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등감과 우월감
(Inferiority and Superiority)
열등감이나 우월감은 후천적인 것이나 거의 선천적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만큼 사람의 몸에, 뼛속 깊이까지 배어있는 어쩔 수 없는 감정이다.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수정이 될 때 이미 형성된 죄성에 의한 것일지도 모르겠고.
1989년 여름에 벨기에로 와서 일하고 공부하며, 이어서 1994년 영국으로 건너가 계속 일하고 공부하며 그 후 2000년대 들어서며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지낸 세월이 36년이다. 그리고 남다르게 나는 미국인 선교사들이 일하며 지내는 대구 동산기독병원(계명대 동산의료원의 전신)의 사택에서 태어나 미국인들 틈에서 살며 자랐다. 그러니 거의 일생 동안 외국인들과 함께 지냈으며 더하여 1992년부터 일 년에 수차례 필리핀 민도로섬을 방문하여 일을 했다(2024년까지 약 100회 정도).
그러니 때로는 벨기에나 영국,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선진국에서와, 자주 후진국인 필리핀에서 지내왔다. 그래서 어떤 때는 우월감에 가득 차 나를 내려다보는 사람들 틈에서, 그리고 어떤 때는 나를 부러워하며 쳐다보는 사람들과 지낸 것이다.
우월감(쓸모없는)에 가득 찬 눈으로 나를 열등하게 보는 것도 경험해보았고 열등감으로 나를 우월하게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느껴본 것이다.
그러면 우리 한국 사람은 과연 어떠할까. 한국의 길거리를 오가는 가난한 나라에서 돈을 벌기 위해 온 초라하고 궁색해 보이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에는 우월감이 가득할까 아니면 열등감을 갖고 그들을 부러워하며 우러러보겠는가.
나의 지난 경험은 이러하다.
나는 단 한 번도 벨기에나 영국과 독일 등 유럽의 여러 나라에 머물면서 내가 그곳 사람들보다 못하다는 열등감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들은 동양인인 나를 늘 우월감을 갖고 내려다보았다.
지금은 워낙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고 또 한국도 그때와는 다르게 대단히 잘 살게 되었고 우월한 국가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영국이나 독일 같은 나라의 사람들은 거만하기 짝이 없거나 표면적으로는 친절한 듯해도 내면적으로는 무서우리만치 우월의식에 차서 동양인들을 무시하거나 멸시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자신은 잘났고 유식하고 강하고 부유하고, 동양에서나 가난한 나라에서 온 후진국 사람들은 멸시와 조롱의 대상인 것이다.
요즘은 덜 하지만 인종차별을 당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프랑스의 호텔 종업원이 동양인들에게 불어로 말하라고 강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있고 파리의 지하철 근무자도 영어로 뭐라도 물어보면 쳐다보지도 않은 경우도 보았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두 팔을 벌려 좋아하고 환영하는 터키나 동유럽, 중앙아시나의 따뜻한 사람들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독일 사람들은 타민족이나 동양인들에게 무서우리만치 차갑고 싸늘하다.
알고 보면 잘난 게 하나도 없고 도리어 쓰레기 국가가 되어버린 불쌍한 존재들이 말이다.
조금 전, 어느 나이 많고 시건방진, 전혀 상식적이지도 않은 독일 노인 여성이 쓸데없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시비를 걸어와서 참교육을 시켰더니 입을 꾹 다문 채 멀찌감치 떨어져 갔다.
사실 알고 보면 우월감이라든지 열등감은 모두 사탄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모두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존재들이고 또 동시에 범죄 하여 죄인이 되었는데 여기서 그 누가 더 잘났고 못났겠는가.
남을 멸시하고 이웃을 얕잡아보는 그런 못된 마음을 사탄이 인간에게 심은 것이다. 그렇게 사탄은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어 서로 멸시하고 다투게 만들어 함께 무너지고 쓰러지게 만든다.
결국 우월감을 갖거나 열등감을 갖거나에 상관없이 다 함께 손해를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사탄만이 이득을 보는 것이 바로 사탄의 전략인 것이다.
물론 사탄이야말로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대에서 영원히 멸망하고 말 것이지만 그 이전까지 이렇게 영혼을 노략질하고 죽이려고 온갖 발악을 하고 있다.
사탄의 간교한 속임수에 속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