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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황폐하게 하는 가증스러운 물건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사람은 깨달아라) 그 때에는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하여라.
15.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내려오지도 말고, 제 집 안에서 무엇을 꺼내려고 들어가지도 말아라.
16. 들에 있는 사람은 제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아서지 말아라.
17. 그 날에는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은 불행하다.
18.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19. 그 날에 환난이 닥칠 것인데, 그런 환난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뒤로부터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20. 주께서 그 날들을 줄여 주지 않으신다면, 구원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주께서 뽑으신 선택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줄여 주셨다.
21. 그 때에 누가 너희에게 '보아라, 그리스도가 여기에 있다. 보아라, 그리스도가 저기에 있다' 하더라도, 믿지 말아라.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 표징들과 기적들을 행하여 보여서, 할 수만 있으면 선택 받은 사람들을 홀리려 할 것이다.
23. 그러므로 너희는 조심하여라. 내가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여 둔다."(마가복음13:14-23)
14 “You will see ‘The Awful Horror’ standing in the place where he should not be.” (Note to the reader: understand what this means!) “Then those who are in Judea must run away to the hills. 15 Someone who is on the roof of a house must not lose time by going down into the house to get anything to take along. 16 Someone who is in the field must not go back to the house for a cloak. 17 How terrible it will be in those days for women who are pregnant and for mothers with little babies! 18 Pray to God that these things will not happen in the winter! 19 For the trouble of those days will be far worse than any the world has ever known from the very beginning when God created the world until the present time. Nor will there ever be anything like it again. 20 But the Lord has reduced the number of those days; if he had not, nobody would survive. For the sake of his chosen people, however, he has reduced those days.
21 “Then, if anyone says to you, ‘Look, here is the Messiah!’ or, ‘Look, there he is!’—do not believe it. 22 For false Messiahs and false prophets will appear. They will perform miracles and wonders in order to deceive even God's chosen people, if possible. 23 Be on your guard! I have told you everything ahead of time.
*관심
설교하는 도중이었습니다.
“죽으면 공이야!” 한 어르신이 소리쳤습니다.
설교하다가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그것은 그 어르신 역시 종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았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공격이었습니다.
그 어르신의 종말에 대한 결론이었습니다.
그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저의 고백은 죽어도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두 고백 사이에 어떤 완충지역이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죽음을 이기시고 그 나라를 이 세상에 보이신 분은 유일하십니다.
예수님뿐입니다.
우리는 오직 이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믿는 것이고 세상은 그저 수없이 많은 죽음을 경험했을 뿐입니다.
세상의 눈들은 썩어가는 사람의 육신만 확인했을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르신과 같은 고백이 당연합니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문제가 됩니다.
마귀는 저 빌딩 사는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박사 되는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사장되는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문제를 다루지도 않습니다.
13. 무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내 형에게 명해서, 유업을 나와 나누라고 해주십시오."
14.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분배인으로 세웠단 말이냐?"(눅12:13,14)
부자나 가난뱅이나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양반이나 상놈이나
장애자나 건강한 사람이나 진짜 문제가 있습니다.
죽음입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종말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태초에 사람 존재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을 바로 이 종말에 대해 다루는 것입니다.
세상의 종말이 오면 따라서 나의 종말도 오나?
그 때 내가 공이 되고 마는가?
아니면 영생의 나라가 열리는 것인가?
교회가 이 본질 문제에 진지하게 답을 하고 있다면 교회가 술집이 되는 이런 절망적인 현실에 부딪힐 리 없습니다.
소 기르고, 수영장 만들고, 도서관 만들고, 병원 세우고, 학교 세우고........
수영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탁구장 있는 교회로 갈 것입니다.
탁구에 흥미를 잃으면 교회를 쉴 것입니다.
하지만 죽음과 부활에 관한 문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쉬운 내용
종말이 가까워 오면 마귀는 더 득세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종말이 마귀에게 마지막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영혼을 영생으로 판정 내리시면 마귀는 더 이상 그 영혼을 홀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정답이 2번과 3번인지 사람을 혼란에 빠뜨릴 것입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마귀는 그리스도를 두고 그 짓을 하는 것입니다.
4.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이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려고 할 때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
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는 '내가 그리스도다' 하면서,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다.(막13:4-6)
마귀는 이렇게 지적인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기독인이라면 종말에 대해 설교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종말에 관한 설교들은 들을수록 정리가 안되고 더 혼란스럽게 된다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한결같이 비유가 심하기 때문입니다.
