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신상이라도 차리는 듯 기름냄새 풍겨가며 튀기고 볶으며 오색나물 장만할 땐 그래도 괜찮았어요.
밤이면 엄마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고운 소금으로 뽀독 뽀독 소리가 나도록 주물러 행궈내야
미역의 떫은 맛이 없어져 나물이 맛있는 거라고 늘 말씀하셨더랬지요.
엄마.
아까 내가 무 채썰때 보셨어요?
아직도 엄마만큼은 못해도 제법 고르고 가늘게 잘썬다고 칭찬 해 주시면 좀 좋아요.
엄마.
상에 놓인 상투과자 말이에요. 엄만 단음식을 유난히 좋아 하셨잖아.
나 소풍갈 때 동생 몰래 살짝 룩색에 넣어 주시면
난 또 나 혼자 다 먹기 아까워 남겨와서 동생 주고...
가짓수 많은 제사음식을 목기에 담아 상을 차렸습니다.
향내음을 유난히 좋아하시어 평소에도 향을 사르시던 친정엄마의 영정을 모시고 향불을 피워 올렸습니다.
가늘게 타내려가며 재가 되는 모습에 훅 숨이 막혀 왔습니다.
그 날, 맑고 차가운 허공중에 피어오르던 뽀얀 연기가 떠올려진 탓입니다.
야멸찬 딸년 몰래 몰래 부엌에서 한 잔 술 드시던 엄마.
그게 그렇게 보기 싫었습니다.
술마시는 모습도...
술마시는 이유 조차도...
한번도 맘 편히 딸 앞에서 술잔을 기울이지 못하시고
쉰 여섯의 생을 마감하신 엄마의 영정앞에 어리석은 딸년은
이제사 넘치도록 술을 올리고 절을 합니다.
죄인되어 꿇어 앉은 무릎 위로 떨어지는 눈물은 천근의 무게되어 다시 일어설 줄 모릅니다.
그 날.
어린 자식두고 차마 다 감지 못한 눈, 떨어지지 않는 머나먼 길 떠나는 발걸음은
널을 메고 나서는 상여꾼들의 발목에 고여 눈길 위를 가다 서고 가다 서기를 여러번 하였었지요.
그 해 겨울은 그랬었지요.
엄마.
어느 누가 들여다 볼 꺼라고 솥이며 냄비는 그리도 반들거리게 닦으셨나요?
내일이면 돌아오지 못할 먼 길 갈 사람이...
또닥또닥 김장해서 항아리 가득 채워두고...
미리 알아 조문객들 먹이시려고 장만한 것 처럼.
엄마의 몇 안되는 유품을 정리하면서 또 한번 딸년을 기함시킨 건
결혼 전에 손수 잘라 주신 저의 긴 머리카락을 비단 보자기에 곱게 싸서 간직 하신 까닭이었지요.
그게 무엇이라고...
그까짓게 뭐라고...
주인 잃은 텅 빈 집을 스산하게 울리는 괘종시계 소리는
철없는 딸년의 가슴에도 잠 못이룬 숱한 밤 엄마의 속울음 소리로 들려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엄마.
현실의 각박함을 견뎌내기 그다지도 힘겨우셨던가요?
그리도 일찍 표표히 가실만큼.
네에.
이제 알것 같습니다.
이제사 희미하게나마 알 것 같은데 엄마는 이미 제곁에 아니 계십니다.
야멸찬 저는 엄마의 쓸쓸한 품을 한번도 채워 드리지 못했고
말없는 제 속을 엄마는 한치도 들여다 볼 수 없으셨지요.
이렇게 시간은 엄마와 나를 어긋나게 갈라 놓아 버렸는데...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엄마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어...
긴 회한으로 가슴을 할퀴는 사이 엄마는 다녀 가셨을까.
식어버린 탕을 밀어내고 숭늉을 올려 드렸고
사위어진 향불을 다시 피워 올렸습니다.
바랭이.
첫댓글 아마도...다녀가셨을 거예요... 그리고...바랭이님이 하시는 말씀, 하셨던 말씀 다 들어주셨을 거예요... 어머니잖아요. 가슴에 계신 어머니...^^
그러셨을까요... 저의 부질없는 후회까지 다 들어주셨을지요... 고맙습니다. 영진님.
아... ㅠ_ㅠ
울지 말아요 고맙습니다 황후님...
죄송해요.. 눈물이 나서 끝까지 못읽겠어요.. 하지만 더 이상 바랭이님 어머니께서 더 이상 힘겨워 하지 않고 웃으시면서 좋은 곳으로 떠나셨길.. 기도해드릴께요.. 힘내셔요...
고맙습니다. 어쩌다 한번 올린 게 그만 이런... 죄송해요.
음... 어제 제가 음악 들으면서 이 글을 봤었는데.. 눈물 흘리며 느꼈던 감정, 그리고 생각들.. 다른 분들께도 느끼게 해드리고 싶어서.. 그리고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서.. 쓰신 글을 좀 사용했습니다. 제가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에 음악과 함께 사연처럼 같이 썼는데.. 괜찮을런지요.. 주소는 http://shagall.tistory.com/430 입니다.. 혹, 개인적인 일이라 다른 곳에 사용되는 것이 싫다고 하시면 바로 삭제 하겠습니다. 아, 아침부터 또 마음이 짠~ 하네요.
만에 하나라도 자식이 특히 딸이 엄마를 이해하는 데 일조를 한다면 고마운 일이지요. 지금도 늘 가슴아픈 건 한번도 엄마의 허전한 술잔에 술한잔 채워 드리지 못했다는 겁니다. 나도 이제 다 자란 딸과 맥주도 한잔씩 나누곤 하는데...
아...ㅠㅠ
울리려고 그런 게 아닌데... 고마워요.
얼마전에 엄마 제사였어요. 십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눈물이 나더라구요. 바랭이님 힘내세요..
엄마랑 스물두해를 살았었고 어제 스물세번째 기일을 지냈습니다. 엄마라는 말도 제사라는 말도 그대로 눈물입니다. 지렁이떵꺼님. 고맙습니다.
조문이 귀촉도 울음에 스산한 겨울밤을 울리네요..ㅠ.ㅠ
눈물샘을 자극하려던 건 아니고 저의 회한을 끄적여 본 것 뿐인데 함께 슬퍼해 주시니 감사하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저희 엄마께서 항상 제사나 명절음식할때, 하나뿐인 딸인 저를 괴롭히시면서 방법을 알려주셨었는데,,,님 글을 보니...정말 마구마구 눈물쏟는중... 가끔 저희엄마가 그런말씀 하시거든요...나중에 엄마 제사지낼때 아무도 엄마입맞 못맞추니까 딸이 알아서 해야된다고... 아...자기전에 많이 눈물... 바랭이님, 수고하셨어요~ 어머니께서도 기뻐하실거에요...ㅠㅠ
그때는 잔소리로만 들렸던 엄마의 말씀들을 이제는 내가 딸에게 그대로 하고 있는 걸 본답니다. 울고 자게 되서 아침에 눈이 붓지는 않았던지 모르겠네요 미안해요.
토닥토닥........그 어머니는 얼마나 발길이 떨어지지 않으셨을까요...절절한 사연에 목메이는 아침이네요..
눈이 잘 오지 않는 부산인데 그해 겨울에는 참 푸지게도 눈이 내렸던 기억이 어제처럼 생생합니다. 고맙습니다.
다시 보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비슷한 흉터가 있으면 눈길이 한번 더 가는가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