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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문을 충전하라
이 홍사
나이를 먹어가면서 자꾸 충전해야할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견문이다.
견문충전소!
문득 떠오른 말인데 학교를 지칭하는 게 아니다. 살다보면 학교울타리 밖에서 충전해야할 것들이 더 많다. 예전에 어느 재벌 총수는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다. 그 유명한 말에 대입하자면 세상은 넓고 배움은 도처에 널려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계를 돌아다니며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은 도처에 널려있는 것이다. 하여 마흔 줄에 그 말만 믿고 몽골로 나갔었다. 칠년을 고약하고 드센 몽골사람들을 상대로 중고 중장비장사를 하며 견문을 넓혔다. 그 견문을 바탕삼아 지금은 미얀마로 건너가서 일을 벌여놓았는데 아무리 배우고 익혀도 알지 못할 사람들이 미얀마 사람들이다. 두 나라를 돌아다니며 느낀 바를 비유하자면 몽골사람들은 한 대를 쥐어박고 마는데 미얀마사람들은 슬슬 약을 올리며 사람을 말려서 죽인다.
미얀마 사람들!
아무리 생각해도 상식이 통하지 않는 족속이다. 상식 이하에서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다. 쓸데없는, 건강상 유익할 게 없는 생각을 해서 또 명치끝이 답답해졌다.
견문이 좁고 포용력이 없어서 그런가?
어디 견문충전소는 없나? 자동차 가스 충전하듯이 뇌의 뚜껑을 열고 주유기처럼 생긴 주입기를 푹 쏘아서 견문을 단번에 충전하는 그런.......
택시 차창 밖으로 어둠살이 내리고 있는 저녁 무렵이었다.
이 시간에 택시를 탔다는 얘기는 술을 마시러 간다는 소리다. 술 약속이 있으면 절대로 차를 가져가지 않는다. 차를 가져가면 주차할 공간을 찾아야하고 돌아올 때 대리운전을 부르면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문자 메시지가 감당이 안 된다. 하여 대리운전을 부르더라도 내 휴대폰을 이용하지 않고 식당 주인에게 불러달라고 하며 술 약속이 잡히면 일찌감치 시내버스를 타고 나갔다가 택시를 타고 들어간다. 하지만 오늘은 약속한 위치가 확실하게 떠오르지 않고 J가 급하게 잡은 번개라서 택시를 탄 것이다.
J라는 녀석은 항상 이렇게 비상을 건다. 구미인가 싶어 전화를 하면 서울이라 하고 서울에 갈 일이 있어서 빈대 좀 붙으려고 전화를 하면 구미에 내려와 있는 녀석이라 도무지 행방을 종잡을 수가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자식 덕을 보기는 힘이 들 것 같다. 그렇지만 희한하게 붙임성이 있어서 밉지는 않고 도와줄 일이 있으면 뭐든지 도와주고 싶다. 나뿐만이 아니라 지인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예상과는 달리 약속한 식당은 헤매지 않고 쉽사리 찾을 수가 있었다. 형곡동 시영아파트 정문 부근 생고기 집이라 했는데 가서 보니 예전에 한두 번 왔었던 집이다. 이 집의 특징은 생고기를 먹는 손님에 한해서 소주가 파격적인 가격이다. 슈퍼에서 파는 가격보다 싸다. 단지 소주는 셀프다. 소주에서는 밑지고 생고기를 많이 팔아서 남기겠다는 장삿속이다. 하지만 생고기가 수입이 아니다. 한우인데 양도 푸짐하여 항상 손님이 들끓는 식당이다. 식당치고 인테리어는 전혀 안 된, 아니, 안 한 집이다. 콘크리트 천정에 그대로 형광등을 매달고 바닥도 시멘트로 미장을 한 바닥 그대로다. 내부 인테리어를 하는데 몇 억 들여서 하는 것보다 이문을 좀 작게 남기며 장사를 하다가 나중에 권리금 문제로 시비가 붙는 일이 없다는 걸 생각하면 현명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매일 생고기를 써는 식당 주인남자가 아마도 오토바이 마니아인 모양이다. 한쪽 벽면을 통째로 차지한 커다란 현수막에 오토바이 타는 모습의 사진이 붙어있다. 그 사진의 주인공이 바로 칼자루를 쥐고 고기를 써는 주인장이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라 특별한 화제가 없는 술손님들이 오면 오토바이가 얼마짜리인가 내기를 하면서 주인을 불러서 가격을 묻곤 한다. 이 집의 유일한 인테리어라면 그것뿐이다.
