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 소개
읽는 문학에서 쓰는 문학으로!
필사로 다시 만나는 한국 근대 문학
블랙에디션의 〈한국 문학 필사〉 시리즈 『윤동주를 쓰다』가 출간되었다.
〈한국 문학 필사〉 시리즈는 한국 근대 문학의 정수를 읽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손으로 직접 문장을 옮겨 쓰며 작품의 깊이를 체험하도록 기획되었다. 필사는 단순한 독서를 넘어, 작품의 언어와 정서를 천천히 몸으로 느끼게 한다. 한 문장씩 써 내려가다 보면 작가 특유의 리듬이 자연스럽게 남고, 빠르게 읽을 때 지나쳤던 표현과 의미도 또렷해진다.
『윤동주를 쓰다』는 한국 근대 시문학을 대표하는 시인 윤동주의 시를 필사할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이다. 윤동주는 맑고 단정한 언어로 자기 성찰과 시대의 아픔을 함께 담아낸 시인으로,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 이 책은 시를 한 줄씩 따라 쓰며 천천히 읽어 나가도록 기획되었다.
필사로 만나는 윤동주
가장 고요한 방식으로, 가장 깊은 시를 읽다
윤동주의 시는 세대를 넘어 오래 읽혀 왔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처음 만난 이후에도 사람들은 〈서시(序詩)〉와 〈별 헤는 밤〉, 〈자화상〉의 문장을 삶의 어느 순간마다 다시 떠올린다. 그의 시는 맑고 단정한 언어로 쓰여 있지만, 그 안에는 시대를 견디려 했던 청춘의 고독과 성찰, 끝내 잃지 않으려 했던 마음이 깊게 스며 있다. 짧은 문장 안에 담긴 감정의 밀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해진다. 그래서 윤동주의 시는 빠르게 읽고 지나갈 때보다, 천천히 오래 바라볼 때 더 깊은 울림으로 남는다.
『윤동주를 쓰다』는 그 울림을 가장 천천히 따라갈 수 있도록 기획된 필사책이다. 한 글자씩 손으로 옮겨 쓰는 동안 독자는 시의 리듬과 호흡, 문장 사이에 놓인 멈춤과 여백까지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된다. 눈으로 읽을 때는 스쳐 지나갔던 단어 하나가 오래 마음에 머물고, 익숙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문장들도 전혀 다른 감정으로 다가온다. 필사는 단순히 문장을 베껴 쓰는 일이 아니라, 윤동주의 시를 자신의 시간과 감각으로 다시 읽어내는 경험이 된다.
이 책은 윤동주의 유고작까지 포함해 총 109편을 전부 수록한 책이다. 그의 절친한 지인 정지용이 직접 서문을 써준 내용까지 담았다. 작품의 흐름과 감정을 온전히 따라갈 수 있도록 구성했으며, 필사하는 동안 몰입이 끊기지 않도록 세심하게 편집했다. 빠르게 소비되는 문장들 속에서 잠시 멈춰 한 줄의 시를 오래 바라보게 한다. 읽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쓰며 문장을 마음에 깊이 새기게 만드는 책이다. 그리고 그 순간, 오래전 익숙하게 읽었던 윤동주의 시는 오늘의 독자에게 다시 한번 조용한 위로와 울림으로 다가온다.
윤동주를 처음 만나는 독자에게는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시작점이 되고,
이미 알고 있던 독자에게는 다른 결로 다시 마주하는 시간이 된다.
『윤동주를 쓰다』는 시를 읽고 옮겨 적는 과정을 통해 감각을 깊게 만드는 방법이다.
한국 문학을 다시 읽고 싶은 독자에게,
문장을 통해 사유하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은 그런 우리에게 읽는 문학에서 쓰는 문학으로의 다정한 초대를 건넨다. 문장을 단순히 눈으로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손으로 정성껏 따라 쓰는 과정은 일상에 작은 마법을 부린다. 사각사각 종이 위를 스치는 펜촉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문장을 써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작가의 숨결이 손끝을 타고 전해질 것이다. 빠르게 스쳐 지나갔던 문장의 리듬과 근대 문학 특유의 정갈한 언어가, 내 방안의 고요한 공기 속에서 비로소 또렷하게 살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책장을 넘기며 생각한다. 문장을 따라 걷는 이 필사의 길은, 결국 나 자신과 고요히 마주하는 시간이라고. 눈으로만 읽을 때는 이야기의 겉을 맴돌지만, 손으로 쓰기 시작하면 비로소 작품의 깊은 심연 안으로, 그리고 내 마음속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가게 된다. 그러한 ‘당신’에게 추천한다.
소란한 세상의 속도에서 잠시 비켜서고 싶은 날,
어지러운 마음을 다독이고 싶은 날.
