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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독 텍스트 요약분 | 총정리 특강 | 유식 30송 29절 30절 (종강) | 반복 시청 권유 |
이전과 이후를 선명하게 가르는 | 유일한 지식 | 23-12-16
https://www.youtube.com/watch?v=Nt17-3KorQI
강독 텍스트 요약분:
1. 유식 30송 29절과 30절(15페이지)
- 유식 30송의 마지막 결론에 해당
- 따라서 중요한 강독
(가) 원문(29절)
얻는 바가 없고, 사량 분별할 수 없네.
이것은 출세간의 지혜라네.
두 가지 추중(麤重)을 버림으로써
문득 전의(轉依)를 증득하는도다.
無得不思議 是出世間智
捨二麤重故 便證得轉依
(나) 직역 해설(29절)
- 무득부사의 시출세간지(無得不思議 是出世間智)
사이추중고 변증득전의(捨二麤重故 便證得轉依)
a) 무득(無得)은 얻지 못함이다.
b) 얻지 못함이 불가사의(不可思議)인 이유는 시출세간지법(是出世間智法),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 지식이 아닌 반전의 메시지이기 때문.
c) 얻는다는 일반상식은 깨달음아 얻는 것이며, 성취(成就)하고 체험해 득하는 것이다.
d) 일반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기에 반전이고 부사의(不思議)하다고 말한다.
e) 그렇다고 출세간의 지식인 도판 종교판의 지식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f) 도판 종교의 지식도 살짝 가면만 바꿔 쓴 세상 지식과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g) 얻을 수 없는 그것은 지혜(智慧), 반야(般若)이다.
h) 반야(般若)란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며, 세상의 개인 기반의 이원성에 기초하는
그런 지식이 아닌 지식이다.
- 사이추중고((捨二麤重故),
a) 추중(麤重)은 거칠고 무거움
b) 두 가지 거칠고 무거운 것을 버렸기 때문에, 거칠고 무거운 것은 각종 고통(苦痛)과 공포(恐怖)
c) 생사에서 오는 고통(苦痛)과 공포(恐怖)에 근거 무거워짐
d) 생사 고통(苦痛) 공포(恐怖)만 해결되면, 여타 문제는 가벼워진다.
- 변증득전의(便證得轉依)
a) 두 가지 거칠고 무거운 것을 버렸으므로, 문득 증득(證得)하게 된다.
b) 문득 증거(證據)를 가지고 알게 된다.
c) 전의(轉依)는 지혜(智慧) 지혜도피안(智慧到彼岸) 이므로, 지혜를 증득했다는 뜻.
d) 붓다께서 돌아가실 때, 진실에 의지하라 한 말은 전의(轉依),
즉, 프라즈나 파라미타 아뇩다라삼약삼보리에 의지하라는 말씀이었음.
e) 문득 증득한다 함은 선명하게 알고 이해하게 된다는 뜻.
f) 선명하게 풀려나, 전도몽상(轉倒夢想)에서 깨어남
(다) 쉬운 현대 한글 번역
- 주관과 객관에서 아무 얻을 바 없고
오히려 ‘주객’(=色空=단일의식=일심) 통째 이대로
영원부터 본래 주어진 가장 소중한 보물임을 보는 지혜는 불가사의한 이득을 준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의 지식과 다른 것이다.
나와 세계라는 거칠고 무거운 짐 덩어리를 던져버렸기에
문득 어느새 개인(個人)이 물러나고 일심 단일의식 지혜가 앞장서니
항상 있던 고통과 공포를 찾을 수 없음(無有恐怖, 공포의 모습은 있지만 실체가 없다)
이 궁극의 진실 지혜의 증거(證據)가 된다.
*** 3구 메시지
보는 이것
통째 하나면 의식 자각
따로따로면 물질시공간
(라) 해설#1
- 주관과 객관에서 아무 얻을 바 없고, 오히려 주객 통째 이대로 영원부터 본래 주어진
가장 소중한 보물임을 보는 지혜(智慧)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이득을 준다.
a) 얻지 못한다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반전은 세상에 난무하는 세간이든
출세간이든 막론하고 난무하는 그런 지식 지혜(智慧)로 위장한 지식과는 다른 지식
b) 이것이야말로 세상의 지식과 다른 것이다.
