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
곽 흥 렬
청개구리는 계절에 따라 몸 빛깔을 달리한다. 카멜레온의 변신술이라든가 대벌레나 나뭇가지사마귀 같은 곤충들의 위장술은 실로 감쪽같다. 하도 정교하다 보니 웬만큼 세밀한 관찰력이 아니고서는 일쑤 속아 넘어가게 되어 있다.
이들의 위장은 무엇보다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함이 그 목적이다. 물리적 약자가 생존을 보장받기 위한 수단으로는 위장만 한 무기도 없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위장이야말로 먹이사슬의 하위 계층이 상위 계층에게서 목숨을 지켜낼 수 있는 최대의 호신술일 터이다.
꼭 방어의 목적만은 아니다.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공격의 방편으로도 위장은 아주 훌륭한 전술이 된다. 뱀이며 악어 같은 포식동물들의 위장은 강자가 지닌 최적의 무기다. 특히,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기 위해서는 위장이 무상無上의 위력을 발휘한다. 방어할 마음의 준비가 채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을 받게 되면 완전히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물들의 삶이 이렇게 서로 속고 속임의 치열한 먹이사슬을 이루어 굴러가듯,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맺음 또한 위장으로 팽팽한 역학적 질서를 이루어 영위되는 성싶다. 좀 성급한 예단인지는 모르겠으되, 이런저런 사람살이 가운데 실상 위장 아닌 것이 있을까 싶다.
연애를 해 본 이들이라면 맞장구쳐 줄 줄 믿는다, 연애가 상대의 환심을 사기 위한 일종의 위장이라는 것을.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다. 연애를 시작하면 무엇보다 위장술부터 는다. 평소엔 좀생원같이 인색한 사내라도 이때만큼은 상대의 마음을 얻으려고 아낌없이 지갑을 열어 댈 것이고, 보통 땐 말괄량이처럼 덜렁대는 갓나희라도 이 순간만큼은 어쨌든지 상대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있는 애교 없는 애교를 다 동원할 것이다. 남자는 여자 앞에서 애써 터프가이답게 보이려 허세를 부리고, 여자는 남자 앞에서 괜히 순진녀인 척 내숭을 떤다. 자연히 좋은 면만 눈에 들어오고 나쁜 면에는 콩깍지가 씌게 마련이다.
한동안 이런 상태로 줄다리기가 이어지다, 막상 결혼을 하고 나면 상황은 백팔십도로 바뀌어 버린다. 위장이 비로소 허물을 벗으면서 베일에 싸여 있던 부분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때까지 그저 좋게만 여겨지던 상대의 장점은 어느 틈에 모습을 감추고, 대신 숨어 있던 단점들만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연애는 환상이고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여자들에게는 화장이라는 위장의 전략으로 이성을 유혹하려는 선험적인 기질이 내장되어 있는 것 같다. 이때의 위장은 이성으로부터 선택을 받으려는 고도의 심리작전인 셈이다. 마치 화려한 빛깔로 벌, 나비를 유혹하려는 꽃나무들의 종족 번식 본능과 흡사하다고나 할까. 수컷 공작새가 암컷을 향해 부챗살처럼 꽁지깃을 펼쳐 춤을 추는 동작이나, 여자들이 애교스러운 몸짓으로 남자들 앞에 교태를 부리는 행위 역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는 아니할 성싶다. 이로 미루어 살피면, 무릇 겉모습이 아름다울수록 상대를 끌어들이는 데에 유리한 조건이 됨은 모든 생명체의 공통된 속성일 것이다.
위장은 적을 무릎 꿇리기 위한 더없이 훌륭한 방편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위장을 논함에 있어 군사 이야기가 빠져서는 내용이 영 싱거울 것 같다. 작전상 전술과 전략을 짤 때 무엇보다 위장이 큰 몫을 담당한다. 말하자면 힘의 논리가 아니라 지혜의 논리라고 할 수 있겠다. 중국 고대의 손자병법에 나오는 삼십육계 가운데 하나인 ‘성동격서聲東擊西’는 군사작전에서의 대표적인 위장술이라 해도 좋으리라. 상대의 관심을 한쪽으로 돌려놓고 정작 공략하는 곳은 그 반대편 쪽이다. 이를테면 뒤통수치기 수법이라고나 할까. 공격하는 측으로선 그리 힘들이지 않고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치명상을 입는다.
팽팽한 대치로 항시 경계의 끈을 늦추지 못하는 군사분계선 최전방의 야간수색에서도 위장은 절대의 위력을 발휘한다. 굽이굽이 파고波高를 이룬 능선 저 너머에 서서히 어둠이 내리면, 병사들은 오늘 하루의 무사 안전을 위해 위장에 분주해진다. 이때가 그들에겐 가장 긴장되는 시간이다. 콧잔등이며 이마 그리고 광대뼈……, 불빛이 반사되는 얼굴 부위 부위마다 고루고루 숯검정이 칠해진다. 얼마나 위장에 공을 들였는가가 그들의 명줄을 쥐락펴락한다. 어설픈 위장으로 자칫 적에게 발각이라도 되는 날에는 목숨마저 위태로워진다. 이처럼 위장의 잘잘못 여부에 따라 승패가 갈릴 수 있고 보면, 이때의 위장은 곧 생사 문제와도 직결된다.
