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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아모스박목사
(우)32414 충남 예산군 삽교읍 두리학교길19
기독교대한감리회 삽교교회 원로목사 박 한 응(朴 漢 應)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43ch
E-Mail : park43kr@hanmail.net
2023.5.14. 주일오전예배 설교문
【어 버 이 주 일】
본 문 : 출애굽기 20:12, 에베소6:1-4
제 목 : 네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
찬 양 : 199, 275, 449, 559, 579.
복음송 : 사랑의 송가
할렐루야!!
오늘은 여러분들이 익히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어버이 주일입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오늘도 하나님의 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오늘 아침에 교회에 들어오실 때 우리 학생들이 꽃을 달아드려서 여러분들의 가슴에는 붉은 카네이션 꽃들이 달려 있습니다. 붉은 색 카네이션은 어버이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뜻하는 것입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어버이날이며 또 해마다 맞이하는 어버이 주일입니다만 해가 거듭될수록 오히려 부모님에 대한 감정은 더욱 되살아나는 것 갔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어머니」 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코끝이 찡해 지고 있습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부모님은 살아계신 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다」 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마지막 죽을 때 제일 후회하는 것은 출세를 해서 높은 벼슬을 하는 것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어서 호강하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 한 번 더 찾아뵙지 못하고 자식 한 번 더 안아주지 못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즘은 라디오와 TV에선 하루 종일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화제로 그리고 가수들의 노래도 부모님에 대한 노래가 하루 종일 방송이 되었습니다. 구성지게 들려오는 대중 가수들의 노래를 들을 때도 자꾸만 어머니 생각이 나서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 애써야 했습니다.
나의 추억 속에 어머니는 남보다 일찍 늙으신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 나이 마흔 다섯에 날 낳으시고 하신 말씀이 ‘내가 환갑만 살면 이 자식이 열여섯 살이 되니까 그러면 굶어 죽진 않겠지…’ 라고 하셨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이 세상에 살아 계시지 않고 어느새 내가 올해 여든한살이 되었는데도 어머니를 그리는 회한의 감정은 사그라질 줄 모르고 더욱 짙어만 가고 있습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지나간 어버이 날이건만 올해는 더욱 가슴이 아려옵니다.
저는 지난 5.11일이 어머니의 추도일 입니다. 어머니가 소천 하신지 55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지금도 어머니 생각을 하면 어머니의 영상이 뚜렷하게 떠오르곤 합니다. 그리고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어머니 살아생전에 하지 못한 일들이 후회가 됩니다. 어느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나는 나의 어머니가 마흔 다섯 노년에 나를 낳으셔서 막내아들이라고 참으로 애지중지 키우셨습니다.
어느 날 나의 어머니는 나의 손을 꼭 잡으시면서 “지금까지 너는 내 아들 인줄 알았는데 너는 내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라고 눈물지으며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합니다. 그리고 내가 월남으로 떠나던 날 어머니는 병환중이셨는데 내 손을 잡으시고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니 전쟁터를 가든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이 지켜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기도해 주마” 고 하시면서 “네가 돌아오는 것을 내가 볼지 모르겠구나” 하시던 말씀도 생각이 납니다. 결국 나의 어머니는 내가 귀국하기까지 다섯 달을 참지 못하시고 마침내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습니다.
텔레비죤에서 노인들이 나와 무엇을 하는 것만 보아도 어머니 생각에 저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길을 가다가 허리 굽은 노인들이 지팡이 짚고 가는 것만 보아도 문득 문득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 흘리곤 합니다. 이게 웬 주책인가 하여 나이 들면 괜찮으려니 했더니 내 나이 일흔여섯 살이 되었어도 어머니를 생각하기만 하면 눈물이 그칠 줄을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은 여러분의 어머니가 여러분을 위하여 얼마나 눈물 흘려 기도했는가를 기억하십니까? 생각하십니까?
다 같이 찬송가 579장 1절을 부르겠습니다.
