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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역사는 선악의 싸움이에요. 창세기 3장 15절에 예언된 그 선악의 싸움이 성경전체를 관통하는 황금줄입니다.
그렇다면 선과 악은 어떻게 나타날까요?
선은 예수님과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고, 악은 사탄과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을 말합니다.
계시록 12장에는 선악의 대쟁투의 전체 흐름을 보여주고,
계시록 13장에는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악의 전략들
계시록 14장에는 세상을 구원하려는 선의 간곡한 호소를 보여줍니다.
세상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살지만, 마지막 추수의 때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분리됩니다. 알곡은 천국의 백성들이고, 가라지는 멸망의 아들들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느냐?
우리의 마음을 누구에게 드리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됩니다.
결국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인이 찍혀질 것이고,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중심, 자기 고집, 자기주장을 가지고 사는 자들에게는 사탄의 표, 곧 짐승의 표가 찍혀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을 받을 사람들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이고, 사탄의 인을 받은 자들은 결국 사탄과 운명을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기별은 우리가 그 둘 사이에서 머뭇 머뭇거리지 말고, 오늘 섬길 자를 바르게 택하라는 옛날 믿음의 조상들의 메아리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누가 이 계시록 14장의 세 천사의 영원한 복음을 전하는 것일까요? 계시록 14장을 열면서 처음에 나타나는 성경절이 바로 14만 4천입니다. "또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여기에 14만 4천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그래서 어제 공부하신 계시록 13장과 오늘 공부하실 계시록 14장을 대비해 보면 선악의 싸움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명확하게 그 구도가 나옵니다.
계시록 13장에서는 로마 교회를 중심으로 온 세계가 연합되는 장면입니다. 그다음에 계시록 14장은 교파를 초월해서 진리를 중심으로 14만 4천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13장에서는 짐승 교황권을 경배하라고 강요하고, 계시록 14장에서는 창조주를 경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계시록 13장에서는 주일 예배, 곧 일요일 예배를 요청하고 있고, 계시록 14장은 안식일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계시록 13장은 일요일과 관련해서 짐승의 표가 나오고, 계시록 14장은 안식일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인이 나옵니다. 전체를 통합하면 계시록 13장은 인간의 전통을 가지고 인간을 지배하려고 하는 사탄의 계략인 인본주의 신앙이 나온 것이고, 계시록 14장은 하나님의 계명을 중심으로 하는 신본주의 신앙이 나옵니다. 계시록 13장과 14장을 종합해 보면, 이 13장과 14장이 충돌하면서 세상 역사는 끝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그 시대에 살고 있고, 이 싸움이 준비되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14만 4천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이 14만 4천이라는 말은 계시록 7장에 하나님의 인과 함께 언급됩니다. 계시록 7장 1절의 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여러분, 이 장면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서서 바람을 붙잡고 있다고 했습니다. 바람이라는 것은 전쟁이나 재난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탄이 마지막 때에 인간들이 감당하지 못할 전쟁과 재난을 일으켜서 인간 세계를 파멸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늘의 네 천사가 그것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지금 억제하고 있는 장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종합하면 계시록 7장 1절에 나오는 네 천사는 인류를 파멸시킬 큰 전쟁이나 재난을 억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2절과 3절에 가면,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인을 가진 다른 천사가 나타나서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인치는 일이 시작되었는데, 인을 쳐서 구원받을 성도들이 확정될 때까지 그 전쟁이나 재난을 억제하고 붙들고 있으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큰 전쟁이나 재난을 억제할 것인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하나님의 인 맞은 백성들이 확정될 때까지 붙들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인이란 무엇이고, 인 맞은 자란 누구인가? 계시록 7장 4절에 보면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라고 하여 계시록 14장보다 먼저 계시록 7장에 14만 4천이 나옵니다. 어떻게 해서 14만 4천이 나오느냐 하면,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유다 지파 중에서 1만 2천, 르우벤 지파에서 1만 2천, 갓 지파에서 1만 2천, 이렇게 12지파에서 각각 1만 2천 명씩 인을 맞아서 12,000 곱하기 12를 하면 14만 4천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은 이 14만 4천이 꼭 문자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나올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이 계시를 받을 당시에는 민족적 이스라엘의 구속사적 의미는 이미 끝났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적인 의미는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 예루살렘 교회의 핍박이 시작되었고,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사도들과 제자들이 흩어져 바깥세상에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복음이 이방으로 향하던 서기 34년에 끝났습니다.
