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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 昏
홍 석 영
까마귀떼의 어지러운 그늘이 마당 위에 회리바람을 이루며 높다란 개가죽나무 사이에 여윈 햇살을 휘몰고 달아났다.
마음이 울적하여 울타리께로 시선을 떨구었던 원보 노인 (元甫老人)은 어릿하게 현기증을 느끼며 뒷 산마루를 바라보았다.
자라목처럼 움츠린 산마루로부터 매봉이 아아한 노령산맥을 이어 사뭇 활갯 짓하며 뻗어가고 있었다. 설핏 넘어서는 저녁 노을 속에 준령은 무섭게 눈앞을 가로 막았다.
엊그제 밤에도 온통 난리를 치뤘던 빨치산이 저런 등줄기를 타고 왔던가 생각하니 마음이 스산하였다.
발길을 띄우다가 지붕 위에 문득 시선이 멎었다.
땡감을 우려두려고 우북하게 쌓아둔 짚단이 이슬에 뽀얗게 젖어 있었다.
그만 가슴이 철렁했다. 눈살이 까뭇하게 부풀면서 깊숙한 눈에 우울한 빛이 감돌았다.
불현듯 부엌으로 들어간 그는 설겅 아래서 술독을 찾았다. 술기가 코밑을 치어받는 노리께한 전내기를 한 종발 들이켰다.
멍하니 서 있는 며느리에게,
“김치나 한가닥 다라.” 하며 매우 겸연쩍은 눈치였다.
“거 윤호란 놈 제발 홍역 끝에 탈이라도 없어야겠다만 워낙 되알지게 앓구 있어서…….”
“열만 있음 풍이 자꾸 났사니까요.”
고개를 돌리는 며느리의 낯이 수척해 보였다.
“글쎄 꺼뜩허면 경풍이 나는 놈이라 순허게 열이나 삭아들런지·…· 어쩌면 애가 그렇게도 물캥이로 생겼는지 거 당초 맘이 안 놓이는구나.”
며느리는 아궁이 앞에 나붓이 앉아 다시 풀무를 따르륵따르륵 돌리었다.
그는 다시 술 한 종발을 마셨다. 목구멍으로부터 까르룩하고 넘어갔던 찬 술
기로 이내 가슴이 후끈거리며 눈시울이 얼얼해졌다.
“네 어미는 방에 있느냐? ”
“네!” 풀무소리가 뚝 그치자,
“윤호 애비 때문 숭숭허니 말이 많은데 무슨 형편인지도 모르고·…… 대체 지붕 위에 둔 짚단은 어쩔 작정이라냐?” 하고는 벌컥 짜증을 냈다.
“감을 우릴 거 아녀요?”
며느리의 의아해 하는 눈빛과 부딪치자 낯빛이 불끈 변했다.
“감이 다아 뭐냐? 대체 그 짚단이 어떤 짚단이라구 원 속알머리도 없이 난 그것만 봐두 치가 떨린다.”
내뱉듯하고선 창황히 부엌을 나와버렸다. 머릿방 아랫목에 요대기를 읍쓴 채
누웠다. 눈을 지그시 감아보았다.
지봉 위의 짚단으로 사단을 내고 죽살을 치루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ㅡ―거가가 어디라구 감을 우려먹을 생각을 했을꼬.
노인은 벌써 어두위진 방안에서 벽 한쪽을 향하여 두 눈을 흡뜨고 마음을 뇌살었다. 답답했다. 일어나 앉았다.
담배 한 대를 태워물고 쭈욱 빨아보았다.
한 보름 전 심하게 부역자를 색출하는 판에 그의 집에 난데없이 순경 셋이 밀려들었다.
달빛이 우렷하게 밝던 밤 이웃집 사랑채에서 골패를 잡고 앉았던 그는 당황히 안집으로 뛰어들었다.
온 방문을 열어젖힌 채 마구 공포를 쏘며 순경들이 감자굴과 헛간과 벽장을 뒤지고 있었다.