어머니의 넓은 사랑 귀하고도 귀하다
그 사랑이 언제든지 나를 감싸줍니다
내가 울 때 어머니는 주께 기도드리고
내가 기뻐 웃을 때에 찬송 부르십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서 특색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자식을 양육하는 양육 기간이 가장 길다는 것입니다. 한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나서 독립된 한 인간이 되기까지에는 부모님의 무한한 사랑과 수고와 정성과 희생이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에는 출애굽기에도 에베소서에도 “부모를 공경하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는 말씀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명령은 거부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고, 게으름을 부릴 수도 없고, 반드시 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엄격한 의미에서 효도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신앙과 윤리의 표준은 「십계명」입니다. 이 십계명은 하나님과 인간관계의 제1계명에서 4계명까지와, 인간과 인간에 관한 계명인 제5계명에서 제10계명까지로 크게 둘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인간에 관한 첫 계명인 제5계명이 “너희 부모를 공경하라” 는 말씀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십계명은 두 돌 판으로 되어 있는데 두 번째 돌 판의 제일 첫 번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는 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과거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처음으로 들어왔을 때 기독교인들은 부모님께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해서 ‘기독교는 불효의 종교다’ 라고 오해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기 이전 우리나라는 유교와 불교의 사상을 수백 년 동안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유교 사상의 제사 의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제일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살아 계실 때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불효막심한 자식도 그 부모가 죽은 뒤에 상다리가 휘어져라 제사상을 차리면 효도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이런 모순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반대로 기독교가 먼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우리 민족의 사상과 풍습을 지배하였는데 후에 유교나 불교 사상이 들어 왔다면 오히려 그 유교나 불교의 사상과 제사법을 이상하다고 배격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진리를 깊이 알고 보면 기독교만큼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종교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레20:9) “만일 누구든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였은즉 그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잠30:17)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오늘 부모님 주일을 맞이해서 효도의 의미와 그 신앙적인 교훈이 무엇인가를 몇 가지만 간단하게 말씀드리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진정한 효도는 부모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있어서는 태양과 같고 하나님과 같은 존재입니다. 또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은 하나님의 사랑의 그림자와도 갔습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님의 사랑과 희생은 이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을 이 땅에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상 위대하게 성공한 사람들의 배후에는 의례히 어머니의 고귀한 희생과 사랑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좋은 예로서 우리는 미국의 16대 대통령을 지낸 아브라함 링컨을 꼽을 수가 있고, 또한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 여사를 꼽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감리교회를 창설하신 요한 웨슬리 목사님의 어머니 수산나 여사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분들은 오르지 자식을 키우는데 오직 전심전력을 다하여 키울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키웠습니다.
오늘 본문 에베소 6장4절 말씀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고 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키우고 양육을 하였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교육제도가 발달되지도 않았고 무슨 과외라든가 학원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교육하였을 뿐입니다.
또한 성경 상에 나타난 위대한 어머니들을 볼 때 모세를 훌륭하게 키워 한 나라의 영도자가 되게 한 것도 그의 어머니 요게벳의 신앙적인 교육이 있었고, 사무엘을 한 나라의 선지자로 키운 것도 그의 어머니 한나의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은 자식을 키울 때에 목숨 걸고 지키며 생명을 내 던지면서 자식을 키웁니다. 우리들은 종종 뉴스 시간에 듣는 것이 있습니다. 집에 화재가 났는데 집안에서 자고 있는 자식을 구하려고 불 속에 뛰어 들었다가 자식은 구하고 어머니는 희생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듣고 또는 자식을 구하려다 화상을 입어서 평생을 흉한 얼굴로 살아가는 어버이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모성애는 비단 사람뿐만이 아니라 미물의 짐승들도 위험이 다가올 때 새끼를 지키려고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페리칸이라는 새는 주둥이 밑에 커다란 주머니가 달려 있는데 새끼들을 위해서 물고기를 많이 잡아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와서 먹이곤 합니다. 그런데 물고기를 잡지 못할 때는 자신의 창자를 새끼들에게 먹여주고 어미는 죽는다고 합니다.