사유의 시간을 갖고 싶다면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아 이 책을 펼쳐보기를 권한다. 당신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단정한 시어들이, 메마른 일상에 다정한 위로를 건네며 문장에 천천히 머무는 시간은 작품을 이해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만들 것이다. 이야기를 ‘읽는다’라기보다 문장을 따라가며 작품 안으로 들어가는 경험이 된다. 필사는 작품을 넓고 깊게 만나는 하나의 독서 방식을 제안한다.
2. 저자 소개
윤동주
윤동주는 1917년 북간도 화룡현 명동촌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의 거점이자 개신교 신앙의 보루였던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진학해 조선어와 영문학을 배우며 시를 쓰기 시작했고, <문우> 발행에 참여하고 백석의 시를 필사하며 문학적 기반을 다졌다. 이 시기에 <서시>와 <별 헤는 밤> 등 주요 작품을 남겼다. 이후 일본 유학 중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으로 체포되어, 1944년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45년 2월 16일, 복역 중 건강 악화로 스물일곱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이후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통해 그의 시가 전해졌다.
3. 목차
정지용 서문(序文)
서시(序詩)
1부 자화상
자화상|소년|눈 오는 지도|돌아와 보는 밤|병원|새로운 길|간판 없는 거리|태초의 아침|또 태초의 아침|새벽이 올 때까지|무서운 시간|십자가|바람이 불어|슬픈 족속|눈 감고 간다|또 다른 고향|길|별 헤는 밤
2부 흰 그림자
흰 그림자|사랑스런 추억|흐르는 거리|쉽게 쓰여진 시|봄
3부 참회록
참회록|간(肝)|위로|팔복(八福)|못 자는 밤|달같이|고추밭|아우의 인상화|사랑의 전당|이적(異蹟)|비 오는 밤|산골물|유언|창|바다|비로봉|산협(山峽)의 오후|명상|소낙비|한란계(寒暖計)|풍경|달밤|장|밥|황혼이 바다가 되어|아침|빨래|꿈은 깨어지고|산림|이런 날|산상(山上)|양지(陽地)쪽|닭|가슴 1|가슴 2|비둘기|황혼|남쪽 하늘|창공|거리에서|삶과 죽음|초 한 대
4부 산울림
산울림|해바라기 얼굴|귀뚜라미와 나와|애기의 새벽|햇빛 · 바람|반딧불|둘 다|거짓부리|눈|참새|버선본|편지|봄|무얼 먹고 사나|굴뚝|햇비|빗자루|기왓장 내외|오줌싸개 지도|병아리|조개껍질|겨울
5부 코스모스
코스모스|장미 병들어|오후의 구장|곡간|비행기|가을밤|이불|개|사과|호주머니|나무|만돌이|그 여자|비애|내일은 없다 – 어린 마음이 물은|공상|고향 집 – 만주에서 부른|식권|이별|모란봉에서|종달새
작가의 생애
윤동주의 문학 세계
4. 책 속으로
서(序)―랄 것이 아니라,
내가 무엇이고 정성껏 몇 마디 써야만 할 의무를 가졌건만 붓을 잡기가 죽기보다 싫은 날, 나는 천의를 뒤집어쓰고 차라리 병(病) 아닌 신음을 하고 있다.
무엇이라고 써야 하나?
재조(才操)도 탕진하고 용기도 상실하고 8 · 15 이후에 나는 부당하게도 늙어간다.
_11쪽 ‘정지용 서문(序文)’중에서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두는 것은 너무나 피로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 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 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 같은데 비를 맞고 오든 길이 그대로 빗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루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思想)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_28쪽 ‘돌아와 보는 밤’중에서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들은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히 뒷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羊)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폴포기나 뜯자.
_74쪽 ‘흰 그림자’중에서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_82쪽 ‘쉽게 쓰여진 시’중에서
흐르는 달의 흰 물결을 밀쳐
여윈 나무 그림자를 밟으며
북망산을 향한 발걸음은 무거웁고
고독을 반려한 마음은 슬프기도 하다.
누가 있어만 싶은 묘지엔 아무도 없고,
정적만이 군데군데 흰 물결에 폭 젖었다.
_142쪽 ‘달밤’중에서
공상―
내 마음의 탑
나는 말없이 이 탑을 쌓고 있다.
명예와 허영의 천공에다,
무너질 줄도 모르고,
한 층 두 층 높이 쌓는다.
무한한 나의 공상―
그것은 내 마음의 바다,
나는 두 팔을 펼쳐서,
나의 바다에서
자유로이 헤엄친다.
황금, 지욕(知慾)의 수평선을 향하여.
_274쪽 ‘공상’중에서
※ <블랙에디션>은 상상출판에서 론칭한 문학 브랜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