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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전환
한국경제신문 특별취재팀, 삼성경제연구소 공동기획팀 지음 / 2008년 11월
한국 기업의 생존 키워드 ‘창조적 전환’
오늘날 경쟁은 단순히 서로 더 많이 차지하려는 기존의 경쟁 구도를 벗어나 새로운 시장(blue ocean)을 창출하고 ‘게임의 규칙’ 자체를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남과 다른 가치를 창조해야 성공할 수 있는 초경쟁(超競爭, supertition)의 시대인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성공적인 기업이 되기 위해선 기존 방식과는 다른 차별화된 경영이 필요하다. 창의와 상상의 힘으로 사업 기회를 발굴하고, 효율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갖춘 사업방식을 선택하며, 임직원의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조직문화를 구비해야 한다. 선진 기업들은 이미 사업분야, 사업방식, 조직문화의 ‘창조적 전환(creative transformation)’을 통해 시장을 리드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기업들은 어떠한가? 한국 기업들은 그동안 선진 기술을 재빠르게 모방해 따라잡는 이른바 ‘따라잡기(catch-up)’ 전략을 구사해왔다. 선진 기업이 개발한 기술과 제품을 모방하거나 기술과 설비를 도입하여 개량함으로써 선진 기업들을 따라잡은 것이다. 그러나 따라잡기 전략은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중국 등 개발도상국의 기업들이 동일한 전략으로 한국 기업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기업들은 아직도 규모와 효율성 향상에 매달리고 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기업의 도전 정신은 실종되고 투자는 정체됐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의 성공 틀에 연연하지 말고 새로운 성공 방정식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창조적 전환’이다. 창의성을 바탕으로 남들이 하지 않는 미개척 사업을 발굴하고 기존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하며 유연한 조직문화를 창출해야 한다.
“기존 사업을 재해석하라”
모든 최고경영자들의 공통된 고민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존 사업이 아닌 다른 분야를 발굴하고 개척하는 것만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유일한 전략은 아니다. 가장 자신 있는 분야에 집중하면서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 실제로 제품의 핵심 기능에 부가 서비스를 추가하면서 사업의 외연을 확장해 나가는 성공 사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시장 환경의 변화는 업(業)의 특성마저 바꾸어놓는다 -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는 방 안에서 혼자 게임을 즐기는 차원에서 벗어나 게임기를 광활한 공간으로 이끌어 내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3(PS3)을 단순한 게임기에서 ‘홈 네트워크 허브’로 진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거실에서 PS3 컨트롤러만 조작하면 온라인으로 전 세계의 PS3 사용자들과 동시에 연결된다. 게임을 하다가 모니터에 부착된 카메라를 이용해 상대방과 영상 채팅까지 할 수 있다. 소니가 준비 중인 가상현실 세계인 ‘홈(Home)’ 서비스는 기존의 평면적인 게임과는 차원이 다르다. PS3를 통해 자신의 아바타로 가상 세계에 들어가 ‘또 다른 인생’을 사는 서비스다. 게임기가 네트워크 허브의 중심으로 탈바꿈하면 게임기는 더 이상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다. 홈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이 될 거실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게임기 회사와 PC 업체들이 사활을 건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게임기 ‘엑스박스’와 TV용 윈도비스타를 개발한 이유도 PC가 ‘방에서 거실로’ 나오게 하기 위해서다.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의 이 같은 변신은 시장 환경의 변화에 따라 업(業)의 특성이 바뀌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시계 산업을 예로 들어보자. 시계 산업은 처음엔 수작업을 기반으로 한 ‘정밀 기계 산업’이었고 생산 라인이 자동화되면서 ‘조립 산업’으로 개념이 바뀌었다. 하지만 지금은 ‘패션 산업’이다. 시계 산업의 경쟁력은 이제 정확도에 있지 않다. 얼마나 멋있어 보이느냐에 따라 사업의 성패가 좌우된다.
