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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강해_11 (히 5:11~6:3)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킵바이블, keepbible, 세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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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강해 제11과
히브리서 5장
11-14절: 성장하지 않는 성도들의 특징
사도 바울은 지금 하늘에서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무에 대해 설명하려 한다. 그런데 이들이 그것을
이해할지 걱정이 된다. 그들은 듣는 것이 둔하다(dull). ‘게으르다’(6:12)와 같은 말
1. 말씀에 둔하다(11절). 이들은 말씀에서 떨어져나가기 시작했고(히2:1-4) 의심하고 있다
(3:7-4:13). 그 결과 듣는 일에 둔하다. 즉 듣고 소화하고 행할 능력이 없다.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베레아 성도들과 대조가 됨(살전2:13; 행17:11-12). 성경에 대한 모든 것이 흥미가 없다.
2. 나눌 능력이 없다(12절 초반). 가르치는 은사(선물)는 없어도 누구나 기회가 주어지면 복음과
말씀을 나누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또 다시 기초를 배워야 한다.
3. 아기 음식만 먹어야 한다(12-13절). 단단한 음식은 꿈도 못 꾸고 젖을 먹어야만 한다. 젖은
말씀들의 기초 원리를 뜻한다: 그리스도의 탄생, 삶, 죽음, 부활, 승천 등. 단단한 음식은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제사장 사역을 공부하는 것, 젖은 언제라도 중요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신약의 요한복음만 내내 공부하는 것, 이제는 구약의 레위기, 에스겔서도 공부해야 한다.
4. 말씀 사용이 미숙함(14절).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목사들을 잘 구분해야 한다.
말씀 구분(딤후2:15), 경륜 구분, 오순절 은사 운동, 로마 카톨릭 교회, 재림의 징조, 이스라엘의
역사 등
육적 감각들이 중요하듯이 영적 감각들도 중요하다.
시34:8, 벧전2:3, 마13:16
영적 감각들을 훈련하는 것(딤전4:7-8)
그래서 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모세 시대의 이스라엘은 이것을 하지 못했고 지금 히브리서의
수신자들도 비슷한 길로 가려 함. 양다리 걸치고 산다.
히브리서 6장 요약
사도는 5장에 이어서 성숙함으로 나아갈 것을 권면한다.
(1) 초보 교리를 떠나 성숙함으로 나아가자(6:1-3).
(2) 구원받은 뒤에 극도로 배교하면 결국 죽음에 이른다(6:4-6).
(3) 자연계에서의 예: 그리스도의 심판석(6:7-8)
(4) 비록 그렇게 말은 하지만 사실 그들에게는 구원과 동반된 더 좋은 것들이 있다(6:9-10).
(5) 그들이 열심을 내어 약속들을 상속받는 자들이 되기 원한다(6:11-12).
(6)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 사도는 하나님의 맹세와 약속을 보여 준다(6:13-20).
히브리서 6장
이 세상에 나오려면 반드시 베이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베이비로만 남으면 아무도 기뻐하지 않는다.
베이비로 태어나는 목적: 성장하기 위함. 벧전2:2, 그래서 우리는 완전함으로 나아가야만 한다(6:1).
1-3절: 영적 진보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의 것들(여기서는 6가지)을 두고 떠나야 한다.
1. 회개와 믿음(행20:21), 영적 생활의 시작
2. 침례(성령 침례, 물 침례), 안수는 구약에서 희생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는 것을 통해 많이 나온다(레
16:21). 이런 예식은 안수를 통해 사람의 죄를 무죄한 짐승에게 옮기는 것을 상징했다. 안수는
또 축복하는 것(창48:18), 임직식(신34:9) 등과 관련해서 사용되었다. 신약에서 예수님은 아이
들과(마19:13, 15) 병자들(마9:18)에게 안수하셨다. 초대 교회에는 안수가 병 고치는 것, 성령님
을 받는 것(행9:17), 교회에서의 특별한 일을 위해 사람을 구분하는 것(행6:6), 선교사 파송(행
13:3) 등과 상관이 있었다. 그런데 안수는 무슨 마술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지 않다. 교회가 특별한 - 23 -
목적을 위해 사람들을 구분하기 위해 안수했을 뿐이다. 안수는 보통 기도와 함께 이루어졌다.
현대 교회에서 목사나 집사에게 안수한다는 것은 ‘직무에 임명하다’를 뜻하는 Ordination을 말하
며 이때에 손을 얹느냐 얹지 않느냐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확실한 부르심(소명)을 가지고 지역
교회를 통해 하나님에게 임명받는 것이 핵심이다.
