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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일 수요일. 맑음.
6시에 기상을 했다. 아침을 먹고 나가기로 했다. 식사는 아침 7시부터 9시까지다. 우리가 처음 식당에 도착했다. 음식이 모두 준비되어 있다. 야채샐러드와 계란 후라이, 흰 쌀죽이 좋다. 든든히 배를 채웠다. 7시 30분에 숙소를 나섰다. 걸어간다. 중경로를 거쳐서 대북지하상가로 걸어간다. 아침 상가들은 모두 문이 닫혀있다. 어제 밤 늦게 까지 가게가 열려 있었고 사람들도 붐볐다. 그런데 아침은 조용하고 어둡다. 그러나 상가가 이어지는 거리는 참 깨끗하다. Y7에서 계단을 통해 지상으로 올라오니 서부버스터미널 옆이다. 버스터미널에서 예류행 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는 자주 있다. 예류는 금산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내린다. 1815번 버스표를 끊었다. 국광객운이라는 버스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탄다.
예스진지(예류, 스펀, 진과스, 지우펀)는 모두 타이베이 북부에 위치해 있는데, 접근성이 좋지않다. 택시투어는 너무 요금이 비싸고, 버스 투어는 미리 신청을 해야 했다. 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둘러보기로 맘을 먹었다. 버스는 20분마다 한 대씩 출발하는 것 같다. 어젯밤 비구름은 온 데 간데 없고 화창한 날이다. 금방 뜨거워지는, 강렬한 아침이다. 버스를 타고 시내를 빠져나간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도 좋다. 초록이 우거진 타이베이는 무척 활동적이다. 버스는 도시를 빠져나와 커다란 산을 넘어가는 것 같다. 밀림이 우거진 능선을 지난다. 몇 개의 작은 마을도 스쳐간다. 바다가 보이면서 예류일 것 같은 정류장을 몇 번 지난다. 드디어 차가 멈추더니 기사아저씨가 예류라고 외친다. 사람들이 많이 일어서서 내린다.
예류어항이라는 작은 항구를 낀 마을 사이로 걸어간다. 오징어 잡이 배가 등을 가득 매달고 정박해 있다.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로 따라가면 되는 데 벌써 날이 뜨거워 그늘이 찾아진다. 걷다보니 바닷물로 만든 커피를 파는 가게도 나왔다. 커피는 짤 것 같은데 그래도 맛이 있는지 궁금하다. 예류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곧바로 예류 지질 공원 안내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예류풍경구라는 간판도 있다. 하차한 버스 정류장에서 예류 지질 공원까지는 도보로 10분. 예류로 향하는 길에 보안궁(保安宮)과 예류 초등학교(野柳國小)를 지나게 되며 예류 초등학교 바로 옆에 예류 지질 공원이 있다. 초등학교 건물을 마주했다. 건물 벽에는 예류의 돌 모양이 그려져 있다. 아이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방학인가보다. 사람들은 바글바글, 태양열은 지글지글, 이마의 땀방울은 주룩주룩, 그래도 발걸음은 성큼성큼 이다. 입구를 찾아 표를 끊었다.
오전 10시다. 예류 지질 공원의 기암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절경이다. 외부적으로 파도에 의한 침식과 암석의 풍화 작용에 지각 운동의 영향까지 더해져 희귀한 지형과 지질 경관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바람과 태양과 바다가 함께 만든 해안 조각 미술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예류 지질 공원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뉘는데, 제1구역에는 버섯 모양의 바위와 생강 모양의 바위가 밀집되어 있다. 이 구역에서는 버섯 모양의 바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고, 동시에 생강 모양의 바위, 벽개(갈라진 틈), 주전자 동굴과 카르스트판 등이 아주 풍부하며, 유명한 촛대 바위와 아이스크림 바위도 이 구역에 위치해 있다. 붉은색 라인으로 줄을 그어서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곳을 표시해 두었다.
