 무효처리하고 새롭게 대국한다.
▲ 한국팀의 마지막 주자 박정환 9단.
▲ 중국팀의 3번주자 판팅위 9단.
▲ 이하는 재대국으로 이어진 12국 장면들.
▲ 박정환 9단은 "양국의 결정을 따른다는 생각이었다. 최선을 다할 뿐이다"라고 했다.
▲ 2012년 이세돌 9단과 구리 9단 간의 삼성화재배 32강전에서 세계대회 본선 초유의 '4패빅 무승부'로 재대국을 벌인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