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에 ‘오너리스크’ 강풍이
몰아치고 있다. 사정 정국과 맞물리면서 대기업들은 숨을 죽이며 현 정국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사정의 직격탄은 먼저 동국제강
그룹에 쏟아졌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이 도박·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시작됐다. 구속 영장은 기각됐지만 동국제강은
철강업종 불황으로 서울 을지로 본사 사옥인 페럼타워까지 매각,비상 경영체제에 돌입한 가운데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
동국제강은 1929년 장세주 회장의 할아버지인 장경호 창업주가 설립한 가마니 회사인 ‘대궁양행’에서
시작된다. 장 창업주는 그뒤 남선물산을 세워 수산물 도매업으로 사업을 넓히다 못을 생산하는 ‘철’과의 인연으로 오늘의 동국제강을
만들어낸다. 한국전쟁 후 재건사업으로 못 수요가 폭발하면서 장 창업주는 돈방석에 앉게 된다. 1965년 국내 첫 고로를 준공,
철강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연다. 장 창업주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3남인 장상태 회장에게 ‘대표이사’를 맡겨 본격적인 2세
경영체제를 갖춘다. 당시 형들을 제치고 3남에게 경영권을 물려줘 재계에선 파격으로 인식되었다.
장상태 회장은 2000년 지병으로 별세할 때까지 동국제강 그룹을 반석위에 올려 놓았다. 장상태 회장 타계후 잠시 전문 경영인이 이끌다 3세인 장세주 회장이 맡아 오늘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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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왼쪽)과 동국제강 본사옥인 페럼타워./조선일보DB
장세주 회장은 자타가 인정하는 스포츠 메니아다. 골프 스키 스노우 보드 등 못하는 운동이 없을 만큼 만능 스포츠 맨이다.
골프는 아마추어 챔피언과 겨룰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다. 장 회장은 취임 뒤 IT사업으로의 진출 등 사업 구조 개편에 매진해
왔다. 철강업계의 한계를 인식한 변신이다. 그러나 변신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그룹의 모태가 철강이고 주력 제품
또한 철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철강업종이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동국제강은 오너가 검찰 수사로
시련을 겪는 것까지 겹치면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실제로 동국제강은 최근 3년간 철강업 부진과 중국산 철강재
수입 증가로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렸다. 지난해 680억원대의 영업손실과 2299억원에 달하는 순손실을 기록했다. 부채비율도
207%까지 치솟았다. 이 영향으로 신용등급은 최근 6개월 새 두단계나 하락했다.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동국제강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낮췄다. A-로 강등된지 5개월여 만이다. 앞서 한기평은 지난해 11월 동국제강의 신용등급을
A에서 A-로 낮추고, 등급전망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린 바 있다.
재무구조 안정화 차원에서 올 1월
단행한 자회사 유니온스틸과의 합병 역시 시너지를 못내고 있다. 동국제강과 유니온스틸의 차입금(2014년 말 별도 기준)을 합산할
경우 회사의 총차입금은 4조6000억원, 순차입금은 3조9000억원 규모로 분석된다. 이를 타계하기 위해 본사 사옥인 페럼타워를
매각하기에 이른 것이다.동국제강은 최근 삼성생명과 페럼타워 건물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매각금액은 4200억원이다.
장
회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페럼타워 매각을 극구 부인했다. 그는 지난해 6월 사석에서 페럼타워 매각에 대해 "아직까지는 매각할
단계는 아니다. 사옥 매각 없이 경영을 개선하겠다"며 사옥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재무건전성 확보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장 회장은 올해 어쩔 수 없이 본사 매각이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인다. 3세 경영체제를 맞아 최대 위기에
봉착해 있는 동국제강이 위기 돌파를 위해 어떠한 타계책을 내 놓을지 재계도 주시하고 있다.
3세 오너의 리스크는
현재 두산 그룹도 마찬가지다. 박용성 두산 중공업 회장이 잇단 ‘설화’로 최근 모든 보직에서 사퇴했지만 두산 그룹 업종이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면서 그룹 분위기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박 회장은 중앙대 인수와 관련 검찰의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르는 처지에 놓여 있다.
CJ그룹은 지난해부터 ‘오너리스크’란 중병을 앓고 있다. 3세 경영인인 이재현 회장이
구속 되면서 그룹은 비상 경영체제에 돌입,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이재현 회장은 형집행 정지 상태에서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다. 2년전 부인의 신장을 이식, 건강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약간의 트러블 조차 생명에 직결돼 있어 그룹의 모든
역량이 회장의 건강에 집중돼 있을 정도다. 최근 있은 임원 인사도 극히 제한적인 곳에 한해 이뤄졌으며 그룹의 중 장기 대책 등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고 그룹의 한 관계자는 전했다. 아무리 전문 경영인체제가 정착돼 있어도 오너의 결심을 받아야 할 일과 전문
경영인이 처리할 일이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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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현 CJ그룹 회장(왼쪽부터), 최태현 SK그룹 회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조선일보DB
이밖에 SK그룹은 총수가 2년 넘게 교도소에 있으면서 중 장기 계획들이 차질을 빚고 있고, 한진그룹은 자녀가
‘땅콩회항’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면서 오너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효성그룹 역시 조석래 회장이 오랜 기간 재판을 받고 있어
그룹의 역량이 법원으로 집중된 상태이고, 롯데 그룹은 2세간 경영권을 놓고 내홍을 보이고 있다. 오너들의 일탈로 그룹 이미지는
물론 기업 경영 활동에도 상당한 지장을 받고 있는 셈이다.
전체적인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일부 대기업들의 ‘오너
리스크’는 우리 경제에 또다른 악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재벌 3-4세로 경영권을 이양하면서 오너 리스크가 더욱 빈발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학업이나 경영 수업은 철저히 받은 3-4세 들이지만 어려움 없이 자라온 환경이 이들을 더욱 나약하게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3-4세들에 대한 경영권 이양을 다시 심사숙고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