c) 나와 세계라는 거칠고 무거운 짐 덩어리를 던져 버렸기에,
문득 어느새 개인이 물러나고 일심(一心) 단일의식 지혜(智慧)가 앞장서니,
항상 있던 고통(苦痛)과 공포(恐怖)를 찾을 수 없음이 궁극의 진실 지혜(智慧)의 증거(證據)가 된다
d) 무유 공포(恐怖) : 공포(恐怖)가 있지 않다.
e) 무 공포(恐怖)가 아니고 무유 공포(恐怖)라고 한 까닭은 있지만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름과 모습으로만 있으니까.
f) 즉 우리가 무겁다 여기기에 무겁고 거친 것이지, 사실을 알고 보면 없다.
g) 없어서 없음이 아니고, 사실은 자유와 평화만 있다
(마) 해설#2, 29절의 좀 더 상세한 탐구(探究)
a) 무득부사의(無得不思議),
- 얻을 수 없고 성취(成就)할 수 없고 뭔가를 잡을 수 없다는
이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반전은 선각(先覺)의 가리킴이다.
b) 이것은 얻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
c) 즉 일심(一心) 대승(大乘)의 가리킴
d) 무득부사의(無得不思議) 이것은 시출세간지(是出世間智)라 함은
이것만이 유일하게 다른 지식, 다른 지혜(智慧)와 구별되는 유일한 올바른
지혜(智慧)로서, 바로 정견(正見)이다.
e) 일심(一心) 대승(大乘)에 대한 선각(先覺)의 가리킴, 이것이 유일한 정견에 해당.
f)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이 정견 지혜(智慧)는 구체적으로
대원경지(大圓鏡智), 평등성지(平等性智), 묘관찰지(妙觀察智), 성소작지(成所作智)
네 가지 속성(屬性)이라 할 수 있음.
(바) 네 가지 속성에 대한 간단 고찰#1
a) 커다랗게 원만(圓滿)하게 비추어서 아는 지혜(智慧),
- 대원경지(大圓鏡智): 원만하게 모든 것을 이루는 지혜(智慧),
- 평등성지(平等性智): 평등한 지혜(智慧),
- 묘관찰지(妙觀察智): 묘하게 관찰(觀察)하는 지혜(智慧),
- 성소작지(成所作智):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성취(成就)하고 창조함
b) 아, ‘이것들은 일반 평범한 범부가 넘볼 수 없는 경지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기 쉬움
c) 온갖 고행 수행 체험 후 아라한이 되고 아라한도 어렵다 1지(地) 2지(地) 10지(地) 보살(菩薩)이 되어야,
즉 붓다 경지가 되어야 이런 지식 지혜(智慧)를 얻나 보다 라고 생각하면 안 됨,
d) 얻는 게 없다 했는데, 자꾸 얻어야 하나보다 생각하게 됨.
(사) 네 가지 지혜의 속성에 대한 고찰#2
a) 대원경지(大圓鏡智)는 바로 의식으로, 크게 원만하게 비추어서 아는 지혜(智慧).
b) 크게 원만(圓滿)하게 지금에 비추어서 아는 지혜(智慧)는 바로 여기 있는 눈앞의 일상 의식.
c) 이때 단 하나의 조건은 개인과 개인적 동기라는 색안경에 가려져 있지 않다야 한다는 것,
d) 무득부사의(無得不思議) 정견을 먼저 이 지식 지혜(智慧)로 대응하기 전에
무득부사의(無得不思議) 정견을 먼저 고찰해 보자.
e) 무득부사의(無得不思議) 정견은 두 가지로 분석 가능
첫째는 개인과 개인적 동기를 선명하게 의식하는 것.
둘째는 바로 의식의 위치와 개수. 바로 일심(一心) 반야(般若) 단일의식이죠.
이 두 가지는 사실은 연동되어서 하나로 동시에 존재한다.
(아) 개인과 개인 동기를 선명하게 의식한다는 말에서 유의점 고찰#3
a) 이 말은 매우 조심해서 사용해야
b) 혹시라도 도판 종교판을 헤매고 다니는 것은 개인과 개인 동기가 아니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됨
c) 이 부분은 세간과 출세간으로 상식으로 착각 할 때 나오기 쉬우며,
그런 연유로 소승(小乘)을 언급하게 됨
d) 세간 개인과 개인 동기를 이 세상에는 세간이라 부르는데,
출세간에서는 소승(小乘)이라 부르게 됨.
e) 물론 소승(小乘)도 오래해 양이 늘면 임계치에 넘어서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며
대승(大乘)으로 오기도 함
f) 도판 종교판 세간, 이것은 전부 세상에 속하고,
유식 30송에서 말하는 시출세간지(是出世間智)는 바로 언급한 2가지를
뭉뚱그린 선각(先覺)의 가리킴, 일심(一心) 대승(大乘) 반야(般若)를 말함,
g) 일심(一心) 대승(大乘) 반야(般若)를 안다함은 세간과 가짜 출세간의 그게 아닌,
무득부사의(無得不思議) 정견 지혜(智慧)를 말한다.