때로 비즈니스 모델 혁신이 기술 혁신보다 더 중요하다 - IBM
기존 사업을 재해석해 새로운 영역을 확장한 사례로 IBM을 빼놓을 수 없다. IBM은 1924년 설립 이후 메인프레임, 미니컴퓨터, 워크스테이션 PC 등을 연이어 개발하며 미국의 경쟁력을 대변해온 위대한 기업이었다. 하지만 시장이 PC 시대로 진입하면서 IBM이 독점적으로 누리던 시장 환경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1991년부터 3년간 손실액이 160억 달러에 이를 정도였다. ‘IBM은 끝났다’는 전망이 월가를 지배했다. 1993년 루이스 거스너(Louis V. Gerstner) 전 회장을 구원투수로 맞이한 IBM은 절치부심 끝에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부문의 경쟁력을 바탕에 깔고 IT 서비스와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로 변신하기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IBM은 지금까지 인터넷 보안 업체인 인터넷시큐리티시스템즈(ISS)와 기업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비즈니스인텔리전스(BI) 전문 업체인 코그너스(Cognos)를 인수하는 등 66개에 이르는 기업을 사들였다. 하드웨어에 머물러 있는 기존의 핵심 사업을 변화한 경영 환경에 맞춰 다시 해석해 자신들의 사업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빅 사이언스를 상업화하라”
거대과학(Big Science)은 지난 20세기 후반에 떠오른 대표적인 과학 활동 형태다. 투자비가 수천억 원이 들 정도로 프로젝트 규모가 크다. 기초과학적 특성과 공공성이 강조되므로 대부분의 연구 활동이 정부 주도로 이루어진다. 과거 제2차 세계대전 중의 원자탄 개발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나 옛 소련의 스푸트니크(Sputnik) 인공위성 개발계획,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달 탐사 계획, 인간 게놈(genome) 프로젝트 등이 대표적인 예다. 최근에 와서는 거대과학을 상업화한 뒤 일반인을 대상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는 추세다. 일례로 바이오 제약 사업 분야에선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한 신약 제조업이 각광받고 있다. 거대과학의 상업화에 성공한 기업들이 단숨에 굴지의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점에서, 거대과학은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다.
기초과학을 상업화하려면 무엇보다 정부의 단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장기 투자가 선행돼야 하는 데다 성공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 직접 투자를 확대하고 이들과 기업 간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게 산업계의 시각이다. 기술 상용화의 가장 큰 핵심은 차별화된 기술력과 그 기술을 꼭 필요로 하는 제품을 발굴해내는 것이다. 한국의 기업들도 연구소기업을 키우고 차세대를 위해 다양한 연구개발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정부도 관련 규제를 유연하게 풀어줘야 한다.
상상력의 인큐베이터, 대학을 지원하라 - MIT 미디어 랩
1985년에 문을 연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미디어 랩(MIT Media Labs)은 설립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Nicholas Negroponte) 교수의 ‘인간과 컴퓨터의 결합’이란 창립 정신을 바탕으로 가상현실과 유비쿼터스 등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비전을 창출해왔다. 지금도 350여 개에 달하는 다양한 연구프로젝트들이 진행 중이다. 미디어 랩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창의력이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연구원들은 돈보다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상품이나 개념을 만드는 것 자체에 흥미를 지니고 있다. 수많은 황당한 상상 속에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튀어나오고 이 중 일부가 실제 상품 개발로 연결돼 산업과 생활에 적용된다. ‘상상력의 인큐베이터’인 만큼 연구 환경은 자유 그 자체다. 석․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교육기관이지만 교과서는 따로 없다. 짜여진 연구 스케줄도 찾아볼 수 없다. 연구 주제도 자유롭다. 이곳에 돈을 대는 기업들조차 연구 분야나 주제를 정하는 데 관여하지 못한다. 다만 미디어 랩에서 개발한 특허나 프로그램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발상은 황당할 수 있지만 개발은 실용적인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단순히 입는 컴퓨터를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패션쇼까지 벌여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지도 살펴보는 곳이 MIT 미디어 랩이다.
