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판장에 갔다가 갈매기 소식을 들었다.
하혈을 너무해서 응급으로 강릉 아산병원으로 실려갔다고 했다.
"미친년......내 그럴 줄 알았지. 그리 술 처먹더니....잇빨 빠진년이 빨대로 처먹더니......“
묵호항 사람들이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대충 이런식이였다.
나는 이미 그녀의 결말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녀의 삶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녀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기에.
작년 말인가, 술이 취해 집에 가다다 공사장 쌓아놓은 목재에 걸려 넘어져 이빨이 빠져서 치과에 다니면서도 빨대로 술을 마시던 그녀였다.
그녀가 처음 와서 술집에 다닐 때, 손님이 없으면 내가 대신 가서 매출도 올려주고 그녀에게 팁도 주었고, 가끔은 대낮에 그녀와 술도 마시던 처지였다.
남자를 잘 못 만나, 남자의 아내에게 머리채 잡혀서 시장 골목길을 개 끌리듯 끌려다니고, 간통으로 고소 당하고, 그러다가 그 남자에게 돈 때이고, 그것도 모자라 얻어터지고, 두 년놈들에게 어지간히도 고통을 받았을 때도, 나는 그녀와 함께였다.
참으로 많은 조언도 해주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5년 전인가, 그녀가 묵호항에 나타났다. 방파제 끝에서 어민들과 술을 마시다가, 누군가가 묵호항 술집에 데려다 주었고, 그 술집에 들락거리던 나와 인연이 되었다.
자기 말로는 부산 영도 출신이고, 오빠도 자갈치 시장에서 횟집도 하고, 형제 자매가 많다고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오빠 일이나 도와주라고 했다. 그녀는 내 말을 무시했다.
삼십대 후반의 그녀의 처지에 꽤 쓸만한 나의 조언들이 깡그리 무시되었다.
그러면서 차츰 그녀에게 짐작 가는 일들이 있었다.
어린 시절 부터 엄청난 학대를 받아왔을 거라는.
그래서 사람을 무척 그리워 한다는.
그래서 되먹지 않는 놈에게 정을 주고 떼지 못하는.
전문적으로 뭐라던가 외상후 무슨 증후군인가 하는. 학대 증후군인가 하는.
아!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
그녀의 말은 항상 갈팡질팡했고, 그런 그녀에 대해 어렴풋이 내 나름의 짐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오빠로 나를 잘 따랐다.
가끔은 나를 실망시켜 야단도 치면서 그녀와 술 친구로 5년을 지냈다. 그러다가 최근에 목욕탕 때밀이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갈매기 몸이 말이 아니래요. 삼십대 얘가 몸이 칠십대 할머니 같다니요."
그때, 나는 이제 갈매기가 죽을거라고 판단했다.
죽을 줄 알면서 스스로 자기의 몸을 술로 학대하는 거라고.
나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술을 마시고,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녀의 인생 마무리로 이곳 묵호항으로 결정했다는.
나 역시 그렇다는.
나는 술을 마시며 새벽녁에는 글을 쓰면서, 마치 갈매기 그녀처럼 이곳 묵호항에 모든 것을 내려 놓았다.
그렇게 악착같이 세상에 대해 애착을 가지다가, 이제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내가 세상을 버렸다.
내가 세상을 버렸기에 나는 너무나 편안하다.
갈매기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
그녀의 돈을 때먹고 멀리 떠난 되먹지 못한 그녀의 남자를 잊지 못하는 그녀다.
정이 그렇게 많은 그녀는 온갖 세상살이에 상처 받고 살아왔나보다.
그래서 훌훌 내려놓았나보다. 그래서 나는 빨대로 술을 먹는 그녀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내 글에 대해서도 아무 기대를 안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반응에 무관심하다.
그저 쓸 뿐이다.
내 스스로 터득한 방법이 그것이었다.
세상에 대해 아무런 희망도 가지고 있지 않다.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
다만, 습관적으로 몇 몇 시민단체와 환경 단쳬와 정당에 아주 작은 기부를 하고 있을 뿐이다.
통장에서 자동이체로 빠져나가는 것에 대해 아무런 느낌도 없다.
십 여 년 전에는 실제로 활동을 했으나 지금은 돈으로 겨우 자존심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세상이 망할 날의 기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망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소수의 활동하는 사람들이 설 건드려서 그것의 내성과 저항성만 카워놓아 더 강하게 우리를 자극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심도 가진다.
그래서, 나는 이곳 항구에 모든 것을 내려 놓았다. 그나마 이곳 사람들은 배타적이지 않고, 게장사에 도움이 되고 글 쓰는 천직에 대해서 아무도 간섭할 일은 없다.
내가 글을 이렇게 쓰는 이유도 무슨 기대를 가지고 쓰는 것이 아니다.
그저 습관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도 마구 쓴다. 제대로 쓴다고 해도 변할 게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요즘은 마음은 편하다. 이렇게 살다 가면 그만이니까 . 그것은 마치, 술주정꾼이 주사를 부리는 이유와 너무나 닮아있다.
”오빠야!“
며칠 전, 뒤에서 부산 사투리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갈매기 였다.
그녀는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내가 살아있는 의미와 같이 그녀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