(자) 해설#3, 3번째 4번째 구절, 捨二麤重故 便證得轉依에 대한 경전/어록 중심
추가 상세 현대적 해설
a) 출세간지(出世間智)는 거칠고 무거운 것을 우리가 놓게 함으로써, 없애는 것이 아님
b) 투명하게 보게 함으로써 자유와 평화, 생명 축제의 파티를 누릴 수 있는 단서를 우리에게 제공.
c) 무득부사의(無得不思議) 정견은 네 가지 속성을 가진다.
대원경지(大圓鏡智)/ 평등성지(平等性智)/ 묘관찰지(妙觀察智)/ 성소작지(成所作智)
[1] 대원경지(大圓鏡智)
1) 대원경지(大圓鏡智): 중중무진(重重無盡) 다중 우주 물질, 우주, 비물질 우주 /
삶의 우주 /죽음 후에 우주 /태어나기 전의 우주 / 이 모든 세계를 두루 원만하게 비춘다.
2) 비춘다는 것은 안다, 안다 스스로 나타남과 동시에 안다.
3) 즉 거울과 비추어지는 어떤 물체가 있는 게 아니고. 사실은 거울과 물체가
하나인 것을 대원경지(大圓鏡智)라 함.
4) 거울 비유를 오해하면 안 된다.
여기에 나무가 있고, 거울이 있는데, 거울에 나무가 이렇게 비친다
이것을 대원경지(大圓鏡智)라 한다면 다시 소승이 되는 것.
비추어 아는 주체가 있고. 비춤을 당하는 대상(對象)이 있게 되어 주객이 나뉘면,
동안 배운 것이 헛수고 됨(주객은 늘 가상)
5) 따라서 이 거울 비유도 사실은 버려야 된다.
‘참나’라는 말을 버리듯, 거울 비유도 사실은 버려져야 한다.
6) 거울/ 거울에 비친 것/ 거울에 비추어진 대상(對象)이 하나다.
즉 거울과 대상(對象)은 두 개가 아니고 하다. 즉 스스로 나타나면서 안다.
스스로 나타나면서 안다, 이것이 생조일동(生照一同).
7) 대원경지(大圓鏡智)라 할 때는 거울과 비추어지는 대상(對象), 즉 색공(色空)이다.
8) 거울이 공(空)이고 대상(對象)이 색(色)이라면, 색공(色空)은 다른 것이 아니다.
이것이 단일의식이며 대원경지((大圓鏡智))의 본 뜻이다.
9) 따라서 경전과 어록에 나오는 거울 비유 상징에서 대상(對象)을 비추는 게 아니고.
대상(對象)과 거울은 하나다. 즉 비추는 거울이 있고, 또 비추어지는 대상(對象)이 있다,
이것은 엉터리 해석이란 점을 반드시 기억할 것.
10) 대원경지(大圓鏡智)는 일심(一心) 대승(大乘) 단일의식을 얘기하며,
바로 거울과 대상(對象)이 하나라는 결론이다.
[2] 평등성지(平等性智)
1) 따로따로 너가 내가 있고 / 나가 있고 주체가 있고/ 객체가 있고,
사람이 있고/ 식물이 있고, 동물이 있고/ 예전에 공룡이 있었고,
사람이 멸종(滅種)하면/ 어떻게 되나?
2) AI가 자기 자각을 해서 뭐 AI 인간을 멸종(滅種)시키면 어떻게 되나?
3) 이런 모든 엉터리 질문, 의심, 두려움과 공포(恐怖)가 다 사라지면 무엇이 남을까?
4) 평등한 의식 자각만 남는다.
'아뇩다라삼약삼보리' 라는 평등한 깨달음이 바로 평등성지(平等性智)
[3] 묘관찰지(妙觀察智)
1) 이러고 나니 비로소 나와 세계가 다시금 관찰(觀察)된다.
2) 예전에는 그냥 무심코 개인, 가상주체인 내가 행위자로서 관찰(觀察)했다.
