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 준비로 오래있지는 못하지만(사이버 강의 듣는 것 때문에 들어왔는데)일단 반박을 해보죠
1)겨우 아마추어들 주제에 현 학계의 의견을 무시한다??
전에 쓰여졌던 글아래 다음바크님이 이런식으로 글을 달아났더군요 물론 아니라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국사편찬위원회나 현 역사학자들이 그 김경진이라는 사람보다 더 알았으면 더 알았지 모를리없다는 것 같은데...
참고로 말하면 저는 워포그에서 김경진님 혼자 임진왜란 연구한다고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김경진님 주장도 그곳에서는 절대적인 주장이 아니고 여러사람들이 서로 토론하는 곳입니다(주요 활동인원중 한분이신 별무사님만해도 직산전투 부분에서는 김경진님과 좀 다른 입장이죠)
그래서 조선,일본,중국의 사료,논문등을 여러님들이 해석하고 그에 대한 주장을 하면 그거에 대한 토론을 벌이고 새로운 정보를 알아가는 곳입니다(참고로 말하면 이곳은 처음부터 조선최강~~~이러면서 새워진 곳이 아니라 원균명장론 논파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곳입니다)
그리고 제대로된 논문을 못쓰고 아마추어가 주장한거면 믿을게 못된다고요??
그런식으로 말하면 대학을 가지도 않았고 고고학에 대해서 전혀 알지도 못했던 슐리만의 미노아,미케네 문명 발견은 어떻게되야할지 모르겠군요
아 아인슈타인의 경우 특허청직원이었을때 정식 물리학자도 아닌 아마추어 시절에 논문을 발표했을때 그 논문이 아마추어라는 이유와 참고문헌 하나 없다는 이유로 무시받은 것도 당연한 것이겠군요(참고로 당시 아인슈타인은 거의 대부분 토론상대로 특허청에서 같이 근무했던 오랜 친구 마이크 베소와 자기의 부인 밀레바정도였죠)
참고로 말해서 지금 학계에서는 어떻게 말하는지 모르겠는데 명량철쇄설...참 위인전기 같은데서도 많이나오고했는데 이게 왜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지조차 궁금할정도군요 난중일기에서도 나오지 않고 다른 여러 기록에서도 나오지 않고 20세기에와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김억추행장에서나 나오는군요...물론 그 기록에는 김억추가 검기로 왜선 수십척을 격파하는 장면도 나오죠 ㅡ.ㅡ;;;
그럼 유물이라도 있으면 모르는데 관련 유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멀리 떨어져있는 전라우수영에 있었던 것이고...그리고 과학적으로나 당시 상황면으로 보더라도 거의 불가능합니다
뭐 이건 학계에서도 철쇄설을 부정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저도 잘 모르므로 패스하고
흔히 이순신 장군의 파직을 임금명령 어기고 출동안해서 잡혀갔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더군요 더 나아가서 왜 그게 현명했나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실제로는 부산왜영방화사건 공적문제가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부산왜영방화사건이란 안위와 김난서등이 계획하고 이순신 장군에게 승인을 받고 부산왜영에 불을 지른 사건인데 이후 이순신 장군께서 안위등이 공을 세웠다고 보고를 합니다
근데 조정에서는 다음에 올라온 김신국의 장계에서는 이원익이 공을 세우고 안위는 구경만했다고 되있다면서 공을 빼앗은 것 아니냐고 주장했고
나중에 이원익은 부산왜영방화사건에 대해서 전혀 알지도 못한다는게 밝혀지면서 안위의 공을 뺏었다면서 선조가 우깁니다
실록 정유년 1월 27일
왜영을 불태운 일도 김난서(金鸞瑞)와 안위(安衛)가 몰래 약속하여 했다고 하는데, 이순신은 자기가 계책을 세워 한 것처럼 하니 나는 매우 온당치 않게 여긴다. 그런 사람은 비록 청정(淸正)의 목을 베어 오더라도 용서할 수가 없다
헌데 지금 학계에서 누가 부산왜영방화사건 다룹니까??논문에 없으면 이 사건도 없는겁니까??