<예>제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가 새끼 다섯 마리를 낳았습니다. 윗방에 있는 커다란 고구마 통가리 속에다가 새끼를 낳았는데 새끼들을 먹이려고 쥐도 잡아오고 개구리도 물어오고 때로는 참새도 잡아오곤 합니다. 그렇게 해서 새끼 다섯 마리가 잘 컸습니다. 그 새끼를 우리 어머니가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한 마리씩 나누어주었는데 어미 고양이는 며칠 몇 밤을 잠도 안자고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새끼를 찾아다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자식을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자신들의 생각대로 자식을 쉽게 죽이기도 하고 버리기도 합니다. 이는 짐승만도 못한 짓입니다. 짐승도 제 새기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프리카에 사는 유인원 중에 오랑우탄은 새끼가 죽으면 몇 날 며칠을 가지고 다니면서 잘 때는 죽은 새끼를 품에 안고 잠을 잡니다. 그러다가 죽은 새끼가 썩어서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을 때에야 비로소 아무도 모르는 곳에 묻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요즘 세상은 부모가 자식을 쉽게 포기하고 버리기도 하는 말세가 되었으며 또한 자식들도 어머니의 사랑과 아버지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즘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 부모를 생각할 때 용돈이나 많이 주는 기계처럼 생각합니다. 이제부터는 여러분의 사랑스러운 자녀들과 손자 손녀에게 이 부모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여야 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짐승과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에게는 깨닫는 知覺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먼저 부모님의 은혜를 깨달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 멘!>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49: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부모님의 가이없는 은혜를 깨닫지 못한대서야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예>중국의 장개석 총통을 30년이나 모시고 있던 시종 무관 오문기 장군이 쓴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번은 장개석 총통의 생일을 맞이하여 좋은 음식을 차려 대접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장 총통은 그 시종의 청을 극구 사양을 하고 일체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그 연유를 묻자 장개석 총통이 대답하기를 ‘내 생일은 나의 어머니가 고통을 당하신 날이다. 내 어머님이 나를 낳으시기에 얼마나 고생을 한 날인데 내가 무엇이 좋다고 고량진미를 먹고 마시겠느냐? 나는 그럴 수 없다’ 고 하면서 냉수 한 그릇 마시지 않고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생일을 보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들은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부모님의 희생과 고통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깨달으면 그 다음에는 잘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깨닫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2. 진정한 효도는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여러 해 전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정부로부터 국민 훈장 목련장을 수상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충북 제천에 살고 있는 56세의 홍금녀라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수상 내용을 보면 과연 상을 받을 만 하다고 누구나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홍금녀 씨는 19살에 시집을 와서 건강이 좋지 않은 시어머니를 36년 동안이나 극진히 모셨습니다. 시어머니는 올해 86세인데 5년 전부터는 치매로 인하여 사람도 몰라보는 지경인데 싫은 내색 없이 대소변을 다 받아내면서 지금까지 봉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6년 전에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 시아버지도 죽기 전 6년 동안이나 치매를 앓다가 죽었고 그 뒤에 시어머니까지 5년 동안이나 치매를 앓고 있습니다. 또 남편은 월남전에 참전하였다가 병을 얻어서 농사도 짓지 못하여 열두 마지가 농사를 혼자서 지으면서 5년 전 이혼한 장남의 손녀 두 명을 맡아 키우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힘들고 바쁜 중에서도 이웃에 사는 독거노인의 빨래며 청소 등의 수발을 들어주고 있고 매년 어버이날에는 동네 어른들에게 경로잔치도 베풀고 있고 불우한 이웃을 보살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효행이 알려져서 이번에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게 된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인들 중에서도 이 사람보다 못하지 않은 그런 훌륭한 효부들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아무쪼록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효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명령임을 깨달아서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사람이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에는 도덕관념도 선악의 표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양심이 자라고 선악을 분별하게 되는 것은 부모님의 가르침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야말로 ‘인생 최초의 선생님’ 이란 말이 있습니다. 부모님은 자식들에게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육체적으로 바른 생각을 가지고 인생을 바르게 살아가도록 가르쳐 주시며 온갖 희생을 다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냉수 한 그릇을 떠주는 사람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하거늘 일생 동안 피땀 흘려 희생하는 부모님께 감사할 줄 모른다면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다 같이 어머니 노래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어 머 니 마 음
1. 나실 제 괴-로움 다잊으시고
기를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닳토록 고-생 하시네
하늘아래 그 무엇이 넓다하리요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2. 어려선 앉고 업고 얼러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에 기다리는 맘
앓-을사 그릇될 사 자식생각에
고우시던 이마위에 주-름이 가득
땅-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님의 정--성은 그지없어라
3. 진정한 효도는 부모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엡6:1-3)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고 말씀하였습니다. 바로 부모님께 순종하는 것이 효도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유대 민족이 수세기 동안 나라와 국토를 잃고 온 세계를 방황하는 민족이었지만 그들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엄격한 가정교육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디를 가든지 그들의 가장이 곧 민족이요 국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유대 민족에게 있어서 부모에게 대한 절대 순종의 정신이 유대 민족을 그토록 위대한 민족으로 만든 것입니다.