3) 이것은 묘하지 않은 관찰(觀察)이었다.
왜냐하면 정견에 부합되지 않는 관찰(觀察) 이었으므로.
4) 묘관찰지(妙觀察智)는 행위자 없는 관찰, 즉 관찰(觀察)이 관찰(觀察)하는
지혜(智慧)였으며, 이것이 바로 묘관찰(妙觀察).
5) 즉 내가 세계(世界)를 관찰(觀察)하는 것이 이전의 관찰(觀察)이었다면,
의식이 나와 세계를 통째 하나로 관찰(觀察)하는 것이 묘관찰지(妙觀察智),
6) 즉 이전에는 내가 세계를 관찰(觀察) 했는데, 이번에는 나와 세계라는 이 통째 하나.
7) 통째 하나의 이 의식이 나와 세계를 관찰(觀察)
즉 나 세계(世界)가 나와 세계를 자각, 관찰(觀察)하는 것이 묘관찰지(妙觀察智).
8) 이렇게 관찰(觀察)되면 새나감이 없어 무루(無漏).
절대로 새나가지 않는다 말이 실수가 없다는 의미는 아님
9) 발생하는 실수조차도 묘하게 관찰(觀察)되어서 평등성지(平等性智),
대원경지(大圓鏡智), 성소작지(成所作智)임을 충분히 안다.
10) Don't worry, Be happy란 말이고, 관계없다는 말. Don’t care다.
꽁꽁 언 얼음이 이미 물이라 걸 알면 아무상관 없음
11) 점점 녹으면 이제 가벼워지나, 녹지 않아도 괜챦음.
그런데 조금씩 녹는 현상에 위계와 단계를 나누어 부처니, 아라한이니,
1지(地) 보살이니, 10지(地) 보살이니 하는 것은 대중에 영합한 유치원 어린이 장난이다
12) 꽁꽁 언 얼음이든, 조금 언 얼음이든 다 물이다.
13) 물이라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한데, 조금 녹은 걸 체험이라 한들 조건이 달라지면
다시 얼 것이며, 또 다시 녹이려면 공포(恐怖)스럽고 당혹스러울 것.
14) 체험을 강조하는 수행은 이런 왔다리 갔다리를 되풀이 하는 꼴.
15) 그래서 선각(先覺)의 가리킴만 듣고 믿으면 그럴 일 없음,
16) 묘관찰지(妙觀察智)는 예전에 “산은 산, 물은 물” 이라 했다.
그 다음에,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그 다음에 다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17) 첫 번째 구절과 세 번째 구절은 얼핏 같아 보이지만, 겉보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첫 번째 “산은 산, 물은 물”은 바로 내가 세계를 관찰(觀察)하는 것이고.
세 번째 “산는 산, 물은 물”은, 나 세계를 나 세계가 관찰(觀察)하는 것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
18) 세 번째 “산은 산, 물은 물: 이것이 묘관찰지(妙觀察智)다.
[4] 성소작지(成所作智)
1)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성취(成就)하고 창조한다.
2) 마음대로 성취(成就)하고 창조해 내도, 전부 고통(苦痛)과 공포(恐怖)가 아니고
자유와 평화다
3) 공자의 “60에 이이순(六十에 而耳順)”이 이에 해당.
즉 귀가 순(順)해졌다는 말은 자아가 희박해졌다는 말.
4) 공자 나이 70에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도 이에 해당
종심소욕(從心所欲)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라도 진실과 어긋나지 않더라,
나이 70에 마음이 원하는 바에 따라 성취(成就) 창조해도 진실과 어긋나지 않더라.
즉 고통(苦痛)과 공포(恐怖)를 가져오지 않더라.
이 상태에서는 돈과 권력과 명예와 여자와 남자를 성취(成就)하고 만들고 얻고자 해도
불류구(不踰矩), 진실을 어긋나지 않더라.
그러니까 이 상태에서는 돈과 권력과 명예와 여자와 남자가 나쁜 게 아니다
이걸 가지고 자꾸 고통(苦痛)과 공포(恐怖)를 만들어 내고 자기뿐만 아니라
주변에 고통(苦痛)과 공포(恐怖)를 만들어내는 아수라장을 만드니까
지옥이라 하는 거지, 이 돈과 권력과 명예 여자 남자 자체는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5) 그래서 이 무득부사의(無得不思議) 정견 지혜(智慧)가 있으면,
이제는 얼마든지 돈과 권력과 명예와 여자와 남자를 추구해도 된다.