3. 부활(행24:14-15; 요5:24-29; 계20-4-6)과 심판(행17:30-31), 미래와 상관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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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강해_12 (히 6:1~11)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킵바이블, keepbible, 세대주의)
히브리서 강해 제12과
히브리서 6장
1-3절, 초보 원리들을 버려두고 완전함으로 나가자.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우리가 할 수 있다.
그 뒤 바울은 4-8절에서 이들을 일깨우려고 충격 요법을 사용한다.
4-6절: 이 구절들과 히10:26-39절은 구원을 잃는 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의 전유물. 그러나 No!!!!!!
이 구절들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
1. 구원을 잃을 수 있다는 자들의 주장: 사도는 믿다가 완전히 떨어져나가 지옥에 가는 것에 대해
말한다. 그들은 완전히 배도하여 옛 생활로 돌아가므로 구원을 잃고 영원히 구원받지 못한다.
‘알미니안 주의의 가르침’, 구원 취소 교리: 큰 믿음 교회의 변OO 목사 등
a. 이것은 구원의 영원한 안전 보장과 배치가 된다(히5:9; 7:25; 9:12, 15; 13:5-6; 요
5:24; 10:26-30; 롬8:28-39). 히6:13-20에서 17절: 계획의 불변, 18절: 거짓말하실
수 없다. 19-20절: 소망은 혼의 닻과 같이 고정되어 있다.
b. 아이러니하게 구원 취소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은 또한 구원을 잃은 뒤에 다시 회복될 수 있음을
말하지만 이 구절은 그리될 수 없음을 분명히 말한다(6절을 보라).
2. 어떤 이들은(칼빈주의자들) 이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라고 말한다. 즉 Professors
a. 그런데 이들은 ‘한 번’ 빛을 받은 자들이다(히6:4). 여기의 ‘한 번’은 사실 영원히 ‘한 번’을
말한다. 히브리서의 한 번의 용례(히7:27; 9:12, 26-28; 10:10 등)
b. 이들은 하늘의 선물을 맛보았다(6:4).
c. 오는 세상의 권능을 맛보았다(6:5).
d. 맛보기만 하고 먹지는 않았다는 주장은 말이 안 된다(히2:9).
e. 이들은 성령님에게 참여한 자들이다(6:4). 비교 히3:1(거룩한 형제들), 3:14
f. 이런 것들로 보아 이들은 분명히 구원받은 자들이다.
g. 구원받지 않은 자들이 어떻게 주님에게 새로이 불명예를 가져오고 그분을 모욕할 수 있겠는가
(6:6)? 불신자들이 그분을 새롭게 십자가에 못 박는가? 항상 못 박는다.
3. 어떤 이들은 이런 죄가 히브리서가 기록된 시대에만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예루살렘 성전이
서 있을 때까지만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면 왜 사도는 지금 영적 성숙과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무를 연결하고 있는가? 지금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면 이런 권면은 아무
의미가 없다.
4. 환난기의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된다. No!(히12:23)
5. 그러면 이 구절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6절의 if와 9절의 though이다.
a. 사도 바울은 충격 요법의 가정법을 사용하여 구원받는 자는 구원을 잃을 수 없음을 보여 준다.
히6:9가 이를 증명한다. 롬9:3의 가정법도 마찬가지의 충격 요법
b. 6:4에서 사도는 갑자기 ‘우리’(we, us)에서 ‘자들’(those)로 주체를 바꾼다(우리말 성경에서
는 5절). 즉 지금 그는 무언가를 가정하려 하고 있다.
c. 우리(히1:2-3; 2:1; 3:1, 14; 4:14; 4:16), 매우 중요한 ‘우리’(히10:19-25)
d. 히10:26의 ‘우리’는 누구인가? 이들은 히10:19-25의 ‘우리’이다.
e. 이 사람들이 고의로 죄를 짓지 않으려면 믿음의 고백을 굳게 붙들어야만 한다(23절).
f. 고의로 죄를 짓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히브리서의 교훈(히10:34-35): 그리스도의 심판석(고전
3:12-17)
g. 그러므로 이들은 구원은 받았지만 보상을 잃을 위험에 처해 있는 자들이다.
h. 따라서 히브리서는 절대로 구원을 잃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25 -
i. 자라야 한다. 완전함으로 나가야 한다(벧후3:18).
j. 그리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징계하신다(히10:30; 12:5-11). 그런데 성도가
심한 죄를 지으면 곧바로 죽이신다: 고라와 그 무리들, 나답과 아비후, 아나니야와 삽비라
k. 그리스도인들도 (육체적)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을 수 있다(요일5:16-17; 고전5:5; 고전
11:28-30; 딤전1:19-20; 딤후2:16-17;요삼9-10)
히브리서 6장은 산 믿음과 그 믿음에서 나오는 행위(열매)에 대해 말한다.
