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1)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선과 악의 싸움에 중립은 없다
스케일이 어마어마한 책 ‘삼체’(Three-Body)의 앞부분 줄거리입니다. 이야기는 심각한 사회적, 정치적 격변기였던 중국의 ‘문화대혁명’(1966~1976) 중에 시작됩니다. 문화대혁명은 중국 공산당 주석 마오쩌둥이 자본주의적 잔존 세력을 숙청하여 중국 공산주의를 수호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사회 정치적 운동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수백만 명의 박해, 중국 교육 시스템의 혼란, 심각한 경제적, 문화적 피해를 포함하여 광범위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격변을 가져왔습니다.
이때 예 원지에(Ye Wenjie)는 천재 물리학 교수인 아버지가 반동분자로 처형되는 것을 봅니다. 미국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가르쳤다는 이유입니다. 아버지를 신고한 것은 어머니였습니다. 반동분자의 딸로서 수용소에서 지내던 그녀는 또한 마음을 주던 유일한 남자 과학자에게까지 배신당합니다. 최고의 과학자로서 우주에 신호를 보내는 일을 담당하게 된 원지에는 자신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발전한 문명을 지닌 평화주의자 외계인으로부터 이상한 메시지를 수신하게 됩니다.
신호를 보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치가 발각되고 자신들의 문명이 그들을 파괴하러 갈 것인데, 자신들이 도착하면 문명의 차원이 다른 자신들의 종족이 지구를 식민지로 만들 것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세상에 환멸은 느끼던 예 원지예는 잘됐다 싶어 그들에게 메시지를 계속 보내고 태양이 세 개인 행성에 사는 그들이 메시지를 보게 됩니다. 그들은 세 태양이 합쳐질 때 문명이 파괴되고 마는데 태양이 하나뿐인 지구는 그들이 원하는 가장 완전한 행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구까지 오는 데는 400년이 걸립니다. 그동안 지구가 문명을 발전시키지 못하게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 원지에와 그녀를 추종하는 세력을 규합하여 지구의 문명이 더는 발전하지 못하게 만드는 작전을 수행합니다. 지구는 그들의 작전에 말려들어 과학 혼돈의 늪에 빠지게 되고 매우 발전이 매우 느려지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외계인들이 도착하게 될 무렵 그들을 무력화시킬 인물이 나타납니다. 바로 평화를 위해 지구인들이 냉동인간으로 그때 깨어나게 만든 루오 지(Luo Ji)입니다. 루오 지는 트리솔라리안들이 자기들을 공격하면 그들의 좌표를 온 우주에 다시 날려 보낼 것이고 그러면 그들보다 더 높은 차원의 존재들이 와서 또 그들을 몰살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것으로 트리솔라리안들과 거래하고 그들을 물러나게 합니다.
‘삼체’는 SF 소설이지만, 사실 우리 삶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 누군가를 위해 일합니다. 원지에는 자신도 지구인이지만, 지구인들에 대한 환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구를 파괴해 줄 대상을 찾고 그들의 뜻에 순종하여 그들을 불러들이고 그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지구인들이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을 지연시킵니다.
반면 루오 지는 지구인들 편에 서서 어떻게 하면 그들을 저지시킬 수 있을지를 생각합니다. 기술로는 도저히 되지 않기에 깨달음을 통해 이 일을 이뤄냅니다. 정글 숲속에 병아리 한 마리가 있지만, 안전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누군가 자기를 잡아먹게 되면 다른 누군가가 또 그놈을 잡아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깨닫게 만들면 된다는 식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구원을 반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마치 원지에와 같은 일당인데,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면 안 되게 하는 세력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뜻을 들어주는 이들의 뜻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누구든 자기들이 은혜를 받는 이들에게 순종합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그분에게 한량없는 은혜인 성령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적들은 또한 악의 세력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그들을 고마워합니다. 그러면 당연히 그들의 말을 하고 그들의 뜻을 따라줍니다. 이것이 심판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우리는 누구나 누군가에게 은혜를 받고 있고 은총과 진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그 은혜를 주는 이의 말을 하고 뜻을 따라줍니다. 그런데 그 은혜는 빛과 어둠, 두 곳에서 옵니다. 지구를 침공하러 오는 이들이 하는 일에도 관심이 없고, 또 지구를 지키려는 이들에게도 관심이 없다면 그 사람은 중립일까요?
그 사람은 지구 파멸의 문제에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외계인과 그 일당의 편입니다. 어머니를 거부하면 중립일까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어머니를 거부하면 그냥 악에 머물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내가 어떤 은총을 원하느냐에 따라 내가 따라주는 뜻이 결정됩니다.
2)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요한 3,31-38: 아버지는 아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셨다.
