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107]정언사지靜言思之 궁자도의躬自悼矣
<고전 속 세상이야기>이라는 제목으로 ‘고전칼럼’을 간헐적으로 보내주는 지인이 있다. 오늘 보내준 글중 ‘정언사지靜言思之 궁자도의躬自悼矣’라는 구절을 발견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 스스로 슬프다’는 뜻일 터. 궁躬은 ‘내 몸’ 즉, 자기自己이다. “내 심정의 요즘 그렇다”는 댓글을 보냈더니 “가을걷이로 바쁘시냐? 세상일에 너무 상심하지 말고 잘 지내시라”는 위로의 말을 보탰다. 이런 소통은 좋은 일이다. 아무리 잘났다해도 저 혼자 살 수는 없는 일. 같이 아프고 같이 즐거워하는 동고동락同苦同樂이라는 성어가 있지 않은가. 소위 위정자爲政者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크다. 그들의 위정爲政이 곧바로 '사이비 위정僞政'이기 때문이다. 한 친구가 농촌 초로初老인 내가 쓰는 <고독시평>이 ‘정치 이야기’라고 못마땅했던지 시비를 걸었다. 어이상실. 답변할 흥미나 이유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댓글을 보낸 지인도 최근의 내 글을 염두에 둔 것같다. 하지만, 명색이 깨어있는 민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최소한 분노를 죽이고 억지로 잠재우면 안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어쨌든 마지막 직장에서 두세 해 사귄 인연이 이렇게 고전을매개체로 이어지고 있으니 고마운 일이다.
아무튼, 위 구절은 조선 후기의 문신 무명자無名子 윤기尹愭(1741-1826)의 문집에서 나온 듯하다. 오늘의 주제는 윤기가 후손들에게 ‘가법家法’을 얘기한 글을 모아놓은 ‘정고庭誥(가정의 교훈, 가교家敎의 뜻)’였다. 무익한 일을 멀리하고 유익한 일에 힘쓰라(부작무익해유익不作無益害有益), 위난의 때에 조상들처럼 슬기롭게 처신하여 화를 당하지 말라, 바둑 등 잡기를 배우지 말라, 술과 담배, 여색을 멀리 하라, 투전판에 끼지 말라는 등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가훈으로 삼아 명심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어디 그른 말이 하나라도 있으랴. 명문가의 가훈으로 손색이 없었다. 거창하게 ‘조선의 정신’이었던 충효를 강조하지 않았지만, 그거야 사대부의 기본자세였을 터이니 굳이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글 속의 ‘靜言思之 躬自悼矣’ 구절을 새기다보니, 어쩐지 나를 두고 하는 말인 듯했다. 아무래도 요즘 내가 슬프기 때문이다. 작금의 정국과 정치를, 가만히가 아니라 금방 생각해도 나 스스로 슬퍼할 까닭은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또 화가 나기도 한다. 분노조차 잃어버리면 안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의 삶에 정치는 기본이므로.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는 게 정치의 첫 번째 요체要諦이므로 정치가들의 일등미션이 아닐는지. 이념논쟁, 진영논리, 이런 단어가 주는 씁쓸한 기분을 아시는 분이 몇이나 될는지 모를 일이나, 최소한 상식선常識線에서 생각해도 '아닌 것은 아니고 긴 것은 기다'고 말하는 게 무슨 흠잡을 이야기일까? 이런 현상이 곳곳에서 눈에 띄니 사람이 뛰다 죽을 노릇이라는 말이다. 여기에서 이제 혈연도, 지연도, 학연도 구별이 없어진지 오래인 듯하다. 하여간, 환장할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건 그렇고, 오전에 대청소를 하다 아버지 침대 머리맡에 끼워진 작은 노트쪽지를 발견했다<사진>. 최근래 것으로 보이는데 ‘풍수지탄風樹之嘆’을 써놓으셨다. ‘樹欲靜而風不止(수욕정이풍부지) 子欲養而親不待(자욕양이친부대)’를 줄인 풍수지탄의 뜻을 모르는 분은 거의 없을 터이나, 아래의 글 ‘往而不可追者年也(왕이불가추자년야) 去而不見子親也(거이불견자친야)’은 낯설었다. ‘한번 지나가버리면 다시는 좇을 수 없는 게 세월이고, 한번 떠나가버리면 다시는 뵐 수 없는 게 어버이(세월은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되돌릴 수가 없고, 어버이가 돌아가시면 다시는 뵐 수 없다)’라는 풀이야 쉽지만, 뜻만큼은 깊다면 깊을 터. 아버지는 언제 이런 글을 써 침대에 끼워놓았을까? 그리고 왜?
마치 최근 대화가 거의 없는 못난 아들에게 ‘그러니까 잘해! (내가)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을 직접 하지 못하고 은근하게 일깨워주려는 뜻이 있지 않았을까? ‘자욕양이친부대’ 구절은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기기를 다하여라/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라는 송강 정철의 시조도 떠올리게 했다.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그런데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못하는 게 사람이지 않던가. '효자는 하늘이 내는 것'이라고 자위自慰를 하는 불효자들이 무릇 기하이겠는가. 정철도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 일인지 알았으니, 이런 시조를 읊었을 것이다. 정치를 생각해도, 효를 생각해도 ‘스스로 슬퍼지고(자도自悼)’ 자꾸 우울해지는(鬱鬱) 날이다.
첫댓글 '즐겁게 살아!'
글씨가 참 맑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