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챔프전 177분… 이보다 길고 힘든 경기는 없었다
V리그 男 3차전 대한항공-KB손보, 스포츠 역사에 남을 명승부 펼쳐
대한항공 2년 연속 통합챔프 차지… 34득점 링컨은 챔프전 MVP 올라
시즌 내내 놀라운 활약 보인 케이타, 57득점 올려 역대 챔프전 최다 기록
마지막 실점후 엎드려 못일어나기도
프로배구 V리그 역사에 수놓일 명승부가 챔피언결정전(챔프전) 최종전에서 나왔다. 9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2021∼2022시즌 남자부 대한항공과 KB손해보험의 챔프전 3차전에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든 승부가 펼쳐졌다.
경기 시간만 봐도 그렇다. 이날 경기 시간은 총 177분으로 역대 정규리그, 포스트시즌을 통틀어 최장 기록을 남겼다. 종전 2017년 11월 2일 한국전력과 대한항공이 정규리그에서 기록했던 158분을 20분 가까이 넘어섰다. 역대 남녀부 챔프전 최종전에서 풀세트에 듀스 접전이 나온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역대급 명승부로 꼽히는 2009∼2010시즌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의 챔프전도 최종 7차전에 5세트까지 승부가 이어졌지만 듀스가 성사되진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올 시즌 챔프전이 기존 5전 3선승제에서 3전 2선승제로 축소되긴 했지만 박진감만큼은 여느 시즌을 뛰어넘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선수들의 투혼도 기록으로 남았다. 대한항공의 레프트 정지석(27)은 이날 서브 4개, 블로킹 4개, 후위공격 7개 등을 성공하며 국내 선수로는 최초로 챔프전에서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다. KB손해보험의 외국인 라이트 케이타(21) 역시 이날 57득점으로 역대 챔프전 최다 득점 신기록을 썼다. 57득점은 정규리그를 통틀어서도 2012년 2월 삼성화재 가빈(58점)에 이어 공동 2위 기록이다. 이 밖에 케이타는 역대 한 경기 최다 공격 득점(54점) 신기록도 새로 썼다.
백지장 한 장 차이의 치열한 승부 속에 웃은 건 대한항공이었다. 대한항공은 이날 34득점을 한 외국인 라이트 링컨(29·사진)과 31득점을 올린 정지석의 활약 속에 3-2(25-22, 22-25, 24-26, 25-19, 23-21)로 이겼다. 구단 첫 2년 연속 통합우승이다. 토미 틸리카이넨 대한항공 감독(35)도 V리그 최연소 감독에 이어 최연소 통합우승 감독이라는 훈장을 달았다. 링컨은 기자단 투표 31표 중 13표를 받아 챔프전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구단 첫 챔프전 우승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시리즈 내내 이어진 케이타의 압도적인 경기력은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날 5세트 21-22에서 자신의 공격이 대한항공 곽승석(34)의 블로킹 벽에 막히면서 우승 트로피를 내준 케이타는 경기 뒤 코트 위에 엎드려 한참 일어나지 못했다. 눈물도 흘렸다. KB손해보험에서 재계약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탈리아 리그 베로나 이적이 유력하다. 네트를 사이에 두고 경쟁한 링컨도 “그가 보여준 경기력은 믿을 수 없다. 케이타는 유니콘 같다”며 찬사를 보냈다.
강홍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