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정대상과 선정이유:
정약용을 선정한 이유는 그의 교육사상과 실학자로서의 업적이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정약용은 당시의 봉건적 사고를 비판하며 사회개혁을 주장했고, 이를 통해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구체적인 개혁을 제시한 실학의 대가로 불린다. 특히 그의 교육사상은 매우 실용적이고 실천적인 접근을 중요시했는데, 이 부분이 예비교사로서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교육 방법에 있어서 실천성을 강조한 점이 나와 비슷하게 느껴졌고, 그런 점에서 정약용의 교육사상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정약용을 선정한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남양주 다산 주민이기 때문이다. 남양주에서는 정약용을 주제로 다양한 행사와 상품들이 만들어지며, 정약용 도서관과 그의 고향도 있어 지역 곳곳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정신을 접할 수 있다. 정약용의 교육사상뿐만 아니라 그의 업적과 교육 외의 사상도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고, 이 지역에서 그의 정신을 가까이 느끼는 것 역시 큰 의미가 있다.
2.성공사례:
정약용은 조선 정조 시대에 관직 생활을 하였으며, 세도 정치 시기의 신유박해로 18년 동안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게 되었다. 유배 중에도 그는 여러 저서를 남기며 실학의 발전에 기여하였고, 그 중 대표적인 저서로는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가 있다. 또한 정약용은 여전론과 정전론이라는 토지 분배 방식을 제시하였다. 여전론은 마을 단위로 토지를 공동으로 경작하자는 이론이며, 정전론은 국가가 장기적으로 토지를 사들여 농민에게 나누어 자영 농민을 육성하자는 방안이다. 이때 토지는 9구획으로 나눈 후, 8구획은 가난한 농민에게 나누어 주고, 1구획은 공동 경작지로 두어 그 수확량을 세금으로 거두는 방식이었다.
정약용은 과학 기술 분야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그는 한강에 배를 일렬로 나열하여 배다리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정조는 한강을 건너 사도 제자의 묘에 참배하였다. 사도 제자의 묘는 수원에 있었기 때문에 정조는 정약용에게 수원 화성을 쌓도록 지시했다. 정약용은 ‘기기도설’이라는 과학서를 통해 다양한 원리를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도르레를 개발하였다. 이 도르레는 수원 화성 축조 시 큰 역할을 한 거중기이다.
정약용은 정치 개혁, 교육, 실학 사상, 과학 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그의 사상과 업적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며, 한국 역사와 문화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3.자신의 의견:
다산 정약용은 당시 부패한 정치와 사회를 비판하며 올바른 인간으로서의 삶을 강조했다. 나는 앞서 말했듯이 정약용 선생님과 닮은 점이 꽤 많지만, 다른 점도 분명히 있다. 부조리한 것을 비판하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줄 아는 것이 바로 그 점이다. 나는 누군가 내게 부당한 행동을 하더라도, 훨씬 더 나은 방안이 있다는 것을 알 때에도 내 의견을 자신 있게 주장하지 못한다. 괜히 의견을 냈다가 누군가 내게 태클을 걸면 어떡할지, 나를 빼고 나머지 모두가 생각이 같으면 어떡할지 등의 걱정이 나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내 성격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정약용은 틀린 것을 비판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인 개혁을 제시했다. 그 덕분에 오늘날 거의 모든 부분에서 여전히 중요한 교훈을 제공하고 있다. 나는 정약용 선생님의 이런 면모를 가장 본받고 싶다. 교사가 되면 정약용 선생님처럼 부조리한 사람들과 개혁이 필요한 상황들을 많이 마주하게 될 것이다. 올바른 교사는 문제점을 단호하게 지적하고,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을 탐색해 학생들에게 개혁의 필요성과 방안을 알려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정약용 선생님을 조금이라도 더 닮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조그만 학급을 빛낼 현명한 사상가이자 개혁가이자 발명가이자 교육자가 될 그 날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