구약 성경 말씀에는 부모님을 노엽게 하거나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부모님을 업신여기는 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출21:15,17)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신27:16)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이 얼마나 엄격한 법입니까? 이것이 바로 유대 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이 될 수 있었던 원리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에서도 상관에게 순종할 줄 모르고 항상 문제만 일으키는 사람이 되고 결국은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가 되어서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낙오되는 인생을 살수밖에 없습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엘케콜(S.A.Kierkegaard)은 “믿기가 어려운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순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의 현대인들의 생활 자세를 잘 표현한 말입니다. 부모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효도의 지름길인 것을 깨달아 실천하여 행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아 멘!>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를 낳아서 길러주시는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은 축복 받는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고 하였고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스위스의 20세기 대표적인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그의 ‘교의학’에서 말하기를 “부모는 하나님의 대표자요 하나님의 유일한 대리자이다” 라고 했습니다.
강철 왕 카네기(A. Carnegie)는 자기가 결혼을 하게 되면 어머니보다 아내를 더욱 사랑하게 될까봐 일생 동안 독신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미국의 27대 대통령을 지낸 제임스 가필드 는 대통령 취임식에 어머니를 모시고 나와 대통령의 자리에 어머니를 앉히고 취임식을 하여 모인 군중들에게 환호와 갈채를 받았습니다. 옛부터 전해지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은 임금과 선생과 부모님은 한가지라는 말입니다.
<예>지금으로부터 73년이 지난 6.25 한국전쟁중 있었던 사건입니다. 추운 겨울 바로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어느 가난한 어머니가 만삭이 되었으나 해산할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생각다 못해 선교사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선교사의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산기가 오고 진통이 시작되어 도저히 더 이상 갈 수가 없어서 마침 작은 다리 밑으로 내려가서 애기를 낳게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날 아기를 낳았으나 그곳에 무슨 이브 자리가 있을 리 만무합니다. 어머니는 자기의 옷을 하나 둘 벗어서 핏덩이 아기를 쌌습니다. 아기를 춥지 않게 싸다 보니까 어머니는 알몸이 되었습니다. 후둘 후둘 떨던 산모는 옆에 있는 거적을 둘러썼습니다.
그날 밤 선교사는 크리스마스에 쓸 물건을 사러 가는데 다리 위에서 그만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시동이 꺼졌습니다. 차에서 내린 선교사의 귀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선교사는 아기 울음소리를 따라 다리 밑으로 내려가 보니 갓난아기가 울고 있고 그 옆에 산모는 이미 빳빳하게 숨져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죽은 여인을 장사 지내고 그 아기를 길렀습니다. 그 아이가 자라서 12살이 되었을 때 그 아이는 선교사로부터 어머니의 슬픈 사연을 듣게 되었고 어머니의 무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는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날도 추운 겨울날이었습니다. 머리를 숙이고 한참 기도를 하던 아이는 자기의 옷을 하나씩 벗어 어머니의 무덤을 덮으면서 흐느껴 웁니다. 어머니! 얼마나 추우셨나요. 나 때문에 얼마나 추우셨나요. 하면서 아이는 옷을 다 벗어 어머니의 무덤을 덮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던 선교사는 크게 감격하여 그 아이에게 자기의 외투를 입혀 안아다가 위로하고 본국으로 데려가서 크게 공부시켜 훌륭한 지도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어버이 주일」 을 맞이해서 부모님께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마음으로만 하지 말고 행함으로 효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순종을 하는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는 불효를 저질러 왔고 하나님 말씀대로 부모님께 순종도 효성도 하지 못했을지라도, 이제부터라도 부모님께 효도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며 축복을 받는 길임을 깨달아서, 순종하며 행함으로 자자손손이 천대까지 하나님이 약속하신 하늘의 신령한 축복과, 이 땅의 기름진 축복과 신상의 건강의 축복을 자손만대까지 받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아 멘!>
알리는 말씀을 전합니다.
할렐루야!!
부족한 저의 설교를 사랑해 주시는 전국, 세계의 모든 동역자님들과 주님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설교문을 작성함에 있어서 외람된 말씀이오나 항상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맞추려고도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나의 카페를 비롯하여 몇몇 기독교 사이트에 업로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황당한 일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나의 설교는 누구나 사용하실 수 있고 인용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설교를 자신의 사이트나 다른 곳에 자신의 설교인양 전제를 하여서 이것을 보신 분들이 내가 그것을 보고 도용을 하였다고 오히려 나를 책망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안되겠습니다. 나의 부족한 설교를 인용도 하시고 전문 사용을 하셔도 좋으나 다른 곳에 전제를 하는 것은 삼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만약 앞으로 이와 같은 사례가 또 다시 발생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항상 부족한 저를 사랑하는 동역자님들과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임마누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