5장 12-14절: 성숙하지 못한 자들 이야기가 나온다.
6장 1-3절: 그러므로 기초 원리를 반복해서 놓지 말고 완전함으로 나가자.
과거에 구원받는 이후에 이것이 믿기지 않아 자꾸 회개하고 구습으로 돌아가는 일을 더는 하지 말자.
4-6절: 충격의 가정법, 떨어져 나간다면 그들을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
이유 6절 후반부
7-8절: 4-6절과 동일한 맥락, 열매가 없으면 불태워진다.
9절: 비록 우리가 충격 요법을 써서 이같이 심하게 말하지만 너희에게는 구원에 동반되는 것들 즉
선한 열매(행위)가 있다. 그러므로 이런 일은 너희에게 닥치지 않는다. 고전3:13-16 평행 구절
10절: 너희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
11절: 그래서 우리는 열심을 내어 너희가 끝까지 소망의 충만한 확신에 이르기를 원한다. 즉 너희가
선한 행위의 열매를 많이 맺어 보상을 많이 받기 바란다. 이것은 구원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미
구원은 끝났다.
흠정역 9절: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비록 우리가 이같이 말하지만 너희에게는 더 좋은 것들과 구원에
동반되는 것들(열매)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문맥이 구원이 아니라 구원의 열매이다.
개역 9절: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 (개역성경은 아예 말이 안 된다).
구원을 잃을 수 없는 이유
1. 사람의 힘으로 얻지 못한다(엡2:8-10; 딤2:14).
2. 한 가지 죄를 지으면 모든 죄를 지은 것과 같다(약2:10). 그러므로 무슨 죄든 죄로 인해 구원을
잃는다면 구원을 유지할 사람이 없다.
3. 예수님의 단번 속죄: 모든 죄 영원히 속죄
4. 구원은 출생이다. 출생이 여러 번 있을 수 없다.
5. 구원은 영원한 생명, 영존하는 생명(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롬
8:14-17; 31-39).
6.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것이다(벧후2:4).
7. 우리는 구속의 날까지 봉인되어 있다(엡5:30; 고전12:18).
8. 구원을 잃는다면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다(요일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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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강해_13 (히 6:1~20)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킵바이블, keepbible, 세대주의)
히브리서 강해 제13과
히브리서 6장
1-3절, 초보 원리들을 버려두고 완전함으로 나가자. 구원받았으니 이제 성화의 길을 걷자. 태어났으니
이제 성장하자.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우리가 할 수 있다(3절). 할 수 있다!!!!
4-6절: 주변의 여러 환경으로 인해 복지부동인 이들을 일깨우기 위해 사도는 가정법을 사용한다.
구원받은 자들이 떨어져 나가면 그들을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에 이르게 함이 불가능하다. 가정법은
화자(話者)의 간절한 의도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통해 극적으로 표현되는
서법이다.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회개에 이르게 함이 정말로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것은
역으로 구원은 절대로 잃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7-8절: 땅 이야기, 열매를 맺지 못하는 땅은 저주함에 가까이 있어 마지막에는 불살라진다. 그렇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땅은 불살라진다. 그래도 땅은 여전히 남아 있고 그 위의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나 채소만 타게 된다. 마찬가지로 보상의 심판 때 구원도 그대로 남아 있다. 다만 행위만
불탈 뿐이다(고전3:11-15).
9-10절: 그러나 너희에게는 더 좋은 것들과 구원에 동반된 것들이 있음을 나는 확신한다. 즉 그들에게
는 구원은 당연히 있고 구원에 동반된 것들 즉 더 좋은 것들이 있다. 그것은 무엇인가? 구원의
열매이다(엡2:8-10).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를 잊지 아니하신다. 보상해
주신다.
11-12절: 끝까지 소망의 확신에 이르기를 내가 바란다. 무슨 소망인가? 앞뒤 문맥 상 보상을 받는
소망이다. 결코 구원의 소망이 아니다. 그들이 약속들을 상속받는 자들을 따르는 자들이 되기를
사도는 원한다. 결코 구원을 상속받는 것이 아니다.