‘연구소 기업’, ‘백만장자 연구원’은 꿈이 아니다 - SRI 인터내셔널
미국 캘리포니아 주 멘로 파크(Menlo Park)에 있는 SRI 인터내셔널은 스핀오프(spin-off) 방식으로 군사기술을 상용화해 성공했다. 스핀오프란 모(母)회사가 현물출자 등의 방법으로 자회사를 설립하고, 취득한 주식을 모회사가 갖는 방법을 말한다. SRI가 분사 방식으로 ‘연구소기업’을 키운 것은 1998년부터다. 1990년대 초 소련의 붕괴 등으로 연구소 예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국방 분야 프로젝트가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면서 위기 타개책으로 나온 내부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남들보다 연구도 많이 하고 발명도 많이 했는데 왜 위기를 맞고 있는지 고민한 끝에 나온 해법으로, 기술을 그냥 팔 것이 아니라 연구소 기업을 만들어 상용화 초기 단계까지 키운 뒤 매각하자는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SRI의 성공에는 몇 가지 원동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을 축적해온 데다 상용화를 위해 자체적으로 컨설팅 기능을 갖춘 것이 주효했다. 실리콘밸리에서 벤처 캐피털이 많아 인큐베이팅이나 스핀오프를 하기에 좋은 환경이었다는 점도 성공 요인 가운데 하나다. 기술 상용화를 위해 아이디어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평가하는 각 단계에 N(Need․수요), A(Approach․접근 방법), B(Benefits․소비자의 혜택), C(Competition․국제 경쟁력) 등 SRI 인터내셔널만의 독특한 사업 진행 방식을 적용한 점도 성공 배경으로 꼽힌다. 각 단계마다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대입하여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는 접근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새로운 엘도라도, 신흥 시장을 공략하라”
향후 세계시장은 4억 명 이상의 새로운 중산층이 형성되는 신흥 시장 위주로 재편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30년이 되면 중국, 멕시코, 터키 등은 오늘날 스페인의 생활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경제의 주변부였던 개도국들이 주력 시장으로 위상을 바꾸게 되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새로운 성장 원천을 찾기 위해선 이처럼 떠오르는 신흥 시장을 놓쳐선 안 된다. 사업분야를 창조적으로 전환하기 위한 기회는 급속도로 성장하는 신흥 시장에서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 신흥 시장의 새로운 소비 계층을 공략하려면 면밀한 전략과 적극적 투자로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 과거처럼 신흥 시장에 대한 편견을 근거로 낡은 기술이나 한물간 제품을 팔아치우는 안이한 저가 전략을 구사한다면 실패는 불 보듯 뻔하다. 신흥 시장을 글로벌 경영에 반드시 필요한 기술․인적 자원의 원천으로 인식하고 제품 설계부터 유통, 브랜드 관리까지 철저히 현지화해야 한다.
