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의 글
프롤로그
1부: 종교개혁의 폭풍 전야
1) 면죄부, 종교개혁의 발화점
2) [밀양]이 고발하는 현대판 면죄부
3) 한국 교회가 남발하는 면죄부
2부: 칼뱅주의 개요
1) 구원론의 뇌관, 칼뱅주의 예정론
2) 칼뱅주의 5대 교리, 튤립
3) 칼뱅주의의 윤리적 추진력
3부: 아르미니우스주의 개요
1)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 논쟁
2) 아르미니우스주의 5대 교리
3) 칼뱅주의의 문제를 해결했는가
4)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윤리적 추진력
4부: 한국 교회의 면죄부, 아르뱅주의
1) 아르뱅주의란 무엇인가
2) 아르뱅주의의 무율법주의
3) 아르뱅주의의 역사
4) 아르뱅주의의 값싼 은총
5부: 제3의 길을 찾아서
1) 그리스 철학의 우물
2) 아우구스티누스의 우물
3) 루터의 우물
6부 : 새로운 구원론을 위한 제언
1) 성서적 구원관의 도식
2) 새로운 구원론 정립을 위한 네 가지 지침
에필로그
감사의 글
주
나쁜 신학이 판매하는 ‘쉬워도 너무 쉬운’ 구원론!
끝없이 추락하는 한국 교회, 그 타락의 원인은 무엇인가? 교회의 윤리적 실패는 개인 문제가 아니라 신학적 요인과 얽혀 있다. 왜곡된 이신칭의와 예정론이 만들어낸 지독한 편의주의의 산물, 아르뱅주의! 한국 교회를 병들게 한 돌연변이 괴물 신학이 저지른 행태를 정밀하게 진단한다. 성서의 기반 위에서 전하는 쉽고도 깊이 있는 성찰과 대안! 소비자를 현혹하기 위해 값싼 은혜를 파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인내가 바닥을 드러내기 전 다시 쓰는 종교개혁!
*아르뱅주의 : 아르미니우스주의(Arminianism)와 칼뱅주의(Calvinism)의 최악의 조합을 뜻하는 저자의 신조어. 아르미니우스주의식 ‘구원의 확신’과 칼뱅주의식 ‘성도의 견인’을 제멋대로 결합한 편의주의 신학으로 오늘날 한국 교회가 발행하고 있는 21세기형 면죄부.
한국 교회가 만들어낸 정체불명의 괴물 신학, 아르뱅주의!
칼뱅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를 교묘하게 결합시킨
‘값싼 구원론’으로부터 벗어날 대안과 성찰!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 중 어느 교회가 더 개혁이 필요한가를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2012년 [시사in]의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회의 신뢰도(26.4퍼센트)는 가톨릭교회(57.6퍼센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신의 이유로는 ‘불투명한 재정 사용’, ‘교회지도자들의 타락’, ‘성서와 반대되는 성도들의 삶’(2013년 기윤실 여론조사) 등이 높은 순위에 있었다. 가톨릭교회의 부패로 일어난 개신교회의 종교개혁 전통을 무색케 하는 결과다.
개신교회 목회자들이 헌금횡령, 성추행, 논문표절 등 갖가지 범죄행위를 저지르고도 진심어린 회개와 사과도 없이 여전히 대형교회 담임으로 있거나, 버젓이 새로운 교회를 개척한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몇몇 교회지도자들의 인간적인 연약함으로 생겨난 우발적인 도덕적 스캔들이 아니라, 고도로 정교하고 치밀한 신학적 기반 위에서 저지르는 체계적이고도 구조적인 그리고 매우 악질적인 죄악상으로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교회의 윤리적 실패는 신학적 요인과 얽혀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왜곡되어온 구원론에 관한 신학이 지금의 한국 교회의 도덕적 실패의 중요한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 책은 그 옛날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며 일어난 종교개혁 시대부터 시작하여(1부), 칼뱅주의, 아르미니우스주의를 개관하고(2-3부), 결코 섞일 수 없는 이 두 신학을 제멋대로 결합시켜 한국 교회가 만들어낸 괴물 신학 ‘아르뱅주의’를 낱낱이 파헤친다(4부). 사실 저자가 정말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부분은 4부, 아르뱅주의를 분석하는 일부터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론신학이 아니라 대중신학에 초첨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급적 쉬운 용어와 표현으로 두 신학을 앞서 설명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많은 신자들이 신학의 개혁을 통해 교회 개혁에 동참할 수 있는 데 목표를 두었다. 또한 신학자와 교회지도자가 아닌 성도가 함께 제3의 길을 모색할 수 있도록 여러 대안을 제시했다(5-6부).
조국 교회가 진정으로 변화되고, 그리스도가 기뻐하시는 교회로 돌아가며, 종교개혁이 다시 한 번 개혁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저자의 마음이 돋보이는 책이다.
# 한국 교회를 타락케 한 정체불명의 신학, 아르뱅주의
아르미니우스주의(Arminianism)와 칼뱅주의(Calvinism)의 최악의 조합을 뜻하는 ‘아르뱅주의’는 저자가 만들어낸 신조어이다. 주창자도 없고 따로 정리된 글도 없으며, 체계적인 형태로 조직된 적도 없는 신학이나 지금 한국 교회 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는 대중적 구원론이다.