1-12절 요약
1. 신구약성경에서 구원받은 자들에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 성도가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거나
혹은 믿음의 답보 상태에 있을 때 하나님은 일단 권면과 징계를 하신다. 그런데 심각한 죄에 대해
징계를 받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를 죽이신다. 그러면 그 사람은 구원 받았지만 그리스도
의 심판석에서 불의 심판을 받는다. 이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이다. 심각한 죄를 지었다고
지옥으로 보내시면 얼마나 두려울까?
13-20절: 아브라함의 예
다시 한번 말하지만 12절은 믿는 자들이 보상의 소망의 확신에 이르도록 부지런해야 함을 말한다.
구원이 아니라 보상의 소망이다. 성도들은 신실하지 못해도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사도는 이것을
아브라함의 예를 통해 우리에게 확증해 준다.
13-14절: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반드시 복을 주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해 주실 것을 맹세로 약속하셨
다(창22:16-17). 이것은 무슨 약속인가? 구원인가? 아니면 구원 이후의 상속에 대한 약속인가?
아브라함의 구원은 이미 창15:6에서 끝났다. 창22;16-17은 그의 씨가 번성하게 될 것에 대한
약속이다. 즉, 보상에 대한 것이다. 이 상속의 약속은 아브라함의 신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함
에 달려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과 언약을 체결하셨다.
15절: 아브라함은 끈질기게 견딘 후에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자손들이 번성하는 복을 받았다. 끈질기
게 인내해서 구원을 받은 게 아니다. 75세에 하란을 떠나 가나안에 들어오면서 자손들의 복을
약속받고(창12:1-3) 그 뒤 어느 시점에 믿음으로 구원받음(창15:6). 자손들의 약속 이후에 그는
24년을 약속의 자식 없이 떠돌아다님(10년+14년). 인간적 꾀와 실수로 이스마엘을 낳음(창16
장). 그래도 하나님은 신실하심. 그리고는 100세에 이삭을 아들로 받음(창21:1-5). 실제로 그는
자손이 하늘의 별 같이, 바다의 모래 같이 많음을 보지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리스도의 날 보기를
기뻐하다 그 날을 보고 즐거워하였다(요8:56). 즉 그는 육체적 후손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로
인한 영적 후손들까지 다 보았다. 이러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였다. 심지어 이삭을 - 27 -
제물로 드리는 데까지 감(창22:1-14). 그 이후에 그에게 자손의 복이 약속되고 실현됨(창
22:15-18). 아브라함에게는 많은 장애물이 있었지만 참고 견딤으로 약속하신 것을 결국 받았다.
우리는 아브라함보다 낫지 않은가?
16절: 사람은 항상 자기보다 나은 자를 두고 맹세한다. 반대는 없다. 확증의 맹세는 모든 다툼을
없앤다.
17절: 하나님은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약속의 상속자들(히11:17)에게도 이런 맹세를 하셨다. 약속의
상속자들: 1차적으로는 유대인들, 2차적으로는 구원의 상속자들, 하나님이 스스로 맹세하셨다.
그러므로 그분은 반드시 자신의 약속을 지키신다.
18절: 피난처로 도피한 우리, 구약의 도피 도시, 요르단 강 양쪽에 세 개씩 둠(민35:9-34, 14절과
28절 중요; 수20).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도피 도시에 거할 수 있고 그 뒤에 자기 도시로 돌아감.
우리 성도들은 다 예수님께로 도피하였다. 그런데 그분은 결코 죽지 않는다(히7:23-25).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영원하다. 우리 앞에 놓인 소망: 이것은 일차적으로 보상의 소망이다(구원은 물론이
고).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는 두 가지 불변하는 것: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맹세, 이
둘이 있으므로 우리는 확고하게 안위를 얻는다.
19-20절: 이 보상의 소망은 혼의 닻과 같다(구원은 말할 것도 없고): 확실하고 굳건하다. 혼의 닻의
특징과 목적: 하늘을 향한다.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진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보다 앞서 휘장 안으로 달려가신 분이다(첫 열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뒤를 따라 들어갈 수 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자기만 홀로 들어갈 수 있다. 다른 이들은 못 들어간다.
히브리서 전체 요약: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 휘장 안에 계시므로(히6:19) 우리는 그분의 은혜의 왕좌에
다가가서 필요한 때에 도움을 얻는다(히4:15-15). 또 동시에 예수님은 진영 밖에서 수치를 짊어지
셨으므로(히13:13) 우리도 그분의 수치를 짊어져야 한다. “우리가 휘장 안에 살면 진영 밖으로
나가 멸시와 천대를 받는 일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6장 요약
1. 성도는 반드시 완전함으로 나아가야 한다.
2. 하나님은 이것이 가능하게 하셨다.
