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깐 이 잘난 친 서민 정부가 국고채 (빚) 내서, 딸라 사들여서,
재벌 돈 벌이 도와주느라고, 환율 존나 올리고, 수입물가 자동으로 상승시켜서
물가 이빠시 올렸다는 정황증거를 포착했다는 이야기.
(이하본문)
문제는 고환율 정책이지 환율대폭등 림보가 아닙니다. 7월 무역수지 흑자는 57억달러에 달했습니다. 유럽위기와 천안함 사건으로 공포와 혼란이 극에 달한 지난 5월달조차 환율은 1300원선에 올라가보지도 못했습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림보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계속되고 있는 정부의 고환율 정책을 모르는 사람이 아직도 많습니다. 정부의 고환율 정책은 수입물가를 상승시켜 대한민국 시민과 기업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있습니다.
또한 외국인 투자유입을 가로막아 우리나라 투자활성화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다음 글은 2008년 9월 출간된 [거짓말 경제학]에서 발췌한 것으로 08년 초부터 정부가 어떻게 고환율정책을 펼쳤는지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008년 6월 말 기준 달러 환율은 1044원이었다. 작년 10월말 기록한 최저수준 901원보다 무려 16%나 상승했다. 또 2008년 5월의 엔화 환율은 1년 전 대비 35%나 상승했고, 유로환 환율은 2년 전 대비 40% 이상 상승했다. 그만큼 수입가격이 상승한 셈이다.
(중략)
그래서 2008년 5월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은 달러가 약세인 미국(4.2%)보다 더 심각한 4.9%이다. 일본의 물가상승률은 1.3%에 불과하고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은 모두 3% 초반이다.
환율 상승이 물가불안의 주범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언론과 경제전문가들이 이 문제를 본격 제기하자, 정책당국은 인위적인 환율방어를 하지 않았다고 강변한다.
'환율방어는 국가방위와 마찬가지'라고까지 언명했고, 이런 발언도 환율방어를 위한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기까지 했다.
인위적으로 환율방어를 했다는 증거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증거는 의외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은행 조사통계월보"에 따르면 2008년 1~3월 사이 국제수지는 48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외환보유고는 그만큼 줄었어야 했다. 그러나 외환보유고는 2007년 말부터 2008년 3월 말 오히려 약 20억 달러가 증가했다.
국제수지가 적자라면 당연히 외환보유고가 줄어야 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외환당국이 인위적으로 외환을 사들이지 않으면 절대 이런 일은 벌어질 수 없다.
국제수지 적자와 외환보유고 증가액을 합산하면 약 68억 달러에 이르는데(48억달러+20억달러=68억달러) 최소한 이 액수만큼은 정책당국이 외환을 사들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것을 당시의 월평균 환율로 환산하면 6.5조 원이다. 그런데 매월 1조 원 이상의 흑자를 기록한 재정수지에도 불구하고, 국고채 발행잔액이 2007년 말에서 2008년 3월 말 사이에 약 6조7천억원 증가했다.
즉, 국고채를 발행해 거둬들인 돈을 대부분 달러화 매입에 사용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실제로 그 둘의 금액은 거의 일치한다.
환율방어가 물가불안의 근본적이고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했음이 자명하다. 작년 수입총액은 GDP의 47%에 이르는데 실제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작년 말 3.6%에서 2008년 7월에는 5.9%까지 수직 상승했다.
생산자물가상승률은 더 심각해 같은 기간에 3.6%에서 12.5%까지 가파르게 올랐다.>-[거짓말 경제학, 최용식] 21~2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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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리족, 나치 독일과 일제의 비참한 패망 사이 관계
1800년대 초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유럽인과 접촉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머스킷 총과 감자가 전해졌는데 이는 끔찍한 전쟁을 촉발하게 된다. 바로 "머스킷 전쟁"이라 불리는 전쟁이다. 그런데 유럽인들과 가장 먼저 접촉한 것은 북쪽의 마오리 족들이었다.
머스킷 소총으로 무장하고 감자란 신작물을 통해 농업생산성을 높여서 군량을 조달가능해진 북쪽의 마오리족은 곧바로 부족전쟁에 돌입했다. 그리고 머스킷과 감자를 얻은 부족이 못 얻은 부족을 일방적으로 학살하는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아시다시피 부족사회 전쟁은 종종 인육먹기로 끝나는 잔인하기 그지없는 전쟁이다. 돌도끼와 활을 머스킷으로 대신했을 뿐 다른 모든 부문이 중국 등 여타 사회와 비교해 현격하게 후진적이었고 그러한 결과는 끔찍한 잔인성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당시 뉴질랜드 마오리족 4분의 1이 전쟁 중에 죽었다고 한다. 대부분 학살의 결과였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그 비참한 실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뉴질랜드에서 동쪽으로 800km 정도 떨어진 채텀 제도에서 수세기에 걸쳐 살아오던 모리오리족은 1835년 12월에 갑자기 자유를 잃었다. 그해 11월 19일, 총과 곤봉과 도끼로 무장한 500명의 마오리족이 탄 배가 도착했고 12월 5일에는 다시 마오리족 400명이 더 왔다. 마오리족은 몇패로 나뉘어 모리오리족의 촌락들을 누비고 다니면서 모리오리족은 이제 자기들의 노예라고 선언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죽여버리기 시작했다.