겉모습으로 하는 위장은 차라리 소박한 것인지도 모른다. 말이며 얼굴 표정으로 부리는 변신이야말로 멀쩡한 사람을 후려갈기는 시퍼런 위장술이 아닐 수 없다. 속마음과 다르게 살살 눈웃음치기를 잘하는 아첨꾼들은 이 위장술에 관한 한 천부의 재능을 타고난 위인들이다. 까마귀 떼는 시체나 쪼아댈 뿐이지만 아첨의 떼는 생사람을 먹어 치운다. 한번 거미줄에 걸려들면 어떠한 곤충도 헤어나기 힘들듯, 일단 이들의 아첨에 맛을 들이면 성인군자 아닌 이상 판단을 그르치기가 십상이다. 그만큼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들이야말로 실상 가장 위험천만한 부류에 속한다.
여우의 탈을 쓴 간교스러운 행동이 흔히 ‘겸손’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기도 한다. 겸손과 아첨은 종이 한 장 차이에 지나지 않을 만큼 그 경계가 모호한 까닭이다. 설사 제삼자의 입장이 되어 냉철하게 살펴본다 해도, 이 둘을 구분해 낸다는 것은 일란성 쌍둥이를 분별해 내는 것처럼이나 어려운 일이다. 국외자일 때에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당자에게 있어서이랴. 그래서 일찍이 공자 같은 성인도 “지나친 겸손은 예가 아니다”라고 가르쳤고, 철학자 스피노자도 겸손을 일러 “야심가의 위선이거나 아니면 노예근성의 비굴함”이라고 설파하였는가 보다.
근천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낮추어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일수록 대개 파리처럼 비비기를 잘한다. 속마음을 감추고 어떻게든 상대의 눈에 차게 보이려고 갖은 수단을 부린다. 타인의 가식적인 행위에 쉽사리 녹아 들어가는 것은 인간이란 존재의 타고난 약점 때문인가 보다. 누구든 그런 사람들의 행동 앞에서는 괜히 우쭐해지게 마련이다. 자신을 위장하는 일에 능수능란한 아첨꾼은 이 약점을 활용하는 데 생래적으로 예민한 감각의 촉수를 지닌 종족이다. 그래서 위장은 사회적인 출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여 위장이란 것을 꼭 나쁘게만 여길 일도 아니다. 때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분을 트는 데 있어 위장만 한 것도 없다. 너무 정세하게 정체가 까발려지면 관계 맺음이 어려워진다. 살아가다 보노라면 보아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알아도 모르는 척 적당히 눈감아 주고 덮어 주어야 할 경우가 생겨나는 것이 우리네 세상살이 아니던가. 이것은 상대를 배려하려는 선의의 위장이다. 절친한 벗이 전혀 뜻밖의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도 못 본 척 넘어가 주는 것은 그의 올곧은 성품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고, 다소곳하던 아내가 평소 같지 않게 다소 과격한 언사를 내질러도 못 들은 척 덮어 주는 것은 그의 여린 본바탕을 믿기 때문이며, 성실한 아이들이 어쩌다 학교 성적을 조금 시원찮게 받아와도 모른 척 눈감아 주는 것은 누구에게서든 일시적인 침체기가 찾아올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나 역시 살아오면서 혹여 위장의 갑옷으로 무장을 한 적은 없었던가? 아니, 왜 없었을까. 돌이켜보면 순간순간이 위장의 연속이었다. 그것은 충직한 경호원이 되어 그림자처럼 항시 곁을 따라다녔다. 그 가운데서 여태 악의의 위장에만 밝았을 뿐 선의의 위장에는 지극히 인색했었던 것 같다. 위선의 가면을 쓰고 접근하는 데도 경계를 세우지 않았고, 위악의 몸짓을 취하고 달려드는 일에도 속내를 감출 줄 몰랐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듣고 싶어 도덕군자인 양 근엄하게 행동하려 한 적도 부지기수였으며, 본의 아니게 마음에 없는 애정 공세를 받았을 때는 일부러 위악적인 태도로 거부의 울타리를 꽁꽁 둘러친 일도 없지 않았다. 앞엣것의 몸짓을 취했던 데 대해선 심히 부끄럽고, 뒤엣것의 태도를 취했던 데 대해선 오로지 죄스러운 심정뿐이다.
요즈음 나는 이렇게, 지난날의 분별없었던 행실을 많이 뉘우치고 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의식적으로라도 선의의 위장 쪽에다 행동의 무게 중심을 두고 세상을 살아가려고 마음속으로 다짐에 다짐을 되풀이한다.
- 문장 웹진
첫댓글 갓나희가 계집이란 뜻이군요.
전혀 몰랐습니다. 그럴듯하게 글도 쓰고 말도 선비 같이 해서 위장이 그럴듯 해보이지만 눈 밝은 사람은 금방 알아챕시다. 그렇다고 눈이 침침해 모를 줄 알면 큰코 다치지요. 위장. 이 아침에 좋은 작품 대하니 기분까지 좋아집니다.
공산분자들이 입에 달고 다닌 "종 갓나 새끼" 라는 소리가 갓나는 남자 갓나희는 여자를 낮잡아서 부르는 비속어 였던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