노인은 마당 가운데 협하고 서버리자 가슴이 콱 막힌 채 어쩔 줄을 몰랐었다.
눈앞이 무너지듯이 미구에 닥쳐올 광경을 그려보자 마음이 아뜩했다. 가래침을 타 뱉았다. 볼이 챙하니 찢기는 듯한 소리에 놀라면서 아랫도리가 자꾸 떨려오고 있었다.
어떻게 하나? 그후를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금시 아들 광욱이가 어디선가 총소리를 듣곤 뛰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는 일껀 무서운 침묵속에 실신과
모욕으로 마음의 불길을 활활 느끼고 섰었다.
이상했다. 집 안을 수색하곤 다니던 순경 셋이 아래 웃방에서 뛰어나왔다.
수색이 끝난 것이다. 순간 정신이 선뜩하면서 노인은 순경 곁으로 뛰어갔다.
희한한 감정이 그를 압도했기 때문에 눈은 노여움에 빛나고 얼굴엔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순경님! 참 미안합니다. 광욱이는 제 자식입네다만 그놈 때문 이러야 된다는 건 애비된 나로서도 기막힌 일입니다.”
벌렁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국방색 군복을 입은 순경의 얼굴은 어둠 속에 얼어붙어 있었다.
그는 말을 이으려다 고개를 돌리었다. 결에 선 아내의 초췌한 모습과 돌처럼
언 며느리의 낯빛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난 인공 때 분주소에 끌려가 하마 죽을 뻔허다가 놓여난 사람이요. 난 그때 반동분자고 악질 지주였다는 걸로 꼼짝없이 죽을 판이였우다. 내사 공산주의 그만해도 웬수가 된 건데 광욱이란 놈 내 자식이긴 허우만 내가 그놈을 집에 넣어 두겠읍니까? 자 찾아가시요. 찾아가야 헐 게 아니겠오?”
순경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는 않는 눈치였다. 야릇하게 찌무룩한 표정으로 집안에 휘두른 플래시 끝을 냉랭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였다.
“저 지붕위엔 뭐요?”
뜻밖에 묻는 말에 노인은 정신이 휑했다. 지봉 위로 눈을 흡떴다.
“그거 감을 우릴려구 놓아둔 짚단이죠.”
힐끔 고개를 돌리며 그는 일껀 토라진 말투였다.
“감을 우릴 짚단이라구? 좀 이상허지 않우? 아무것도 없오? 그속에.”
그는 그말을 코끝으로 비웃었다. 기가 막힌 듯이 실소했다.
“아니 지봉 위에 뭐가 뭐가 있오?”
“총을 쏘아봐두 아무께 아니란 말요?”
금시 잘가닥하는 장진하는 소리와 함께 총끝에서 화약냄새와 더불어 불꽃이 튀어나갔다.
“앗? 여보 이게 무슨 꼴이요?”
비명소리와 함께 갑자기 아내가 폭 쓰러지면서 그의 무릎을 붙들었다. 순간 가슴을 덮치는 심상찮은 예감에 마음이 산란했다.
절박한 의식이 그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쳐가면서 무언가 걷잡을 수 없는 힘이 그를 윽박지르고 지나갔다. 그는 마지막 사품에 안달을 써봐야 했다.
순경이 다시 방아쇠에 손을 얹으려는 찰나 그는 미칠 듯 달려들었다.
“너무 허시우! 원 나를 그렇게도 못 믿겠다는 말이유? 그래그래 지붕꺼지 총을 쏘아댈 거야…….”
횡폭한 어조에 눌린 듯이 순경은 손을 떨구었다. 그는 시름없이 고개를 저었다.
눈앞에서 발딱 일어서는 아내의 거칠어진 숨결을 가까이 느끼었다.
“영감을 믿고 가는 거니 쉬이 찾아서 자수를 시키시오.”
내뱉듯 말하고 순경들이 문 밖으로 사라지자 그는 넋없이 마당 가운데 서 있었다.
이윽 무거운 표정으로 아내를 향했다.
“그놈이 지봉 위에 올라갔었우?”