6) 추구 하는 것이 전부 선하고 자유롭고 평화로운 곳에 쓰여지니까.
즉 고통(苦痛)과 공포(恐怖)에 쓰여지지 않으니까.
7) 즉, 돈과 권력과 명예 여자 남자를 자유롭고 편안하게 추구하고
창조해도 되는 것이 성소작지(成所作智)다.
8) 혹은 삶과 죽음의 세계를 일체 승자 일체 지자로서 삶과 죽음의 골짜기를 종행 무진 누비는 것,
이것이 성소작지(成所作智)다.
d) 이 네 가지 지혜(智慧)는 사실상 하나의 지혜(智慧)
- 네 가지 속성을 가지는 이 하나의 무득부사의(無得不思議) 정견 지혜(智慧)임을 안다면,
1800 공안은 수수깡이나 지푸라기로 만든 인형과 같다.
- 모든 공포(恐怖)와 고통(苦痛)이 전부 스티로폴로 만든 것과 같다.
- 그래서 성소작지(成所作智)를 종행무진 누린다
- 공자가 삶과 죽음의 이 판을 종횡무진 누빌지라도, 즉 돈과 권력과 명예, 여자와 남자를
추구한다 할지라도 매뉴얼에 맞게 사용해 진실에 어긋나지 않았다 함은 고통과 공포(恐怖)가 없었다는 말.
(차) 쉽게 일으킬 수 있는 경지에 대한 착각
- 공자님은 60, 70에 그랬다는데, ‘나는 지금 이 경지가 아닌가 보다’.
나는 평범한 일개 범부 중생에 불과하니까 라고...
- 그래서 좀 더 열심히 공부하고 체험해서, 저 경지로 가야 하나? 아니다.
- 이 네 가지 없는 사람은 없으며, 예전에는 이러한 무득부사의(無得不思議)
지혜(智慧)를 듣고 알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공자께서는 60 70을 말씀하셨지만,
이것도 단순한 은유고 비유이다.
- 나이 먹도록 기다릴 필요가 없다. 단일의식 없는 사람이 없으니까.
- 또 사랑을 내고자 하며 못 내는 사람 없고, 나와 세계 없는 사람은 없다.
- 지금 삶과 죽음이라는 판에 안 들어와 있는 사람은 없다.
- 이것이 지금 매 순간 우리에게 주어진 존재 상황이다.
- 이것은 처음부터 무득부사의(無得不思議) 했으니, 얻지 못한다는 이 불가사의(不可思議) 함.
- 이것이 세간 출세간을 떠난 유일한 선각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물려준 유일하고 올바른 지식, 정견 이었다.
- 이것은 바로 지금 있다. 지금 있다. 지금 있다. 지금 있다.
과거에 있던 것이 아니고, 미래에 있을 것도 아니다.
- 지금 있으니, 듣기만 하면 곧 바로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다.
(카) 중간에 단계와 점차(漸次)와 계급 이야기는 전부 잊어버려야.
- 옛 부터 전해 내려오는 신비 전승(傳承)의 핵심은, 계급과 단계가 똑 같았으며,
계급과 단계를 절대 언급하지 않았다.
(타) 무득부사의(無得不思議) 정견 지혜(智慧)가 지금 있다는데,
우리는 왜 지금 단일의식의 사랑으로 삶과 죽음의 판을 종행 무진
즐겁게 돌아다니지 못하는 걸까?
- 이것은 우리의 선택(選擇) 때문이다.
- 바로 무득부사의(無得不思議) 지혜(智慧) 지식을 듣지 않으려 하는,
혹은 듣고도 믿지 않으려하기 때문이다.
- 여전히 개인과 개인적 동기가 좋거나 좋아 보이기 때문에, 아니라 말 하겠지만,
고통(苦痛)과 공포(恐怖)가 더 좋기 때문이다.
- 매 순간. 자신의 선택(選擇)을 직접 보면 알 것.
- 있는 것이라곤 단 하나 단일의식 밖에 없기 때문에, 이것이 두 가지 얼굴을 한다.
- 두 개가 있으니까 이제 선택(選擇)하게 되는 것.
(파) 대원경지(大圓鏡智)와 우리의 선택(選擇)
- 즉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 선악나무가 있는데, 두 개의 나무가 아니고
나무는 하나밖에 없으나, 두 가지 측면 이 있는 것.
- 두 가지 측면인 하나의 나무에서 독 과실을 먹을건가 생명 과일을 먹을 것인가?
