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몸에 남아있는 흉터에는 그 흉터만큼이나 오래가는 추억이 있기 마련이다.
초등학교 5학년의 여름방학. 우리들의 아침은 두 가지로 분주했다.
일찍 뜨는 해에 맞춰 일찍 일어난 우리들은 골목친구 인원점검을 한 후 6시까지 학교로 내달렸다.
6시가 되면 하나 둘 셋넷, 짜라라라란~ 짜라라라란~ 음악과 함께 보건체조가 시작된다. 음악과 구령에 맞춰 열심히 보건체조를 하고 나면 아~ 도장 한 개. 일수도장 찍듯 도장을 받았다.
그다음으로 달려가는 곳은 우리 동네 바로 옆에 있던 얼음공장. 그 공장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얼음 배달을 나가려는 아저씨들의 구루마가 즐비하게 대기하고 있었다. 아저씨들은 밀짚모자에 런닝, 헐렁한 바지를 입고 구릿빛 어깨에 목에는 젖은 수건을 걸치고 버드나무 그늘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공장 얼음을 출하하는 곳에는 판자를 비스듬히 기울여놓고 공장 인부가 장수하늘소 집게처럼 생긴 갈고리로 얼음을 찍어서 내려보내면 여덟 개의 네모난 큰 얼음덩이들이 금방 구루마에 가득 차고, 곧이어 출발이요~.
그때에 맞추어 우린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그 구루마 뒤에 붙는다.
아르바이트...?
NO!
공생관계. 상부상조 혹은 발품.
둘이서 열심히 구루마를 밀면서 아저씨의 힘을 덜어드리는 와중에, 선임은 미리 준비한 뾰족한 돌로 적당히 눈치 봐가며 얼음을 내리치고, 후임은 떨어져 나간 얼음 조각 중 큰 놈들을 주워 모은다. 얼음 조각이 몇 개 모여지면 작업 끝~
보건체조부터 구루마 밀기까지의 타는 목마름을 그 얼음덩이 하나씩 입에 넣고 바사삭! 씹어서 해소하면 전율할 듯 밀려오던 그 행복감이라니...
어느 날 낮. 그날은 좀 늦게 작업을 시작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마음씨 좋게 생긴 아저씨의 구루마에 붙었다. 내가 선임이었다. 몇 번의 성공 후에 마지막으로 한 개만 더~.
알다시피 그 당시 도로에는 움푹움푹 패인 곳이 많았다.
잘 노리고 내리친 순간!
구루마가 패인 곳을 지나는지 덜컹하더니 서로 부딪힌 얼음덩이들이 죠스의 아가리처럼 쩍 벌어졌다.
아차! 하는 순간 돌멩이를 쥔 내 손이 죠스의 아가리 속으로 쑥 들어갔고, 그 열렸던 아가리는 생각 없이 급히 닫혔다.
원심력? 구심력? 에너지 불변의 원칙? 가속도? 작용과 반작용? 모르겠고...
돌을 놓은 채 얼른 빼내던 내 손과 그 얼음덩이가 어느 한지점에서 만났다.
오른손 넷째 손가락 마지막 마디 부분.
잘려나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텅 비면서 멍한 기분으로 손가락을 내려다보니 허연 속살이 보였다. 잠시간은 통증도 없고 피도 나오지 않았다. 단지 큰일 났다는 생각만 들뿐...
집으로 달려가는 동안 서서히 둔탁하고 묵직하게 아파오는데... 참 견디기 힘든 아픔이었다. 피가 덜 나오게 손가락 뿌리 부분을 꾹 누르며, 집에만 가면 어떻게 되겠지... 기대하며 달렸다.
도착하니 집엔 아무도 없었다. 막막한 마음에도 벌어진 일이 크다 보니 혼자 빨간약을 바르고 반짇고리에 있던 무명천을 죽 찢어서 상처부위를 동여맸다.
