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지금 출근했습니다. 원래의 계획은 노트북을 꺼내서 글부터 쓰기로 했습니다. 331일이라네요. 그 긴 나날동안 소금꽃나무에 꽃이 활짝 피도록 물주고 거름주고 마음주고 함께 해 주신, 정말 셀 수 없을만큼 많은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아닌가 봅니다.
저는 크레인 1층 무단 세입자였던 박영제의 아내입니다. 좀처럼 눈물없어 매정하다는 소리를 듣는 제가 간밤에 한숨 자지 못하고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슬퍼서가 아닙니다. 뭐라고 적절한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제 의지와 무관하게 눈물이 주체할 수없이 흘렀습니다.
어제 저녁 TV에 ‘한진중공업 사태를 돌아보다’라고 뜨더군요. 아, 벌써 돌아볼 시점이구나. 그래서, 저도 어제의 일을 돌아보면서 말을 풀겠습니다. 시점은 철저히 1인칭 ‘가족’의 시점입니다. 김지도가 309일, 사수대가 137일 만에 땅을 밟는 순간은 우리 노동운동사에 하나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 좀 거창하게 말해서 시민운동의 승리로 기록되겠지요. 사람을 살렸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리고....경찰의 앰블런스에 한명씩 격리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지요. 이 시점부터 체포였습니다. 병원에는 이미 수많은 경찰들이 깔려있었고 형사들의 삼엄한 호위 하에 지극히 간단한 검사(피,소변,X-Ray) 후에 김지도는 상태가 너무 나빠(몸 자체가 종합병원입니다) 입원하고 나머지 3명은 가족의 간절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입원 거부되면서 어제 자정을 넘겨 경찰서로 분리 이송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137일을 공중에서 지내다 내려온 사람들을, 의심질환은 있지만 굳이 입원할 정도는 아니라는 소견서 한 장씩 들려서 경찰에게 안겨준 의사(의사하기 참 힘들다는 이야기를 했대요. 물론 유언무언의 압력을 받았으리라 추측됩니다만. 그러면 노동자로 하루만 살아보라고 말하고 싶더군요), 입원 불가 판정 의사 소견이 나왔으니 자리를 비우고 나가달라는 병원행정실장, 체포영장에 따라 오늘 꼭 집행해야 한다는 경찰관계자, 잘 짜여진 시나리오를 들고 각자 배역을 잘 소화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 우리 배역은 없습니다.
그들의 입장은 이해합시다. 우린 너그러운 사람들이고 그들은 독재정권 이래로 한치도 진화하지 못한 충견들이니까요. 그런데 아무리 그렇지만 그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디에도 상식적인 판단이 실종되고 없기 때문이었지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은 이렇지요. 어쨌든 크레인에서 내려오면 단 며칠이라도 병원에서 몸과 마음을 좀 추스른 후에 조사를 받든지 뭘 하든지 하는 거 맞지요. 다들 그맇게 알고 계시지요? 그런데 제가 더 황당했던 것은 ‘당사자의 의견’을 존중하자‘는 논리였어요. ’당사자‘와 ’제3자‘ 나누는 거 너무 신물나서 이런 용어 너무 싫습니다. 그 3명은 ’당사자‘가 아니지요. 병원에 왔으니 보호자의 보호 아래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이지요. 그런 환자에게 니 알아서 판단해라라고 합니다. 크레인에 자의든 타의든 올라가고 나서 제가 알기로는 단 한 순간도 자기 결정권 없이 오직 ’사수대‘로만 살아온 이 사람들에게, 지금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가장 약한 상태에 놓인 이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당사자‘란 이름으로 알아서 판단을 하라고 자기결정권을 줍니다. 이 심신이 너덜너덜한 환자들은 자기 상태가 어떤지는 알지 못한 채 의사, 병원, 경찰의 입장 다 이해하고, 마음이 안 놓여서 달려온 동지들과 연대오신 분들 마음까지 다 헤아려서 경찰서로 자진출두하겠다고 하더군요.(여기서 ‘가족’의 시점이란 걸 꼭 기억하시고) 엄청나게 말리는 아내의 소견은 염두에 없었습니다. 철저한 방외인이었지요. 하긴 아내에게 물어보고 크레인 올라간 거 아니니 이해는 됩니다. 순간 우리만 이상하게 느끼는 건가? 다들 왜 이러지? 그랬습니다. 자연인으로서 ’나‘가 아닌 ’해고노동자의 아내‘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또 한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 쌍용차 가족들의 '이후의 비애'에 감정이입이 되더군요. 아~이거구나. 이 상처가 점점 곪는 거였구나. 그래서 자꾸 죽음을 부르는구나.(어제 쌍용노동자의 19번째 안타까운 죽음을 접했지요.)
지금 인터넷 뉴스 보니까 4명을 구속하겠다는군요. 언론용이든 사실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며칠만은 병원에서 심신을 쉬게 해달라는 가족의 요구가 지나친가요?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건강권을 병원에다 경찰에다 요구하는 것이 억지스러운가요? 대한민국이 그것도 허용이 안될 정도로 몰상식한 나라인가요? 아니면 이 사람들이 그것도 아까울 정도의 범법자인가요?
『세상의 절반은 왜 긂주리는가』의 저자 장 지글러가 그랬죠.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남의 고통을 같이 느끼는가에 있다고. 공감, 이것이 휴머니즘이죠. 아, 제가 실수했네요. 경찰들은 인간이 아니고 제가 충견이라고 했지요. 개들이 인간의 소리를 못 알아듣는 게 당연하지요. 개들에게 휴머니즘 운운하다니, 소가 웃겠네요.
크레인에서 지상에 몸을 누이는 첫날을 유치장에서 보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가족의 첫 번째 소망은 무참히 꺼졌습니다. 두 번째, 땅에 첫발을 디디고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더니 ‘목욕’이라고 하던데 이 두 번째 소망은 이루어졌는지 모르겠네요. 그래요, 잔치가 끝나고 손님이 돌아가고 나면 설거지가 남지요. 누군가는 설거지를 해야 되지요?
지금까지 순전히 가족의 시점에서 어제의 일을 되돌아보았습니다.
나중에 설거지 끝내고 다시 감사의 글을 올리겠지만,
331일 동안 희망의 이름으로 함께 해 주신 많은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지금도 힘들게 투쟁하고 있는 분들에게 연대의 힘으로 돌려 드리겠습니다.
첫댓글 김주익님이못한것..걸어서내려오신김지도님우리모두의 감사한일이지요..허나권력과자본과그앞잡이덜 하는짓거릴보면최소한의인간존엄성도업고 그저가슴답답하고피가끓어오르네요..가야할길은아무리멀고힘들어도...끝까지힘내셔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김진숙 지도위원, 가족들의 몸과 마음이 따뜻해지고 평온해질 때까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 모든 이들에게 전해질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설거지도 모두 팔 걷어서 함께 해요~
함께.... 함께.....
정말 고생이 많았습니다. 4분 모두의 쾌유와 좋은 결과를 바랍니다.
시사IN에 전화해 주진우 기자에게 부탁해 누님 위로좀 해달라고 할까요! 저라도 괜찮다면 감사하고요! 제 아내도 저에게 그럽니다. 왜 그렇게 쫒아다니냐고. 저도 나이 마흔 넘어 1차 때 조선소 나오면서 쏟아지던 눈물,콧물에 어찌할 바를 모르던 제가 멋쩍습니다. 그래도 계속 같이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진 뿐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