아내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며느리도 잠잠히 집안 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리고 있었다.
“그놈을 글쎄 지봉 위에 올려보냈었우? 자수를 허래두 안 듣더니…… 에이 지붕꺼정 올라가서 거 노루처럼 총알을 맞고 죽을 심이었다우?”
그는 울화에 찬 목소리로 떨며 말했다.
“죽다니……· 그만두시요, 여보.” 아내는 성이 나서 사뭇 불퉁스럽게 말했다.
“에라 원 못난 자식 이라구. 차라릭 진즉 죽어버리질 못허구서.”
그는 불근불근 화를 내면서 사랑채로 들어가고 만 것이었다.
한 사날 몸져 누워서 역정을 내다가 행여나 하고 보현 노인을 찾긴 했어도 어슬녘에 돌아온 그의 낯빛은 되려 핼쓱했었다. 이제와서 부역한 자식을 어쩌면 하겠느냐고 하소연한다는 게 난감한 일이었거니와 그런 경위에 자수시키라는 그의 말이 왜 그리 서운한지 모르겠다.
오죽 답답하면 찾아갔을라구 야속해서 저으기 앙심도 났지마는 그냥 제풀에 서럽기만 했다. 공안위원장이니 별난 수나 있으려니 하고 기대했던 뜻이 매정스럽게 틀려버리고 난 뒤론 기껏 자리보존을 하고 누워버리고 말았었다.
그러던 그가 모처럼 조청(造淸) 때문에 야단을 낸 것이다. 장작눌을 헐었다는 하찮은 사단으로 벌어진 불화이기는 했으나 노인의 성은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 뭐가 재미있어서 꺼득허면 조청을 헌다 감주를 어떤다하구 법석을 떨고 그러오? 인공 때문 거 삼년 묵은 짚눌이 헐리운 것도 속이 짠데 마저 장작눌꺼지 없애면 뭘루 연료를 삼겠단 말이요? 원 분수도 없이 그래 살림을 헌다는 풍신이 그렇소?”
눈살이 꼿꼿해가지고 마구 닥뜨렸다.
“흥! 그렇게 악을 쓸 게 뭐요. 그래 당신만 살림 허시간디 장작 몇포 없애서 자식 약헌다는 게 그렇게도 맘에 원통허단 말이어요?”
아내는 입이 부어가지고 앙칼스럽게 대답했다.
“원통허잖으면 그래 다 떼버려야 맘이 후련해지겠구료?”
“후련헐 껀 없으이만……· 당신이 생 헌다는 게 너무 허오. 지긋지긋한 난리를 겪었어두 거 아직도 사람 귀헌 줄을 모르고…… 흥 지금도 재산이면 제일이란 말요?”
아내는 얼굴에 핏대를 세우고 말했다. 분명히 비웃고 있었다. 그는 더 욱지를 말을 찾지 못하고 마음이 토라진 채 방안을 기웃이 바라보았다.
요강까지 들여놓고 무슨 청승으로 책나부랭이를 펼치고 앉았는 아들 광욱의 희끄무레한 눈매와 부딪쳤다. 실쭉하여 고개를 돌렸다.
“자알 헌다. 자꾸 보약을 써서 보호를 해야지…….”
볼멘소리로 말하고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요를 둘러쓰고 누워서 눈을 감았다.
관자놀이가 사뭇 쑤시고 다리가 재릿하게 저렸다. 밭은 기침을 거푸 하면서 가래를 글글거렸다.
마침 며느리가 점심 밥상을 들고 들어왔우나 그는 눈도 거들며보지 않았다.
“나 점심 안 묵을란다. 그냥 가져가거라."
어정쩡히 상을 들고 섰다가 그래도 내려놓으려는 걸 “아니 안 묵을 틴게 가져가래두?”
소리를 꽥 질렀다.
며느리가 시름없이 밖으로 나가자 다시 눈을 감았다. 안방에서 한참 동안 문짝이 들치나더니 밥그릇소리와 후르륵후르륵 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뱃속이 꾸르륵 울었다. 허기질 것은 없어도 그저 공연히 마음이 허전했다. 며느리를 불렀다.