이 목사님은 666을 여기다 가져다 끼우고 저 분은 저렇게......
엄청난 상상력이 동원된 것입니다.
침 튀기며 주장하다가 아니면 말고!
그러다 보니 그 설교를 들을수록 객관성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공포심만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단들이 이런 식으로 종말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이란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종말의 날짜를 알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것입니다.
또 누가 666이면 어떻다는 말입니까?
하지만 사랑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종말의 설교들을 따라 헛된 종교적 호기심을 만족시키지 말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정의로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종말의 전제를 가져야하는 것은 종으로써 그 사랑의 본분을 다 하기 위한 것입니다.
종말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비유나 상상을 아주 배제해 버리는 것이 옳습니다.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습니다.
주님이 구름을 타고 오시면 정말로 주님이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무화과나무를 말씀하실 때 그것이 정말로 무화과나무를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을 상징한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종말의 때에 제가 그리스도라는 교주들이 왜 이리 많습니까?
그래서 구름 타고 오지 않는 누구도 늙고 추한 교주들입니다.
헬기 타고 오는 교주!
그냥 말씀 전하면 되는데 헬기는 왜 타!
지금 이 시대에 단 한 명의 그리스도도 없습니다.
내 눈으로 그 구름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확실합니다.
14.“'황폐하게 하는 가증스러운 물건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사람은 깨달아라) 그 때에는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하여라.
14 “You will see ‘The Awful Horror’ standing in the place where he should not be.” (Note to the reader: understand what this means!) “Then those who are in Judea must run away to the hills.
그 종말의 특징은 황폐하게 하는 가증스러운 물건이 서지 못할 곳에 서는 것입니다.
그 때는 가장 불경한 것이 가장 거룩한 장소에 서 있을 것입니다.
다니엘서가 말씀하시는 이 사건은 안디오커스 에피파네스 4세(BC175-164) 재임 중 일어났습니다.
27. 침략하여 들어온 그 통치자는 뭇 백성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굳은 언약을 맺을 것이다. 그리고 한 이레의 반이 지날 때에, 그 통치자는 희생제사와 예물드리는 일을 금할 것이다. 그 대신에 성전의 가장 높은 곳에 흉측한 우상을 세울 것인데, 그것을 거기에 세운 사람이 하나님이 정하신 끝 날을 맞이할 때까지, 그것이 거기에 서 있을 것이다."(단9:27)
다니엘의 예언대로 이 독재자는 하나님의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이 죽고 몇백 년이 흘러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것입니다.
주님도 같은 예언을 하시고 죽으셨습니다.
14.“'황폐하게 하는 가증스러운 물건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14 “You will see ‘The Awful Horror’ standing in the place where he should not be.”
그렇게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40년 후에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주후 69년 로마의 티도에 의해 성전이 훼파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그렇게 무너지고 2,000년이 흘렀는데 이 예언은 또다시 유효합니다.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서는 경우 엄청난 재앙이 임할 것입니다.
이 일은 다니엘의 시대나
예수님의 시대나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종말의 징조입니다.
정의와 사랑이 서야 할 곳에 맘모니즘이 서면 잔인한 독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정의와 사랑이 서야 할 곳에 좌파든 우파든 이데올로기가 서면 동족상잔의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경고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 경고를 무시하면 안 됩니다.
그 때 사람들은 시급하게 할 일이 있습니다.
14. 그 때에는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하여라.
14 Then those who are in Judea must run away to the hills.
도망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피할 산이란 도대체 어느 곳입니까?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게 성전은 피난처였습니다.
1. 내가 주께 피하였거늘, 어찌하여 너희는 나에게 이르기를 "새야, 너의 산으로나 피하려무나.
2. 악인이 활을 당기고, 시위에 화살을 메워서 마음이 바른 사람을 어두운 곳에서 쏘려 하지 않느냐?
3. 기초가 바닥부터 흔들리는 이 마당에 의인인들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느냐?
4. 주께서 성전에 계신다. 주님은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다. 주님은 불꽃처럼 날카로운 눈으로 굽어보시고, 사람을 살펴보신다.(시11:1-4)
하지만 바로 그 물리적인 성전이 로마에 점령당한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은 그 위기의 순간 이제 산으로 피하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영적인 성전으로 피해야 합니다.