그리고 실제적인 국가 이스라엘은 서기 70년에 로마에 의해 완전히 멸망됨으로써 그 표상적 의미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가 문자적 이스라엘의 회복을 종말의 징조라고 가르치고 있는데, 그것은 예언에서 빗나간 것입니다. 그런 일은 구속사적으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영적 이스라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각 지파 중에서 1만 2천 명씩 나왔다는 말은 계시록 14장 6절과 관련이 있습니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인 맞을 자들은 종말의 세상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들 중에서 나오는 14만 4천을 뜻합니다. 문자적 이스라엘 백성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사람 중에서 구원받을 하나님의 인 맞은 자들이 나타날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 14만 4천이 실제 수인가 상징 수인가 하는 논란이 있습니다만, 대총회 본부에서는 깊이 연구한 학자들의 오랜 연구 결과를 통해 결론을 내렸습니다. 12는 12지파에 기초한 고대 이스라엘의 수이자, 12사도 위에 세워진 교회의 수입니다. 따라서 14만 4천이라는 수는 그 수가 구성하고 있는 완전성에 비추어, 하나님의 교회의 연합과 완전성, 그리고 완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숫자는 상징적인 의미가 많습니다. 불완전수 6이나 완전수 7 등 여러 상징수가 있는데, 12는 조직수입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 12사도, 하늘의 12진주 문처럼 조직을 나타냅니다. 14만 4천을 분석하면 조직수 12 곱하기 조직수 12 곱하기 1,000입니다. 1,000은 충만수입니다. 하늘에서는 천 년이 하루 같고, 천사의 수가 천천이요 만만이라고 할 때의 1,000은 아주 충만함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14만 4천은 조직수 곱하기 조직수 곱하기 충만수로서, 역사의 마지막에 하나님의 조직된 군사들이 충분히 채워질 것이며 그들이 세상을 이기고 승리할 것을 예고하는 상징적 수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14만 4천인이 어떤 사람들이냐는 것입니다.
첫째, 구원이 확정되어 하나님의 인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둘째, 마지막 시대에 짐승의 권세를 대적하여 싸울 하나님의 군사들입니다.
셋째,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들입니다.
넷째, 진리의 마지막 증인들입니다. 창세 이후로 시대마다 성도들이 보존해 온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세상에 선포할 사람들입니다.
다섯째, 계시록 14장에 나오는 세 천사의 메시지를 온 세상을 향해 외칠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세상을 향한 최후의 경고이자 자비의 초청입니다.
계시록 14장의 세 천사의 기별을 듣고 받아들이느냐 거절하느냐에 따라 각 개인의 운명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이 기별을 전할 마지막 남은 백성들의 사명은 매우 중대합니다. 이 마지막 기별을 온 세상 방방곡곡에 낱낱이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원칙적으로 살아서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게 될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인이란 무엇이고 인 맞은 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인(印)은 도장(Signet/Seal)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도장에 대해 언급한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에스겔 20장 12절에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표징이라는 말을 영어 성경에서는 'Sign'이라고 합니다. 사인은 도장과 같은 것입니다. 과거 은행에서는 도장을 찍었지만 서양에서는 사인을 했고, 지금은 우리나라도 사인을 많이 씁니다. 사인은 도장입니다. 다시 말해 안식일은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거에 찍으신 도장입니다.
출애굽기 31장 13절에도 나옵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도장에는 주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입니다.
하나님께서 명시해 놓으신 십계명의 넷째 계명을 살펴보겠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은 깁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실 때는 그 이유를 명시하셨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안식일 계명이 도장의 기능을 하는 것일까요? 통치자의 도장은 일반인의 도장과 다릅니다. 통치자의 도장 속에는 통치 영토의 범위, 직위, 이름이 들어가야 합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관인에는 '대한민국'이라는 영토, '대통령'이라는 직위, 그리고 성명이 들어가야 통치자의 도장으로서 효력을 갖습니다. 하나라도 빠지면 통치자의 도장이 될 수 없습니다.
안식일 계명 속에 통치자의 도장 요소가 다 들어 있을까요? 정확하게 들어 있습니다.
첫째, 통치자의 영토로서 '하늘과 땅과 바다', 즉 온 우주와 지구 전체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둘째, 직위로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드신 '창조주'라는 직위가 나옵니다.
셋째, 그분의 이름인 '여호와'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호칭이고 이름은 여호와입니다.
이렇게 안식일 계명 속에는 통치자의 도장이 갖추어야 할 3대 요소가 온전히 들어 있습니다. 또한 십계명이 선포될 당시 고대 근동의 문서 양식을 보면 점토판에 조약을 새기고 문서 중앙에 통치자의 인장을 찍었습니다. 히브리어 십계명 본문의 구조를 보아도 안식일 계명은 십계명의 정중앙에 위치합니다. 문서 형식으로 보아도 안식일은 하나님의 도장입니다.