-견문을 넓혀라. 119! 짠~
식당 문을 들어서자 후배 녀석. J가 초록색 여권을 눈앞에 들이밀며 한 말이다. 내가 미처 자리도 잡기 전이었다. 견문이라....... 내가 택시를 타고 오면서 떠올린 언어였다. 이심전심인가?
-야! 견문을 119로 넓히나? 왜 119를 들먹여?
-급할 때는 119잖아요?
-미국에서는 나인 원 원, 911이다.
다 같이 약속을 했는데 내가 가장 늦게 도착한 것이다. 세 명이 다 와 있었고 식탁에는 벌써 생고기가 반접시가 비어 있었고 빈 소주병이 둘이다. 겨우 여섯 시인데 짧은 겨울 해라 밖에는 어둠살이 내리고 있었다. 오늘 비자를 받았다는 것이다. 자리를 잡고 앉으며 J에게 물었다.
어디로 갈 건데? 중국! 중국이 뭐 손바닥만 하냐? 중국 어디?
내 잔에 H가 따라주는 소주를 받으며 J와 그런 말들이 오갔다. 심양을 거쳐 장춘으로 올라가서 하얼빈으로 한 바퀴 돌 예정이라고 했다. 그 말을 내가 물고 늘어졌다. 내친 김에 하얼빈에서 이렌으로 올라가서 쟈밍우드를 거쳐 몽골을 한 바퀴 돌고 불라디보스톡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가서 배를 타고 일본 홋가이도로 돌아서 내려오라고. 그러면 동북아 여행은 끝이고 별을 실컷 보고 올 수가 있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이 나라에서는 별을 볼 수가 없다. 이젠 도회가 아니라 시골로 나가도 그렇게 많은 별을 볼 수가 없는 지경이다. 러시아 비자도 없어져서 노비자로 갈 수가 있고 일본도 그렇다하면서 한 바퀴 돌고 오라고 했다.
-백수인 나야 별을 친구삼아, 유랑별처럼 그렇게 돌면 좋죠. 헌데 형님들께서 시간이 안 된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정했어요.
마주앉은 사람은 H와 K였다. K는 시청 학예연구관에서 명퇴하고 어느 문중이나 전국 문화원의 책자가 나올 적에 글을 써주고 사진과 함께 관계 자료를 정리해주며 지역대학에서 문화강좌 강의를 하는 프리랜스로 뛰고 있고 H는 시청의 문화유산 해설가인데 연말과 연초의 연휴를 활용하여 겨우 시간을 쪼개서 낸 모양이다.
며칠을 예정하는데? 언제 출발이고? 모레 출발하는데 한 열흘 걸릴 겁니다. 올해 갔다가 내년에 오는구먼. 심양인가 장춘에 아는 선밴가 후배가 무슨 사업하고 있다고 했지? 거기 가서 빈대 좀 죽이겠네? 당연히 그렇게 되겠죠.
J는 당연하다는 듯 ‘당연히’를 강조했다. 여행은 그렇게 우르르 몰려다니며 아는 사람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보이는 만큼 느끼는 것이다. 그냥 혼자 배낭을 메고 조용히 다녀와야 견문이 넓어지는 거라고. 나가서 보면 서양아이들은 다 혼자나 둘이 다니고 있다. 가이드북 하나 쥐고 다니다가 다른 나라 아이들 만나서 친해지면 같이 밥 먹고 밥값은 나누어서 내고 싸구려 게스트하우스 같이 쓰고 다음날 헤어지고 또 다른 아이들 만나서 여행정보를 교환하면서 그렇게 다니고 있다는 말을 J에게 들려주었다.
-그렇게 하고 싶지만 말이 통해야지요.
말은 소통의 수단일 뿐이다. 다른 방법으로 소통하면 된다. 언어보다는 항상 눈치가 먼저다. 인간에게는 보디랭귀지가 있지 않은가? 나가면 다 통하게 마련이다. 말이 안 통해서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인간은 하나도 보지 못했다. 나는 캄보디아도 그렇게 갔었고 티베트라싸, 바이칼호수, 대만, 베트남도 그렇게 혼자 갔었다. 꼭 가고 싶은 곳이 정해지면 온다 간다는 말도 없이 혼자서 훌쩍 다녀오는 것이다. 가이드북 들고 유명관광지에 가면 한국에서 패키지로 온 여행객이 꼭 있게 마련이다. 뒷전에 서서 그 쪽 가이드의 설명을 귀동냥으로 듣고 혼자 다니는 거다. 미얀마에서 짬이 나면 직원들에게 한국을 잠깐 다녀오겠다고 하고는 거기서 항공료가 저렴한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방콕, 라오스를 그렇게 다녀왔다. 다음에 짬이 나면 뭄바이를 가볼 작정이다.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나는 내 여권 번호와 여권을 만든 날짜를 외우고 있을 정도다. 여행은 견문을 넓히는 것도 있지만 일상을 벗어난 자유로움의 만끽에 목적을 두고 있다는 말을 했고, J는 그 말에 수긍하는지 고개를 주억이고는 술잔을 들었다.