“물이나 한사발 가져와라.”
“진지를 잡수셔야지요.”
그녀가 어물쩍거리자 그는 역정을 버르르 냈다.
“어서 가져오래두 그러느냐?”
숭늉 한 그릇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나자 며느리를 앉혀놓고,
“윤호는 어째 꽃이 곱게 피었더냐? ”
하고 신산한 기분으로 물었다.
“오늘 저녁만 잘 넘기면 내일쯤은 딱지가 질 것 같애요.”
“그놈이 워낙 열이 많은 놈이라.”
“그래서 의사를 데려다가 주사를 맞히라는데요.”
“아니 제애비가 그러더냐? 흥.”
눈꼴이 찢기면서 부락스럽게 물었다. 며느리는 귀밑까지 빨개지며 나붓이 고
개를 숙였다.
“어차피 말이 나왔다만 그래 등신처럼 방구석엘 처박혀서 개칠개니 뭐니하군 보약만 쓰고 있으면 뭘 헌다는 거냐? 도시 늬 에미가 분수가 없는 사람이로구나. 내일을 모르고 앉았는 신세에 지금 약이 다 뭐냐?”
며느리의 얼굴이 상기되 어갔다.
“생각하면 애통이 터질 일이지. 그런다구 어쩔 수도 없구나! 자수를 허래면 펄펄 뛰면서 네 애미부터 성화를 대며 생판 내 때문 저 애비가 그리 됐다는구나! 허긴 걔가 무슨 위원희인가를 쏘다니는 바람에 내가 덜 바람을 탔는지는 알수 없지만……· 세상이 이리 바꿔진 판에 낸들 어떻게 하겠느냐? 헐 일이란 자수를 허곤 묵은 허물을 털어버리고 어서 편히 지내야 허겠는데 자수라면 죽는 줄만 알고 그래쌓고 정작 제 애비도 통이 대답이 없고 보니 갑갑증이 나서…… 원 내가 썩 죽어버릴 건데”
그는 말끝을 홈치고는 며느리를 이윽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노인은 얼풋 한잠이 들었다가는 가위눌리듯 소스라쳐 깨었다.
오밤중에 안방에서 별안간 며느리의 울음소리를 들었던 것 같았다. 이마에 식은땀을 느끼며 공연히 가슴이 후둘후둘 떨려왔다.
허우스름한 창문으로 더듬어 바지를 주워입 고는 마루로 나갔다.
“이게 웬일이냐? 아가.”
아내의 울먹이는 소리를 문곁에서 듣고 안방 미닫이를 열고 들어갔다.
홍역으로 얼굴이 백일홍처럼 핀 윤호가 그만 열기로 경풍이 난 것이었다. 자그마한 눈을 해끔이 뒤집어뜨고 입버큼을 내놓며 두 손만 겨우 버르적거리고 있었다. 작은 몸뚱이가 흡사 한 개의 불덩이였다. 흡뜬 동공을 바라보는 순간 그는 소름이 쭉 끼쳤다.
독한 식초를 이마와 코밑에 바르곤 힘껏 콧숨을 빨았다. 바늘로 입술을 사뭇 쪼았다. 그재야 낑하니 우는 수리를 냈다. 아내와 며느리는 아이를 붙들고 안간 힘을 썼다.
“병원의사가 와야 되는데요, 어머니!”
어느 결에 나왔는지 겁먹은 얼굴로 광욱이가 곁에서 뇌었다.
“없는 의사를 말허면 뮐하냐?”
노인은 책망하는 듯이 토라진 말투였다. 결김에 광욱은 새무룩해지면서,
“그러니깐 낮에쯤 읍내 의사라도 데려와야 헌데니깐…… 자꾸 거기다 초만 바르면 뭘해요?”
날카로운 어조로 쏘아붙이었다.
“고만두어라! 소용없는 이야기 아니냐?”
