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제 목 : "하나님이 힘주시면 삶이 행복해집니다."
+ 본 문 : 스바냐 3장 14절 - 20절 (구약성경 1309쪽)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 할지어다.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18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20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아멘!
오늘은 스바냐 3장 14절 - 20절 말씀으로 "하나님이 힘주시면 삶이 행복해집니다." 하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면서 힘을 얻고, 삶이 행복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40대 중반의 한 그리스도인이, 나이 많이 드신 어머님에게 손 편지를 보냈습니다.
최근 주일 아침 교회 가기가 싫어진다는 겁니다. 아들은 그 이유가 세 가지를 들었습니다.
첫째는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이 들고, 둘째는 대표기도자의 기도가 너무 길어서 짜증스럽고,
셋째는, 봉사자들의 준비가 부족해 예배 분위기가 안 살아나서, 교회 가기 싫다는 것입니다.
편지를 받은 어머님이 사랑하는 아들에게 회답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교회는 가야 한다.
그 이유는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주일예배 드리는 것은 선택이 아닌 명령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배하는 것은 라이프 스타일이지 네가 선택할 일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셋째 이유는, 그래도 네가 교회 담임목사인데 가야지 안 가면 되겠느냐?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까? 교회를 담임한 목사도 가끔은 신앙생활에 권태와 탈진,
자신의 목회는 물론 담임하는 교회 사역에, 낙심을 경험할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요즘 목사님들 만나 보면, 목회에 지쳐있고 많이 기가 죽어 있습니다.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목사와 교인들의 기가 죽어 있는 교회가 부흥될 리가 없고,
기업가와 사원들의 기가 죽어 있는 기업이 잘 될 리 없고, 남편과 아내의 부모와,
자녀의 기가 죽어 있는 가정이 행복할리 없으며, 기가 죽어 살아가는 자녀 손들이,
이 어려운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정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기가 죽어 있으면, 아무 것도 되는 것이 없으며, 승리할 수도 없습니다.
왜 기가 죽었습니까? 기운 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 하늘 백성들입니다.
지구촌이 전쟁으로 시끄럽고, 나라의 경제가 흔들려 덩달아 우리까지 살기 힘들며,
여러분! 세상 돌아가는 꼴이 말이 아니어도, 실망하거나 기가 죽어 살지 마십시오.
한 신혼부부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생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습니다.
새 색시가 애교를 부리면서 “자기 13번처럼 섹시해서 나랑 결혼했어? 아니면,
25번처럼 늘씬하고 예뻐서 나랑 결혼했어?“ 하고 물었더니, 신랑이 대답합니다.
“바로 그 유머 감각 때문이야.” 그러더랍니다. 빈말이라도 “그래, 당신은 섹시하고,
예쁘고, 그렇게 둘 다 갖췄기 때문에 내가 결혼했지!” 그러면 어디 덧납니까?
세상과 세상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맞장구 쳐 줄 뿐만 아니라,
내 인생의 기를 살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이 바로 나의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께서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스바냐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말씀의 배경은, 요시아 왕 통치시대입니다.
왕의 할아버지 므낫세와 아버지 아몬은 신앙적으로, 정치적으로 악한 왕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 태양신과 바알신상을 세웠고, 우상숭배와 매춘행위가 있었으며,
백성들은 한결 같이 가난과 사회적 혼란으로, 저마다 절망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부패할 대로 부패한 때에 겨우 여덟 살 된 요시아가,
왕위를 계승하게 됩니다. 뜻 있는 사람들은 나라의 멸망을 예견하고 기가 죽어 있었고,
백성들은 어린 왕에게 나라와 자신들의 운명을, 맡길 수 없어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유다는 주변국가들의 상황으로 볼 때, 멸망 직전의 위기 그 자체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바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만히 비교해 보십시오. 지금 우리나라는,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부패할 대로 부패해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여덟 살 아이처럼,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백성들이 얼마나 힘든지 전혀 알지 못한 체, 엉뚱한 일에,
정신 팔려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전쟁으로 물가가 폭등했습니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자신의 직을 유지하기 위해서, 표 얻는 일에만 관심을 둡니다.
그래서 스바냐 선지자의 심정으로, 하나님이 선포하신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다시 오늘 본문 말씀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렇게 안으로, 밖으로, 혼란과 부패로,
절망과 멸망의 위기가 찾아 왔으나, 스바냐 선지자는 예루살렘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아직도 기운을 낼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스바냐 선지자는 선포한 것입니다.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기운을 내라!”
“기죽지 말고 힘을 내라!” “힘들고 어렵지만, 밝아오는 구원을 보며 오히려 노래하라!
기뻐하라! 즐거워하라!“ 안으로 보나, 밖으로 보나, 혼란과 부패로 인한 절망과,
멸망의 위기가 찾아 왔는데도, 스바냐 선지자는 도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그 백성에게,
“힘을 내라! 기죽지 말라. 기뻐하라! 즐거워하라!” 는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했을까요?