자유를 즐기며 홀가분하게 혼자 다니기 시작한 건 혼자서 일본을 다녀오고부터다. 혼자서 후쿠오카를 다녀오고부터 나도 모르게 간이 커졌고 행동반경이 넓어졌다.
그게 그러니까 벌써 이십 년이 다 되어간다.
휴대폰이 대중화되기 전이었으니까. 지금은 저 세상 사람이 되었지만, 이런 말을 하니 또 가슴이 저미는데........
잠깐! 저미는 가슴에 소주 한잔을 털어 넣고.
*
그렇다.
K가 살았을 적의 일이다.
일본어를 전공했고 제대하고 바로 일본에서 이 년 체류했다는, 친동생처럼 아끼는 후배 K를 따라 일본을 가기로 했다. 당시에는 일본에도 비자가 있던 시절이었고 K는 부실해진 신장으로 인해 나흘에 한 번씩 투석을 받으며 지역 전문대학에서 일본어 강사로 뛰고 있던 중이었다. K는 겉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건강해 보이던 시절이었다. 노가다에서 죽으라고 일만하던 나에게는 난생처음 하는 해외여행이라 일정이 구체적으로 잡히자 일찌감치 여행사를 통해 단수비자를 받았다. 일본을 자주 다니는 K는 멀티비자가 있다고 했다.
닷새일정으로 부산여객터미널에서 쾌속선을 타고 후쿠오카로 건너가 부근을 둘러보기로 했다. 출발하는 날이 아마도 금요일이었지 싶다. 하여 목요일 저녁에 K는 부산으로 내려갔다. 새벽에 병원으로 가서 투석을 받고 내가 다음날 새벽차로 내려가 표를 끊어놓으면 여객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그리고 갔다가 오면서 바로 부산의 병원에 들러 투석을 받고 올라오기로 계획을 잡았다. 하루 전날 K가 내려가고 내가 구미에서 새벽차로 내려가서 왕복으로 표를 끊고 환전을 하고 K를 만나는 것 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출국수속을 하는데 줄을 서다보니 내가 K보다 두어 사람 앞에 섰다. 내가 K 보다 뒤에 섰다면 문제는 달라질 수 있었으리라. 출국수속을 밟고 출국장 안으로 들어섰는데 뒤에서 수속을 밟던 K에게 브레이크가 걸렸다. 무슨 일인가? 멀티비자가 만기를 넘긴 비자라고 하면서 출입국사무소 직원이 해운회사 직원에게 전화를 해서 비자날짜도 체크하지 않고 표를 끊어주었다고 옆에서 듣기 민망할 정도로 욕설을 섞어가며 심하게 나무랐다. 결과적으로 K는 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걸 어떡하나? 잠시 망설였다. 심한 낭패감을 느꼈지만 순간적으로 돋아난 도전정신의 칼날이 그 낭패감을 기선제압 했다. 차라리 잘됐구나. 그냥 가자. 결연한 마음으로 K에게 소리쳤다.
내 갔다가 올게. 말이 안 통하면 삼 년을 있다가 말을 배워서 돌아올게. 삼 년 안에는 무조건 올 거야. 기다려. 삼 년 안에는 온다구.
그 말을 던져놓고 출국장 안으로 사라졌다. 일본어는 한 마디도 못하고 혼자 갈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배를 타면 한국 여행객이 있을 거다. 그들의 도움을 좀 받으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배를 타니 썰렁했다. 승객은 겨우 스무 명 정도? 누구에게 말을 걸어야하나? 망설여졌다. 두 시간 남짓 걸리는 배 안에서 일본의 입국카드를 작성하며 보니 머무는 호텔을 적는 난이 있었다. 눈치로 때려잡아 배에 있는 후쿠오카 호텔안내 책자를 보고 만만한 호텔을 찾아서 적었다. 내려서 입국 수속을 하며 보니 전부가 일본인이었다. 한문으로 내국인이라고 적힌 곳에는 줄을 서 있는데 외국인이라 적힌 곳에는 썰렁하게 나 혼자였다. 입국 수속을 하던 직원이 나에게 물었다. 목적? 나는 그의 눈치만 보고 가만히 있었다. 목적? 또 물었다. 뭐라고 말해야 되나? K가 통역을 좀 해주면 좋으련만, 휴대폰은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목적? 그도 한국어를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뭐라고 말해야 되나? 한참을 생각하다가 메고 있던 배낭의 카메라를 꺼내들고 후쿠오카성 찰깍! 이라고 하며 사진을 찍는 시늉을 했다. 그때만 해도 일본에 불법 체류하는 한국인이 많았던 모양이다. 돌아가는 배표와 환전한 엔화까지 보여주고 여권에 입국도장을 받을 수가 있었다.