이마를 찡그리면서 황망히 윤호의 손목을 잡았다. 안타까왔다.
차츰 급해가는 맥박이 이대로 푹 끊어지면서 꼭 죽어갈 것만 같았다.
노인의 눈에는 어연듯 눈물이 핑 돌았다. 한참만에야 미칠 듯 괴로운 고비에서 윤호는 겨우 숨을 돌려 깨어났다.
열기 띠운 눈매와 몸을 태우는 고열에 부대낀 입술이 까맣게 타고 있었다.
“해열제를 안 놓으면 안될 건데요.”
“글쎄 의사를 이밤중에 어디서 구한단 말이냐?”
그는 애태워하는 광욱의 말을 윽박질렀다.
캄캄한 밤이 우정 깊어갔다. 문득 마을의 동편에서 사뭇 요란하게 개짖는 소리가 들리더니 삽시간에 흉흉한 공기가 떠들어왔다. 수상한 인기척을 느끼면서
느닺없이 한 방 총성 이 고요를 깨뜨렸다.
공비 습격 인가? 모두 그만 얼굴이 파랗게 질러갔다.
“산손님이 왔나부다. 야밤중에 아이고 이를 어쩌나?”
아내가 실색을 하며 말했다. 그는 겁결에 떨리는 가슴을 누르며 퍼뜩 매서운 눈초리로 광욱을 노려보았다.
광욱의 낯빛 이 핼쑥해지면서 당황히 고개를 숙였다.
“어서 가서 숨어라.”
그의 칼날 같은 싸늘한 어조에 눌린 듯이 광욱이 찌무룩히 일어섰다.
“어서 당신도 숨으시구료.” 아내가 이번에는 그를 냉랭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불현듯 모욕을 당한 듯이 낯빛이 달라졌다. 무시로 윤호의 손을 만지던 그의 손이 시들고 있었다.
“빨리 어디론가 피허셔야지요.” 며느리가 손을 부비적거리며 말했다. 찌든 그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는 괘괘히 말했다.
“나는 죽어두 안 숨을란다.”
차츰 무서운 마을의 동요가 집 근처에 다가오고 있었다.
이윽고였다. 마당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플래시 빛이 창밖에 번뜩거리
면서 사람의 그림자와 더불어 총자루가 창문 앞에 쓰윽 나타났다.
“앗.” 며느리는 소리를 지르며 눈을 가렸다.
“문을 열어주시오.” 표정이 굳어진 채 그는 창문을 열어주었다.
“조용히 들어주슈. 우리는 산에서 왔는데 이게 송광욱 동무 집이지요? 동무
를 만나러, 왔오.”
우락부락한 사나이가 먼저 말했다. 그는 얼마동안 대꾸할 수가 없었다.
“……”
“어찌 대답이 없오?”
“광욱이는 집에 없는 지가 오래요. 그리고 지금 보다시피 이애가 경풍으로 고경을 치루고 있으이다. 그러니 제발 돌아가주시오.”
그의 말은 저으기 흥분되어 있었다.
“거짓말이요. 분명히 집에 있다는 걸 알고 있오. 대주지 않는 건 반동이 허는 짓이요.”
남루한 군복에 전투모를 쓴 사내의 말은 꼬챙이처럼 강경 했다.
“나는 모르오. 집 엔 정녕 없다는데 너무허지 않소?”
“영감, 반동 수작 마오. 영감 악질 지주였던 거 다 알고 있오.”
딴 사나이가 불쑥 나서며 고발하듯 말했다.
“제발 애가 죽어가요. 손님 네들.”
아내가 울먹거리며 손을 싹싹 부비었다.
“광욱 동무를 내놓오, 만약 안 나오면 그건 변절헌 거요. 반동이요. 반동은 끝내 처형허고 말 걸요. 영감 사실대로 말허잖음 지금 당창 끌어가겠우다.”
노인은 벌떡 일어났다. 약간 어깨를 들썩거리며 두 눈에 불꽃이 화끈 일었다.
“아이그머 니…….”