3. 그렇지 않고 믿음의 답보 상태에 머무르거나 심각한 죄를 지으면 징계와 심지어 사망이 임할 수
있고 이 경우 보상의 손실을 당한다.
4. 그러나 이 히브리 성도들은 이미 구원받았고 믿음의 행위와 수고의 열매가 있다.
5. 아브라함처럼 끝까지 견디면 보상의 보답을 반드시 받는다.
6. 이 보상의 소망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약속과 맹세로 확증해 주셨다.
7. 이 소망은 혼의 닻과 같아서 확실하며 굳건하다.
8. 예수님께서 휘장 안으로 들어가셔서 대제사장으로서의 중보사역을 하시며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9. 보상을 받지 못하는 성도들의 흔들리는 과정
a. 말씀에서 떠나기 시작한다(히2:1-4).
b. 말씀을 의심하기 시작한다(히3:7-4:13).
c. 그리고는 곧바로 말씀에 둔하여 게으른 자가 된다(히5:11-6:20).
10. 이것을 극복하려면 혼의 닻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
성경 문제
1. 위에서 우리는 히브리서 6장과 10장이 구원 취소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보상의 손실과
징계를 가르침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6장에서 개역성경은 구원 취소 교리를 주장하는 자들에게
그럴듯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2. 먼저 4-6절은 위에서 살펴본 대로 if를 사용한 가정법 문장이다. 그러나 개역성경은 가정법의
‘if’(만일 …하면)를 없애고 6절에서 아예 다음과 같이 기술해 놓았다.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 28 -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개역 히6:6). 즉, 개역성경은 ‘if’를 없앰으로써 아예 히브리 성도들을
타락한 자들로 만들어 놓았다. 심지어 배교의 결정판이라고 하는 NIV도 6절에서 ‘if’는 그대로
살려놓았다. NKJV, Amplified Bible 등도 다 6절에 ‘if’를 제대로 달아놓았다. 개역성경이
이런 오류를 범한 것은 ASV(NASB의 모체)를 대본으로 사용하여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ASV와
NASB는 개역성경처럼 ‘if’가 없고 ‘타락한 자들의 경우에는’으로 되어 있다.
3. 그 뒤 개역성경은 9절에 치명적인 오류를 만들어 놓았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나은 것과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개역 히6:9). 일단 9절 처음에
‘그러나’가 나오면서 문장이 역전됨을 보여야 하는데 개역성경은 ‘그러나’를 없앴다. 참고로 NKJV,
ASV, NASB, Amplified Bible 등도 다 ‘그러나’로 시작한다. 그리고 개역성경은 ‘though’를
단순히 뒤에 ‘말하나’로 번역하여 뜻을 약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그 다음에
있다. 개역성경은 “우리는 너희가 구원에 가까운 것을 확신하노라”로 번역하였다. 그들이 구원에
가깝다면 그들은 아직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다. 그러면 10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구원도 받지 못한
자들의 행위와 수고를 잊지 않고 기억하신단 말인가? 이것은 실로 말이 안 되는 번역이다. NKJV,
ASV, NASB, NIV 역시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처럼 “구원에 동반되는 것들이 그들에게 있다”라고
바르게 번역하였다. 다만 카톨릭 성경인 Amplified Bible만 ‘구원에 가까운’이라는 절을 삽입하여
놓았다. 즉, 이런 번역은 구원을 평생 과정으로 이해하는 로마 카톨릭 주의의 산물이다.
4. 이것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예가 바로 벧전2:2이다.
흠정역: 새로 태어난 아기들로서 말씀의 순수한 젖을 사모하라. 이것은 너희가 그 젖으로 말미암아 성장하게
하려 함이라.
개역(ASV, NASB, Amplified Bible 등):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5. 개역성경을 비롯한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은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라고 말하면서 구원이 평생 과정임
을 보여 준다. 이런 성경으로는 구원을 받았다가도 언제라도 잃을 수 있다는 구원 취소 교리가
얼마든지 가능하며 무지한 성도들은 이런 성경과 그 안의 가르침으로 인해 평생토록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고 두려움 가운데 벌벌 떨면서 살게 된다. 이렇게 두려움의 불씨를 품고 사는 자들에게
개역성경의 빌립보서 2장 12절은 기름을 부으면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개역: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6. 성경이 두렵고 떨면서 구원을 이루어가라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꼼짝없이 교회와 교단과
목사의 말에 순종하면서 두려움 가운데 살 수밖에 없는 것이 개역성경을 사용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
의 현주소이다. 그러나 바른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흠정역: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 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
7. 이미 우리는 구원을 받았다. 그러므로 성도가 이미 얻은 구원을 가지고 구원에 합당한 열매를
밖으로 드러내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요점이다. 여기서 영어는 ‘work out your own
salvation’이라고 말한다. 요즘 우리는 ‘워크아웃’(work out) 기업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다. 잘 나가던 회사의 재무 상태가 나빠지면 상태가 좋아질 때까지 회사가 일하는 것을 감독하고
채찍질하는 것을 워크아웃이라고 한다. 즉, 기업의 경우든 성도의 경우든 워크아웃은 기업이나
구원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상태에서 일을 하여 외부로 무언가를 드러내어 보여 주는 것을 뜻한다.
