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었다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랑은 달빛을 타고’의 방송 원고를 쓰고, 문화센터와 기업체나 업소에서 강연을 하고 블로그를 관리했다. 다만 대학이 방학 중이라 강의가 없어서 한결 여유가 있었다.
이 무렵 유미는 안지혜, 릴리로부터 또 한통의 메일을 받았다.
‘단미님, 사랑의 바이러스는 제게 기생하지 않습니다.ㅠ.ㅠ 큐피트의 화살도 저만 빗나가는 것 같아요. 오늘도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렸습니다. 짝사랑이었으니 실연이랄 것도 없지요. 마음을 접기로 했습니다. 대신에 새해부터는 냉철하게 행동하기로 했습니다. 승률이 높은 쪽을 택하기로 했어요. 드디어 오늘 결혼정보회사에 등록을 했습니다. 어쨌든 그 바닥에서 저는 골드미스니까요….’
총 맞은 것처럼 안지혜의 가슴에 실연으로 또 구멍이 났나 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여자가 있다. 총을 가슴에 맞는 여자와 아랫도리에 맞는 여자. 어쨌든 안지혜의 결정은 현명해 보였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골드미스다. 결혼정보업체에서 최상급으로 쳐주는 여성들이다. 만약 결혼에 골인하려면 그게 지름길일지 모른다. 골드미스란 안정된 직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기계발과 취미생활에 투자하고 독신을 즐기는 연봉 4000만원 이상의 30~40대 고학력, 고소득 미혼 여성을 일컫는다.
간혹 결혼정보 업체 같은 데서 강연요청이 들어오기도 한다. 이번에도 한 결혼업체에서 자기들이 관리하는 골드미스들이 주축이 된 노블레스 회원을 위한 특강을 부탁해 왔다. 하지만 매니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무리 경제적으로 조건 좋은 여자라도 미모가 달리면 결혼시장에서 잘 안 팔린다고 한다. 암튼 안지혜가 부디 제 짝을 찾기를 바랄 수밖에.
윤 이사로부터는 한동안 전화가 없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는지…? 그의 세련된 용모로 보건대, 경험부족으로 오는 소심함은 아닐 테고. 도대체 무슨 준비가 안 되었다는 말인지. 아니면 유미라는 여자에 대해 어떤 검증을 하려는 걸까? 있는 것들은 늘 까다로우니까. 윤 이사 정도의 조건이라면, 게다가 싱글남이라니, 기왕이면 팔자까지 고쳐 보려고 대드는 여자들도 많을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쳐도 여태까지 윤 이사와 같은 무반응은 유미의 사전에, 아니 다이어리에도 없었다. 간발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유미의 낚시에 다 걸려들었다. 하긴 대어일수록 신중하며, 그러기에 느긋하게 기다리는 손맛도 각별하긴 하다. 하긴 고기가 없나, 뭐.
그때 전화가 왔다.
“오유미씨죠? YB개발 윤동진 이사님이 찾으십니다. 잠깐 기다리세요.”
여비서인가 보다. 곧 윤 이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 지내셨어요? 한번 뵙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명백한 입질이다.
“저야 누구와는 달리 늘 준비되었죠.”
유미가 뼈 있는 농담을 던졌으나 그가 사무적으로 받았다.
“괜찮으시면 시간과 장소를 우선 말씀해 보시죠.”
“용건이 뭐죠?”
“비즈니스입니다.”
“그럼, 모레 점심 12시. 조찬 수업하던 베네치아, 어때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