그리고 더 나아가서 현 학계의 통설되로면 이순신 장군의 전공은 모두 과장된 것입니다
실제로 워포그에서 일본 사이트에 요소시마라는 사람이 쓴 글을 번역해서 올렸는데 이 사람의 주장을 현재 통설로 반박하면 오히려 밀릴정도입니다
아니 아리마 해군대좌의 주장도 제대로 반박하기도 어렵습니다 이것 때문에 별무사님과 김경진님이 상당히 염려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육군이 수전을 하는경우가 많았는데 현재 우리나라 학자들은 대부분 수전은 수군만이 수행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있거든요(참고로 당시 일본기록에 일본수군은 9200명정도입니다)
뭐 하긴 오페르트사건도 제대로 연구 못한다고 비판받고 있으니...(조선과 관련된 서양인들을 다룬 책을 쓴 역사학자분이 현 학계의 이런점을 비판했는데 사실 워포그에서 활동하시는 윤민혁님의 경우는 꽤 오래전에 이미 페롱,오페르트,젠킨스의 관계를 연구한 다음 이들을 소설에 등장시켰죠)
2)서류상의 기록??
전에 올려논 기병과 관련된 제 답글에다 서류상 기병이라며 고로 10만기병은 없다고 주장했는데...참나 그게 군적을 보고한 기록으로 아십니까??
그건 군적을 보고한 기록도 아니고 전투시의 상황및 장면을 기록한 것입니다
도대체 그거하고 군적기록하고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겁니까??제가 그걸 올린 것도 하도 군적기록은 다 거짓말이라고하기에 올려논 것인데요??
참...조선군은 전투시 아군 병력구성에 대해서도 거짓보고를 하는 나라인가 봅니다
그리고 류성룡의 서애집이 그렇게 무시받을 기록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는군요
3)전쟁준비한 증거가 어디있냐??
전쟁준비 근거는 서애집뿐만이 아니라 실록을 보아도 여러번 나옵니다
일단 선조가 어사를 파견하여 무기점검을 계속하였고 중국에서 들어온 서양화포 불랑기포를 어전에서 실험발사해보았고 육군뿐만 아니라 수군에서도 보유하게했습니다
그리고 전에 말한 전쟁광 김수...이 사람이 왜 전쟁광이라고 불리냐면 이 사람이 개전전에 경상감사였는데 전쟁 직전까지 전쟁준비한답시고 백성들 마구 동원해 성곽보수하고 무기점검하는등 심할정도로 준비해서 심지어 전쟁준비 때문에 농사를 못짓는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사실 조선조정은 대도록 조용히 민폐끼치지 않고 전쟁준비하려고 했는데 이때문에 경상도,전라도에 전쟁공포분위기가 퍼집니다
물론 조선조정이 잘못준비한거라면
일단 주 침공루트가 전라도가될 가능성이 높을거라 생각했으며(과거 왜변의 사례때문에)침공군 규모도 1만명정도일거라 생각했습니다(당시 정보로는 이정도일거라 생각했습니다)
조선조정에서 당시 일본군에 대한 것을 잘못판단한 것은 맡습니다 하지만 전쟁준비를 안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조선군은 200년동안 무기를 개발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무기에 대해 조정에서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명종당시는 2세대형과 2세대 절충형 화포가 대량생산되고 1570년대에는 승자총통이 등장하고 1560년대에는 불랑기포가 나오고 판옥선이 이때 등장한 것은 단순히 몇몇 애국자들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단순히 예전상식을 그냥 답습하는 논문만보면 아무런 준비를 안하고 있지만 실제로 여러기록을 조사해보면 조선조정은 계속 준비를 합니다
역사는 사료로 따져야지 논문만으로 따질수있는게 아닙니다
4)직산전투에서 명군은 엄청나게 활약을 했다??
참고로 말해서 전에 대만쪽 자료에서의 직산전투에 대해서 평가를 짧게 평하면 이렇습니다
"전과는 적지만 정신적 충격을 줬다"로 말할수 있습니다
구 일본군 참모본부 편찬, '조선역'의 직산전투에 대한 평가의 경우는 직산전투-일본군 전사 29명 명군 전사 200여 명 최종 결과 명군의 대패입니다
물론 명군의 피해나 일본군의 피해는 기록마다 다르지만 일본군의 피해는 그렇게 많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후에도 일본군은 직산에 계속 머무르다가 9월 중순쯤에 후퇴를합니다
물론 이때 직산전투당시 명군의 영향을 무시할수는 없습니다 별무사님의 경우도 직산전투와 명량해전 이후 일본군은 심리적인 압박을 받아서 후퇴한 것 아닌가 생각하기도 하니까요(사실 1594년 이후 명군은 사실상 주력은 이미 철수했고 정유년 2월까지는 사실상 명군이 없는거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당시 이번에도 과연 명의 대군이 참전할지 않을지가 최대 관심이었으니까)
하지만 직산전투 자체에서 명군은 그렇게 활약하지 못한 것은 변하지가 않는군요
그리고 명군 참전이전의 조선군의 활약을 폄하하시던데 이치,웅치전투 함경도지역의 전투들은 어떻게되는 겁니까??