땀을 빼며 입국 도장을 받고 여객터미널을 빠져나가니 택시가 줄지어 서 있었다. 택시를 타야하나? 걸어야 하나? 난감했다. 일단 택시를 타고 배에서 가져간 호텔안내 책자를 펴서 찍어둔 만만한 호텔을 가리키며 그리고 가자고 손짓했다. 가서보니 호텔을 바로 하까다(나중에 알게 된 역 이름이다) 역 뒤에 있었다. 손짓발짓하여 혼자 잔다며 작은 방으로 호텔을 잡고 배낭을 풀고 하까다 역으로 갔다. 그곳 말고는 딱히 갈 곳이 없었다. 둘러보니 일층은 역이고 이층은 식당가와 상가였다. 삼층으로 올라가보았는데 눈치를 보니 사무실로 임대를 준 것 같았다. 이층 식당가에 가니 나 같이 일본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나 같은 여행객이 많은지 진열장의 그릇에 모형 음식을 담아놓고 밑에 얼마라고, 아라비아숫자로 가격을 적어 놓았었다.
식당마다 다 그랬다. 일단 그걸 보니 안심이었다. 최소한 밥은 굶지 않겠구나. 상가 쪽으로 가니 서점이 있었다. 서점에 들러서 둘러보다가 한국어라고 한문으로 쓰인 책을 발견했다. 펼쳐보니 일본 초등학생들이 한국어를 공부하는 책인 모양이다. 위에 일본어로 뭐라고 적혀 있고 밑에 한국어가 적혀 있었고 발음은 또 일본어로 작게 기록해놓은 책이었다. 아하! 다니다가 이걸 거꾸로 가리키면 되겠구나. 그 책을 들고 서점 안을 돌아다니다가 후쿠오카의 지도책을 샀다. 계산을 하는데 직원이 강꼬꾸? 라고 물었다. 아하! 일본에서는 한국을 강꼬꾸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하나 배웠다.
호텔로 돌아가며 호텔 앞의 세븐일레븐에 들러 커피를 사며 뭐가 있는지 파악했다. 눈에 띄는 것은 초밥으로 된 도시락이었다. 아침은 저 도시락을 사다두었다가 먹으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가격을 확인했다. 가격을 확인하며 한국 돈으로 얼마인가를 속셈으로 환산해보니 싼 가격이 아니었다. 멀건 대낮에 호텔에 틀어박혀 사가지고 간 한국어 책을 대충 훑어보며 무슨 문장이 어디쯤 있나, 확인하고는 지도책과 함께 들고 다시 나왔다. 역으로 나와 지도를 보고 또 열차와 지하철 노선도를 확인하며 생각했다. 그냥 관광이 아니라 이건 생사가 걸린 생존여행이라고. 무조건 많이 보아야 K에게 할 얘기가 있다. 한국에서 K는 노심초사할 것이다. 호텔에만 죽치다가 가면 K가 상당히 미안해할 것이다. K의 미안한 감정을 덜어주기 위해서 무조건 많이 보아야 한다. 인간성의 맨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인정받고 싶은 열망이다. 그 K에게 받을 인정의 열망을 위해 많이 보아야 한다.
다음날 둘러볼 곳을 정하고 이층 식당가로 올라가 진열대의 모형음식을 둘러보다가 볶음밥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문해서는 저녁을 때웠다.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식당에서 배운 인사말이었다. 저녁을 먹고 들어가며 다음날 아침으로 먹을 도시락을 사는데 깜짝 놀랐다. 50% 할인가격이었다. 눈치로 두드리니 도시락의 유통시간 때문에 그런 파격적인 가격으로 파는 모양이었다. 그날 할인 시간대를 확인하고는 닷새 동안 할인된 초밥도시락으로 아침을 때웠다.
다음날 오전 걸어서 둘러볼 곳, 지도를 보고 가까이 있는 절과 신사를 둘러보고 오후에는 지하철을 타고 좀 멀리 공원으로 나가며 지하철 안내방송을 듣고 공원을 일본어로 꼬엔이라고 한다는 것과 역을 엑끼라고 한다는 걸 알았다. 지하철 노선도는 외우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 단선이라 환승하는 역을 외울 게 없어 수월했다. 공원으로 갔다가 거기서 가까이 있는 박물관과 후쿠오카성곽을 둘러보았다. 공원에서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들과 서툰 영어로 대화를 하며 이꾸라 데스까? 가 얼마입니까?, 라는 말도 배우고 익혔다. K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가는 곳마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후쿠오카에서 배울 것은 조경이고 또 질서라는 생각을 하며 조용히 돌아다녔다. 조용하고 싶어서 조용했던 건 결코 아니다. 말을 모르니 눈치를 보느라 조용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인공미가 가미되지 않고 자연미를 최대한 살린 조경기술과 깍듯한 인사성과 질서에서는 우리보다 선진국이었다.
