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108]늦가을 자갈마당의 즐거운 점심
한 친구가 흑염소탕을 식당에서 포장하듯 인편으로 보내줬다. 선배인 동네 이장이 전주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동막골’ 실가리잡어탕을 가져왔다. 한동네 인척인 아재가 고창에서 몽땅 잡았다며 바지락을 한 바가지도 넘게 주고갔다. 추석 황금연휴에 다녀간 여동생들이 겉절이김치, 파김치를 담가놓고 갔다. 부엌에는 갓 찧은 ‘해담벼 햅쌀’이 넉넉히 있다. 이보다 더 풍족한 살림살이가 있나? 어찌 내가 가만히 있을 것인가.
전주에 사는 꾀복쟁이와 4년 전에 사귄 친구를 불렀다. 말하자면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점심 한번 거하게 먹자’는 것. 새로이 반찬을 만들 필요가 없으니 마음이 편했다. 바지락을 충분히 해감시킨 후 청양고추와 홍고추, 대파, 마늘다재기만 넣으니 아주 준수한 바지락국이 됐다. 자갈마당 ‘한데(야외)’에서 먹는 밥은 더 꼬숩지 않던가. 당연히 한동네 꾀복쟁이와 동네 형님(52년생. 오전내내 작은 하우스 천장에 스프링클러를 달아주느라 욕보셨다)도 불렀다. 이 형님의 위장과 간은 어떻게 생겼을까? 병뚜껑이 빨간 쐬주를 어찌나 잘 드시는지? 언제나 하루에 한두 병은 뚝딱이고, 안주도 들지 않는다. 목소리가 화통 삶아먹었는지 엄청 커 주위가 늘 시끄럽다. 언젠가 <우리동네 장씨>라는 제목의 단편기록을 남길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동네에 이문구의 소설을 흉내내기 딱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우리동네 장씨>가 대표적이지만, <우리동네 홍씨> <우리동네 하씨> <우리동네 김씨>도 당당히 후보에 낀다. 김씨는 복숭아농장 주인으로 초등학교 동창이니만큼 오랜 친구이다. 변함이 없이 착하다. 하씨는 이장으로 동네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홍씨는 저만 아는 나쁜 사람이다. 동네 뒤 산자락에서 소를 키우는데, 30여년 동안 공동체 의식이 전혀 없어 ‘공공의 적’이 된 지 오래이다. 아무튼, 이들 말고도 소설의 주인공으로 손색없는 인물들이 많은데, 문재文才가 전혀 없는 나를 한탄할 뿐이다.
귀찮다거나 싫어하지 않고 하얀 쌀밥과 바지락국을 끓여, 진수성찬珍羞盛饌으로 동네형님과 친구들을 대접하는 일은 덕을 쌓는 일일 터. 하하. 역시 밥은 여럿이 그것도 친구들과 함께 먹어야 제맛이다. '혼밥'은 사람의 온전한 정신을 황량하게 만든다. 아내도 “당신이 착한 일을 하니까 우리 아들과 손자가 잘될 것”이라며 가끔은 응원을 한다. 허나, 그게 무슨 덕德까지 쌓는 일일까? 사람을 좋아하니까, 한때는 친구 사귀기가 취미(특기)였던 적도 있었다.
어쨌든, 가을 황금들판이 보름새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다. 기계가 아니라면 어림짝도 없는 일. 농촌은 피폐될 대로 피폐되고 있다. 첫째 사람이 없다. ‘인구소멸人口消滅’이라는 어려운 말이 실감날 정도이다. 어찌할지, 어떤 해법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 채 흘러가고 있는 것만 같아 걱정이다. ‘들멍’(툇마루에 앉아 들판을 바라보며 멍때리는 일)을 하며 자연스럽게 드는 걱정이 기우杞憂였으면 좋으련만. 아침저녁으로 추운 게 아니고, 상강霜降이 지나 초겨울에 접어들었다. 어제 건강진단도 받았으니 이제 독감예방주사나 맞으러 가야겠다.
--------------------------------------------------------------------------------------------------------------------
<별곡 108편을 책자로 묶는다. 2019년 가을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덧 7권(찬샘통신 두 권, 찬샘뉴스 1권, 찬샘레터 1권, 찬샘단상 1권, 찬샘편지 1권, 찬샘별곡 1권)이 되니, 통틀어 656편을 쓴 것이다. 찬샘별곡 전체를 합한 문서 통계를 보니, 200자 원고지로 1833장이고, 공백을 제외한 글자수가 24만 4000자이다. 병기한 한자들이 7만개. 이러니 6권을 다 합치면 얼마나 될까? 이러다 내일모레 1000편이 될지도 모르겠다. 마치 글 못써 ‘미친 놈’같다. 오늘 새벽 108편을 쓴 후, 책자를 펴내며 뭔가 나의 소감을 쓰고 싶었다. 전문을 싣는다. 나의 또다른 글쓰기 다짐인 셈이어서 부기附記한다.>
책자를 펴내며… 끝나지 않을 나의 ‘별곡別曲’
지난 2월 26일 시작한 ‘찬샘별곡’이 어느새 108편이다. 마침 오늘이 10월 25일이니, 8개월만에 108편을 쓴 것이다. 한달 평균 13편이니, 거의 이틀에 한번 쓴 꼴. 예전의 졸문들이 그렇듯, 또 한 편의 ‘108 이야기’가 끝이 났다. 별곡別曲이 뭐 별 것이겠는가? 마냥 감개무량할 일이 아닌 것은, 아직 나에게 살아가야 할 많은 날들이 있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이런 이야기들의 이어짐이 아닐까? 기쁜 일도, 슬픈 일도, 화난 일도, 속상한 일도, 잘하거나 못한 일도, 보람차거나 후회되는 일도 많았다. 이런 글쓰기의 의미여부를 따질 것이 아닌 까닭이다. 여러 종류의 책을 읽었다. 그때 그때마다 나대로 느낌을 기록해놓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친구를 만났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관계’는 필수 불가결한 일. 친구와 갈등도 있었는가하면, 제법 많은 기쁨을 얻기도 하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기도 했다. 아주 100% 솔직하기는 어려워도, 나 자신을 속이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했다. 효자이고 싶었으나, 그것이 잘 안되는 이야기도 있다. 농사라고 알량꼴량 지으면서도, 늘 ‘스스로 그러한 ’ 자연自然을 배우고자 했다.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일’들의 이야기가 모였다.
언제까지 이런 글쓰기를 할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누구는 골프를 치거나 여러 운동을 하는게 취미이듯, 글쓰기는 나의 취미이다. 고상틱한가? 아니다. 스스로 고통이고 나홀로 압박이다. 하지만, 시인이나 수필가, 더구나 소설가가 된다는 것은, 되려고 애쓰는 것은 애시당초 글렀음을 안다. 굳이 자책할 필요까지는 없을 터, 문재文才가 없다는 것쯤은 아는 주제는 된다. 그래도 한번은 노력해보고 싶은 게 '나의 꿈'이다. '나의 목표'는 나의 졸문을 통해 많은 지인들이 조금씩 유식해지고, 조금은 즐거워하며, 세상을 환하게 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기름진(윤택한) 삶은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돈이 전부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구라도 다 ‘마음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 늘 책을 가까이 한다. ‘사람은 책을 만들었지만, 책은 또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믿기 때문이다. 농한기農閑期이다. 이제부터는 ‘영양가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바람대로 됐으면 고맙고 좋겠다. <찬샘별곡 Ⅱ>에서 뵙기로 하자. 하하.
임실의 우거 구경재久敬齋에서 우천愚泉 최영록 두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