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의 길 2
청명한 가을에 고향 막역지우 부부와 함께 울릉도를 향했다. 쾌속선이 900여 명을 태워 3시간 만에 도동항에 다다랐다. 항구 입구에는 악단들이 줄지어 춤과 악기를 연주하며 우리를 맞이하는 듯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독도의 날이라 기념하는 것이었다.
섬 일주를 돌아보았다. 이제 마지막 구간이 개통되어 한 바퀴를 돌아올 수 있었다. 또 굴이 왕복 단선이 복선으로 되어 있어 교통이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또 8년 전에는 북면 천부에서 나리 분지를 걸어갔는데 관광버스가 다니고 있었다. 그곳에도 여러 가구가 살며 생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넓은 분지에는 마가목이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돌아오면서 그때 만났던 가수 이장희의 울릉 천국을 돌아보았다.
다음날 쾌청한 날씨라 독도의 길이 열렸다. 일행들은 독도로 가고 나는 성인봉에 올랐다. KBS 중계소에서 오르는 길을 택했다. 30여 년 전에 직장 동료들과 올랐으나 가는 길이 전혀 생소한 길이었다. 단출하게 생수 한 병(500ml)과 캔맥주 한 병(375ml), 약간의 사탕을 지니고 올랐다. 이른 시간인지 오르는 사람을 만나기는 가물에 콩 나듯 했다.
이정표가 길을 안내하여 불편함이 없었다. 가는 동안 젊은 친구 2명과 50대 부부를 만났다. 정상에서 젊은 연인과 몇 사람을 만났다. 정상에 올랐더니 성인봉(聖人峯) 986m 표지석이 우뚝 서 있었다. 건너편에는 공군 레이다 기지가 마주하고 있었다. 3.8km를 1시간 40분에 올랐다. 아직도 건재함을 느끼며 팔순 때 다시 오를 각오를 마음에 새겼다. 맥주 한 캔을 마시니 그 맛은 무어라 형언할 수 없었으며 행복했다.
독도를 향한 아내에게 연락했더니 곧 다다른다고 했다. 하산 길에 쉬엄쉬엄 오는데 그제야 많은 사람이 헉헉거리며 올라오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으며 내려왔다. 내려온 시간은 1시간 20분이었다. 호텔에 돌아와 사워하고 독도 갔다 오는 일행을 맞으러 부두에 갔다. 일행을 만나 점심을 먹으며 호박 막걸리를 곁들었는데 맛이 일품이었다.
오후에 봉래폭포를 갔다. 버스는 좁은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랐다. 거기서 하차하여 가파른
산길을 따라 헉헉거리며 올랐다. 드디어 폭포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산 중턱에서 쏟아지는 폭포가 젊은이의 기상처럼 우렁하게 내렸다. 물이 땅에서 솟아 폭포가 되어 내리며 그 물이 상수원으로 이용된다고 했다. 자연의 조화와 신비가 느껴졌다.
저녁에는 독도를 지키는 한 여인을 만났다. 도동성당을 찾았다. 성당은 울릉군청 옆 높드리에 있었다. 그곳에는 수백 개의 계단 위에 불을 밝히며 성모상이 독도를 지키고 계셨다. 아내와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고 성전으로 들어갔다. 관광에 온 낯선 이들과 함께 특전 미사를 봉헌했다.
마지막 날에는 자유시간이었다. 바다와 도동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랐다. 그곳에서 멀리 독도가 손바닥 크기로 까맣게 아른거리며 보였다. 도동항이며 읍내가 내려다보였으며, 멀리 성인봉과 공군 기지도 눈에 들어왔다. 거기서 간식과 커피를 나누어 마시며 마지막 여정을 즐겼다. 내려올 때는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옆길 등산길을 따라 내려왔다.
내려와서는 독도 박물관에 들렀다. 그곳에는 독도의 역사와 문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전시실을 통해 독도가 우리의 땅임을 나타내는 여러 증빙 자료를 접할 수 있었다. 다양한 독도 정보를 제공하여 세계에 알리고 독도 연구와 교육을 선도해 나가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낯섦의 길, 일행들은 독도 방문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이라 했다. 나는 성인봉에 오른 것이 앞으로의 삶에 의미와 희망으로 다가왔다. 2박 3일,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포항을 향한 쾌속선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