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25 / 기쁜 우리 성탄절 (눅2장1-14)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은 말씀을 전하기에 앞서 재미있는 글을 읽은 게 있어서 먼저 소개하려고 합니다.
교회학교 예배시간에 전도사님이 ‘사도바울의 설교를 듣다 졸다가 3층에서 떨어져 죽은 유두고를 바울이 다시 살린 내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마무리 겸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뭘까요?’ 그러자 한 학생이 자신 있게 일어나 대답했습니다.
‘설교 듣다 졸다가 떨어져 죽은 책임은 설교한 사람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설교를 듣는 교인들이 졸고 있다면, 설교자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맞습니다.
해서 오늘은 성탄절이고 하니, 성탄절 관련 유머들로, 좀 가볍게 말씀을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성탄절 관련 ‘넌센스 퀴즈’를 하나 드리겠습니다.
그럴 일은 없겠습니다만, 기독교인들이 좋아하는 사찰은 어느 절일까요?
‘성탄’ ‘절’ 입니다. 혹시 절 이름이 성탄인 절이 어디 있을까요?
그럼, 크리스마스에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은 무엇일까요?
‘울면!’이랍니다. 울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줄까봐서...
얼굴이 못 생겨서 친구들의 놀림을 받던 한 여자 아이가 집에서 두문불출하며 살았습니다. 성탄절이 되어도 친구들 만나기가 싫어 교회에도 가지 않았는데, 기도만큼은 간절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제 친구들과는 다르시지요? 제가 아무리 못 생겼어도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산타가 저희 집을 방문해서 선물을 주게 해주세요.’
그런데 놀랍게도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자 아이의 집에 산타가 선물자루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직접 산타를 본 아이는 기도가 응답된 것에 대해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순간, 그런 아이를 향해, 산타는 한 마디 말만 남기고는 선물자루를 들고 휑하니 가버렸습니다.
산타는 왜 찾아왔다가는 선물도 안 주고 되돌아갔을까요?
아이에게는 도대체 뭐라고 한 걸까요?
산타가 말하길,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 안 준다.’ 그랬답니다.
그러고 보니 성탄절 하면, 어린 시절에는 주로 산타할아버지가 주인공이었습니다.
유머집을 찾아보니까. 산타 할아버지의 유래가 재미있습니다.
옛날 어느 산골 마을에 할아버지와 손주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손주가 고기가 너무 먹고 싶어 집에서 키우는 닭을 잡아서는, 할아버지 몰래 산에 올라가 구워 먹으려다가 산불을 냈습니다.
혼자 불을 꺼보려고 애를 쓰다가 안 되니까 급히 할아버지에게 달려가서 한다는 말이... 뭐라고 했을까요?
‘산~ 타~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산타가 ‘원래는 중이었다.’는 유머도 있습니다. 중 아시지요? 스님. 절에 사시는...
어느 날 시주를 받으려고 마을에 갔던 중이 어두워져서 절이 있는 산에 오르던 중에 한 등산객을 만났습니다.
어두워져 하산할 시간인데 등산하는 사람을 만났기에 등산객이 ‘아니 이 산중에서 뭐하고 계십니까?’ 라고 묻자 중이 대답하기를 ‘절에 가려고 산 타는 중이오.’ 라고 해서, 그때부터 ‘산타’는 ‘중이다!’ 라는 설이 전해 온다고 합니다.
성탄절 유머 중에 교회와 관련해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요즘은 사라진 성탄절 새벽 송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성탄절 전야에 새벽 송을 도는 성가대원들이 집집마다 찬송을 불러주고 다녔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만이 살고 계신 집 앞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불렀습니다.
한참을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를 부르고 있는데, 창문이 벌컥 열리더니 할아버지가 호통을 치셨습니다. ‘어른들 자고 있는데, 이게 무슨 짓이야!’
그래서 다음 집으로 옮겨가서는 다시 한 번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며 ‘아기 잘도 잔다. 아기 잘도 잔다.’하는 데, 갑자기 아기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와 함께 아기 엄마가 나오더니 화를 내며 따졌답니다.
‘겨우 재웠는데, 왜 시끄럽게 해서 애를 깨우는 거예요!’
물론, 이제까지의 얘기들은 하나같이 다 웃자고 드린 유머일 뿐입니다. 진짜인 줄로 믿지는 마세요.
그런데 진짜 얘기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심리학 교수 한 분이 4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단어 연상 테스트를 실시했는데, 여러 질문들 중의 하나로 ‘크리스마스’ 라는 단어를 주고 생각나는 것을 하나씩 적어보게 했답니다.
설문지를 거두어 보니 ‘트리, 선물, 휴일, 가족, 캐롤, 산타클로스’ 등등의 다양한 대답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예수님’을 적어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가 어떤 날입니까? 우리말로는 ‘성탄절’인데,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 아닌가요?
그런데 예수님의 생일날에 사람들은 정작 주인공이신 예수님은 빼놓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실화인지는 몰라도 어느 분의 간증을 보니, 미국의 대형교회 예배당에서 성탄절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흑인 여인이 성탄절 예배를 드리려고 예배당에 들어가려다가 제지를 당했습니다. 흑인은 입장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앞 벤치로 물러나 앉아, 성탄절 감사 기도라도 하고 가려고 고개를 숙였는데, 왠지 모를 서러움에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왜 우느냐고 묻기에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나자,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당신처럼 쫓겨났소!’