누가 빨리 와야 할 텐데... 짓눌리고 깊이 파인 상처의 아픔은 눈물을 보이는 게 부끄러운 나이였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도 식구들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막막함과 뒤섞이면서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기다리기 힘드니, 잠이라도 좀 왔으면... 마당에 놓인 살평상에 몸을 뉘었다.
애를 써도 잠은 오지 않았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큰 누나가 들어왔다. 화들짝 놀라는 누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니 또 사고칬구나~ 함 보자 얼매나 다칬는지..."
"........."
"아이고 우야꼬~ 속살이 다 보이네. 꿰매야 되겠다. 우야다가 이랬노?"
"내는 병원에는 안 간다. 누부야가 좀 치료해 도고~"
누나는 내 아픈 게 자기 아픔인 양 눈물까지 글썽이며 정성 들여 소독하고 약 바르고 하얀 붕대를 정성스레 묶어 주었다.
이상하게도 누나를 보는 순간부터 그 아픔은 많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치료가 끝날 즈음, 약간의 통증은 남아있었지만 잠이 스르륵 왔던 기억까지가 그 추억의 끝이다.
지금도 그 손가락 끝마디엔 흉터가 남아있다. 흉터가 있으니 그 흉터가 보일 때마다 그때가 생생하게 되살아 나고, 얼음을 깨물어 먹는 소리가 들려도 생각이 난다.
추억은 까마득히 잊혀진 것 같아도 사실 시간과 공간 사이의 어느 틈사이에 숨어있다가 살짝 스치기만 해도 불쑥 튀어나오는 묘함이 있는 것 같다.
첫댓글
참, 어린 시절 이야기가 끝이 없습니다.^^
이야기도 각양각색 이지요.
덕분에 글 따라,
잊었던 이야기가 새삼 드러납니다.
큰 누나를 엄마같이 잘 따르는 남동생입니다.
많이 아팠지만, 큰 누나 덕으로 긴장이 풀려
잠이 들었나 봅니다.
행복한 어린시절~~
일터에서 짐 상차 기다리며
시간이 나길래 추억 두레박 내려
하나 길어왔습니다.
살아온 이야기니 끝날 수가 없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동안 뜸하셔서 눈 치우다가 힘에 겨워
편찮으신가 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경험 비슷한 통증을
겪으셨군요. ㅎ
단풍님은 어머님께서 저는 큰누나가
그 아픔 달래주었네요.
어찌 잊겠습니까...
가슴 토닥여주며 달래주시던
어머님의 노래들을...
작은 얼음 조각 하나에서
어린 시절의 통증과 따뜻한 손길까지 되살아나는 글이었습니다.
흉터가 추억을 불러낸다는 마지막 여운이 오래 남네요.
글 소재가 주로 추억이다 보니
온갖 추억이 다 나옵니다. ㅎ
종이장에도 베이는데 얼음은 큰 흉기가
됩니다.
시댁 동네에 얼음공장 하던 남편
친구네가 있었는데 그집 남자들이
얼음 운반 하면서 모서리에 베여서.
팔뚝에 붕대감고 있던 생각이 납니다.
큰누님이 토닥토닥..약이 돼주셨군요.
우습게 보이던 얼음덩이들이
그때 엄청 큰 흉기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저에게 많은 추억을 안겨준
큰누나였어요.
어린시절 사연이 거미똥구멍서 거미줄뽑듯 나오는군요. 그만큼 지난 세월이 그리운거예요.돌아갈수 없지만 글로 쓰니 새삼스럽게 느껴질겁니다.
살아온 날들 중에 기억에 남는 날이
어디 하루 이틀이겠습니까..
퍼내고 퍼내도 끝이 안 납니다. ㅎ
아이고
놀랬네요.
엄청 모험심 많고
개구쟁이 막내 셨네요.
지금 흉터는 남았어도
멀쩡한 손가락 추억도 빡쎄게
남았겠어요.
어릴때 우리 외가댁이
어름 공장겸
아이스케끼 공장 이었답니다.
엄청 케키 먹어댔네요.