다음날은 간이 커졌다. 시모노세키까지 기차여행을 하며 일본의 농촌풍경을 보았고 그 다음날은 간이 더 커져서 신깐센을 타고 가고시마로 내려가서 활화산의 연기를 보고 올라왔다. 그러면서 틈틈이 백 엔짜리 셔틀버스를 타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백 엔짜리 마트에 들러 간단한 기념품을 고르고 아이쇼핑을 했다. 그렇게 닷새 일정을 소화하고 배시간이 되어 부두로 가서 터미널이용료를 내고 들어갈 때보다 씩씩하게 여유를 보이며 출국수속을 밟고 현해탄을 건너왔다.
부산에 내려 K에게 전화를 해서 내가 떠난 지 삼 년이 안 되었냐고 물으니 일본 관광가이드로 나서라고 했다. 부산에 기차로 구미로 올라와 역에 마중 나온 K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같이 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았노라고 하면서 그렇게 돌아다녔으면 기타큐슈를 다 본 것이라 했고 성공적인 여행을 자축하자는 데 뜻을 모으고 역전 재래시장으로 가서 국밥을 먹었다.
다녀와서 생각하니 K와 같이 갔을 것 보다 마음이 홀가분하고 편했다. 같이 갔으면 K의 건강과 투석 때문에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동행이 있으면 자유로울 수가 없다. 타인은 지옥이라고 했다. K도 결국은 타인이었다.
*
옆에 앉아서 소주를 따라주는 J도 역시 타인이다.
생고기 접시가 다 비었다.
J가 아줌마에게 생고기 한 접시를 더 주문하고 냉장고를 열어 소주를 두 병을 꺼내왔다. 우물거리던 생고기를 다 씹고 소주를 홀짝이고는 내 견해를 좌중에 밝혔다.
-타인은 지옥이라고 했어. 같이 갔다가 분명히 싸우고 돌아온다.
-타인은 지옥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데?
소주를 홀짝이며 듣고만 있던 K가 반문했다.
샤르트르의 말이다. 타인에 대한 배려 때문에 내 기분이 망가진다고 타인은 지옥이라 했을 것이다. 생각하면 상당히 과장된 말인 듯 들리지만 실은 맞는 말이다. 생활 패턴이 다른 사람이니 사흘만 같이 다니면 다투게 된다. 또 여행은 피곤하니까 상대에게 짜증을 많이 내게 되고 심지어 마누라하고 일주일을 가면 다녀온 후에 최소한 사흘은 말을 안 하게 된다고 했다. 마누라 역시 타인이다.
-맞아. 요즘은 신혼여행 다녀온 후에 성격차이를 실감하게 된다는 분석 자료가 있어. 심하면 신혼여행 다녀와서 바로 이혼을 결심하는 신혼부부도 있다고 하던데?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H가 거들었다. 아마도 어느 잡지에서 하릴없는 기자가 역시 하릴없는 짓거리를 분석한 기사를 읽은 모양이다. 그 사이 탁자위의 빈 소주병은 또 하나가 늘었다.
-아! 여행이 인간관계에서 한없이 위험한 거구나. 그렇지만 우리는 술 마시러 가는 건데 뭐. 그렇죠? 형님들!
-듣고 보니 여행도 관광도 아니구먼. 견문 넓히러 간다며?
젓가락으로 생고기에 양념을 찍으며 들으라는 소리로 뱉었고 내 말을 J가 물고 늘어졌다.
-형님! 그 말이 그 말이지, 여행이나 관광이나.
모르는 소리. 여행과 관광에는 미묘하고 오묘한 차이가 있다. 여행은 견문을 넓히거나 머리를 식히려고 가는 것이고, 관광은 술을 마시거나 놀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하다. 근데 누굴 만나고 술추렴하러 간다니 관광도 아니고 여행도 아니라고 하면서 비아냥거렸다.
임도 보고 뽕도 따는 거지요. 그래. 임도 보고 뽕도 따라. 콧구멍에 바람이나 잔뜩 넣고 와라. 그런데 형님은 미얀마에 언제 나가세요?