5)의병은 게릴라군이다??
의병들의 전투형식을 보면 사실 게릴라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공성전,기마전,강상전투까지 벌입니다
전에 말했지만 고경명의 의병의 경우도 기병이 많았고 낙동강에서는 수군을 이끌고 일본군의 보급을 끊은 의병도 있습니다(이 사람의 애인이 난중일기에 기록되있습니다)
즉 치고빠지기식의 게릴라전만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대부분 제대로된 장수들(심지어 이순신 장군까지)중에서 의병에 대해서 곱게보지 않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이유중 하나가 이들이 병력자원을 뽑아가서 제대로된 병력을 동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 때문입니다
즉 사실상 의병들도 대부분 원래 관군과 같이 싸워야하는 병력이었다는 얘기입니다
뭐 이거말고도 쓰고 싶은 것은 많지만...시간 관계상 나와야겠군요 사이버 강의 듣다가 잠시 끄적거리는 것이니...
저는 전상용씨가 비판한 내용을 보지 못했으니 무어라고 할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대학에서 강단이 설치되고 나름대로 학회니 논문이 뒷받침되는 성과들은 뭐라고 할까요. 더구나 그 학문만을 공부하기 위해 진학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말입니다. 논문을 써보시면 알겠지만, 자기주관이 그리 들어가지 않습니다.
더구나 남이 작성해 놓은 논문들을 가지고 흠을 잡아내기는 쉽습니다. 그럼 써봐라. 그렇게 못합니다. 원래 그런겁니다. 그렇다면 교수의 논문이 틀리다고 해서 그 사람이 문외한이냐. 그거는 아닙니다. 그럼 아마춰가 좀 안다고 해서 교수를 능가하느냐. 그런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전공학과가 있는 겁니다.
예가 될 수 있는 사례라고 봅니다.
인조이의 아마추어들에게 박살이 난 적이 /// 어떤 일이죠?
청산리 대첩에 관한 이야기로 아는데. 일본인들에게 논파당하고 그 서울대 교수가 잠적했다는..
참고로 말하면 저는 다음바크님이 말하는 소위 국수주의 재야사학애들을 비판한 사람입니다~~~그 청산리대첩 논파당한거...꽤 유명하네요 저도 전에 봤을때 기분이 영...
김경진님하고 윤민혁님두.. 그런 이상한 부류로 취급된다는 이야긴가요..? 그럴리가.
저는 전상용씨가 비판한 내용을 보지 못했으니 무어라고 할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대학에서 강단이 설치되고 나름대로 학회니 논문이 뒷받침되는 성과들은 뭐라고 할까요. 더구나 그 학문만을 공부하기 위해 진학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말입니다. 논문을 써보시면 알겠지만, 자기주관이 그리 들어가지 않습니다.
더구나 남이 작성해 놓은 논문들을 가지고 흠을 잡아내기는 쉽습니다. 그럼 써봐라. 그렇게 못합니다. 원래 그런겁니다. 그렇다면 교수의 논문이 틀리다고 해서 그 사람이 문외한이냐. 그거는 아닙니다. 그럼 아마춰가 좀 안다고 해서 교수를 능가하느냐. 그런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전공학과가 있는 겁니다.
맞는 말입니다.
누가 그렇다고 대학강사가 떨어진다고 했습니까??그리고 교수가 아니고 논문을 안냈다고 인정안하면 학문의 발전은 기대할수 없습니다 서양에서 학문적인 업적을 세운사람들을 보면 의외로 아마추어들이 많습니다 교수라고 다 아마추어들보다 뛰어난 것은 아닙니다 ㅡ.ㅡ;;;
daum bark//김경진님 윤민혁님의 글을 보면 솔직히 논문같습니다..............
김경진님도 별무사님하고 대화가 오가고..1차 사료에 대한 판단도 전혀 안하시는게 아닌데 재야와 비슷하다 이러면 참.. 아이러니 합니다 더구나 전통 군사사 분야에서 특기할만한 외형적 요소도 괄목할만하게 찾아내는데 재야와 비슷하다는 것은.. 아 물론 이목잡기만을 본다면 그럴수 있지만.. 김경진님은 다르죠
단지.. 중국군 비하는 좀. ㅡㅡ; 모 그거야 작가 주관이 없는 소설은 소설이라고 할수가 없는거니까 ..ㅡㅡ 그리고 모 교수가 쓴 논문 하나 뒤집었다고 전체적인 빙산을 뒤집었다고 할순 없죠.. 그런분들 방에 가서 온종일 서고를 뒤져봐야 피부로 느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