8. 이런 구절들을 통해 우리는 성경 번역이 믿음 생활에 대단히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구원의 문제가 성경 때문에 잘못되면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애꿎은 성도들이 당해야
한다. 사실 구원 취소 같은 이단 교리를 가르치는 이들도 잘못된 성경의 희생자라고 볼 수 있다.
https://youtu.be/_qxCKpjfMLc?list=PL4P6SBDceLgE0AJWFL4jMz1PqyRtt4ikK
히브리서 강해_14 (7장 전체 요약, 히 7:1~2)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세대주의)
히브리서 강해 제14과
히브리서 7장
5장에서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대제사장으로서의 중보 사역 설명,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르는 제사장
그런데 히브리 성도들이 자기 말을 도무지 이해할 것 같지 않아 6장에서 이제 초보 원리를 완전함으로
나가자고 권면함. 그렇지 않고 주저앉으면(히12:12-13) 보상의 손실을 입고 징계를 받으며 심한
경우 죽는다. 아브라함 역시 끈질기게 구원이 아니라 상속의 보상을 기다리다 결국 받았다
(6:13-15). 그리고는 7장에서 다시 멜기세덱 주제로 돌아온다.
히브리서 7장 요약: 사도는 다시 멜기세덱과 그리스도로 돌아온다.
I. 사도는 멜기세덱이 유대인들의 조상 아브라함보다 뛰어남을 보인다(7:1-10).
II. 레위의 제사장 체계로는 완전함에 이를 수 없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다른 제사장 체계가 있어야
한다. 체계가 변하면 율법도 변해야 한다(7:11-12). 율법은 이제 폐하여졌다(7:18-19).
III. 신약의 대제사장 예수님은 엄숙한 맹세에 의해 세워졌다(7:20-22).
IV. 구약에는 많은 제사장이 있었으나 그리스도는 한 제사장이다(7:23-28).
V. 구약의 제사장은 죄가 있었으나 신약의 그리스도는 거룩하신 분이다(7:26-28).
1-3절: 멜기세덱 요약
1. 창세기 14장, 롯이 포로가 되어 끌려감. 아브라함이 단까지 쫓아가서 그를 구해 옴. 아브라함이
돌아올 때에 멜기세덱이 등장함(창14:17-20). 살렘 왕이요 하나님의 제사장(18), 살렘은 예루살
렘을 뜻한다. 다윗이 여부스 족속에게서 탈취함(삼하5:6-9), 그 이후로 많은 전쟁이 거기에
있음. 결국 주님의 지상 강림에 의해 평화의 도시가 됨(슥14:1-3; 시76:2-3; 학2:9; 시122:6).
2. 메시아 통치 시편(시110), 제사장(4절), 1절(마22:43; 막12:36; 눅20:42; 행2:33-35),
다윗은 자기의 씨에 대해 대언함(행2:30). 그런데 그 씨는 제사장이 될 수 없다(유다 지파),
더더욱 영원토록 제사장은 될 수 없다. 어떤 유다 왕도 온 땅의 통치자들을 쳐부순 적이 없다(시2).
1절은 적어도 신약에 25회, 4절은 5회 언급됨. 이 중에서 10번이 히브리서에 나옴. 예수님은
1절을 사용하여 자신의 신성을 증명함(마22:41-46). 1-3절은 왕, 4절은 제사장, 5-7절은
천년왕국 전에 이교도 왕들을 물리치는 정복자. 가장 중요한 구절은 4절: 메시아는 제사장이다.
구약의 성도들은 대개 이 점을 놓쳤다.
1절: 제사장으로 아브라함을 축복함, 구약에서는 원래 왕과 제사장 직무가 분리됨.