며느리가 이때 느닷없이 부르짖으며 아이를 와락 껴안았다.
“앗.” 윤호가 다시 경풍이 난 것이었다.
노인은 결김에 윤호를 흘끔 바라보고 성난 사자처럼 문 앞으로 걸어갔다.
“광욱이를 어쩔 작정이요? 차라리 날 데려다 죽이시오. 날 죽여요!”
아내와 며느리는 윤호의 콧숨을 빨다간 실신하면 겁에 질린 눈초리를 보내곤했다.
“이러다간 손자도 죽겠우다. 당신네들이 손자를 죽이는 거요. 광욱이는 사실 정신이 나간 놈이라우. 그건 어따 써먹을 데도 없는 헛껍데기인걸요. 대체 누가 그놈을 그렇게 만들었겠오? 그래 우리 광욱이가 공산주의요?”
노인은 찌렁찌렁 울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마루로 나갔다가는 뒤짚어 방안으로 뛰어들더니 황망히 윤호의 손을 잡았다.
그의 당돌한 행동에 그저 무서움에 떨고 있던 아내와 며느리는 마지막 가각을 느낀 듯이 별안간 울음을 터뜨렸다.
“영감을 끌어내라 숭악한 반동이다.”
총대를 잘가락거리며 한 사람이 성큼 마루 위에 올라섰다. 이때였다. 뜻밖에 뛰어나온 건 광욱이었다. 공포와 불안이 엇갈린 매서운 얼굴로 그는 사나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내가 갈 테요. 우리 아버님껜 아무런 상관이 없오. 내가 가겠오.”
노인은 그 소리에 푸떡 고개를 들었다. 광욱의 열끓는 눈빛과 부딪치자 불현
듯 눈물이 솟았다.
“네가 공산주의냐? 에키 빌어먹을 놈.”
그는 끝내 마음이 처절했다. 광욱은 엎드려 약간 개진하게 젖은 눈으로 윤호를 들여다보았다.
“의사를 대야 헐거요. 어머니 이러다간 심장마비나 되어버리면. 어떡해요. 어머니.”
광욱의 마음은 사뭇 떨리었으며 애써 침착한 어조였다.·
“의사라니 그만두어라 이놈아.”
아내는 실성한 듯이 외치며 광욱의 가슴팍을 향하여 퍽 쓰러졌다.
한낮이 거의 되어서야 윤호의 시체는 하얀 수의를 입혀 산으로 나갔다.
자지러지게 느껴우는 울음소리가 마지막 사립 밖으로 사라지자 집 안은 무덤 처럼 허전해졌다. 노인은 죽은 듯이 누워 있다가 꾸물꾸물 나와서 세수를 하였다.
그리고는 옷을 갈아입고 표연히 길거리로 나섰다.
동구밖으로 발길을 메었던 그는 무심코 산마루에 시선이 멎자 발길을 세웠다. 미상불 매봉의 불통사나운 등줄기를 더듬다가는 가슴이 섬뜩해서 좀 우중충한 햇볕 아래 고개를 돌리었다.
때로는 등골이 마치는 슬픔이 있어도 목숨이랄 게 기실 하찮아서 산다는 게 뭐노 하곤 그닫 눈 감으면 또막하게 죽을 수 있는 것이라고 노인은 일껀 매무진 생각을 느끼는 것이었다.
순간 인공 때 죽살을 치뤘던 기억을 그러보았다. 인공도 막다른 칠월 열나흘
밤 난데없이 묶여간 그는 이제 살 형편이 못된다고 저으기 체념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곁에서 죽어갔다.
“농민을 착취헌 악질 지주…….” 그는 이 가시돋친 말이 그의 가슴속을 아프게 저미었으나 결국 생각하면 그것도 운명이라 싶었다. 뼘만한 분주소 유치장에서 점잖히 주검 앞에 대좌할 수 있었던 흡사 아슬한 황혼에 처한 마음에서 지그시 눈 감아버리기에는 아쉽잖은 생명이 었었다.