신흥국 자회사가 모기업을 먹여 살리는 시대
신흥 시장 중 가장 폭발력 있는 성장세를 구가하는 인도엔 50%가 넘는 시장 점유율을 앞세워 모기업을 먹여 살리는 다국적 기업이 많다. 노키아(휴대폰), 마루티스즈키(자동차), 힌두스탄 유니레버(생활용품), 히어로혼다(오토바이) 등이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이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인도 등 신흥 시장을 일찌감치 기회로 인식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노키아가 대표적인 사례다. 노키아는 인도에 가장 먼저 진출한 기업 중 하나다. 1995년 인도에서 이동통신 전파를 처음 쏘았을 때 사용한 제품이 바로 노키아였다. 즉, 일찍부터 시장 잠재력을 보고 제품과 유통망 등에 투자해온 것이다. 현재 인도 전역에 있는 9만 5,000곳의 휴대폰 대리점 가운데 9만 곳이 노키아 제품을 팔며 5만 곳은 노키아 제품만을 판매하고 있다. 이러한 충성스럽고 강력한 유통망이 시장점유율 80% 신화의 기반이 되고 있다. 노키아는 최대 해외 시장인 중국에는 1986년에 진입했다. 힌두스탄 유니레버는 영국이 점령하던 시절인 1931년에 인도에 처음 들어왔다. 마루티스즈키는 외국 자동차 회사의 진출을 금지하던 1981년에 인디라 간디 전 수상의 아들인 산자이 간디(Sanjay gandhi)를 통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물류가 불편한 인도에서 먼저 유통망을 개척하고 브랜드를 알렸다는 것은 큰 강점일 수밖에 없다. 특히 인도인들은 카스트 제도 탓인지 애국심이 강하지 않아 외국 브랜드가 사랑받는다. 그래서 인도에선 시장에 먼저 들어온 글로벌 기업이 시장을 모두 차지한다는 말이 있다.
‘싸구려’와 ‘저가 모델’은 다르다
신흥 시장에서 성공한 기업들의 두 번째 비결은 저가화 기술을 확보해 다양한 저가 상품 포트폴리오를 갖췄다는 것이다. 노키아의 상품 경쟁력은 전 세계 8개국에서 11개의 현지 공장을 운영하는 등 글로벌 공급 체인망과 연간 4억 대에 이르는 대량생산 능력, 부품 통합 및 재사용, 모듈화, 저가형 플랫폼 개발 등을 통해 저가화 기술을 성공적으로 확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혼다는 저가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혼다의 복제 부품을 만들던 중국 업체 하이난 선디로(新大州)와 과감히 50 대 50으로 제휴하여 2001년 선디로혼다를 세웠다. 이를 통해 혼다는 오토바이 가격을 절반 가까이 떨어뜨려 중국 내 판매 대수를 2007년 117만 대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특히 중국을 저가품의 개발․생산 기지로 삼아 인도와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시장에서도 점유율을 회복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 신흥 시장을 잡으려면 저가화 기술이 필수다. 신흥 시장은 잠재력은 크지만 가구당 연간 소득이 5,000~6,000달러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제품 가격도 소비 수준에 맞게 재조정해야 한다. 이 같은 저가화 전략에서 중요한 것은 가격 경쟁력과 수익성을 동시에 갖출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건비를 줄이거나 수익을 축소하는 방법은 단기 처방이므로 본질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기술력에 기반을 둔 저가화를 추진하는 것만이 수익을 보전할 수 있다.
철저한 현지화가 황금알을 낳는다 - 유니레버
신흥 시장을 사로잡는 세 번째 비결은 ‘현지화’에 있다. 인도인들에게 힌두스탄 유니레버에 대해 물어보면 다국적 기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인도 회사라고 말한다. 힌두스탄 유니레버는 "인도에 좋은 것이 유니레버에도 좋은 것이다"라는 이른바 ‘레버 어프로치(Lever Approach)’를 토대로 철저히 현지화하였다. 유니레버는 1976년 인도에서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의 상장을 의무화하기 전에 스스로 기업을 공개했다. 인도 회사가 되기로 한 것이다. 1962년에 일찌감치 수출을 시작하여 인도 수출의 선구자가 되기도 했다. 또한 다른 지역에서는 빨랫비누를 만들지 않지만 인도에서는 인도인의 생활에 맞춰 빨랫비누를 생산하고 있다. 마케팅을 소비자 니즈에 맞춘 것이다. 유통망도 매우 ‘인도적’이다. 교통망, 통신망조차 없는 인도의 농촌을 ‘프로젝트 샤크티(Project Shakti)’라는 제도로 뚫었다. 농촌 마을에 살고 있는 중년 부인들을 먼저 교육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셀프 헬프(Self Help)’ 그룹을 만들어 이를 유통망으로 삼는 일종의 네트워크 마케팅이다. 2002년에 시작된 이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받은 부인 자영업자들이 약 3만 7,000여 명에 달한다. ‘샤크티 암마(Shakti Amma)’라고 불리는 이들은 지역에 물건을 팔면서 선전하고 거기서 수입을 얻는다.