이것은 선택(選擇)이다.
- 대원경지(大圓鏡智) 단일의식 대신에 유아(有我)를 선택(選擇)하고,
평등성지(平等性智) 사랑 대신에 유위를 선택(選擇)하고.
묘관찰지(妙觀察智) 대신에 고통(苦痛)을 선택(選擇)하고.
성소작지(成所作智) 삶과 죽음을 자유롭게 누비는 것 대신에
삶과 죽음의 매 순간에 공포(恐怖)를 선택(選擇)한다.
- 실제로 있는 것이라고는 단일의식 밖에 없는데, 매 순간 우리는 '내가 있다를 선택(選擇)' 할 수도,
즉 '연극의 배역을 선택(選擇)'할 수도 있고, '연극의 연기자를 선택(選擇)'할 수도 있다.
- 무득부사의(無得不思議) 정견 지혜(智慧)가 일단 알려진 후에야 선택(選擇)이 가능
그래서 무엇이 부처인가 했을 때, 부처는 선택(選擇) 가능, 선택(選擇)하는 힘,
선택(選擇)할 수 있는 힘이다.
- 무득부사의(無得不思議), 정견이 없으면 두 개의 측면이 있는 줄 모르니까
선택(選擇) 자체를 못 함.
- 단일의식이 유아(有我)도 되고, 대원경지(大圓鏡智)도 된다는 걸 모를 때는
유아(有我)로는 유아(有我)만을 선택(選擇)할 수밖에 없다.
- 그래서 우물안 개구리는 자기 혼자 우물 밖으로 못 나온다
반드시 우물 밖에 무엇인가가 밖으로 꺼내줘야 하는데, 선각(先覺)의 가르침인
일심(一心) 대승(大乘) 반야(般若) 유식이 그것이다.
(하) 사랑 밖에 없다는데, 매 순간 우리의 선택(選擇)
- 차라리 단일의식의 소식을 안 들었으면, 그냥 나는 몰랐다 할 수 있는데,
이제는 몰랐다는 변명을 할 수 없다.
- 이제는 분명히 선택(選擇) 가능성이 주어져 있기에, 그런 변명이 안 통한다.
- 그래서 사랑 밖에 없지만 두 가지 선택(選擇)이 있다.
- 내가 한다 해버리면 전부 증오와 미움과 성냄으로 바뀌어 버린다.
내가 하니까. 내가 하면 너는 왜 내가 하는 걸 반대하니?
왜 내가 하는 대로 안 따라오느냐? 이것이 증오.
- 그런데 평등성지(平等性智)가 되면, 사랑 밖에 할 수 없다.
- 그러면 증오와 미움과 욕 한 마디도 못하나? No
- 산은 산, 물은 물이라 했기에, 증오와 미움과 성냄을 잘 사용한다
웃으면서 욕할 수 있다, 웃으면서 화낼 수 있고. 웃으면서 미워 할 수 있다.
- 키우는 애견이 못된 짓 하면, 화들짝 화도 내지만, 사실은 사랑이었다.
- 세 살 어린아이가 때때로 미운 짓을 해서 뭐라 꾸중 하지만 사실은 사랑이었다.
그와 같았다.
(가-1) 묘관찰(妙觀察)와 우리의 선택(選擇)
- 나와 세계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에게나 다 있다.
- 그러나 묘관찰(妙觀察)일까? 그냥 맨눈 관찰(觀察)이라는 선택(選擇)할 수 있다
- 내가 관찰(觀察)하는 거면, 나를 행위자(行爲者)로 여기고 있다.
이 의식을 행위로 여길 수 있을까?
- 행위자(行爲者)를 상정하는 것, 이것은 고통(苦痛)이다.
- 고통(苦痛)을 선택(選擇)한다는 것은 행위자(行爲者)로 여기는 것이고,
고통(苦痛)이 아닌 묘관찰(妙觀察)이라는 것은, 행위자(行爲者) 없는 행위(行爲)다
- 모든 일과 모든 경험은 나의 경험과 일이 아니고, 단일의식의 경험과 일이다.
나는 진정한 우리의 위대하고 장엄한 수단, 3중 필터(Filter)다.
(나-1) 성소작지(成所作智)와 우리의 선택
- 삶과 죽음에서 공포(恐怖)를 선택 할 건가?
- 성소작지(成所作智), 즉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마음껏 돈, 권력, 명예, 여자, 남자를 가져도 공포(恐怖) 아닌 자유와 평안이 있게 될 것인가?