오늘 본문에는 절망의 시대에서도 우리가 힘을 내야 할 중요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 첫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5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아멘! -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 백성의 죄를,
다 용서하셨기 때문에, 절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므낫세와,
아버지 아몬의 끔직한 죄를 어린 왕 요시아에게 형벌로 내리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때때로 왜 위축되고 움츠려 듭니까?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나를 지배하는 죄의식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으며, 내가 당연히 살아야 할 삶의 모습이 없으며,
그래서 자기 자신 스스로 양심을 위반했다는, 죄의식이 우리를 계속해서 괴롭힙니다.
내게 고난과 아픔이 있고, 질병이 찾아 올 때면 하나님이 나를 떠난 것 아닌가?
하나님께서 내게 형벌로 내린 무서운 아픔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좌절하게 되고,
우리는 삶의 의욕과 용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내게 닥친 이 모진 환란이,
행여 하나님의 돌이킬 수 없는 형벌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움츠려 들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왕으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왕으로 오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면권을 행사하십니다. 그리고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적을 쫓아내시고, 함께 하시므로 우리로 두려워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자녀 된 우리들에게 스바냐를 통해 분명히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네 형벌을 제하였다. 그러니 하나님의 백성들아 기운을 내라!“
유명한 소설가 헤밍웨이의 단편집 가운데 “세속의 신전” 이라는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배경은 스페인입니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한 아버지가 집을 나간,
아들을 용서하고 서로 화해하기로 결심하고, 신문에 이렇게 광고를 냈습니다.
“파코야, 아빠가 용서했다. 그러니 아무개 날 화요일 정오에 몬타나호텔에서 만나자!“
파코라는 이름은 스페인에서 흔한 이름입니다. 아버지가 약속한 장소에 나가자,
파코라는 이름을 가진 800여명의 젊은이들이, 자기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헤밍웨이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용서가 필요함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 용서의 은혜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죄 사함 받은 사람에겐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통하여 용서받았을 때, 우리는 나를 정죄하는 어떤 소리에도 자유롭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지 마시고 “기운을 내십시오.
기죽어 살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형벌을 제거하셨습니다.“ 아멘!
우리가 힘을 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7절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아멘!
노벨 문학상 수상작품인 “닥터 지바고” 를 보면,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장군과 타냐와의 대화입니다. 장군이 타냐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어떻게 아버지와,
헤어지게 되었냐?“ 타냐가 말하기 싫은 태도를 지으며 대답합니다. ”혁명 중에 거리는,
불바다가 되고, 군중들의 요란한 소리로 복잡한 상황에서 아버지와 헤어졌어요.“
장군이 다시 묻습니다. “정말 아버지와 어떻게 헤어졌어? 솔직히 한 번 말해 보아라.”
그러자 타냐가 대답했습니다. “사실 아버지가 내 손을 놓고 빨리 달려 가셨기 때문에,
아버지를 놓치고 말았어요.“ 아버지가 딸의 손을 붙잡고 도망치다가 딸의 손을 놓고,
혼자 달려가는 바람에 헤어졌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장군이 타냐에게 말하기를,
“내가 사실을 말해주마. 도망친 로마노프는 사실 너의 친아버지가 아니란다.
너의 아버지는 닥터 지바고야! 만일 그가 네 친아버지라면 아무리 거리에 불이 나고,
아무리 복잡해도 결코 네 손을 놓치지 아니 했을 것이란다.“ 하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때서야 타냐는 로마노프가 자기 아버지가 아니고, 닥터 지바고가 아버지임을 압니다.
진짜 아버지라면, 어린아이가 위기에 처했을 때, 버리지 않고 안고 뛰었을 것입니다.
그는 진짜 아버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이를 내동댕이치고 혼자서 도망간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시는 분이기에, 우리를 너무 너무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나를 붙잡는 손을 결코 놓치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은 힘이 있어,
우리를 붙들고 있는 하나님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아 갈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나의 육신의 아버지보다, 더 찐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에,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시기 전, 제자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겠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 아멘!
그러므로 여러분의 두 손을 힘 있는 하나님 아버지께 온전히 맡기십시오.
“주님여! 이 손을 꼭 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 몸을 폭풍우 흑암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 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여 날 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 기울이시사 손잡고 날 인도 하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결코 나 혼자 가지 않게 하시고,
끝까지 날 붙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함께 계시면,
우리는 결코 넘어지거나 쓰러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믿음만 가졌다면,
우리는 결코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끝까지 날 붙들어 주십니다.
미국 텍사스에 잭 테일러(Jack Tailor) 라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목사님은 부흥회를 하실 때마다, 그 표어가 언제나 “임마누엘” 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말씀만 선포합니다. 그는 대단한 부흥사도,
대단한 설교가도 아닌데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라는 이 메시지만 가지고서,
한 주일동안 가르치고 나면, 그 부흥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삶이 180도 바뀌어집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이 임마누엘의 복음은 그만큼 힘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작은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무거운 짐을 가슴에 끌어안고 몸부림 칠 때,
모든 것을 팽개치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 오늘 본문 17절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아멘!