2절: 성경에서 이름은 매우 중요함. 야곱에서 이스라엘(창32:24-32), 시몬에서 게바(요1:35-42)
1. 살렘은 화평(peace)을 뜻하므로 멜기세덱은 의의 왕, 화평의 왕, 성경에서 의와 화평은 종종
함께 나온다(사32:17; 시85:10; 72:7; 약3:17-18).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의의 화평의
열매를 맺기 원하신다(히12:10-11). 참 평안은 의가 있어야 가능하다(롬5:1).
2. 아브라함이 십분의 일을 바침. 그 이유(히7:4-10). 모세의 율법 이전에 이미 십일조 풍습이
있었다(아브라함과 야곱).
3. 십일조 이야기: 땅의 모든 십일조는 주님의 것이었다(레27:30-32): 땅의 씨, 나무 열매. 또한
소 떼나 양 떼의 십일조. 이스라엘은 십일조를 성막과 성전에 거하던 레위 사람들에게 가져갔다(민
18:2; 신12:5). 그런데 구약의 이스라엘은 년 10%가 아니라 23.3%의 십일조를 바쳤다: (1)
레27:30-32, (2) 신14:22-27(12:17-19 참조), (3) 신14:28-29. 십일조 외에도 헌물을
바쳤다(말3:8).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신정국가의 국민으로서 적어도 연 30% 이상 십일조와 헌물을
바쳤다. 우리는 신약(십자가 사건 이후)에서는 더 이상 구약의 율법의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다고
믿으며(마23:23; 고후9:6-7) 구약의 십분의 일을 기준 삼아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린다고 믿는다.
https://youtu.be/798iHr-UpeM?list=PL4P6SBDceLgE0AJWFL4jMz1PqyRtt4ikK
히브리서 강해_15 (히 7:3~28) : (정동수 목사, 사랑침례교회,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세대주의)
히브리서 강해 제15과
히브리서 7장
3절: 멜기세덱은 사람이었다(4). 그는 천사나 스랍이나 그룹이 아니었다. 부모가 있어야 하나 그의
계보는 전혀 없다. 구약의 위대한 인물은 다 계보나 배경이 있다. 더욱이 제사장은 반드시 자신의
계보 혹은 출신을 밝혀야 한다(스2:61-62; 느7:63-65). 그는 실제 사람으로 실제 왕국의
왕 겸 제사장이었다. 그런데 그에 대해서는 아무 기록이 없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그는 항상
제사장이다. 그러나 아론 계열의 제사장들은 그와 완전히 다르다. 또한 그들은 왕 겸 제사장이
아니다. 오직 멜기세덱과 예수님만 왕 겸 제사장이다.
4-10절: 멜기세덱의 위대함
1. 아브라함에게 십분의 일을 받음(4)
2. 레위의 제사장들: 아브라함의 후손들, 이들은 다른 후손들에게서 십일조를 받지만 멜기세덱은
직접 아브라함에게서 받음(5-6).
3. 그리고는 아브라함을 축복함(6-7).
4. 십일조를 받은 레위의 자손들은 다 죽는다. 그러나 멜기세덱은 죽음을 모른다(8).
5. 사실 레위도 아브라함을 통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바쳤다. 그는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었다.
우리는 아담이 에덴동상에서 죄를 지을 때 그의 허리에 있었다(9-10).
10-19절: 다른 제사장의 필요성
1. 레위의 제사장 체계는 완전함을 주지 못한다. 즉, 율법은 완전함을 주지 못한다(19). 죄를 깨닫게
할 뿐이다. 희생물을 바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완전함을 얻지 못하였다(10:1-4). 율법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추가된 것이다(갈3:19, 23-24; 4:4-5).
2. 예수님은 레위 지파가 아니라 유다 지파에서 나셨다(13-15). 멜기세덱을 보니 분명함.
3. 그리스도께서 유다 지파에서 나셨으므로 모세의 율법도 변해야 한다(12). 율법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성취되었고 그것의 규례들은 길에서 치워졌다(골2:12-17). 그래서 신약 성도는 율법에서
벗어났고(갈5:1-6) 율법에 대해 죽었다(롬7:1-4). 그렇다고 무법자가 되면 곤란하다. 율법에서의
자유는 죄를 짓는 자유가 아니다.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성취해야 한다(롬8:1-4).
4. 예수님은 율법에 따라 제사장이 되지 않고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의 파워에 따라 즉 하나님의
선포에 따라 되셨다(16-17). 그 결과 그분은 폐하여지지 않는다.
5. 이 모든 변화는 율법의 연약함과 무익함 때문이다(18-19). 이것은 율법이 사람을 구원하지 못함을
뜻한다. 율법은 하지 못하였으나 그리스도는 하였으므로 우리가 그분과 그분이 가져오시는 소망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간다. 율법은 단지 그리스도에게로 우리를 이끈다(갈3:24).