오는 토요일에 미얀마로 나가기로 되어 있다. 미얀마는 우기가 끝나고 건기에 접어들었다. 일찍 마친 것은 지금이 분양적기이고 마무리 공사를 우기에 중단시켜놓은 것도 지금 시작시켜야 내년 우기 전에 분양을 마칠 것이다. 모르긴 해도 이번에 미얀마에 나가면 정신이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미얀마를 올해 갔다가 내년에 돌아오게 될 것이다.
-형님도 미얀마에서 일을 잠깐 보고 중국으로 넘어오세요.
평생 일을 해본 적이 없고 돈을 벌어본 적이 없는 J는 일을 ‘잠깐’ 보고 오라고 했다. 그 잠깐이라는 말이 귀에 엄청 거슬렸다.
-잠깐 만에 되는 일은 아니지만, 중국 어디로?
-하얼빈쯤에서 만나죠.
-야! 이 멍청한 친구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미얀마 양곤에서 하얼빈 갈려면 비행기를 서너 번 정도 갈아타야한다. 양곤에서 홍콩으로, 홍콩에서 베이징으로, 베이징에서 하얼빈으로, 모르긴 해도 가는 데만 이틀은 족히 걸릴 걸? 중국 비자도 다시 받아야 되고.......
-다른 루트는 없나요?
다른 루트도 있다. 육로를 이용하는 방법. 미얀마 양곤에서 만달레이로 올라가 시속 삼십 킬로로 달리는 느림보 국제선 협궤열차를 타고 이틀에 걸쳐 중국 운남성으로 들어가서 육로로 기차나 버스를 갈아타며 길림성으로 올라가는 방법, 그렇게 가면 가는 데만 열흘, 아니 보름은 정도는 족히 걸리겠다. 차라리 정 가고 싶다면 인천공항으로 나와서 바로 환승하는 게 편할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하얼빈으로 가는 비행기는 매일 있나?
하얼빈으로 가는 비행기는 일주일에 두 편쯤 있다고 했다. 마주앉은 H도 아마 그럴 거라고 맞장구를 쳤다. 날 샜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얼빈에서 합류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 항공편만이 아니라 복장도 그렇다. 여름나라에 있다가 춥다고 소문난 곳으로 가야하니 겨울옷도 준비를 해야 한다. 준비를 못하면 가서 싸구려를 사서 입으면 되겠지만 거 보다 중요한 것은 여행하는 작자들이, 하나같이 주머니가 얄팍하다는 점이다. 내가 가기만 하면 모두들 내 주머니부터 넘볼 작자들이다. 그건 자명한 일이지만 H와 H가 있는 데서는 입을 뗄 수가 없다.
야! J. 비행기 전세내서라도 갈 수가 있지만 안 갈련다. 마음 접었다. 왜요? 내가 가면 그때부터 술값은 내 부담이 될 터인데 내가 뭐 못 먹을 약 먹었나? 그대를 만나면 허구한 날 사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거기까지 좇아가 술을 사야한다? 그대라면 그렇게 하겠는가? 아이고 형님! 오늘은 내가 삽니다. 내가 산다고 이 집으로 불렀어요. 하! 그러십니까? 그대 오늘 양놈 지갑 주웠소? 많이 먹어야겠네? 근데 이 차는 형님이 쏘세요.
아니나 다를까, 그 말이 나올 줄 알았다. 이 차를 사고 또 택시비가 없다면 택시비까지 주어야 한다.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J를 만나면 늘 그랬다. 이 백수에게 전생에 무슨 빚진 일이 있어서 그러는지 모를 일이다. 전생의 빚이라면 군소리 없이, 착실히 갚아야 하겠지.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 새삼스레 거론할 필요가 없다.
-좋아. 이 차는 짬뽕국물이나 자장면에 고량주다. 그건 내가 쏠게.
-형님! 자장면이 아니고 짜장면이라고 하세요. 자장면하고 짜장면이 맛이 다르다는 거 알고 있어요?
너? 오늘 말 많은 거 알고 있냐? 그 말을 하려다 꿀꺽 삼켰다. 모두들 들떠있었다. 여행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라 그런 모양이다.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여행을 앞두고 있으면 들뜨게 마련이다. 정작 여행보다는 떠나기 전의, 미지의 세계로 향한다는 그 설렘이 더 짜릿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도 늘 그랬고 다른 사람들이 적은 여행 후기를 보면 대부분 그렇다.