초대 교회 때에도 그랬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카타콤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 곳에 교회가 섰는데 그 곳이 완성된 성전입니다.
그들은 거기에서 신앙을 지켰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었을 때 사람들은 멀리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도망간 사람들을 통해 세워진 것이 교회입니다.
19. 스데반에게 가해진 박해 때문에 흩어진 사람들이, 베니게와 키프로스와 안디옥까지 가서, 유대 사람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
20. 그런데 그들 가운데는 키프로스 사람과 구레네 사람 몇이 있었는데, 그들은 안디옥에 이르러서, 그리스 사람에게도 말을 붙여서, 주 예수를 전하였다.
21. 주께서 그들을 돌보시니, 믿게 된 수많은 사람이 주께로 돌아왔다.(행11:19-21)
종말에서 대안은 도망하는 것입니다.
남아있다가는 돌에 맞아 죽든지 돌로 죽이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물리적인 파괴의 장소를 피하는 것입니다.
도망하는 것입니다.
대단히 소극적인 대안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만큼 적극적인 대안이 없습니다.
그것은 복수를 하나님께서 맡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참히 당했습니다.
600만 명이 학살을 당했을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는가?
그래서 그들이 이런 결론을 내린 것 같습니다.
그들이 열 배로 보복하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많은 사람의 적대감을 쌓아갈 뿐입니다.
평화가 아닙니다.
하지만 초대 교인들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도망만 다녔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2,000년이 지나고 그들의 땅끝 한국에서 저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령을 모시지 않으면 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적에게 대항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성전이신 성부 하나님께 자신을 드렸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34. 그리고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무리를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3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구할 것이다.
3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막8:34-36)
주님은 우리에게도 진정한 성전이신 성부 하나님께 시급히 자리를 피하라고 하십니다.
15.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내려오지도 말고, 제 집 안에서 무엇을 꺼내려고 들어가지도 말아라.
15 Someone who is on the roof of a house must not lose time by going down into the house to get anything to take along.
이 사람은 왜 지붕 위에 올라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살다 보면 지붕 위로 올라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지붕 위에서 종말의 징조를 만난 것입니다.
그러면 지붕 아래의 집으로 들어가도 안 됩니다.
지체 없이 도망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15.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내려오지도 말고,
15 Someone who is on the roof of a house must not lose time by going down into the house.
또 있습니다.
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다.(창19:26)
세상에 대한 미련조차 용납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때는 시간뿐 아니라 미련도 없어야 합니다.
16. 들에 있는 사람은 제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아서지 말아라.
16 Someone who is in the field must not go back to the house for a cloak.
아마 들에서 일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작업복을 입었겠지만 그대로 도망부터 가야 합니다.
밭에 거름을 주다가 거름 냄새에 찌들었어도
반바지에 장화 차림이었어도 그대로 피해야 합니다.
작업복을 갈아입을 시간도 없습니다.
며칠 전에도 일본에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할머니는 해일이 밀려오기 9초 전인가 지팡이를 짚고 그 마을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마을에 사람들이 왜 이렇게 없지?’
할머니는 친구 찾으러 나선 것입니다.
그 때가 차가 섰습니다.
운전사는 무조건 할머니를 태우더니 차 안에서 상황 설명을 했습니다.
차 꽁무니로 해일이 밀려왔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해야 합니다.
산으로 도망해야 합니다.
17. 그 날에는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은 불행하다.
17 How terrible it will be in those days for women who are pregnant and for mothers with little babies!
그런데 종말의 현실의 특징은 봐주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십시오.
가장 불행한 사람들은 아이를 가진 사람입니다.
죄가 있어서 그런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종말의 재앙은 의인과 죄인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 날이 오면 사람들에게 대책이 없습니다.
의인이라고 봐 주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의인은 다만 끝까지 참을 뿐입니다.
18.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18 Pray to God that these things will not happen in the winter!
이미 정해진 종말의 재앙을 피할 길은 없습니다.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할 뿐입니다.
자비를 달라는 것입니다.
19. 그 날에 환난이 닥칠 것인데, 그런 환난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뒤로부터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19 For the trouble of those days will be far worse than any the world has ever known from the very beginning when God created the world until the present time. Nor will there ever be anything like it again.
이 종말의 고난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 유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유래가 있었다면 행정안전부에서 행동 지침을 내렸을 것입니다.
유래가 없었으니 그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문재인 정부를 경험했습니다.