아니면 그럴수록 공포(恐怖)가 커지는 것을 선택(選擇)할 것인가는,
매 순간 지금 무득부사의(無得不思議) 지식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매 순간 우리의 선택(選擇)이다,
2. 유식 30송 30절
- 유식 30송의 마지막 절
(가) 원문(30절)
이것은 곧 무루이고, 계(界)이며,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고, 선(善)이며, 상주하는 것이고,
안락이며, 해탈신이고,
큰 적묵(寂黙)의 법신이라 이름한다네.
此卽無漏界 不思議善常
安樂解脫身 大牟尼名法
(나) 해설
- 차즉무루계(此卽無漏界)다
a) 차(此), 이것이 바로 새지 않는지 않는다, 온전(穩全)하다
100% 온전(穩全)하게, 반쪽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온전(穩全)하게
온(穩)을 다 사용하는 게, 진실의 세계다.
b) 이것이 앞서 얘기한 무득부사의(無得不思議) 정견 지혜(智慧)로서
이 네 가지 좋은 속성을 선택 하는 것이다
c) 그럼 나쁜 건 나빠서 나빠서가 아니라, 고통(苦痛) 공포(恐怖)가 자르기에 나쁘다 하는 것.
d) 유아(有我) 유위(有爲)에 의해 고통(苦痛)과 공포(恐怖)가 있다 나쁘다 하지만,
만약에 고통(苦痛)과 공포(恐怖)가 괜찮다면, 언급하는 이런 것들은 필요없다.
이 길에 올라선 사람과 같이 걸어가는 분들이 아니기 때문에,
e) 무득부사의(無得不思議) 지혜(智慧)로서 이 4 가지 대원경(大圓鏡) 단일의식 사랑 묘관찰(妙觀察)
삶과 죽음을 자유롭게 노니는 것이야 말로 새지 않는 온전한 세계다
- 부사의선상(不思議善常)
a)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영원한 종이네 라는 말.
b) 좋고 싫다는 이원성의 얘기에 해당되면 영원하지 않은데, 여기서의 상선(上善)은 항상 선한 것,
즉 죽음, 증오, 미움, 화냄이 있더라도 선이 되는 것.
c) 그래서 항상 선한 것이고 부사의선상(不思議善相)
d) 그래서 이 생각 즉 이원성 측량할 수 없는 영원한 좋은 것이고,
- 안락 해탈신(安樂解脫身) 대모니명법(大牟尼名法)
a) 법신, 단일의식 사랑이 안락 해탈신이고 대모니명법(大牟尼名法)이다.
b) 이름 붙이기를 엄청나게 위대하고 장엄한, 모니(석가모니 할 때의 그 모니)
엄청난 대자유(大自由) 대평화(大平和)다.
c) 대평화(大平和) 라고, 대자유(大自由)라고 이름 붙이는 명법(名法) 진실이란 뜻
(다) 쉬운 현대 한글 번역
이것이 새나감 없는 온전한 진실 세계이고
이원성을 떠난 영원한 선함이며
고통과 공포에서 풀려난 자유와 평화이다.
이름하여 大聖賢 法身이라 말한다.
(라) 해설 #1
- 이 선택(選擇)이 새나감 없는 온전한 진실 세계이고, 이원성을 떠난 영원한 선(善)이며,
고통(苦痛)과 공포(恐怖)에서 풀려난 자유와 평화다.
-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이며. 이름하여 대성현 법신(大聖賢 法身)이 말한다.
- 부처란 개인 고타마 시타르를 가리킴이 아니라, 바로 지금 매 순간,
우리들의 선택(選擇)이 대성현 법신 석가모니 부처, 메시아 그리스도다.
(마) 육도윤회(六道輪廻)에 대한 올바른 이해
- 육도윤회(六道輪廻)는 천인, 인간, 아수라, 아귀, 지옥, 축생,
- 육도윤회(六道輪廻)는 삼계를 윤회(輪廻)
- 육도윤회(六道輪廻)에 대한 언급은 윤회(輪廻)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
- 삼계 윤회(輪廻), 육도윤회(六道輪廻)는 영혼이 죽어 옷을 갈아 입는다는
유치원 재롱잔치 같은 이야기가 아님.
- 놀랍게도 매 순간 매 순간, 우리 즉 단일의식의 용기 있는 선택(選擇)을 육도윤회(六道輪廻)라 한다.