J라는 녀석이 그 여행의 설렘 때문인지 말이 많아져서 나도 대꾸하느라 너무 많은 말을 했다. 분답다. 이 녀석을 만나면 한마디로 분답다. 사유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저 집적거리고 쓸데없는 말을 걸고, 같이 있으면 온전해야할 정서가 훼손된다. 술을 마시며 술맛을 음미하며 깊은 고뇌에 빠지고 싶은데 상대에 대한 그런 배려가 없이 짬을 주지 않는다. 오늘은 더 심하다. 자고로 술자리란 끝나는 게 아쉬워야 하는 법이거늘, 이 녀석을 만나면 오히려 언제 술자리가 끝이 나려나 기다려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희한하게 밉지는 않고 불러주면 열일을 제쳐두고 나오게 되는 것은 녀석이 무슨 마력을 지닌 것일까.
내가 입을 다물어야지.
지금 날씨라면 중국의 동북삼성 쪽으로 여행을 하면 거의 동태가 될 것이다. 견문이고 뭐고 볼 것은 못보고 늘 숙소에 죽치고 앉아 양고기에 보드카만 마시다가 돌아올 게 뻔하다.
J가 이렇게 말 많은 백수가 된 건 그놈의 정치 때문이다.
삼십대 초반에 누구에게 등 떠밀렸는지, 만용을 부리며 국회의원에 출마해서 낙선하고는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받은 가산을 홀라당 탕진을 했다. 그 당시에 날린 땅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다면 신시가지의 갑부로 국회의원이 부럽지 않을 것인데, 쩝! 아쉽다. 그 길로 서울과 구미를 오가며, 정치판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백수건달이 되어 여태 장가도 못가고,
잠깐!
거, 참 신경 쓰이네!
J를 비롯해서 넷이서 여행 얘기를 하면서 맞은편 테이블에 앉은 마흔 중반의 여자와 몇 번이고 눈이 마주쳤고 마주칠 때마다 불꽃이 튀었다. 등을 돌리고 앉아있는 또래의 사내 둘과 소주를 마시는데 여자는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생고기와 맥주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데 어디서 보았지? 안면은 있어 보이는데 누구인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맞은편 여자도 나를 보고 눈이 마주치면 의식적으로 눈길을 피하고 있었다. 여자의 눈길을 피해 맞은편에 앉은 K를 보고 술잔을 들었지만 여자가 나를 힐끔거린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얼굴이 갸름하고 목이 유난히 긴 저 여자가 누구였지?
여자는 외투를 벗어 의자에 걸쳐두었는지 얇은 미색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이 날씨에 그것도 반팔이다. 목덜미에 레이스가 달렸는데 젖가슴 쪽으로 골이 깊이 파인 블라우스다.
꿈속에서 본 여자도 아니고 소설을 읽으며 상상한 이미지캐릭터는 더더욱 아니다. 그렇다면 나 혼자 힐끔거리지 상대가 힐끔거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분명히 어디선가 보았다. 누구더라? 아이들 학교의 선생님이었던가?
좌중의 이야기를 흘려들으며 내 신경은 맞은편 여자에게 가 있었다. 의식적으로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자신도 모르게 자꾸 힐끔거리게 되는 것이다.
맥주를 마시던 여자가 일어섰다. 아마도 화장실을 가는 모양새였다. 여자를 직시하는 않았지만 여자가 일어서는 걸 알 수가 있었다. 이 집 화장실은 실내에 있지 않고 밖으로 나가서 건물을 돌아 이층으로 올라가는 현관의 계단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외투도 걸치지 않고 저 차림으로 화장실을 가면 엄청 추울 터인데,
여자는 일어서서 나를 한번 힐끔거리고는 밖으로 나갔다. 나는 들고 있던 소주를 털어 넣고 생고기를 찍어 우물거리며 재킷주머니의 담배를 찾아들고 밖으로 나갔다. 좌중의 누구도 어디 가느냐고 묻지 않았다. 다들 담배를 피러 나가는 줄 알고 있다는 말이다.
건물모퉁이 텅스텐 재질로 된 스탠드 재떨이가 있는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화장실 갔던 여자가 블라우스차림이 추운지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나오는 게 보였다. 여자가 나를 보고 멈칫했다.
우리 어디서 보았죠? 내가 물으려는 찰라,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미얀마에 계시지 않았나요?
-아! 무띠따 미용실.
여자의 말에 번개처럼 스쳐가는 미용실이었다. 허름한 임대아파트 상가의 미용실이었다.
-나는 누구신가 했어요?
-저도 긴가민가했어요.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악수를 했다.