“이젠 R&D에서 한발 나가 C&D로 승부하라”
기업 간 기술 경쟁이 격화되고 정보기술의 발달로 후발주자와의 격차가 줄어들어 점점 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지는 지금, 기업들의 공통 화두는 ‘어떻게 새 먹을거리를 빠르게, 효율적으로 발굴하느냐’가 됐다. 상당수 기업은 새로운 연구개발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직원들의 창의적 사고를 격려하는 등 내부 기술개발 능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 내부 기술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도가 높고 투자 효율성이 떨어진다. 이런 점에서 세계 1위 생활용품 기업인 P&G의 C&D(Connect and Development, 연결개발) 전략이 최근 기업들로부터 ‘개방형 기술혁신’의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C&D 전략의 핵심은 외부의 R&D 역량을 활용하는 것이다. 내부 연구진들이 성공하기를 기다려 신제품을 출시하기보다는 외부의 자원을 빨리 연결해 신속하게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보톡스가 유행하던 2003년에 P&G는 프랑스의 소규모 벤처 기업인 세데르마(Sederma) 사가 피부 재생 기술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내 이 회사와 함께 올레이(Olay) 브랜드로 주름 개선 화장품을 출시했다. 연구개발에 걸린 기간은 18개월로 기존 개발 기간의 절반에 불과했다. 감자칩 프링글스에 글씨를 새긴 ‘프링글스 프린츠(Pringles Prints)’도 C&D를 통해 만들어낸 제품이다. 얇고 끈적이는 감자칩 반죽에 글씨를 새기는 기술이 필요했던 P&G는 이 같은 내용을 인터넷에 올렸다. 링크를 타고 대서양 건너 이탈리아의 대학교수가 운영하는 한 제과점에서 답이 왔다. 2004년 출시한 이 제품은 말 그대로 ‘대박’을 터뜨렸다.
대부분의 기업이 기술 제휴에 폐쇄적이던 상황에서 이 같은 전략은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자신의 역량이나 관심 분야, 미래 사업 구상 등을 경쟁업체에 고스란히 내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P&G는 기술․전략 유출의 위험성을 감수하더라도 혁신의 속도를 높이는 길을 택했다. 신제품 출시 속도(time-to-market)를 더 빠르게 하면 경쟁사가 따라올 겨를이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P&G는 경쟁사인 클로록스(Clorox)와 손잡고 주방용 랩 ‘글래드(GLAD)’를 만들어낼 정도로 적극적인 오픈 정책을 구사했다. 이 같은 전략을 통해 P&G는 150만 명 규모의 연구개발 인력을 활용하는 효과를 거뒀다. 내부 연구개발 인력인 9,000명의 무려 167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자연스레 P&G 내부의 연구 인력들은 외부로 결코 유출돼서는 안 되는 몇 가지 핵심 기술 개발에만 역량을 집중할 수 있었다.
이젠 회사 내에서, 자국 내에서 모든 인재와 기술을 구하려는 전략으로는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상황과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어졌다. 회사 바깥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연구소의 외형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 연구소가 몇 곳이나 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기업이 얼마나 외부 자원과 적절히 네트워킹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에 따라 얼마나 효율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 활용하고 있는지다.
“감성에 호소하라”
현대 사회의 소비자들은 자신이 이용하는 물건으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의하려는 경향이 있다. 할리데이비슨(Harley-Davidson)을 타는 사람과 벤츠를 타는 사람은 다르다. 어떤 사람이 뱅앤올룹슨(B&O)의 오디오 기기를 사들일 때 그 사람은 ‘디자인의 독특함과 우수한 음질에 거액을 지불할 수 있다’는 메시지도 함께 사들인다. 상품에서 인간적인 매력이 물씬 풍길 때, 소비자는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행위를 ‘나 자신’을 만들어가는 행위로 여긴다.