지도자가 제대로 그 자리에 서니 종말이 아니었습니다.
유래 없는 코로나를 잘 대처한 것입니다.
14.“'황폐하게 하는 가증스러운 물건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사람은 깨달아라) 그 때에는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하여라.
14 “You will see ‘The Awful Horror’ standing in the place where he should not be.” (Note to the reader: understand what this means!) “Then those who are in Judea must run away to the hills.
정말 그 때 과학 방역을 했더라면 우리나라 국민 다 죽일 뻔했습니다.
제대로 된 사람이 제 자리에 서는 것은 생명이 걸린 종말의 문제입니다.
20. 주께서 그 날들을 줄여 주지 않으신다면, 구원받을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주께서 뽑으신 선택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줄여 주셨다.
20 But the Lord has reduced the number of those days; if he had not, nobody would survive. For the sake of his chosen people, however, he has reduced those days.
종말의 재앙은 그가 의인일지라도 그들 역시 죄인에 속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일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을 내세우며 현실 보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영육간의 보장을 기대한다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종말의 대안은 구원이 인간 편이 아니라 하나님의 편에 있다는 것을 보일 것입니다.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의 자비뿐입니다.
21. 그 때에 누가 너희에게 '보아라, 그리스도가 여기에 있다. 보아라, 그리스도가 저기에 있다' 하더라도, 믿지 말아라.
21 “Then, if anyone says to you, ‘Look, here is the Messiah!’ or, ‘Look, there he is!’—do not believe it.
그런데 이 환난의 때에 주의할 것은 믿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특별히 종교적인 직접성을 부인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리스도적인 내용성입니다.
그가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가?
이것이 속이는 말입니다.
4. '이것이 주의 성전이다, 주의 성전이다, 주의 성전이다' 하고 속이는 말을, 너희는 의지하지 말아라.(렘7:4)
유대는 바벨론의 위협 앞에서 풍전등화의 신세입니다.
믿음 좋은 유대인들은 이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도피처로 삼았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히스기야를 통해서 하나님의 성전을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성전으로 위험을 피하는 것은 다름 아닌 믿음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전혀 다른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성전 운운 하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속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 종교적 방식입니다.
그 방식이 종말의 때에 득세할 것입니다.
주의 성전이다, 주의 성전이다.
주문 외우듯이 성전을 반복하는 사람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아닙니다.
5. 너희가, 모든 생활과 행실을 참으로 바르게 고치고, 참으로 이웃끼리 서로 정직하게 살면서,
6.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억압하지 않고, 이 곳에서 죄 없는 사람을 살해하지 않고, 다른 신들을 섬겨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지 않으면,
7. 내가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 하도록 준 이 땅, 바로 이 곳에서 너희가 머물러 살도록 하겠다.(렘7:5-7)
주의하십시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아주 비종교적인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5. 너희가, 모든 생활과 행실을 참으로 바르게 고치고, 참으로 이웃끼리 서로 정직하게 살면서,
6.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억압하지 않고, 이 곳에서 죄 없는 사람을 살해하지 않고, 다른 신들을 섬겨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지 않으면,
7. 내가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 하도록 준 이 땅, 바로 이 곳에서 너희가 머물러 살도록 하겠다.(렘7:5-7)
그것이 그들의 종말을 대처하는 방식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제 땅에 머물러 살게 될 것입니다.
3.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너희의 모든 생활과 행실을 고쳐라. 그러면 내가 이 곳에서 너희와 함께 머물러 살겠다.(렘7:3)
사람들은 자신들의 종교 행위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합니다.
우리는 종교 행위들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8. 나는 너희가 바친 제물을 두고 너희를 탓하지는 않는다. 너희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나에게 늘 제물을 바쳤다.
9. 나는 너희의 집에서 수소를 가져 가지 않는다. 너희의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 가지도 않는다.
10. 숲 속의 뭇 짐승이 다 나의 것이요, 수많은 산짐승이 모두 나의 것이 아니더냐?
11. 산에 있는 저 모든 새도 내가 다 알고 있고, 들에 있는 저 모든 생물도 다 내 품 안에 있다.
12. 내가 배고프다고 한들, 너희에게 달라고 하겠느냐? 온누리와 거기 가득한 것이 모두 나의 것이 아니더냐?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숫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14. 너희가 하나님에게 가져 올 참 제사는 감사하는 마음이요, 너희가 '가장 높으신 분'에게 가져 올 참 서원제는 너희가 맹세한 것을 지키는 바로 그것이다.