- 매 순간 우리는 대자유(大自由)와 평화, 자유와 평화의 하늘이다.
- 자유와 평화의 하나님을 선택(選擇)할 거냐?
고통(苦痛)과 공포(恐怖)라는 지옥 분노의 신(神)을 선택(選擇)할 거냐?
이것은 매 순간의 일이지, 고대 경전이나 티벳 경전에 나와 있듯이,
열심히 수행해서 깨달으면 죽은 뒤에 평화와 자유의 신(神)이 나타나고
그렇지 않으면 지옥과 분노의 신(神)이 나타나 엄청난 고통(苦痛)과 공포(恐怖)를
겪으리라는 그게 아니다.
- 또 서쪽 전통에 의하면 하나님을 믿고 계율을 따르면, 죽어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만나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어서 심판(審判) 받아 지옥에 갈 것이라는 대중 영합적(迎合的)이고
왜곡(歪曲)된 교설들은 전부 엉터리다.
- 진실은 무엇인가? 매 순간 우리의 선택(選擇)에 따라서
이 하나가 하나의 단일한 신(神), 하나의 의식, 신(情神)을 이야기 하고 있음
- 신(神), 하나의 정신(情神)이 자유와 평화의 신(神)이 될 수도 있고,
지옥과 분노의 염라대왕(閻羅大王)이 될 수도 있다.
- 무서운 귀신이 나타날 수도 있고, 자비로운 이 평화와 지혜(智慧)의 신(神)이 나타날 수도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죽어서 만나는 게 아님,
- 매 순간 우리의 선택(選擇)에 의해서 우리는 윤회(輪廻)한다. 즉 매 순간 윤회(輪廻)한다.
- 어제 밤 잠들어서 아침에 깨어날 때 우리는 이미 윤회(輪廻)한 것.
- 10분 전의 우리로 부터 10분 후의 우리는 늘 매 순간 윤회(輪廻)하고 있다.
- 우리의 선택(選擇)에 따라서 하늘, 인간, 아수라장, 아귀, 지옥, 동물이 결정 됨.
- 그래서 우리가 후회할 때는 내가 왜 그때는 동물처럼 어리석었지 라고 회고 함
왜 그렇게 내 스스로 지옥 고통(苦痛)을 선택(選擇)했을까?
왜 그렇게 내가 그렇게 무슨 욕심을 부렸을까?
왜 쓸데없는 나중에 허망하고 부질없는 그러한 정치 경제판에 들어가서
무슨 아귀(餓鬼)처럼 다툼과 전쟁을 벌였을까?
- 사람으로서 어떤 때는 희생도 하고 어떤 때는 사랑도 했고,
또 어떤 때는 하늘 천국처럼 평화로운 때도 있었지만 잠시 잠깐이었다.
이것은 매 순간 우리의 선택(選擇)이다.
- 그래서 윤회(輪廻)의 비밀은 매 순간 윤회(輪廻)하는데,
‘전체(全體)가 전체(全體)로 윤회(輪廻)한다’ 라는 놀라운 비밀이 현대적으로 밝혀지게 된다.
(바) 유식30송 1절~30절의 강독 종료 알림
- 거룩한 선각(先覺)들께 귀의(歸依)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歸依)합니다.
거룩한 도반들께 귀의(歸依)합니다. _( )_
- 자, 사랑하는 도반 벗님 여러분,
이것으로 유식 30송 강독(講讀)을 마칩니다.
3. 새롭게 이어질 강독(講讀) 예고
(가) 도마복음 강독(講讀)
- 말로만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다가, 실제로 발견 됨
- 역사적 예수의 말씀에 가장 가깝다는 도마복음
- 동쪽 서쪽 전통을 좀 더 큰 규모로 묘관찰(妙觀察)해 봄으로써
이 동서로 갈리기 이전의 오리지널 지혜(智慧)의 핵심
- 동쪽에서는 무득부사의(無得不思議) 정견(正見)이라 하고,
서쪽에서는 그리스도 하나님이라고 지칭
- 보다 재밌고 즐겁고 가볍고 평화롭고 진실되고 진지하게 그러나 경쾌하게.
새로운 마음으로 초심 발심을 간직하고, 개인적 동기를 늘 의식하면서,
동시에 옛 선각(先覺)들의 귀중한 유산인 이 지혜(智慧)를 늘 기억하면서
강독을 새롭게 시작 할 것입니다.
- 선지식 도반님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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