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장산
정순자
집 거실에 앉아
마주 바라볼 수 있는 식장산
어느 날에는 반가움을
어느 날에는 그리움을
어느 날에는 사랑스러움을
어느 날에는 비에 흠뻑 젖은 애처로움을 주는 식장산
오늘은 어제보다 더 붉게 물들었고
산그늘 또한 연인끼리 마주한 듯 아름답다
한 번도
한눈팔지 않고
무던하게 그 자리에 있어 주어
내가 안기고 싶은 따스한 품속 같다
나 또한 이사할 생각을
1도 하지 않았다
식장산食藏山은 대전시 동구와 충북 옥천에 위치한 산이며, 해발 598m로 대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백제군이 군량미를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식장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하고, 다른 한편, 전우치가 3년 동안 먹고도 남을 만한 보물을 이곳에 묻어 놓았기 때문에 식장산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 어진 사람은 조용히 명상을 즐기며 살고, 지혜로운 사람은 고귀하고 위대한 일을 꿈꾼다. 어진 사람은 오래 살고,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게 산다.(공자)
한국의 백두산, 중국의 태산, 일본의 후지산, 그리스의 올림프스산, 이탈리아의 알프스 등은 그 민족의 명산들이고, 그들은 모두가 다같이 그 넓고 큰 명산의 옷자락에 안겨 산다. 산은 모든 문명의 발상지이며, 모든 영웅들의 마음의 고향이라고 할 수가 있다.
“집 거실에 앉아/ 마주 바라볼 수 있는 식장산”, “어느 날에는 반가움을” 안겨주고, l“어느 날에는 그리움을” 안겨준다. “어느 날에는 사랑스러움을”을 안겨주고, “어느 날에는 비에 흠뻑 젖은 애처로움을” 가져다가 준다. 산의 시간은 ‘느림의 시간’이며, 따라서 ‘식장산의 무대’는 어진 사람의 무대이며, 자본에 의하여 정복당하지 않은 산이라고 할 수가 있다. 사시사철,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서 반가운 사람과 그리운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과 애처로운 사람을 생각하며, 그들과 영원히 함께 살아가게 된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붉게 물들었고/ 산그늘 또한 연인끼리 마주한 듯 아름답”기만 한 산, “한 번도/ 한눈 팔지 않고/ 무던하게 그 자리에 있어 주어/ 내가 안기고 싶은 따스한 품속” 같은 식장산----.
오늘날은 거대한 것은 금은보화와도 같고, 빠른 것은 돈 쌓이는 속도와도 같지만, 그러나 정순자 시인의 [식장산]은 ‘느림의 시간’이며, 우리들의 어머니와도 같은 산이라고 할 수가 있다.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사라지고, 개인으로서의 나와 시민으로서의 나와 그리고 국민으로서의 내가 영원불멸의 삶을 살며, 우리 한국어와 우리 한국인들의 영광을 위해 시를 쓸 수 있는 곳이 바로 [식장산]이라고 할 수가 있다.
오오, 식장산이여!
우리들의 영원한 [식장산]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