예수님은 하느님으로서 위에서 오신 분이시다. 아드님은 아버지와 같은 본성을 지니셨으며 아버지의 광채요 모습이시다. 그래서 모든 이가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아드님을 공경해야 한다.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아버지도 공경하지 않는다.”(요한 5,23)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다.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32절) 그분은 보고 들어서 아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본성적으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그분 안에 모든 것이 있었고, 모든 것이 아버지의 품에서 완전한 상태로 나오셨기 때문에 당신 안에 이미 가지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은 모두 참되고 거짓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따르려 하지 않는다.
신앙인으로서 말씀을 따르고 실천함으로써 참된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그분을 닮아간다. 그러기에 위에서 오신 분의 말씀을 따른다면, 그는 진리가 하느님께 가깝고 소중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하셨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34절) 아드님이 아버지의 말씀이시다. 우리도 말을 하려고 할 때, 말하려는 개념이 이미 우리 마음속에서 하나의 말이 되어 표현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도 말씀을 품으셨고, 아드님을 낳으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낳으셨으며 아드님을 통하여 시간을 창조하셨다. 아드님은 아버지의 말씀이시며, 아버지의 말씀을 하셨다. 아버지의 말씀을 성령 안에서 하신다. 이 아드님은 성령을 온전히 지니고 계시며, 친히 성령을 부어주시고 우리는 그분께 성령을 주십사고 청한다.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35절) 여기서 ‘모든 것’이란 아들이 아버지와 똑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은 당신과 같은 존재이시므로 또 다른 당신을 보내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의 유일한 말씀이시자 지혜이신 그분은 본성적으로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을 영원으로부터 가지고 계시다. 단지 그것은 아버지로부터 받으신 것이다.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36절)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착한 생활과 행동이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을 믿는 것이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36절) 그 사람 위에 머무른다는 것은 치유 받지 못하고 버림을 받는다는 것이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그분을 믿고 따른다면 하느님의 분노가 떠나고 생명이 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생명을 얻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요한 3,18) 하셨다. 이제 예수님을 더 잘 알고, 잘 따라 그분을 닮을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3)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지혜로운 현자가 길을 걷다가 누군가와 부딪혔습니다. 부딪힌 그 사람은 불같이 화를 내며 현자의 뺨을 가차 없이 때렸습니다. 그리고 큰 싸움을 벌일 험악한 기세를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현자는 실랑이가 벌어지자 곧바로 마음을 가라앉혀 싸움을 피했습니다. 때린 사람도 자신이 너무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현자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현자는 사과를 받아들였을까요? 저는 사과를 받아들였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예상과 달리 현자는 사과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맞은 기억이 없소.”
현자는 맞은 기억이 없기에 사과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고, 이로써 나쁜 기분을 안고 가는 것도 거부한 것입니다.
상대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은 일이 자주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공격에 일일이 대응하는 데 드는 힘이 얼마나 많이 듭니까? 오히려 당장 패배를 인정하는 편이 훨씬 더 지혜로운 모습입니다. 대응하는 것이 정당해 보이지만, 대응한다고 해서 상대가 항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강조하셨던 사랑의 삶은 절대 손해 보는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손해를 줄여주고 함께 사는 힘을 마련해 줍니다. 큰 이득을 얻을 때가 더 많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도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패배인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 죽음이 있었기에 부활이 가능했고, 우리에게 커다란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사랑에 집중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은 이제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절대’라는 말에 걸려 넘어져서 커다란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 위에 계시는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예수님께 모든 권한 주셨지요.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만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께 집중하는 것이 나에게 가장 유익한 것입니다.
예수님께 집중하는 사람은 결코 예수님의 말씀과 그 뜻을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의 시선을 외면하고 대신 주님께 집중할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안에서 모욕당하고, 세상 안에서 단죄받는다고 해도 억울할 필요 없습니다. 주님께서 원한 생명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들고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명언: 청렴은 백성을 이끄는 자의 본질적 임무요, 모든 선행의 원천이요, 모든 덕행의 근본이다(다산 정약용).
4)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요한 3,31)
저 위에 계시고
모든 것 위에 계시는 분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순종이라네.
외아들을 사랑하시어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어주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께
순종하는 이들에게는
당신의 사랑은
고스란히 다 내어주신다네.
5)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
그 끝을 모르는 사랑의 심연에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는 것은 늘 모험이지만
그 모험 안에서 우리는
말씀의 참됨을 확증할 수 있습니다.
면역력이 떨어져 몸이 좀 안 좋으면
병원게 가서 링거를 맞는 분들이 계십니다.
메마른 삶은 마치도 면역력이 떨어져
건강의 위험신호를 보내는 것과 비슷합니다.
사랑 없는 삶이 메마른 삶입니다.
사랑할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조용히 피정을 하면서
말씀 안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며
기도하는 시간이 영적인 링거를 맞는 시간입니다.
기도는 예수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데에서 샘솟는 것입니다.
그래야 땅에서 난 우리가
하늘에서 오시는 분께서 하시는 영적인 말씀을
영적인 그릇에 담을 수 있습니다.
복음 말씀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31-36
31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32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33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34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35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36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