15. 그러므로 재난의 날에 나를 불러라. 내가 너를 구하여 줄 것이요, 너는 나에게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시50:8-15)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모조리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것을 드린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제사를 드리는 의미를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먹을 것이 부족해서 사람이 바치는 것으로 배를 채우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 제사를 통해 드러나는 사람들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제사드리고 제 자랑을 삼는 것입니다.
16. 하나님께서 악인들에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어찌하여 감히 내 법규를 전파하며, 내 언약을 감히 너의 입에 담느냐?
17. 너희는 내 교훈을 역겨워하고, 나의 말을 귓전으로 흘리고 말았다.
18. 도둑을 만나면 곧 그와 친구가 되고, 간음하는 자를 만나면 곧 그와 한 통속이 되었다.
19. 입으로 악을 꾸며내고, 혀로는 거짓을 자아올렸다.
20. 동기간의 허물을 들추어내고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동기들을 비방하였다.(시50:16-20)
겱구 종말이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다른 일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일어나, 표징들과 기적들을 행하여 보여서, 할 수만 있으면 선택 받은 사람들을 홀리려 할 것이다.
22 For false Messiahs and false prophets will appear. They will perform miracles and wonders in order to deceive even God's chosen people, if possible.
다시 이르지만 이런 종교적인 직접성에 사람들이 속아왔습니다.
기적과 표징은 종말에 나타나는 사람을 속이는 대표적인 방식입니다.
그것도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표징과 기적에 관심도 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에 혹해도 그것을 신앙에 연관시키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저거 신통하네” 정도에 그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교주들에게 끌려다니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표징과 기적으로 사람을 홀리고 다닐 것입니다.
더욱이 그 표징과 기적들로 다름 아닌 자신을 속이는 일조차 일어날 것입니다.
21.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마7:21-23)
23. 그러므로 너희는 조심하여라. 내가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여 둔다."
23 Be on your guard! I have told you everything ahead of time.
에덴에서도 하나님은 사람이 죽지 않는 법을 사람들에게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과일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주석을 달아야 알 수 있는 어려운 말씀이 아닙니다.
그 열매를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니 동산의 한가운데에 나무를 심어두시고 먹지 말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그 이유를 묻는 것입니다.
하지만 간단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먹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전해주신 말씀이라면 꼭 그 이유를 알아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자세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세입니다.
이해가 안 되도 순종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말씀을 기억하면서도 경시한 것입니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는 곧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를 이릅니다.
주님은 종말에 대해 미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종말의 때에 이 말씀을 적용하라는 것입니다.
목사들 중에도 신비경을 경험한 신앙의 고수들만 종말의 주제를 언급할 수 있을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에덴에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과 같습니다.
아주 쉽습니다.
과일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종말에도 바로 그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종말에 관한 해석은 비밀이라고 불려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신령하고 신통한 목사들만 종말 설교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쉬운 말씀입니다.
먹지 말거라!
그것을 어겨서 죽음이 온 것입니다.
종말에는 무슨 상황이 기다리고 있습니까?
첫째 고난입니까 아니면 만사 형통입니까?
고난입니다.
세상 만들어지고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을 고난입니다.
둘째 그 고난에 믿는 사람은 제외가 됩니까?
아닙니다.
믿기 때문에 오히려 고난이 더 있을 것입니다.
영육간에 만사형통이라는 그런 신앙이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셋째로 기적이나 표적이 하나님을 정확히 계시하는 방편입니까?
그것은 마귀의 사람 홀리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무슨 순복음인지 이단인지 기적만 쫓아다니는 것입니까?
며칠 전 유튜브를 보니 어떤 사람이 모조리 사람 고치는 일만 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적과 표적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넷째 조용히 사랑하고 정의를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다섯째 위기 오면 덤비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도망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계시고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하실 것입니다.
아니면 전쟁이 터지고 말 것입니다.
여섯째 그 시간은 사람이 알 필요도 알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종말에 알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집의 주소입니다.
옥에 갖힌 사람
굶주리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종말에 우리 할 일입니다.
일곱째 너무 쉽습니다.
그리스도는 재림하실 때 구름 타고 오십니다.
현재까지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사기꾼들입니다.
간단합니다.
제 눈으로 그 구름을 아직까지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