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9월. 며칠 전 박주대는 안응칠(안중근)이란 젊은 청년의 의거에 대해 들었다.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일본의 선봉장 이등박문을 하얼빈에서 쏘아 죽였다는 쾌거였다. 그런데 조정에서는 이 일로 한참 시끄러운 모양이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일본 정부는 죽은 이등박문에게 문충이란 시호를 내리고 왕의 예로서 장례를 치른다고 한다. 게다가 장례 부의금이 30만원이나 된다고 한다.
대구에서 예천에 통문이 왔는데, 이등박문을 ‘이등태사’ ‘성언태사’ 등으로 칭하면서 아국을 보호해준 은인이라고 하였다. 더불어 한 미친 역적이 변을 일으킨 데 대하여 우리가 꼭 동경에 가서 대죄해야 한다는 망언을 늘어놓고 있었다. 또 이 통문에는 매읍마다 1명의 대표를 뽑아 사죄단을 일본에 보내자고 말하고 있었는데, 말미에 윤모 등 여러 사람이 연명하여 서명하였다. 이에 따라 각 읍에서 일본에 갈 대표들을 상경하였는데, 일본인들이 돌려보냈다고 한다.
또 다른 통문에서는 일본에 사죄하러 갈 대표들의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호당 4전씩을 거두라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이 통문을 받아든 사람들 중 아무도 그와 같이 행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예천 고을에서는 이 명령이 시행되지 않았다. 이등박문의 죽음을 속 시원해 하지 않는 이가 없는데, 거기에 조문을 보내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출전: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 테마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