제품에 인간적인 매력을 불어넣어라 - 할리데이비슨
할리데이비슨이 처음부터 고객들의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니다. 1969년 도산 위기에 처한 할리데이비슨을 인수한 미국 레저 업체 AMF는 소형 모터사이클 개발에 주력하며 주 고객층을 등한시했다. 그로 인해 한때 90%에 이르렀던 할리데이비슨의 시장 점유율은 25%까지 감소했다. 구원 투수는 의외로 내부에서 나타났다. 1981년 AMF 사가 할리의 정체성을 훼손한다고 여겼던 회사 임원진 13명은 십시일반으로 자금을 마련해 회사를 사들이고 2년 후 고객 커뮤니티인 호그(H.O.G.)를 결성했다. 임원진들이 스스로 몸에 문신을 새기고 가죽점퍼를 걸치고 브랜드에 담긴 ‘자유’와 ‘저항 정신’을 알리며 랠리에 나섰다. “독수리는 홀로 비상한다”라는 가슴 뛰는 캐치프레이즈와 남성다운 이미지에 고객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첫해에 호그의 멤버는 총 3,000명에 불과했지만 2년 뒤에는 6만 3,000명으로 늘었다. 적극적인 문화 코드 전파로 위기를 극복한 것이다. 이 같은 사례는 ‘고객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명확한 아이덴티티를 가진 제품’이 그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들은 무려 100년 동안이나 심장박동처럼 들리는 소리를 통해 할리를 ‘살아 있는 존재’로 느끼게 해주는 V트윈 엔진의 형태를 바꾸지 않았다. 스스로의 장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임원진들 스스로 회사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알려 나갔다. 그렇다고 무조건 ‘옛날 모습 그대로’를 외치는 것도 아니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제품의 특징을 조금씩 수정하는 ‘센스’도 발휘하고 있다. 아시아 시장의 성장과 여성 라이더의 증가에 맞춰 모터사이클의 본체 높이를 낮추고 조작법을 간단하게 바꾸고 있다. 여성라이더가 많아지는 만큼 커뮤니티에서도 ‘형제애’라는 표현을 ‘형제자매애’로 바꿔 사용하도록 해 신규 고객을 배려하고 있다. 고객과 밀착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회사의 기존 전략을 고객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제품 본래의 목적에 집중하라 - 닌텐도
일본의 유명 게임 업체인 닌텐도가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식은 할리데이비슨과 조금 다르다. 이 회사는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게임’으로 세계를 휘어잡았다. 비디오 게임기 Wii와 휴대용 게임기 DS 라이트가 등장하기 전까지 게임 업계는 성능 위주의 과다 경쟁을 벌여왔다. 그러나 닌텐도는 가격을 대폭 낮추고 기능을 단순화했다. ‘재미로 승부한다’는 콘셉트에 모든 것을 집중한 것이다. 게임 타이틀은 교육, 운동, 퍼즐 등 누구나 건전하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이다. 조악하다는 느낌이 들 만큼 그래픽은 단순하고 조작법도 쉽다. 사용 설명서를 읽지 않고 게임을 해도 ‘쉽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닌텐도 게임기를 마니아를 위한 고성능 기구가 아니라 거실에 놓고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장난감으로 받아들인다.
할리데이비슨과 닌텐도가 고객들의 감성에 호소할 수 있었던 공통적인 비결이 있다. 스스로의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고객들이 원하는 방향과 스스로의 정체성이 맞는다는 확신에 따라 시장 상황에 맞춰 이를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는 점이다. 고객들은 이 같은 회사에 매력을 느끼고 응답한다.