더 중요한 의미를 생각해 보면, 십계명의 처음 세 계명은 일반 종교의 다른 신들도 요구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을 만들지 말라', '신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것은 일반적인 신들도 요구합니다. 아래의 여섯 계명은 일반 도덕 사회나 국가 법률에서도 다루는 윤리입니다.
그러나 제칠일 안식일 준수는 어떤 다른 신도, 어떤 세상 권력도 명령할 권한이 없습니다. 안식일은 창조의 기념일이기 때문에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이 명하실 수 있는 고유한 계명입니다. 따라서 정중앙에 있는 넷째 계명이 위의 세 계명과 아래의 여섯 계명을 연결하며 십계명 전체가 창조주 하나님의 법으로서 권위를 갖게 만듭니다. 넷째 계명이 빠지면 십계명은 입법자의 인장이 누락된 문서와 같아집니다.
그러면 이 14만 4천은 어떤 사람들인가? 계시록 14장 4절과 5절에 나옵니다.
첫째,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의 여자는 순수한 하나님의 백성과 교회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교회가 배도하면서 성경에는 두 여자가 등장합니다. 순결한 여자와 음란한 여자입니다. 하나님을 믿다가 배도하여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대적하는 교회를 음녀라고 부릅니다. 14만 4천이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않았다는 것은, 세상의 타락하고 배도한 교회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혹시 과거에 그곳에 있었더라도 진리를 깨닫고 그곳에서 나온 자들입니다.
둘째,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셋째, 계시록 14장 5절에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짓는 죄는 시기, 질투, 살인, 간음 등 수없이 많은데 왜 14만 4천의 특징으로 '거짓말이 없다'는 표현을 썼을까요? 거짓말을 전혀 안 하고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변명하다가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스스로 거짓말을 안 한다고 하면 그 자체가 거짓말일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거짓말'이라고 표현했을 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요한의 다른 성경 기록을 통해 확인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2장 4절에 보면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14만 4천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에 철저히 순종하는 백성임을 뜻합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을 거짓말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거짓말입니다. 마지막 시대 남은 백성이 계명을 지키는 백성이라는 사실에서, 안식일을 성수하는 형식만큼이나 중요한 본질은 형제를 진실하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계명을 범하고 형제를 미워하면 그것이 바로 거짓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을 맞는다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그분의 법을 존중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언약의 표징으로 주신 제칠일 안식일을 구별하여 준수함으로 창조주를 경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 십계명을 준수하는 삶을 통해 사랑의 품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계명을 지킨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삶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인을 맞은 열매는 변화된 품성으로 증명됩니다. 안식일에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계명의 중심정신인 사랑을 삶에서 실천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인 맞은 백성들이 전해야 할 마지막 초청과 경고의 기별인 세 천사의 기별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천사의 기별입니다.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다는 것은 재림이 임박한 종말의 때가 이르렀음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영광을 돌리라는 외침입니다. 영광을 돌리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고 제시합니다. 창조주를 경배하라는 뜻입니다. 이 표현은 출애굽기 20장의 넷째 안식일 계명의 문구와 직결됩니다.
첫째 천사의 기별의 핵심은 마지막 심판의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고 하나님의 계명, 특히 안식일을 회복하여 참된 예배를 드리라는 메시지입니다. 마지막 때에 교황권을 필두로 짐승의 경배와 인간이 제정한 일요일 준수가 강요될 때,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창조주를 기억하고 성서적 안식일을 지키며 이 복음을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여기에 우리의 정체성이 담겨 있습니다. '심판의 때가 이르렀다'는 재림의 복음이고, '창조주를 경배하라'는 안식일의 회복입니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라는 명칭은 단순한 교파 이름이 아니라 첫째 천사의 메시지 그 자체입니다. 어느 교회에 다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 주저하지 마시고, 당당하게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임을 밝히며 창조주 하나님과 재림의 소망을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천사의 기별입니다.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바벨론의 어원은 바벨탑 사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인간들이 흩어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하늘에 닿는 탑을 쌓아 스스로를 높이려 했을 때,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습니다. '바벨'은 혼란과 혼잡을 뜻합니다. 영적 바벨론이란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에 이교의 교리와 인간의 철학과 성경에 위배되는 오류들이 섞여 혼잡해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초기 기독교는 오직 성경에 뿌리를 둔 순결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313년 콘스탄틴 황제의 밀라노 칙령 이후 기독교가 공인되고 특혜를 입으면서, 세속화되고 태양신교를 믿던 이교도들이 대거 형식적으로 개종하여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역사가들의 기록처럼 명목상의 신자들이 주류를 이루면서 오류와 세속주의가 홍수처럼 유입되었습니다. 