이 말에 흑인 여인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더니,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셨다고 합니다.
흑인 여자를 쫓아낸 그 교회는 그 시간에 예수님 없는 성탄절 예배를 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없는 성탄절은 공휴일 외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때문에 예수님을 제대로 믿으려면 늘 예수님의 존재를 확인하고 믿어야 합니다. 성탄절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경우를 너무도 자주 보게 됩니다.
요즘도 성탄절을 즈음하여 교회들 앞을 지나다 보면 '하늘에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라는 성탄절 축하 문구를 걸어놓은 것들을 보게 됩니다.
저야 그 의미를 알지만, 그러나 이 말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입니다.
정확하게는 이래야 맞습니다. 본문 14절에서 보시듯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라야 합니다.
‘하늘에는 영광’이란 말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란 말과는 다르지요?
‘하나님께’가 빠져 있습니다.
‘땅에는 평화’라는 말도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와는 다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이란 말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성탄의 영광이 아무에게나 영광이 아닙니다. 성탄절의 평화가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만 평화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성탄절에서 하나님이 빠지고, 예수님이 없는, 사람들만의 크리스마스가 되어 버렸습니다.
예전 경험에 비춰보면, 성탄절엔 교회가 행사다 뭐다 해서 엄청 분주했습니다. 성가대를 중심으로 칸타타 준비며, 새벽 송은 당연한 행사였고, 남선교회나 여선교회 혹은 청년부, 학생회 등이 따로 모여, 소위 ‘올 라이트’라는 이름으로 밤새 성탄절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문제는 다음 날 있은 성탄절 예배입니다.
성탄절 당일 예배 현장을 들여다보면, 성탄절 전야 행사와 각종 프로그램들로 인해 다들 지친 나머지 성가대원들은 졸고 있고, 회중들도 졸고 있고, 너나없이 하품에 졸음에, 참으로 불쌍한 모습으로 예배를 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성탄절은 분명 기쁜 날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되는 날입니다.
성탄절을 맞이하여 예수님이 아닌 이벤트와 프로그램만이 성탄절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탄절은 사람이 아닌 예수님이 기쁘신 날이어야 합니다. 예수님 생신날이니까요.
그렇다고 예수님만 기쁘시면 우린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예수님 덕분에, 그리고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들도 기쁜 날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날이니까요.
오늘. 지금. 성탄절을 맞는 여러분의 심정은 어떠십니까?
진정으로 기쁘십니까? 아니면 억지로 기쁘십니까?
여러분의 심령이 성탄절을 맞아서도 도무지 기쁘지가 않다고 한다면, 지금 여러분에게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없거나 부족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듯이, 우리의 성탄절은 ‘예수님이 내게도 오실 줄 알았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실 줄’ 알았으면, ‘오신 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올 해, 우리 교회가 맞이하는 ‘성탄절의 주제’입니다.
‘예수님이 오실 줄 알았다!’
‘예수님이 해 주실 줄 믿는다!’
우리에게 이 ‘두 개의 믿음’만 있으면, 우리의 성탄절은 세상 사람들의 예수님 없는 메리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하는 기쁜 우리 성탄절이 될 것입니다.
성탄절에 ‘예수님이 오실 줄 알았다.’면, 이후의 날들에서는 ‘예수님이 해 주실 줄’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볼 수 없기에 하나님을 믿을 수 없다고 하지 마세요.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29:13절에서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찾기 전에 이미 우리에게 와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3:20절 말씀을 보세요.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아멘!
설령 우리 중 누군가는 예수님이 오실 줄 몰랐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은 오신다고 하셨기에 성탄절에 오셨습니다.
구원하신다 하셨기에 십자가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신다 하셨기에 우리로 기도하게 하심으로, 우리가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성탄절에 오신 예수님의 이 약속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민수기 23:19절에서 하나님은 우리 인생과 같지 않기 때문에 식언치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의 ‘식언’이란 말은 영어로는 ‘lie’ 즉 ‘거짓말’입니다. 즉 하나님은 거짓말 안 하신다는 겁니다. 반면에 우린 어떻습니까?
이번만 도와주시면 앞으로는 잘 믿겠다고 해 놓고도 거짓말 하는 것은 우리들입니다.
다시는 죄 짓지 않고 불평, 원망하지 않겠다고 하고서도 돌아서면 거짓말 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그러함에도, 식언치 않으시는 하나님은 한번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십니다. 그 중 저와 여러분을 위한 첫 번째이자, 최고, 최대의 행하심이 바로 ‘인카네이션!’ 곧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성육신’하셔서 직접 이 땅에 오신 일입니다. 할렐루야!
성탄절은 예수님이 ‘나를 위해’, ‘나에게’ 오신 날입니다. 그래서 ‘기쁘다 구주 오셨네!’입니다. 믿으십니까?
1) 모쪼록 이번 성탄절엔 꼭, 오신 예수님을 만나셔서, ‘예수님이 오실 줄 알았다.’고 고백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그렇게 만난 임마누엘 예수님과 함께, 매 순간마다 ‘예수님이 해 주실 줄로 믿는다.’고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 그리해서 다음 성탄절을 맞이하기까지, 여러분의 모든 순간과 모든 상황들에서 ‘기쁜 우리 성탄절’, ‘기쁜 나의 성탄절’을 감사하며 찬양하는 삶을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