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가 처형당하던 시간에 감옥탑에 나부끼던 검은 깃발은 테스의 비극적 인생을 마감하는 운명의 상징이다.또한 순박한 한 여성의 생명령을 여지없이 파괴하는 사회적 인습을 고발하는 현대문명의 고발장이다.더구나 연약한 인간의 운명에 무관심하게 등을 돌린 냉혹한 우주의 섭리자에 대한 작가의 분노 표시이기도 하다.
작가는 ‘테스’라는 제목 아래에 ‘순결한 여인’이란 부제를 달았지만 순결무구한 젊은 테스는 생애의 첫 시작부터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거대한 운명의 힘에 농락당할 뿐이다.
가냘픈 여인 테스가 고통을 겪을 때도 연민의 표시조차 보내지 않으며,불행을 당해도 전혀 무관심하고 냉담한 우주의 섭리자는 분명 사랑의 인격신은 아니다.테스의 인생은 이미 정해진 자체의 법칙에 따라 그 제도만을 밟아가는 운명이기에 숙명론적이다.
토머스 하디는 우주를 지배하는 이러한 힘을 내재의지(內在意志)라 이름붙였다.우주에 내재하는 무감각하고 일사불란한 냉혹한 힘을 뜻한다.
인간의 선함도 그 앞에서는 무력하며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우주는 마치 방대하고 끈적한 거미줄의 교묘한 조각과도 같아서,내재의지는 거미줄의 맨 위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절대적 힘이다.한편 인간은 거미줄에 걸린 파리일 뿐이어서 발버둥칠수록 거미줄은 그를 옴쭉달싹 못하게 얽어매는 것이다.
테스의 비극적 인생은 가난한 시골집안의 장녀로 태어날 때부터 운명지어진 듯싶다.몰락한 귀족의 후예라는 허위의식에 매달려 사는 무책임한 아버지,어엿한 신사에게 딸을 결혼시키려는 생각에만 사로잡힌 무지한 어머니,줄지어 태어난 동생들과 가난은 테스의 미래가 어떠할지를 이미 말해준다.
부모의 종용으로 찾아간 친척집에서 가짜 친척 앨릭스가 예쁜 테스에게 혹하여 순결을 빼앗는 순간 테스의 비극은 점차 드러나기 시작한다.
앨릭스에게서 생긴 아기가 이내 죽자 테스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낯선 목장에서 혼자 새 삶을 꾸려나가며 처음으로 행복을 맛보게 된다.아름다운 자연에 묻혀 엔젤과 달콤한 사랑을 나누던 시절이다.
그러나 결혼 첫날밤 테스는 죄의식으로 엔젤에게 불가피했던 과거를 고백하자 잠시 잠잠하던 비극의 운명이 다시 작동한다.새 시대의 진보적 사고를 지닌채 과거 인습을 과감하게 탈피해 살기를 주장했던 엔젤이지만 여성의 순결에 대해서는 유난히도 완고하였다.남보다 앞섰다는 그의 진보의식이 실은 얼마나 관념적이고 피상적이었는지를 말해주며,또한 사회적 인습이 사회에 얼마나 깊이 뿌리박혀 있는지를 여실히 밝혀주는 장면이다.
남의 눈이 두려워 이별을 선언한 엔젤은 냉정하게 브라질로 떠나고 테스는 홀로 절망 속에 고난의 삶을 짊어진다.수년동안 이국에서 고생한 엔젤이 다시 테스를 맞으러 돌아왔지만 운명은 빗나가 테스는 이미 앨릭스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찾아온 엔젤을 보는 순간 테스는 자신의 운명에 거역하여 칼을 들어 앨릭스를 죽이고 엔젤과 함께 도망가 생애의 마지막 행복한 며칠을 지낸다.그 며칠 동안 테스는 농축된 삶의 행복을 맛보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비극의 맛이다.고대인들이 제사를 지내던 스톤헨지 돌제단 위에 누운 테스는 편협된 현대사회가 바치는 제물이다.
테스의 죄과는 삶을 향한 순박한 생명력이었다.과거의 흠이 있다 하더라도 그녀는 과거를 지우고 새 삶을 향해 언제나 새롭게 출발하였다.앨릭스의 아기가 태어났을 때 그녀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열심히 키워나갔으며,아기가 죽자 새 삶을 찾으러 용감히 나섰다.엔젤에게 미리 자신의 과거사를 말하지 않았던 이유도 어렵게 찾은 사랑의 행복을 가다듬고 싶은 삶을 향한 열정 때문이었다.
과거의 족쇄는 철저하였으며 끈질겼다.새 삶의 생명력이 움틀 때마다 테스의 과거사는 늘 생명의 봉우리를 꺾었다.앨릭스는 테스의 생명력과 강인한 꿈을 조롱하는 과거사의 대변자였으며 그녀에게 부여된 불행한 운명의 수행자였다.테스는 최후로 자신의 운명에 저항했지만 무력하게 굴복당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족쇄와 냉혹한 내재의지는 하디에게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다.그것은 인간의 개성과 창조력을 구속하는 사회적 인습과 제도다.그의 독특한 숙명론적 세계관은 사회와 유리된 초연한 인생철학이 아니라 면밀한 사회의식에서 탄생한다.그것은 인간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좌절이 아니라 생명력을 말살하는 관념적 사회인습을 비판하는 따스한 휴머니즘의 산물이다.
내재의지를 지배하는 인과법칙은 산업혁명의 소용돌이에서 갈수록 물질문명과 기계문명으로 변질되어 가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예술가적 해석일 뿐이다.하디의 지나친 비극작품이 현재에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유는 전면에 따스한 휴머니즘의 정신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하디의 생애/중년 이후 고향서 자연과 더불어
하디는 1840년 영국 남부 도체스터에서 태어났다.음악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석공이었고 어머니는 독서를 좋아했다.처음에는 가업을 이어 건축기사가 될 생각으로 도제가 되었으며,이 덕택으로 그의 작품은 장엄한 고딕건축물처럼 균형과 통일을 이룬 구성미를 담고 있다. 런던에서 건축을 공부하면서도 부모에게 이어받은 예술가적 소질이 점점 싹트기 시작하여 습작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하였다.그의 초기작은 주목을 끌지 못했으나 ‘귀향’(1878),‘캐스터브리지 시장’(1886),‘테스’(1891),‘박명한 주드’(1895)는 모두 원숙한 예술적 경지를 돋보이게 하는 소설이다.소설의 기조를 이루는 그의 반기독교적,무신론적 비관주의로 인해 일부 사회층으로부터 신랄한 공격을 받아 하디는 이후 시에만 전념,서사시 ‘군주’를 발표하였다.1885년 이래 평생 고향의 자연과 접하면서 작품활동을 하였다.1928년 눈을 감은 그의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되었고,유언에 따라 심장만은 고향의 아내무덤 옆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