이렇게 교회의 순수성을 잃고 성경 말씀에 이교 교리가 혼합되어 형성된 교회가 바로 중세 로마 가톨릭입니다. 가톨릭은 영혼불멸설, 일요일 예배, 마리아 숭배, 교황무오설, 부활절의 이교적 변용, 면죄부 판매, 화체설, 연옥설, 고해성사 등 성경에 없는 인간의 유전을 끌어들였습니다. 성경 말씀보다 교회의 전통을 상위에 둠으로써 교회가 영적 바벨론이 된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의 진리를 회복하기 위해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예수,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외치며 일어났고, 가톨릭 교황권을 적그리스도요 바벨론으로 규정했습니다. 마르틴 루터도 교황권의 횡포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의 후예인 개신교회가 점차 개혁의 발걸음을 멈추고 가톨릭의 비성서적 유산인 일요일 준수, 영혼불멸설 등을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오늘날에는 개신교회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가톨릭과의 일치 운동에 참여하며 거대한 건물과 교권, 세속적 번영을 추구하는 배도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말씀과 믿음이 식어버리고 형식만 남은 채 배도한 개신교회가 2차 영적 바벨론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각 시대의 대쟁투』에는 매우 소중한 교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벨론에 속한 교회들 내에 존재하는 영적 암흑에도 불구하고, 그 단체들 안에는 여전히 참된 그리스도인의 큰 무리가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시대를 위한 특별한 진리를 깨닫지 못했을 뿐이며, 형식적인 종교 생활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밝은 진리의 빛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기성 교회 안에서 갈급한 심령으로 진리를 찾아 헤매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진리를 갈망하며 기별을 찾을 때, 우리는 그들을 향해 "무너졌도다 바벨론이여, 내 백성은 거기서 나오라"는 둘째 천사의 기별을 외쳐야 합니다.
제도화된 교회들이 자체적으로 성경 말씀으로 온전히 회복될 가능성이 희박하기에, 주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에게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명하십니다. 갈급한 영혼들이 진리를 발견하고 교회로 찾아왔을 때, 교회가 그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품어주고 올바른 성경 말씀으로 양육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진리를 가진 자들이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의 품성을 나타낼 때, 하나님께서는 예비된 영혼들을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셋째 천사의 기별입니다.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짐승의 표를 받는다는 것은 짐승 교황권의 권위로 제정된 일요일 법령에 굴복하여 하나님 대신 인간의 제도를 경배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셋째 천사의 기별은 짐승의 권위에 굴복하여 표를 받는 자들에게 내릴 최후의 형벌을 엄숙히 경고하며, 사탄의 세력에 굴복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촉구합니다. 지구 역사의 마지막에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법에 순종할 것인가, 인간의 명령에 굴복할 것인가의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며, 이 선택에 영원한 운명이 걸려 있습니다.
세 천사의 기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천사의 기별: 심판의 때가 임박했으니 재림을 준비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여 참된 안식일 예배를 회복하라.
둘째 천사의 기별: 진리에서 이탈한 바벨론은 영적으로 무너졌으니,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혼잡과 오류에서 속히 빠져나오라.
셋째 천사의 기별: 바벨론의 오류와 짐승의 우상에 굴복하여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 타협하는 자는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면치 못하리라.
그리고 세 천사의 기별의 최종 결론이 계시록 14장 12절에 제시됩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시대마다 하나님께서는 시대에 맞는 구원의 기별을 주셨습니다. 노아 시대에는 방주로 들어가라는 것이 구원의 복음이었고, 침례 요한과 예수님의 초림 때에는 회개하라는 것이었으며, 예루살렘 멸망 시기에는 산으로 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마지막 시대의 구원 기별은 세 천사의 기별이며, 혼란한 바벨론의 오류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온전한 진리로 돌아오라는 외침입니다.
마지막에 승리할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성령의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계명을 충실히 지키며, 인내로써 믿음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계명의 완성은 사랑입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고 형제를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 3:14) 형제를 미워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참된 성도는 형제를 비난하거나 험담하지 않고, 이해하고 용서하며 화목을 이룹니다. 사랑의 기초는 희생입니다. 자기를 희생하여 베풀고 나누는 삶을 살아갈 때 진정한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삶과 품성 속에 그리스도의 온유와 사랑이 드러나야 합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의 신앙이 새롭게 변화되고, 마지막 사명인 세 천사의 기별을 온전히 전파하는 충성스러운 남은 백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https://youtu.be/1Qsqy3t84PI?list=RD1Qsqy3t84PI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