미얀마에서 만난 사람이다. 미얀마에서 짓던 집이 완공되기 전 무띠따의 싸구려 임대아파트 두 칸을 빌려서 하나는 사무실로 하나는 숙소로 쓴 적이 있었다. 천세대가 넘는 그 아파트는 싸다는 이유로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그때 일층 상가에 한국인 미용실이 생겼다. 우리가 드나드는 바로 일층 현관 바로 맞은편이었다. 미용실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유리창에 ‘한국 미용실’ ‘카트 5000짯’이라고 A4용지에 매직으로 삐뚤삐뚤하게 써서 붙여놓은 그 글귀가 숙소를 드나들 때마다 엄청 눈에 거슬렸다. 하여 내가 사무실에서 직접 그 글귀를 명조체로 커다랗게 타이핑을 해서 가로로 인쇄를 하고 일층 문구점에서 코팅을 하여 미용실에 가서 매직을 쓴 글씨를 떼어내고 유리에 붙여준 적이 있다. 주제 넘는 일 같지만 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반갑고 뭐라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고향까마귀도 객지에서 만나면 반갑다고 했다. 그래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다. 사소한 일이지만 그런 건 미얀마 직원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킬 수가 없다. 미얀마 컴퓨터에는 한글지원이 되지 않으니 시킬 수가 없는 노릇. 그 작은 일에 미용실 주인인 여자는 기대이상으로 좋아했다. 그날 미용실에서 커피를 대접받고 그 다음에 그 미용실에 두 번인가 머리를 자르러 갔다가 우리가 짓던 건물이 윤곽이 잡히자 일층을 먼저 인테리어해서 준공검사도 나기 전에 사무실 겸 숙소로 이사를 갔다.
그 후로는 교통지옥인 무띠따에 갈 일이 없었다. 그게 벌써 이 년 전이다.
-아직도 무띠따에서 미용실을 하세요?
-아니, 구마일 오션 삼층으로 옮겼어요.
-거기 임대료가 엄청 비쌀 텐데요?
-비싼 만큼 장사가 잘 되겠죠?
-추운데 들어가서 얘기 합시다.
담배를 비벼 끄며 내가 제의했다. 미용실여자는 어깨를 두 팔로 감싸 안고 잔뜩 웅크리고 있어 보기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서 둘은 히터 앞에 섰다.
-아직도 미얀마에서 사업을 하세요?
-집은 대충 다 지었는데 아직 분양이 덜 되어서요. 근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고향이 구미는 아닐 터이고?
여자는 친구네 집이 구미에 있다고 했다. 같이 온 일행들은 친구의 남편과 그 친구라고 했다. 친구는 시청공무원인데 일을 마치고 이 쪽으로 오리고 했다는 것이다. 여자는 비자클리어하러 방콕으로 나가려다가 한국으로 왔다고 했다. 비자클리어란 비자를 갱신하는 것을 말하는 한인사회의 속어다. 미얀마는 유학비자 외에는 최대가 십 주, 그러니까 70일 밖에 머무르지 못한다. 70일이 되면 한번 나왔다가 들어가야 하는데 멀티비자도 마찬가지다. 미얀마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거의 다 가까운 방콕으로 나가서 방콕에 있는 미얀마대사관에서 비자를 다시 받아서 들어간다, 이젠 그 비자도 곧 무비자로 된다는 말이 있다.
-마지막 비자클리어라 한국으로 나왔는데 진짜 많이 변했네요.
-얼마 만에 한국에 나오셨는데요?
-팔 년만입니다. 친구가 보고 싶어 나왔어요.
여자가 앉았던 좌석에서 남자 둘이서 우리를 보고 있었고 내가 앉았던 좌석에서 사내 셋이서 고개를 빼서 멀뚱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미얀마에 언제 들어가세요?
이번 주 토요일 비행기라고 했다. 나도 토요일인데 직항으로 가는 대한한공이냐고 물었고 그렇다고 했다. 같은 비행기를 타는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못 만나면 내가 짬을 내어 구마일 오션 삼층의 미용실에 한번 들르겠노라고 했다. 여자는 웃으면서 머리를 참하게 잘라주겠노라고 했다.
앉았던 좌석으로 돌아와 소주잔을 들었다. 맞은편 테이블에서 여자가 맥주잔을 높이 들고 나에게 건배하는 눈치를 보였다. 나도 들고 있던 소주잔을 번쩍 들고 웃어주었다. 누구인가, 알고 나니 이젠 불편하고 신경 쓰이는 자리가 아니다.
옆에 앉은 J가 옆구리를 쿡 찌르며 누구냐고 물었다.
-왜? 마음에 들어? 소개해줄까?
-딱 내 스타일인데요.
-그대! 견문을 충전하라! 견문을 충전하면 저런 여자가 눈에 보인다.
소주가 다 떨어져가고 있었다. 생고기 접시도 거의 비었고. J는 마지막잔이라며 자기가 건배구호를 하겠다고 했다. 말이 많았던 자리가 끝날 모양이다.
-우리들의 견문 충전을 위하여
-위하여!
나머지 셋은 목청을 높이며 잔을 높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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