다만 인심이 무섭게 바꿔지는 판에 숫제 집안이나 구제하는 양 날뛰어 부역을 한 아들 광욱의 사건이 차마 마음속에 어기지 못할 금을 그어놓았다.
주책이 없으니 어려서 그러느니 하다가도 노인은 마침내 제가 못 죽은 탓이라고 엉뚱한 슬픔을 지어내곤 했었다.
―一一늙은 게 살고 젊은 게 죽으면 무엇이 되랴?
그리하여 막상 구이팔 수복이 되고 그는 뜻밖에 분주소에서 풀러나오자 우선기쁨보다도 슬픔이 앞섰었다.
그것은 아들 광욱이 집을 나갔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만류했어두 붙잽히면 죽는다고 영 달아나고 말았어요.”
며느리의 애끓는 소리를 듣고 그는 길길이 날뛰었다.
“그놈이 환장했구나……· 영 죽을라구 환장을 했구나.”
생각하니 원통하기만 했다.
이불을 뒤쓰고 누워서 ˙끙끙 앓았다. 뜬눈으로 광욱의 죽는 꼴을 어떻게 바라보랴 싶었다.
그러던 단 한 달 후에 광욱은 산속을 헤매다가 얼굴이 부어가지곤 집에 숨어든 것이었다.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이 있어도 되찾은 그를 내보내진 않으리라고 마음속에 뇌였다.
어수선한 가운데도 한달 두달이 꿈결같이 사라졌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차츰 광욱의 신변이 그에게 심상찮은 번민을 만들어준 것이었다. 얼른 자수를 시켜야 하겠다는 절박한 사정이 깊어갈수록 안달을 쓰며 반대하는 아내와 그리고 아들 사이에는 예기찮은 충돌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금 노인은 광욱을 빼앗기고 마저 윤호를 산에다 바치고 나서 활갯짓하며 뻗어간 그 매봉의 골바탕에 잠기는 자회색 그늘 속에 종잡지 못할 운명의 그림자를 응시해본 것이다.
참혹한 생각에 그는 발길을 옮길 수가 없었다.
낯빛은 해쓱했으나 섬섬히 선 이마의 대공처럼 퍼런했다. 그는 치마골처럼 펴뜨린 그 골바탕에 잠겼던 시선을 띄우지 못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ㅡ一나도 저 산에 윤호처럼 묻혀버릴 게다.
그는 한결 눈빛이 우울해진 채 까마귀떼의 소란한 소리를 머리 위에서 듣고 정신이 휑했다. 눈을 치켜떴다.
떠올랐다가는 금시 가라앉는 마음의 모서리에 뜨겁게 일어나는 불꽃같은 생
각…… 노인은 알 수 없이 몸을 후두두 떨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젯밤의 광욱의 얼굴이 눈앞에 다가오는 것 같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매봉너머로 그가 필시 죽었으리라고 마음먹었던 생각이 왜 그런지 애절했다.
웬 까마귀들이 저렇게 메를 지어 야단일까?
답답해서 부럭 부럭 화가 치밀었다.
그는 이윽고 먼빛으로 산마루에 암암진 상수리나무를 발견하고 뜨하니 발길을 세웠다.
ㅡㅡ광욱이가 어렸을 적 상수리를 따겠다고 나무에 올라가 높은 가지에서 나가떨어져서 온통 머리가 터지고 팔이 겹질려서 아슬아슬히 재액을 면한 일이 있었다. 그녀석이 그때 꼭 죽을 뻔했었다. 결국 아들 하나 간신히 얻어 놓은 셈이던가?
노인은 생각이 이에 미치자 돌연 골돌한 결의에 사무처서 낯빛이 변했다.
걷던 걸음을 돌이켰다. 한껏 크게 발길을 뜨던 그의 눈빛은 매섭게 빛났다.
그가 지서 소재지에 이르렀을 때에는 해가 중천에서 훨씬 기울어가고 있었다. 노인은 그길로 지서를 찾아갈 셈이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술집 앞에서 보현 노인과 딱 마주쳤다.
