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문정희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라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 냄새가 차오르고
이내 두 눈이 젖어온다
흙은 생명의 태반이며
또한 귀의처인 것을 나는 모른다
다만 그를 사랑한 도공이 밤낮으로
그를 주물러서 달덩이를 낳는 것을 본 일은 있다
또한 그의 가슴에 한 줌의 씨앗을 뿌리면
철 되어 한 가마의 곡식이 돌아오는 것도 보았다
흙의 일이므로
농부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않고
겸허하게 농사하고 불렀다
그래도 나는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면
눈물샘 저 깊은 곳으로부터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가 들려온다
하늘이 우물을 파놓고 두레박으로
자신을 퍼 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문정희1947~
시집으로 『새떼』 『남자를 위하여』 『별이 뜨면 슬픔도 향기롭다』 『사랑의 기쁨』 등이 있다. 현대문학상, 소월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 읽기> 흙/문정희
그 이름 속에서 두레박이 딸려온다
아이들이 걸음마를 배우고 세계로 나아가 맨 먼저 하는 것은 흙장난이리라. 생각해보라. 우리는 어려서 모두 흙강아지라 불리지 않았는가. 흙에는 달의 샘이 숨어 있나보다. 흙을 만지고 놀다가 상처라도 나면 할머니는 자기 손이 약손 이라며 흙 한줌을 훌훌 뿌려주곤 했지. 흙 흙 흙 하고 불러보면 그 이름 속에서 말간 달의 눈물로 생명을 씻겨 내는 두레박이 딸려온다.
―박형준 엮음, 『당신에게 그 어떤 위로보다』, 사흘,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