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수필>
- 사주팔자가 그런 모양이라. -
권다품(영철)
맑은 연못에는 달이 놀러왔다며 잉어들이 모여 일렁일렁 놀고,
돌담 아래는 함박꽃들은 달빛을 받아서 더 예쁘게 웃고,
달빛 받고 함박꽃 화사해서 마당이 더 포근하게 느껴지는 그런 집.
저녁 먹고는 소화시킨다며 동네 한 바퀴 돌 수 있고,
오늘 밥 많이 먹었다고 이웃 동네까지 한 바퀴 돌고 오자며,
저수지 끝 산모퉁이에 무덤있는 모퉁이를 돌아도 달빛이 너무 밝아서 무섭지 않다며 사부작 사부작 걸을 수 있는 곳.
마을 건넛산 산비탈에서는 짝 찾는 꿩소리들이 참 평화롭고, 집 가까운 밭언덕 감나무들에는 까막 까치들이 지저귀며 놀고,
마당가 벛꽃나무 그늘에는 참새들이 잠든 강아지 코앞에까지 와서 지저귀며 놀아도 강아지는 그냥 평화롭게 잠만 자는 집.
시간나면 그 마당가 나무들에다 똑딱똑딱 예쁜 새집을 만들어 올려주고, 그 나뭇 그늘 아래에는 개집도 참하게 만들어 주고....
틈나는 대로 장작을 패서 처마밑 비 안 맞는 곳에다 쌓아두고, 닭백숙 해먹는 부엌에다 그 장작으로 불 피워 불 때놓고,
고구마랑 밤을 호일 감아서 넣어놨다가 먹고....
힘들지 않을 만큼 고추 여남은 포기 심어두고, 남는 땅에다 깻잎 몇 포기 심어뒀다가, 언제든지 바가지 들고나가서 고추 좀 따고 깻잎 몇 장 따와서 금방 퍼온 생된장에 찍어 먹을 수 있는 집.
그 밭 주위에다가 호박도 몇 구덩이 심어놓고, 호박잎 따서 된장 짜작하게 찌져서 쌈도 맛있게 싸먹고...
비오는 날에는 저수지 누런 흙탕물 들어오는 곳에다가 미꾸라지 통발 던져놓고 들어와서는 커피 한 잔 타와서 거실 창문틀에다 다리 올려놓고 비스듬하게 기대어 비오는 마당 바라보며 마시고, 심심하면 또 책도 읽을 수 있고....
어이, 권력을 잡아서 아랫 사람들이 벌벌 기면 진짜 행복하겠나?
돈이 많아서 여기 저기 땅에 투자해 놓고, 땅값 오른다고 진짜 행복하겠나?
예쁜 여자들 끼고 양주 마신다고 그기 진짜 행복이겠나?
하긴 나도 젊을 때는 그런 욕심이 있었다.
그런 욕심 속에 살다보니 성격이 자꾸 강해졌다.
성격이 강해지다 보니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지더라고.
웃음이 사라지다보니, 눈에서는 독한 빛이 나오고, 어릴 때 친구들이 광대뼈가 나온 것 같다고 하더라고.
속으로 '니가 그렇게 느껴서 그렇겠지' 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한의대 교수인 후배와 얘기를 나누다가 "성격이 강한 사람들은 눈빛에서 성격이 보이고, 또, 광대뼈가 나옵니다. 확 표시나게 나오는 건 아니지만, 못 느낄 만큼 조금씩 조금씩 나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 말 듣고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들여다봤는데, 눈에 어떤 광기도 비치고, 광대뼈가 어릴 때보다 좀 나온 게 아니라, 훨씬 많이 튀어나왔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광대뼈를 보면서 너무 강하게 살았구나를 돌이켜 보았다.
욕심도 많이 부렸고, 남한테 지지 않으려고 강하고 독한 마음으로 살았던 것 같다.
그 이후 다른 사람들의 눈빛과 얼굴도 가만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데, 진짜 눈빛이 강하고 광대뼈가 많이 나온 사람들이 성격이 좀 강한 편이더라고.
그런데, 나이가 든 언젠가부터 "원장님, 요새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얼굴이 항상 밝네요."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
그래서 나는 '마음을 부드럽게 가지면, 눈빛도 부드러워지고 광대뼈가 점점 가라않는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어이, 사람마다 생각이야 안 다르겠나, 그쟈?
외제차 말고, 자전거 타고 요 동네도 갔다가 조 동네도 갔다가, 지나가다가 저수지에서 낚시하는 구경도 좀 하고...
나는 이런 시골에서 사는 기 좋더라고.
사주팔가 그런 모양이라.
꼭 사주팔자가 아이라도 인자 마 요래 사는 기 맞겠다 싶더라고.
2024년 7월 28일 오후 6시 00분 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