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그들은 믿음으로 여러 나라를 정복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내다보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1,32-40
형제 여러분,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해야 하겠습니까?
기드온, 바락, 삼손, 입타, 다윗과 사무엘,
그리고 예언자들에 대하여 말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여러 나라를 정복하였고 정의를 실천하였으며,
약속된 것을 얻었고 사자들의 입을 막았으며,
34 맹렬한 불을 껐고 칼날을 벗어났으며,
약하였지만 강해졌고 전쟁 때에 용맹한 전사가 되었으며
외국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35 어떤 여인들은 죽었다가 부활한 식구들을 다시 맞아들이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더 나은 부활을 누리려고,
석방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고문을 받았습니다.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고,
결박과 투옥을 당하기까지 하였습니다.
37 또 돌에 맞아 죽기도 하고 톱으로 잘리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과 고난과 학대를 겪으며
양가죽이나 염소 가죽만 두른 채 돌아다녔습니다.
38 그들에게는 세상이 가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고 다녔습니다.
39 이들은 모두 믿음으로 인정을 받기는 하였지만
약속된 것을 얻지는 못하였습니다.
40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내다보셨기 때문에,
우리 없이 그들만 완전하게 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5,1-20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1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2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3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4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5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6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7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11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13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14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15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의 매일 체험 묵상
오징어 게임 시즌 2를 보고 있습니다. 3년 전에 오징어 게임이 처음 나왔을 때도 보았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였습니다. 넷플릭스 상영 순위 1위를 기록하며 많은 사람이 보았습니다. 한국 사람에게 친숙한 게임을 보여주었고, 인간이 자본이라는 거대한 괴물 앞에 한없이 약하다는 것도 보여주었습니다. 오징어 게임은 적자생존, 약육강식, 승자독식이라는 이기적인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게임에는 자비와 양심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오징어 게임에 열광했던 것은 그 게임이 현실 세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오징어 게임 시즌 2는 오징어 게임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오징어 게임을 만든 사람을 찾아가서 그 게임을 더 이상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 방법이 실패하면서 주인공은 다시 오징어 게임이 있는 곳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선포’합니다. 이 게임은 비인간적인 게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게임을 하면 단 한 사람만 남고 모두가 죽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이 받게 될 상금은 옆에 있는 사람의 목숨값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게임을 중단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인공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성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입니다. 부자는 세상에서 좋은 옷 입고, 맛있는 음식 먹고 신나게 살았지만, 죽어서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오르는 지옥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집 앞에서 빌어먹던 라자로는 세상에서 종기투성이로 배고프게 살았지만, 죽어서는 아브라함 품 안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부탁했습니다.
이 세상의 삶이 끝나면 영원한 생명의 세상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를 청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라자로와 같은 거지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알려주기를 청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들이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죽은 사람이 가서 이야기해도 듣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욕망의 덫에 걸리면, 열등감의 덫에 걸리면, 게으름의 덫에 걸리면 영원한 생명이 눈앞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용기 있는 사람만이 영원한 생명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포도원 소작인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주인이 먼 길을 떠나면서 포도원 소작인에게 포도원을 맡겼습니다. 소작인들은 포도원을 돌보면서 주인에게 소작료를 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시간이 가도 오지 않았고, 소작인들은 포도원이 이제 자기들의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주인은 때가 되어도 소작료를 보내지 않자, 하인을 보냅니다. 소작인들은 겁도 없이 주인이 보낸 하인을 때리고, 쫓아냈습니다.
주인은 아들은 알아볼 거로 생각했습니다. 주인은 아들을 보냈습니다. 소작인들은 아들을 죽이면 포도원이 영원히 자기들의 것이 될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보낸 아들마저 죽여버렸습니다. 주인은 화가 났습니다. 소작인에게서 포도원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소작인에게 포도원을 맡겼습니다.
소작인들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있는 지옥으로 갔습니다. 포도원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세상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드려야 할 소작료는 무엇인가요? 겸손과 인내입니다. 나눔과 헌신입니다. 그렇게 하면 이 세상은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하느님의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아끼는 돼지들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악령을 쫓아내는 것보다, 병든 사람을 치유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사제들이 독신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사제들이 교회의 가르침보다 자신의 신념과 세상의 것들을 전하려고 한다면, 사제들이 교회의 권위를 따르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보다는 자기의 뜻을 먼저 이루려고 한다면 이는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던 마을 사람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귀에 걸린 사람은 치유를 받았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건강을 회복한 사람은 예수님 곁에서 시중을 들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치유의 대가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이제 건강을 회복하였으니, 가족들에게 돌아가서 예전처럼 지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과 비움’은 우리를 건강하게 해 주는 선물입니다.
내 마음에 원망과 미움이 있다면, 근심과 걱정이 있다면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셨던 나눔과 비움을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은 곧 따뜻해지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첫댓글 우리가 하느님께 드려야 할 소작료는 무엇인가요? 겸손과 인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