오늘 절망의 시대 속에서도 우리가 힘을 내야 할 세 번째 이유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너무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아멘!
여러분!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말씀입니까? 정말 가슴 떨리는 말씀 아닙니까?
나를 볼 때 따뜻한 연민과 애정을 느끼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나 000 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나 0 0 0 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나 0 0 0 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아멘!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바냐를 통해 주시는 이 얼마나 가슴 뛰게 하는 말씀입니까?
여러분!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은 이 땅의 권세자나 부자나 유명인이 아닙니다.
온 우주의 창조자요. 주인이신 하나님이십니다. 무엇보다도 그분은 나의 아버지시오.
나는 그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시고,
나는 나의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당당하게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아멘입니까?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잠잠히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 왜 잠잠히 사랑하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강력히 사랑하시면, 우리는 그 강력한 하나님 사랑에 감전되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정면으로 마주치거나, 강한 성령님에 직접적으로 부딪치면,
우리는 숨도 못 쉬고 죽습니다. 그래서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아주 잠잠히,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감당할 만큼, 잠잠히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잠잠히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볼 때마다 너무너무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즐거이 나를, 그리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지금 부르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기가 죽어 있습니까? 힘을 내십시오. 기뻐하십시오. 즐거워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얼굴을 볼 때마다, 기쁨에 겨워 춤을 추고 계십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의 눈동자는 빛나며,
그 얼굴은 윤기가 있고 광채로 빛납니다. 그래서 그의 표정은 항상 밝습니다.
항상 환하게 웃습니다. 항상 긍정적입니다. 항상 행복이 철철 넘쳐 흐릅니다.
목회를 하면서 얻은 결론이 있습니다. ‘아, 인간의 모든 문제의 해답은 사랑이구나!’
인간의 모든 문제는 이 하나님의 사랑, 사람의 사랑이 모자라서 생기는 문제들입니다.
누군가의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만큼, 사람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 없습니다.
사랑받지 못하면 자기 가치를 상실해 버립니다. 생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 받으면 자기가치를 발견합니다. 사랑받는 것 때문에 살 의미를 찾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먹고 사는 사람은, 당당하게 인생을 헤쳐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축복 찬양으로 너무 너무 좋아하고, 자주 부르는 찬양이 있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 축복찬양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만 아니라,
교회 밖의 사람들도 부르고, 심지어 핸드폰 신호음으로 1위를 차지할 정도입니다.
이 축복 찬양은 예수전도단에서 활동하는 이민섭이란 젊은이가 예수 믿지 않는,
아버지를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해 쓴 곡입니다. 그 축복 찬양 가사 가운데,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이 부분이 찬양의 핵심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사실은 인생을 살맛나게 만드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며, 나를 잠잠히 사랑하고 계신데,
왜 기가 죽어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이 복음은,
정말로 저와 여러분의 가슴을 뛰게 하는 말씀이 아닙니까? 이 하나님의 사랑은,
비록 초막에서 살지만 궁궐에서 사는 것보다 더 행복하게, 지옥을 천국으로 만듭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기운을 내고, 생기 넘치는 얼굴을 보이십시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 나는 적어도 하나님 사랑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다.
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와 맞바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소중한 가치 있는 존재다.“
여러분! 우리 모두 이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 받는 얼굴을 보여주며 삽시다.
망해 가는 마지막 불꽃을 부둥켜안고 기가 죽어 있던 유다 백성들이,
이 희망의 메시지를 듣고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여덟 살, 요시아 왕과 함께,
온 백성들이 부패 청산을 위한 대 개혁운동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기죽어 살지 말라.
네 어깨를 늘어뜨리고 살지 말라. 용기를 내라. 힘내라! 오히려 찬양하고 기뻐하라!“
이 말씀을 듣고, 요시아 왕과 온 유다 백성들은 펄펄 뛰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백성들은 도끼를 가지고 우상의 신당들을 부수고, 성경을 펴 말씀을 읽기 시작합니다.
세속에 물든 습관을 저주하고, 엎드려 통회 자복하며 기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미움과 원망 대신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화해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구원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가 사랑하십니다. 축복하십니다.”
이 말씀을 선포하며, 만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운 내십시오. 당당하게 일어나십시오. 기죽지 마십시오.
어깨를 활짝 펴십시오. 꽉 막혀버린 돈 줄 때문에, 내 맘대로 안 되는 가족의 문제,
고통스러운 병마 때문에 힘이 빠지십니까? 기운 내십시오. 당당하게 일어나십시오.
기죽어 살지 마십시오. 어깨를 활짝 펴십시오. “구원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렵지만, 밝아오는 구원을 보며, 오히려 노래하라! 기뻐하라! 즐거워하라! 할렐루야!
여러분! 오직 하나님만이 온 세계 역사의 운행자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십니다.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로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고 계십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주님의 능하시고 사랑스런 손길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시온아,
기운을 내라! 우리교회 모든 성도들아, 기운을 내라! 한국교회여, 기운을 내라!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사랑스러운 손길로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