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포(老鋪)
세상에 사는 데 수많은 직종이 있다. 각자 재능에 따라 선택하여 그 일을 하며 산다. 오늘날 급변하는 시대에 한 가지 업에 종사하며 사는 게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 사오정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예부터 ‘한 우물을 파라’라고 했다. 이 말은 한 직종을 택해서 끝까지 그 업에 종사하며 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오늘날 다양한 새로운 직종과 변화의 물결로 한 우물에 속해 있기는 정말 어렵다. 직종을 선택하기도 어렵거니와 한 곳에 북박이 하기도 쉽지 않다. 나이 든 우리 세대는 한 업에 매달리며 끝까지 갈 수 있어 다행한 일이었다.
서구 유럽 사회에는 직업 선택에도 명예를 중요하게 여긴다. 한 업종에 대대로 물려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부의 창출보다 가계의 명예를 존중하고 소중하게 여긴다. 가게 입구에는 업종에 관계하지 않고 언제부터 이어져 한 우물을 파고 있는지 내력을 밝히고 있으니 말이다. 삶의 의미를 어디에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른 문제인가 보다.
우리도 몇 대를 내려오며 한 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가계를 드물게 볼 수 있다. 도자기를 구어 만들거나 한지를 생산하는 가계, 대장간에서 농기구를 만들어 내는 것이 그렇다. 그들은 부를 떠나서 장인 정신으로 사라져가는 옛 문화를 잇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그런 문화를 장려하고 보전하는 것이 또한 문화재로 가치 있는 일이다.
내가 아는 한 분은 경산에서 60여 년을 ‘자전거 백화점’을 하며 오로지 한 길을 억척같이 걸어오고 있다. 그야말로 자전거에 대해서 장인이며 박사이다. 자전거를 보면 어디가 고장인지 알아내어 고친다. 그분은 돈벌이보다 명예를 중히 여긴다. 자기 노력의 대가만큼 받기에 고객의 만족도를 충족시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지금은 여든을 바라보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문을 지키고 있다. 경산에서 100대 ‘노포’(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 중에서 다섯 노포를 선정했는데 그중에 뽑힌 ‘자전거 백화점’의 노포로 영남대 박물관에서 ‘우리 동네 노포’를 주제로 전시하고 있다. 거기에는 안성 공업사(대장간), 7번가 양복점, 영미 사진관, 백천제면과 함께 전시하여 만날 수 있다. 그들 주인공 삶의 공간과 빛나는 생애의 순간이 노포의 이야기와 어우러져 만날 수 있다.
급변하는 시대 조류에 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포스트모던 시대에 사라져가는 우리의 전통문화나 옛것을 잇고 지키는 것도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길이다. 그 하나가 수십 년을 이어오고 이어갈 ‘노포’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