“위험을 감수하고 실패를 인정하라”
씨앗을 키우려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도전정신이 있어야 한다. 조직의 창의성을 북돋워 참신한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더라도 그것이 아이디어에만 그친다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실제 사업으로 실행해 과감하게 도전해야 성공하든 실패하든 결과가 나온다. 창조적 전환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리고 위험을 감수하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멋진 실패도, 위대한 성공도 있을 수 없다.
세계 3차원(3D) 그래픽 칩 시장에서 인텔을 꺾고 1위에 오른 컴퓨터 그래픽 카드 업체 엔비디아(Nvidia)는 실패를 겸허히 인정하고 자산으로 활용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엔비디아는 혁신, 지적인 솔직함, 단합, 높은 기준 등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 이 중 ‘지적인 솔직함’에는 세 단계가 있다. 첫째는 스스로 솔직하게 실패를 인정하는 것, 둘째는 남들의 실패를 비난하지 않는 것, 마지막으로 실수를 자산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실수를 저지르는 이유는 도전하기 때문이고, 무엇인가 창조하고 혁신하려면 당연히 실수를 하게 마련”이라는 게 엔비디아 경영진의 지론이다. 그래서 신입사원이나 경력사원을 뽑으면 지적인 솔직함이란 개념을 먼저 교육시킨다. 엔비디아에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직원들이 가장 자주 쓰는 말은 “I was wrong.”(내가 틀렸다)이다. 관리자나 상사, 부하 직원 등 누구 앞에서든 자신의 실수를 기꺼이 인정한다. 엔비디아가 중요시 하는 것은 “Doing it right.”(똑바로 하는 것)가 아니다. 엔비디아는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가진 사람, 즉 “I'm doing it my way.”(나만의 방식으로 한다)라는 신념을 가진 사람을 격려한다.
구글(Google)은 본사와 지사 직원들이 ‘업무시간의 5분의 1’을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해준다. 초창기부터 ‘20% 룰’을 규정하여 모든 직원이 업무시간의 20%를 자신이 원하는 창의적인 프로젝트에 힘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3M도 매우 오래전부터 근무시간의 15%를 창의적인 연구와 실험 활동에 할애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그 결과 최대 히트 상품이 된 ‘포스트 잇’이나 ‘마스킹 테이프’ 등의 아이디어 상품이 탄생했다. HP도 오픈 랩(Open Lab) 정책에 따라 연구소를 24시간 개방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팔로알토(Palo Alto)에 있는 HP연구소는 24시간 가동되며 연구원들이 언제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밤이든 휴일이든 당장 연구소로 뛰어가 실험하고 확인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혼다는 매년 도전적인 업무를 추진하다 실패한 직원 가운데 한 사람을 선정해 ‘올해의 실패왕 상’을 준다. 상장은 물론 100만 엔까지 상금도 지급한다. 세계적인 유통업체 월마트는 ‘꼴찌 격려미팅’을 한다. 본인의 실패를 동료들에게 알리고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지를 발표하면 동료들이 격려해주는 것이다.
무언가를 창조하려면 도전과 실패가 따르기 마련이다.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도전정신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또 한두 번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재도전하는 근성이 필요하다. 남을 탓하지 않고 실패를 스스로 인정하고 이를 자산으로 삼는 엔비디아의 ‘지적인 솔직함’ 등을 기업들이 배워야 하는 이유다.