훌렁 벗어진 이마며 불그스름한 낯빛에 미소를 띠우며 우렁찬 목소리로 그를 맞았다. 그는 공칙한 일이긴 했지만 어쩐지 당장 무람없지 않은 심사여서 내미는 손목을 꽉 붙들었다. ˛
“영감 오셨구료. 그러찮어두 촐촐해서 술 한잔 하려던 판인데.”
두 노인은 어두컴컴한 술집에 들어가 술청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술 한잔을 권하며 보현 노인은,
"영감, 반갑소! 자제가 그럴 줄은?”
하고 오꼼히 그를 바라보았다.
“아아니, 내 자식이?”
그는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면서 물었다.
“영감, 이제는 마음놓으시요. 진즉 그리 자수를 시킬 일이지.”
그는 찔린 듯 낯빛이 변했다.
돌연 빳빳해진 눈길로 보현 노인을 노려보았다.
“자수래니 내 자식은 죽었는걸.”
“죽었다니 허허 누가 자수를 허면 죽인답디까?”
그는 어안이 벙벙했다. 무슨 당찮은 조롱이냐는 듯이 낯이 빨개졌다.
“보현 영감, 난 알 수 없구료. 그말이 대체.”
“거 영감, 무슨 농담을?”
그는 불쾌감을 누르지 못하며 말했다. 목소리가 자연 퉁명스러웠다.
“혹시 내 자식이 어찌 되었단 말이요?”
“영감 아들이 자수했으니 말이요.”
보현 노인은 약간 까스러진 목소리로 부락스럽게 대꾸하였다. 그τ괄에 급기야 마음이 찔금하여 달려들었다.
“아니 광욱이가 자수를 했우?”
“영감이 그걸 묻다니?”
끝내 믿지 못하는 듯 게슴츠레한 눈길로 묻는 걸 그는 그만 눈물이 글썽해가지고 말했다.
“산에 끌려간 광욱이가 죽지 않고 자수를 했오?”
“아! 그럼 영감이 정말 몰랐었오?”
보현 노인이 뜨악한 눈으로 와락 잡아주는 손을 매만지며 그의 눈앞이 훤했다.
“영감, 광욱이가 그럼 자수를 했군요. 지금 지서에 그놈이 있겠구료. 난 어젯 밤 빨치산인가에 끌려간 뒤론 이에 죽었다 했오. 그래 마지막으로 지서에 진상이나 알리구 그놈들을 어떡허면 좋겠냐구 상의헐 작정 이었는데.”
그는 대짜로 큰 술잔에 남실남실 술을 부어 거푸 몇잔을 기울였다. 얼굴빛이 붉다 못하여 검어추추해가지고 비철거리며 술집 을 나왔다.
“그래 그놈이 무슨 용기로 그 틈새를 뚫고 도망쳤을까? 원 그렇지 그놈이 어젯밤엔 참 못당헐 일을 보고 갔겠다. 하아 나이는 어려두 아들 사랑은 있는 거라……· 그놈이 윤호가 궁금했는지도 모를 거거든. 해서 그놈이 죽음을 악쓰고 도망쳤는지도 모를 일이라. 헌데 윤호란 놈은 죽어버렸지. 매봉 골바탕에 그놈이 묻혀 있단게로……· 그놈이 참 예쁘게 생겼었는데 지금은 땅속에 버려 있게 되었으니…….”
저녁 햇살이 어슬히 논이랑 사이로 밀려들고 있었다. 들너머 마을에는 마지막 잔광이 걷혀가고 있었다.
“영감 이제 늙었구료?”
보현 노인이 뒤따라오며 성크름히 말하여 얼굴을 들어 앞을 바라본다.
“그러오. 난 늙었우. 그래 내게 지금 뭐가, 뭐가 있오? 난 늙었지.”
보현 노인은 댕댕히 말이 없었다. 노인은 비철거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온통 붉은 노을이 불타고 있었다. 그는 흡족하여 얼굴에 미소를 띠
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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