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3:8
제 삶에는 어떤 열매들이 맺혀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을 만나러 갈 때 아무 열매없이 간다면 참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학교 생각이 제 마음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진과 안정의 형평성을 생각하면 늘 외줄 타기를 하는 느낌입니다.
그 어떤 것도 주님 기쁘시게 하는 것보다 앞서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학교 발전이라는 것으로 하나님께 열매를 드릴 수 없다는 것을 늘 명심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일에 더 마음 쏟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연도에는 어떤 열매가 맺혔을까?
주님께 꼭 붙어있고 싶어하는 열망이 내게 얼마나 있었을까?
하나님 자녀로서의 다름의 열매가 얼마나 있었을까?
난관을 만났을 때 이전보다 더 인내하며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대립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더 많이 사랑하려는 열매가 있을까?
잘 산다는 것은 영적인 열매를 맺는 것임을 기억하겠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
돌들보다 못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 자녀의 삶의 모습이 제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1절)
광야에는 사람이 별로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많은 도시나 도시는 아니어도 최소한 동네 시장은 되어야 전파하는 그 말을 들을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찾아보니 이런 설명이 된 곳이 있었습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살았기에 그의 삶의 현장인 광야에서 복음을 전파한 것이라는 겁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라는 생각 그 자체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아닌 내가 하는 것이라는 교만이 들어 있는 것임을 묵상하게 됩니다.
내가 해야 할 일에 대한 계산과 상황 판단보다 앞서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임을 깨닫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2절)
세례요한의 광야에서의 외침이 주의 길을 준비하는 외침이 되었듯이 내가 있는 곳은 중요치 않음을, 그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제가 되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한 가정의 주부로 작은 교회의 직분자로 내게 주어진 일을 잘 감당해 나가며 복음을 전파하는 자리에 있기를 소망합니다.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10 ~좋은 열매를 맺지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성경에서 열매라는 단어가 나올때마다 나에게는 어떤 열매가 있을까? 있기는 한 걸까?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벌거벗은 모습으로 서 있으면 어떡하지?.... 여러 염려들이 하나둘씩 내 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거 같아 나를 아주 작고 소심하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
나는 죽고 임마누엘 되시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과 동행할때 당연히 맺히는 열매라 생각하니 나의 염려는 사라집니다.
오늘도 좋은 열매를 맺게 해주시는
나의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마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우리를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칭하셨던 것처럼
나를 바라보시며 "사랑하는 아들"이라 부르실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괜찮아 실수 할 수 있지"
"사랑하는 아들 내가 함께하니 다시 해보자"라고 말씀하심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듣고 싶습니다.
필요할때만 찾는 아들이 아니라 항상 주님을 찾아 바라보는 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내 뒤가 아닌 앞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 감사합니다.
나의 삶에 늘 앞서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감사합니다.
매일 회개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되게 하시고 그 사랑 예수님을 선포하며 내 삶이 예수님의 삶, 십자가의 삶이 되길 기도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로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회개기도를 하며 살아왔습니다. 내가 했던 모든 회개에 대하여 합당한 열매를 맺으면서 살아왔는가를 돌이켜보니 그 마저도 다시 회개할 일이 되어감을 고백합니다.
광야의 소리로 메시아가 되어 나에게 오신 주님의 소리를 잘 들으며 살기 원합니다. 세상의 헛되고 헛된 수많은 소리들에 마음 쓰지 않고, 내가 듣기 원하는 소리만 듣지 않고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주님의 선포를 매일의 삶에서 되새기며 살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칩니다. 여기서 말하는 천국은 우리가 죽은 후에 가는 곳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내 삶 속에 임하셨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내 마음에 오시면, 내 안에 천국이 시작됩니다.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삶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신 예수님께 감사드립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말씀하십니다.
단지 말뿐인 회개에 그치지 않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제 삶에서 실제적인 열매로 나타나길 간절히 원합니다. 생각, 감정, 행동이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이끌어 주시고, 그 열매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길 원합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마태복음 3: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말씀을 녹음하며 마지막 절을 읽는데 눈물이 났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아들 예수님을, 나의 죄 때문에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최근에서야 회개란 것을 해보았습니다. 그동안 나는 항상 옳고 정당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생각해 보니 제가 지은 죄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회개를 한다 해도 다 지워지지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 나의 죄 때문에 이 땅에 오시고 고난을 받으신 주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 저 임에도 사랑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회개를 통해 새로운 나로 거듭나길 원합니다. 예수님을 더욱 본받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 원합니다.
마 3:3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마 3:10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나 다시한번 생각해 봅니다.
말씀 읽고 묵상해 오면서 늘 제동이 걸렸던 점은...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고 믿음으로 결단하지만, 여전히 동일한 부분에서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변화되지 않는 것 같은 나의 연약함에 실망도 하며, 입으로만 고백하고 묵상함로만 그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였습니다.
여전히 지금도 설익은 열매 같으나, 매일매일 주시는 말씀의 단비로 좋은 열매로 익어가게 하심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나무를 뒤흔드는 거친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도록 말씀의 지지대를 세워가며 말씀대로 살아내기를 소망합니다.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하나님을 향한 서운한 마음 아직도 풀어지지 않았습니다.
밴댕이 소갈딱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하나님 탓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생긴 서운한 마음 시간이 흐를수록 옅어지기는커녕 마음 한편에 남아 점점 커지려 했습니다.
아마 매일 묵상을 하지 않으면 서운한 그 마음은 성경을 덮어버리게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랬다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라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지 못했을 것이고 회개는 하고 싶지도 않았겠지요.
화를 풀어낼 대상을 하나님으로 스스로 정해버렸으니까요.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려 하는 마음에 커지기 전에 묵상을 통해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나는 알 수 없지만 그럴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난 며칠간의 저의 어리석음과 연약함을 회개합니다.
회개의 열매를 맺을 있도록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진정한, 진실된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가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믿음의 자녀 되길 기도합니다.
마태복음 3:3 KRV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또 외치며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한 자였습니다.
예수님이 요한을 찾아오셨을 때 요한은 그분이 예수님이신지 알았고 그분에게 세례를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우리의 역할을 잘 감당하며 살았던 세례요한의 모습을 잘 묵상하며 본받고 싶습니다.
나의 뜻이 아니라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는 하루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