“글로벌 인재를 확보하라”
좋은 인재라면 국경을 넘어서라도 데려오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인재를 확보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시장에서 유명하다고 알려진 인력을 고액 연봉을 주고 데려오기만 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막상 조직 내에서 융화하지 못하고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기존의 조직원들과 조화롭게 협력하지 못하는 외부 수혈일 때 부작용만 빚고 실패로 끝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핵심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그 방법도 다각도로 진화하고 있다. 전 세계로 눈을 돌려 글로벌 인재를 찾는 것은 기본이다. 조직 내에서 체계적인 훈련 과정을 거쳐 최고의 인재를 길러내려는 노력도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해외로 진출하는 기업들에게는 현지에서 채용한 인력을 자사의 기업문화에 맞게 키우는 일이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영원한 창조의 원천, ‘사람’에 투자하라 - 페덱스
페덱스(Fedex)에는 말단 사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가 된 성공 신화가 수두룩하다. 사무직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배달 직원에게까지 기회는 말 그대로 ‘공평하게’ 주어진다. 이 같은 일이 가능한 것은, 외부 직원을 스카우트하기보다 내부 직원에게 충분한 교육과 승진 기회를 부여하는 ‘PSP(People, Service, Profit)’ 정책 덕분이다. PSP 정책은 “직원들을 가장 먼저 고려할 때(People) 고객에 대한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고(Service) 회사가 이윤을 많이 남길 수 있다(Profit)”는 창업주 프레드릭 스미스(Fredrick W. Smith)의 기업 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실제 모든 페덱스 직원은 연간 2,500달러의 교육비를 회사에서 지원받아 마음껏 외부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직원들을 구조조정 하는 일도 좀처럼 없다. 직원을 채용할 때는 인종․성별․나이․종교․성적 취향 등을 아예 묻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승진 과정에서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되면 언제라도 승진 심사 과정을 조사해달라고 회사에 요청할 수 있다. 대신 일단 매니저(부장)급 이상의 간부로 승진한 이들에게는 혹독한 리더십 교육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법률 지식부터 페덱스의 역사와 가치관, 직원들을 관리하는 법, 만족시키는 법, 인사 평가 방법 등 많은 것을 교육받는다. 직원들이 자신을 맡고 있는 간부의 리더십을 다각도로 평가하는 SFA(Survey-Feedback-Action) 제도도 간부들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당연히 페덱스의 간부들은 강력한 검증 과정을 거치며 단련된 리더로 거듭난다.
현지에선 현지 사람이 해답이다 - GE
100여 개국에 걸쳐 30만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GE는 “본사는 글로벌하게, 일선 조직은 로컬하게”라는 모토 아래 본사 파견 인력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가령 GE 한국법인을 보면 1,400명가량 되는 직원 중 본사에서 파견된 인력은 30명 정도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파견 인력은 대부분 기술적인 지원을 담당하는 엔지니어들이다. 현지에서 채용한 인력에게 더 많은 기회와 권한을 줘야 현지 시장에 적합한 접근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GE의 믿음이다. 이 때문에 현지에서 채용한 인력이 다른 지역의 업무를 경험하고 성장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인사 담당자의 주요 업무다. GE는 사업부문과 지역 간에 순환 근무가 활발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따로 주재원을 두지 않는다. 직무 성과가 상위 20% 안에 드는 직원들은 인트라넷에 끊임없이 올라오는 ‘빈자리’ 정보를 보고 이동을 신청할 수 있다. 글로벌 기업의 경우 성공적인 인사 관리를 위해서는 반드시 표준화된 인재 관리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문화와 조직 체계, 직원들의 성향이 다른 수많은 현지법인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인사 시스템을 최대한 간단하게, 누구나 이해하기 쉽고 어디에나 적용하기 쉽게 구성해야 한다. 동시에 현지에서 채용한 인력들이 기업의 핵심 가치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페덱스와 GE 등의 인재 확보 전략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은 잘 짜인 시스템과 유연한 사고다. 필요할 때마다 사람을 찾는 주먹구구식 채용으로는 원하는 인재를 결코 찾을 수 없다. 향후 몇 년을 내다보고 직급과 분야별로 인재 확보 계획을 세밀하게 짜고 반드시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를 구축해놓아야 한다. ‘이 방식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틀에 박힌 사고방식도 금물이다. 전 세계로 시야를 넓혀 핵심 인재를 데려오려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존 조직원의 열린 사고방식이 전제가 돼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