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롱이 샤파
정동식
내가 애장 하는 물건 중에 ‘재롱이 샤파’ 연필깎이가 있다.
아마 서울 강동구 어느 문구점에서 만났으니 족히 25년은 된 것 같다. 재롱이란 이름이 어떻게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들과 친숙한 이미지라서 곰돌이를 떠올린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아버지께서 문구용 칼로 알밤 치는 것보다 더 빠르게 연필을 깎아주셨다. 나도 한동안 칼로 연필을 깎았다. 언제쯤인가 같은 반 친구가 휴대용 연필깎이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았다. 자그마한 구멍에 연필을 넣고 손으로 회전시키면 대패질한 생강엿처럼 연필의 얇은 껍질이 합죽선 모양을 한 채 옆구리로 빠져나왔다.
특히 향나무 연필은 잘 깎이기도 하거니와 나무 자체에서 풍기는 향기가 특별해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칼로 연필을 깎던 시절, 인류를 펜나이프로 부터 해방시킨 사람은 프랑스 출신의 수학자 베르나르 라시몽이다. 그는 1828년에 연필깎이 최초의 특허를 받은 사람이지만, 연필깎이가 지금의 형태를 띠게 된 것은 19세기말, ‘존 리 러브’의 공로가 크다. 그는 목수로서 현장에서 빠르고 쉽게 깎을 수 있는, 효율성 있는 샤프너를 원하고 있었다.
실용적 연구 끝에 작은 ‘휴대용 샤프너’를 만들어 출시하여 목수들과 그 분야의 노동자에게 선풍적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이후 연필깎이는 가정뿐 아니라 사무실과 학교, 현장 등 어디에서나, 어린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초월하여 필수적인 도구가 되었다.
나는 초등학교부터 글을 쓰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연필을 사용하고 있다. 연필은 볼펜이나 만년필에 비해 쉽게 구할 수 있고, 지우개로 수정하기도 좋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은 물론 국민의 공복으로 일할 당시에도 많이 사용하였다. 공부할 때는 필기와 속기도구로 애용했고, 직장에서는 주로 부처 장기계획의 밑그림을 그리거나 보고문서의 초안을 작성할 때 단연 2B연필이 으뜸이었다. 연필을 들면 아이디어가 반짝였고 중요 내용을 메모한 뒤 나중에 뼈대를 붙이곤 했다. 연필깎이는 시대를 건너가며 숨 가쁜 진화를 계속했지만, 나의 연필 깎는 도구는 여전히 문구용 칼에 머무르며 유행의 한걸음 밖에 있었다. 그러나 공직에 입문하여 10년쯤 지나 서울 강동의 조그만 부서책임자를 맡을 때부터 근대화된 연필깎이와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일목요연한 보고서나 알찬 계획의 스케치를 위해 연필이 필요했다. 이날부터 구입해서 지금도 사용하는 핸들 달린 수동식 연필깎이가 바로 ‘재롱이 샤파’이다.
재롱이는 연필깎이 성을 지키는 수문장이다. 앞에서 보면 덩치는 산만 하지만 장난기 많은 곰돌이라 오히려 친근감이 느껴진다. 재롱이 눈은 아주 작다. 까만 두 눈동자가 선명하긴 한데 점을 찍어 놓은 듯 잘생긴 눈은 결코 아니다. 초창기에 태어난 모델이거나 남자 어린이용으로 생산한 것 같다. 사슴 눈처럼 좀 더 크고 맑게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여운은 남는다. 코는 성문인데 하나로 뻥 뚫려 있다. 온종일 놀면서 한 번도 닦지 않은 철부지 코를 닮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손님이 코가 닳도록 드나들었고, 세월을 깎아내며 얼마나 많은 흑연분말을 마셨겠는가? 우리나라가 어렵던 그 시절, 철암 광부처럼 인고의 세월을 보냈으리라. 토끼처럼 예쁜 귀는 성문의 출입을 관장한다. 닫혀 있던 성문은 왼 귀를 가운데로 쫑긋 모으면 비로소 열린다. 보기와는 달리 귀는 일관성이 있고 엄격하다. 아무나 들이지 않고 일정한 몸집 이하인 자만을 통과시킨다. 재롱이의 옷차림은 빛과 닮은 노랑이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도 유난히 눈에 잘 띈다. 만고풍상을 겪은 탓인지 두 발 주변은 거무튀튀한 불결이 닿아 샛노랗던 색조가 탁한 노란빛으로 바랬다. 특히 엉덩이 부분은 어디에 받힌 듯 멍 자국도 있어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얼핏 봐도 수문장의 꼴은 말이 아니다. 그냥 두어서는 영 맘이 석연치 않을 것 같다. 어떤 일이 있어도 오늘만큼은 재롱이 피부를 방짜유기그릇처럼 윤이 나게 닦아서 수문장의 위용을 세워 주어야겠다.
작년 초 한 블로그에, 구입한 지 상당히 오래된 '기차 연필깎이'를 제조회사에서 무료로 A/S해 주었다는 사연이 뉴스로 보도된 적이 있었다. 내가 사용하는 ‘재롱이 샤파’는 화제의 중심에 섰던 K 회사 명품의 하나이다. 이 회사에서 90년대에 만든 그 연필깎이의 고무캠을 교체하여 수리해 주었다고 한다. 30년이 넘은 제품의 수리를 무상으로 해 주다니, 참 대단한 일 아닌가? ‘우리 회사는 어린이 문구 제조 회사인 만큼, 안전과 정직을 우선해야 한다.’ 고인이 된 조규태 창업주가 늘 강조하신 경영방침이다. 수리 담당 기사님을 비롯한 회사 전체가 지금도 창업주의 뜻을 잘 실천하고 있는 것 같아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최근에 연필깎이는 기술 발전을 거듭하여 수동, 자동, 전기 모델을 포함한 좋은 제품이 많이 출시되고 있다. 연필심의 굵기도 용도에 따라 여러 단계의 두께로 깎을 수 있다고 하니 세상은 참 많이 편리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따라 우리 ‘재롱이 샤파’가 귀엽고 사랑스럽다. 내 물건이라 그런 점도 있겠지만 오롯이 나의 인생이 투영되어 있고 추억의 향기가 묻어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아침부터 이 글을 쓰려고, 재롱이가 깎아준 몽당연필과 한참 동안 씨름을 하다 보니 어느새 해거름이 찾아왔다.
(2023.5.25.)
첫댓글 옛날에 칼로 연필을 깍은 기억은 추억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연필은 잘 깍을 수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