율법은 1. 도덕법: 출20:1-17(십계명), 2. 시민법: 출21:1-24:18, 3. 의식법: 출25:1-40:38
우리가 지금 말하는 율법은 도덕법인 십계명이 아니라 유대인들의 의식법(제사장, 헌물, 절기)과
시민법(나병, 과부)을 뜻한다. 십계명은 모세의 의식법이 주어지기 전에 이미 시내 산에서 주어졌고
지금도 유효하다(안식일과 주일 차이 빼고). 그 이후로 600여 개의 율법 규례들을 만들었다.
1. 율법은 이방인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롬2:14; 요1:17).
2. 율법의 목적은 사람을 의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죄를 알게 하려는 것이다(롬3:20).
3.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이끌고 가는 훈육 선생(갈3:24)
4. 더러움을 보여 주는 거울
5. 예수님은 율법의 끝마침이 되셨다(롬10:4; 갈2:19).
6. 은혜와 율법은 체계 자체가 다르다.
a. 율법 하에서는 양이 목자를 위해 죽었다. 그러나 은혜 하에서는 목자가 양을 위해 - 31 -
죽었다(요10:14-15).
b. 율법은 거룩함을 요구한다. 그러나 은혜는 거룩함을 준다.
c. 율법은 말한다 -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다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기 위하여 항상 그것들 가운데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저주받은 자니라, 하였느니라(갈3:10).
d. 은혜는 말한다 - 자기 불법들을 용서받고 자기 죄들이 가려진 자들은 복이 있으며
주께서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롬4:7-8).
e. 율법은 말한다 -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7).
f. 은혜는 말한다 -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로 삼으셨나니 여기에 사랑이
있느니라(요일4:10).
g. 율법은 말한다 - 율법은 다가올 좋은 일들의 그림자는 가지고 있으나 그 일들의 형상
그 자체는 아니므로 그들이(제사장들이) 해마다 계속해서 드린 그런 희생물들로는
거기로 나아오는 자들을 결코 완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히10:1).
h. 은혜는 말한다 - 오직 이 사람은 죄들로 인해 한 희생물을 영원히 드리신 뒤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사 그 이후부터 자기 원수들이 자기 발받침이 될 때까지 기다리시느니라.
그분께서는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한 번의 헌물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느니라(히
10:12-14).
i. 율법은 선언한다 - 율법 밖에서 죄를 지은 자들은 또한 율법 밖에서 멸망하고 율법
안에서 죄를 지은 자들은 율법으로 심판을 받으리니(롬2:12)
j. 은혜는 선언한다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롬8:1).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또 그는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리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
니라(요5:24).
20-28절: 다른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함
1. 그분은 맹세를 통해 제사장이 되셨다(20-22).
2. 그분은 더 나은 상속 언약의 보증이시다. 여기의 보증(surety)은 자기 이름을 두고 맹세하는
보증인을 뜻한다. 대출 받을 때의 보증인과 같은 개념. 신약은 구약보다 좋다. (1) 내용이 단순하고
쉽다. (2) 복잡한 규례들이 거의 없다. (3) 유대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포함한다. (4) 이것은
레위 제사장 체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에 의해 집행되므로 확실하다. 언약(covenant)와 달리
상속 언약(testament)은 반드시 죽음을 필요로 한다(히9:16).
3. 그분은 변할 수 없는 제사장 직을 소유하신다(23-24).
4. 그분은 항상 살아계셔서 중보하시고(롬8:34) 자기를 통해(요14:6) 하나님께 나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신다(25).
5. 그런데 그분은 우리 신약성도들에게 꼭 맞는 분이시다(26). 도덕적으로 인품 측면에서 그분은
무엇보다도 거룩하시다. 그래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다(벧전1:14-16; 레
11:44-45; 벧후3:11, 14).
6. 그분은 구약의 제사장들처럼 날마다 희생물을 드리지 않고 한 번에 끝내셨다(27).
7. 그분은 단순히 사람이 아니라 거룩히 구분된 하나님의 아들이다(28).
정동수 목사님 프로필
- 학 력 -
인하대학교 기계공학 학사(1982)
캐나다 뉴브런스윅 주립대 기계공학 석사(1984)
미국 매리랜드 주립대 기계공학 박사(1988)
미국 펜사콜라 신학대학원 석사(2001)
목사 안수(2001)
- 경 력 -
현,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1992-현재)현, 사랑침례교회 담임목사
http://www.cbck.org/html/ 사랑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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