(1) 내가 복음을 받아들이면 구원 받을 수 있다.(아르미니우스주의식 구원의 확신)
(2) 하나님은 나의 구원을 절대 취소시키지 않는다.(칼뱅주의식 성도의 견인)
로 정리될 수 있는 이 신학은 구원을 받기로 결정하는 선택권은 ‘인간’에게 있으나, 취소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오류투성이의 논리를 지니고 있다. 이 논리는 어떠한 죄를 저질러도 천국 갈 수 있다는 치명적이고도 위험한 신앙을 갖게 만들었다. 이것은 지금의 한국 교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한국 교회가 발행하고 있는 21세기형 면죄부가 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왜곡된 이신칭의과 예정론이 만들어낸 아르뱅주의가 초래한 한국 개신교회의 현상황을 쉽고도 깊이 있게 분석한다.
# 신학자와 교회지도자를 넘어 평신도가 읽어야 할 책
이 책은 신학자와 교회지도자들이 신학적 논쟁을 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오히려 평신도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진지한 사유가 결여된 아르뱅주의를 버젓이 가르치며 신자를 유린하고 있는 교회지도자들에게 더 이상 놀아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또한 “죄 있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나님이 다 용서해주셨다” “교회 권위에 반박해서는 안 된다” 등의 논리로 성도들을 방패삼아 개인의 욕심을 채우는 교회지도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은 신학자들을 위한 이론신학이라기보다는 교회 개혁을 위한 실제적이고도 윤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대중신학서이다.
# 함께 만들어가는 제3의 길, 실천과 대안
저자는 교회에 만연해 있는 아르뱅주의를 비판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는다. 500년 개신교회 역사를 통해, 순수했던 교리들이 어떤 식으로 오류에 빠지고 타락했는지를 다시 한 번 되짚어보며, 우리가 자주 범하는 신학적 실패가 무엇인지 파악했다. 그리고 제3의 길을 모색하는 방안을 여러 가지로 제시한다. “성서는 변하지 않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신학은 변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래서 강력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더 올바르고 좋은 신학이 만들어져야 하고, 그 바른 신학이 바른 실천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았다. 새롭고도 바른 신학을 만들기 위한 기본적인 방향도 함께 제시했다.
첫댓글 알뱅? 뭔가 했더니 알미니안과 칼뱅의 합성어였군요.
끝 까지 읽어주시고ㅡ
요약 정리해주시면ㅡ
감사요ㅡ
편히 앉아 배우겠습니다!!! 기대합니다!!!
네, 신광은 목사님의 책소개에 감사드립니다!
신광은 목사님의 글을 자주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써주신 내용만 봐도 상당히 공감이 가는 내용이네요.^^
요즘은 환경의 영향으로 인하여 새들도 암 수가 짝짓기를 하지 않기도 하고 관심이 없으며 객체 수가 줄어 든다고 합니다.
사람들도 동성애나 종교 다원주의 신비주의 여러가지 모습으로 유일하신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죄 사함을 받고 생명을 얻은 것인지도 모르고
그냥 누구를 좇아 가는 신앙입니다.
또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여도 안 믿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믿음이 무엇인지 생명이 무엇인지 성령은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모릅니다.
목회자들도 세상은 변했는데도 불구하고 구태의연하게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베드로의 설교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때 세례를 받으면 정말로 회개한 사람들이였으며 지금처럼 사이비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마28:18~20절에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제자가 되어야 제자를 삼는 것 아니겠습니까?
@바울로 예를 들자면 어느 목회자가 하는 말이 성령을 받으면 자신의 의와 성령이 부딪처서 갈들이 생기고 어렵다고 합니다.
이것은 로마서7장에서 8장으로 넘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롬7장에서는 나의 옛 사람이 죽고(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음) 다시 태어난 것이 롬8장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행19장에 아볼로처럼 요한의 세례 뿐이 모르는 것입니다.
@바울로 그러므로 주의군사님의 제안에 동의 하지만
이러한 글을 통해서 현주소를 알았다고 해서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을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글을 통하여 나를 알고 궁극적으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데 까지 이르러야 될 것입니다.
@바울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은 힘으로도 능력으로도 안되고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바울로 저의 제안에 동의하신다는 말씀은
바울로님도 함께 책을 읽으시겠다는 말씀이신지요? ^^
@주의군사 주의군사님은 책을 읽고 책의 내용을 토론한다면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 은혜의 자리에까지 이르기를 바라면서 이 제한을 하신 것인지요? ^^
@바울로 거기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우선 책을 다 읽고 싶구요. 제 신앙에 무언가 유익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제안한 것이지요. 교제도 하고요.
@주의군사 예 제가 교제를 해보니 무한하신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지체라는 것과 그분이 주시는 충만함에 이르기를 바라는 것이 교제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바울로 예, 알겠습니다.
말씀하신 것이 성도의 교제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책을 같이 읽으시는 것인지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울러 저는 이분의 문제점은 없는가? 하는 것 까지도 생각하며 책을 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신학이 세상의 흐름에 역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바울로님, 접수합니다.^^
책을 읽어 나가다보면 여러가지 생각할 점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또, 동참하실 분이 계시면
이번 주말까지 말씀해 주시면 일정을 잡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