제가 특별히 더 개구져서가 아니고
그 시절 동네 아이들이 다 그렇게
다쳐가며 놀았어요. ㅎㅎ
아이스께끼 통 매고 다니며 파는
형들이 그렇게나 부럽던데, 그 시절에
외가가 얼음과 아이스께끼 공장까지
하셨다니... 엄청 부럽습니다. ㅎㅎ
나는 장남으로 태어 낳기에 누나나 형이 있는 분들이 부럽습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저는 막내라 여동생이 있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 시절에 수박은 대부분 화채로
만들어 식구들이 나누어 먹었는데
지푸라기에 묶어주는 얼음 심부름은
제 몫이었지요.
큰형이 바늘로 그 얼음 잘게 쪼개는
것이 신기해서 저도 해보곤 했어요.
ㅎㅎ 밤에 수박 먹은 다음날 아침엔
꼭 지도를 그렸던 기억도 납니다.
여름방학때. 학교 운동장으로 보건체조 갔던 추억은 똑 같습니다
그 체조음악 리듬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ㅎ
야, 잘 나았는지 모르겠네요. 그게 얼마나 아픈지 제가 알아요.
공고 다닐 때 실습을 하다 보면 판금 이라는 거를 해요. 함석 같은 거를 구부려서 무언가를를 만드는 것인데 함 석을 구 부리는 기계를 절곡기 라고 해요. 잘못하여 그 절곡기에 손가락을 놓고 누르게 되면 손가락이 터져요 엄청나게 아파요.
으으으으으!
아고... 절곡기에 손가락 끼이면
그 고통을 어떻게 이겨요.
기계 작업하다가 다친 사람이 참 많던
시절이었어요.
개구쟁이추억과더불어
누나를 소환했군요.
그 누나도 새벽이 처럼 팔팔하게 살아나가시길 바랍니다.
네. 고맙습니다.
큰누나는 용인 살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남자 아이들은 몸을 다쳐 가면서
자라나 봅니다.ㅎ
그래도 누나가 와서 잘 보듬어
주셔서 얼마나 안심이 되었을까요.
어린시절 제게도 끔찍한
추억이 있답니다.
심심해서 부엌문(정지문)을 타고
놀다 문이 떨어지는 바람에 저도 마당으로
나뒹굴었지요.ㅎ
그 뒷일은 기억이 없어요.
정신을 잃었으니까요.
한참 있다 기억이 살짝 돌아 왔을때
엄마가 저를 업고 어데론가를 향해
달리고 계시더군요.ㅠ
잠이 일찍 깨어 마음자리 님 글을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그 시절 도시 변두리 아이들이 대부분
저와 비슷한 경험들을 하며 놀았을
겁니다.
정지문 타고 놀다 문과 같이 툭
떨어졌으면 얼마나 놀랐을까요?
업고 어데론가로 달려가셨던
어머님이 더 놀라셨겠네요.
어머님과 하늘이 도와서 이곳에서
이베리아님과 안부 주고받으며
살고 있네요. ㅎ
저는 얼음을 겨울에만 볼 수있었습니다 .
한 여름의 얼음의 맛은 얼마나 환상적이었을까요 ?
글을 읽으며 가슴을 조렸습니다 .
군대도 갔다 오시고 지금 운전도 잘 하시니
그때 큰 사고가 아니었던게 천만다행이네요 .
얼음조각들이 땅에 떨어져도
슥슥 닦아 먹었는데 그땐 배탈도
안 났어요. 입안이 션했지요. ㅎ
어린 시절 돌아보면 천만다행한
일이 하나 둘이 아니었어요. ㅎ
얼마나 아프셨어요ㅠㅠ
맘자리 님께서 올리신 사진
보니까 오늘따라 가슴이 찡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 까요.
그땐 무척 많이 아팠던 것 같은데
이젠 작은 흉터의 흔적으로만 남았네요.
사진 보시니 그런 느낌이 드나요?
ㅎㅎ 제가 얼마나 행복한 표정으로
길 달리는지 보셔야 그런 마음
안 드실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