(중략)
그로부터 며칠 사이 그들은 수백 명의 모리오리족을 살해하고 많은 시체를 요리해 먹었으며 남은 사람들은 노예로 삼았고, 더구나 그들마저 몇 년 동안 닥치는 대로 마구 죽여서 대부분을 없애버리고 말았다. 모리오리족의 생존자는 이렇게 회상했다.
"마오리족은 우리를 양 떼처럼 죽이기 시작했다. (...) 우리는 겁에 질려 적들을 피하기 위해 숲으로 도망치거나 땅을 파고 숨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우리는 곧 발각되어 죽임을 당했다.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 아이들까지 무차별로 학살당했다."
한편 정복자인 마오리족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우리의 관습대로 그 섬을 점령했으며 놈들을 모조리 사로잡았다. 한 명도 벗어나지 못했다. 더러는 도망쳤지만 우리가 곧 죽여버렸고 다른 놈들도 죽였다. 그러나 그게 어쨌단 말이냐? 우리는 관습에 따랐을 뿐이다.">-[총,균,쇠], p73~74
머스킷과 감자를 먼저 얻었을 뿐 북쪽의 마오리족이 특별히 더 진보된 사회나 국가는 아니었다. 단지 유럽인이 북쪽에 먼저 왔고 그래서 먼저 그것들을 얻었을 뿐이었다. 머스킷과 감자를 얻지 못한 마오리족이 특별히 그들보다 후진적이었나? 전혀 아니었다. 정복자 마오리족이 모리오리족을 학살하고 한 변명은 그들 사회가 더 발전한 건 없었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똑같은 부족사회였을 뿐이다. 고만고만한 부족사회 수준의 정치, 사회, 문화에 걸맞는 행위를 했다. 단지 머스킷과 감자란 선진문물을 가졌을 뿐이다.
독일과 일본의 무자비한 전쟁은 마오리 머스킷 전쟁과 그 맥락이 전혀 다르지 않으며 패망은 예정된 결과였다. 독일이나 일본이 영국이나 네덜란드보다 발전된 사회였는가? 중국보다 발전된 사회였는가? 아니다. 단지 영국의 산업혁명으로부터 비롯된 물질적 성과를 빠르게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 결과 경제가 빠르게 성장했는데 여전히 중국과 영국이나 네덜란드에 비교해 정치, 사회, 문화, 제도에서 많이 뒤쳐졌다. 그런데도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는 기현상이 일어났으니 그만큼 영국 산업혁명의 물질적 성과는 강력하면서도 특수한 원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경제사에선 <영국의 산업혁명>과 영국 이외 나라의 <후발산업화>를 명백히 구분함으로써 이러한 특성을 어느정도 인정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독일이나 일본이 물질적 성과 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등 다른 발전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오랫동안 후진적인 사회가 스스로 한계를 벗기란 쉽지 않았다. 한때 유럽 최고의 강대국으로 떠오른 독일은 무모한 전쟁을 강행했고 1차대전에서 참담하게 패배했다. 그러나 거기서도 자신들의 잘못을 배우지 못했다. 마오리족이 부족사회의 관습대로 모리오리족을 죽이고 그 인육을 거리낌없이 먹어치웠듯이 독일은 야만적이고 후진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2차대전을 일으킨 독일은 천만명 이상의 소련인-민간인 학살도 극심했다-을 거리낌없이 학살했으며 집시, 유대인 등도 거의 수백만 명을 학살했다. 1618년 일어난 30년 전쟁 당시 독일인이 서로 자행하던 끔찍한 학살을 그대로 재현했다. 단지 산업화의 물질적 결과물을 이용해 참사만 확대시켰을 뿐이다.
다시말해 독일이 저지른 전쟁범죄는 우연의 결과가 아니며 역사적 후진성을 극복하지 못한 사회가 우월한 물질적 성과를 거저 얻었을 때 생기는 참사로써 마오리족 머스킷 전쟁과 다른 점이 전혀 없다.
소련이 승전과 더불어 독일인에게 그대로 갚아주니 강간당한 여성만도 200만 명에 이르렀다. 학살당한 사람도 엄청났다. 우월한 물질적 성과로 고작 야만적인 행위를 한 독일의 자업자득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일본 또한 마찬가지였으며 어떤 점에선 독일보다 더 야만적이었다. 우리나라와 중국 등 곳곳에서 학살을 자행했다. 또한 실제로 일본군은 마오리족처럼 인육을 먹었으며 심지어 연합군 병사를 진짜 술안주로 삼기도 했다. 물질적 성과를 먼저 얻었다고 역사적 후진성이 바로 극복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독일과 더불어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다.
마오리족 머스킷 전쟁의 본질과 독일, 일본의 무자비한 전쟁의 본질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또한 800년 전 몽골제국은 인종이나 종교적 이유를 들어 학살을 자행하지 않았으니 도대체 몽골제국보다 당시 독일, 일본이 나았던 게 물질적 성과 말고 무엇이 얼마나 더 있던가?
21세기경제학연구소 자유게시판-[마오리 족의 머스킷 전쟁과 독일, 일본의 패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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