제2구역의 경관은 제1구역과 유사하다. 버섯 모양이나 생강 모양의 바위가 그 주를 이루고 있고, 수량 면에서는 제1구역보다 적은 편이다. 유명한 여왕머리 바위와 용머리 바위, 금강 바위가 이 구역에 자리 잡고 있다. 제2구역에 인접한 해변에는 코끼리 바위, 선녀 신발, 지구 바위, 땅콩 바위라 불리는 기이한 암석 4종류를 볼 수 있다. 제3구역은 예류의 다른 측으로 해식평대(침식에 의한 평탄한 지형)이며, 제2구역보다는 좁다. 해식평대의 한쪽은 절벽이며, 다른 쪽 아래에는 파도가 용솟음치고 있다. 여기에는 아주 많은 괴석들이 산재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중에 비교적 특이한 24효 바위, 구슬 바위, 바다의 새 바위가 있다. 이 세 바위는 특이한 형상의 단괴 혹은 결핵이 해수 침식을 받아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제3구역에는 기암괴석의 자연 경관을 보존하고 있으며, 동시에 예류 지질 공원에서 가장 중요한 생태 보호 구역이다.
우리는 뜨거운 태양을 머리에 이고 기암들을 구경하다가 드디어 여왕머리 바위(뉘왕터우, 女王頭)를 발견했다. 사람들이 사진에 담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린다. 우리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 남는 것이 사진이다. 예류에는 여왕이 있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신기한 조각품들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는 단연 여왕머리 바위를 들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의 네페르티티 여왕을 닮았다고 해서 ‘여왕머리’라는 이름이 붙은 이 바위는 지각이 융기하는 과정에서 해수의 침식 작용으로 점차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어 왔으며, 가장 높은 부분이 해발 8m이다. 타이완 북부 지각의 평균 융기 속도가 연간 2~4mm인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여왕머리 바위의 연령은 4,000년 이내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햇빛과 비바람을 맞는 동안 여왕머리 바위의 목 부분이 점점 가늘어져, 현재의 목둘레는 158cm에 불과하며, 직경은 50cm 정도이다. 여왕의 목이 부러지지 않도록 이곳을 관람할 때는 만지지 말고 사진 찍을 때도 조심하도록 하자. 접근하지 못하도록 테두리를 돌로 만들어 놓았고, 관리하는 직원이 여기에 있어 건드릴 수 없다. 조심스럽게 여왕머리를 배경으로 해서 사진을 찍고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아이들을 구하려다가 목숨을 잃은 어부의 동상도 있다. 너무 더워 흐르는 땀으로 옷이 다 젖을 정도다.
이렇게 산책길을 따라 구경하다가 나왔다. 기념품 가게에 들어갔다. ‘땀으로 샤워를 하고 간다.’는 메모에 웃음이 나온다. 다시 광장에 서니 타이완 해양생태 환경을 재현해 놓은 예류해양세계(野柳海洋世界) 건물이 보인다. 꼭 체육관 같은 건물이다. 예류지질공원 옆에 위치한 예류해양세계는 타이완 최초의 해저 동굴이 있는 곳으로 수백 가지의 어류와 독특한 해양생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각각의 해양생물의 생태환경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으며 바다생물을 비롯해 갑각류, 산호초, 단수이 어류 전시구역과 특별전이 열리는 장소로 나뉘어 있다. 해양생태와 관련된 자료들이 매우 풍부해서 아이들의 교육장소로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예류해양세계의 하이라이트는 돌고래와 물개 쇼로 아이들에게 인기최고의 프로그램이다.
두 번째는 스펀을 찾아가기로 했다. 스펀역으로 가는 핑시선 루이팡역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아까 내렸던 버스 정거장 맞은편으로 걸어간다.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왔다. 예류 지질공원에서 스펀역으로 가는 방법은, 일단 내렸던 버스정류장 반대편에서 790번이나 862번 버스를 타고, 기륭역으로 가서 루이팡 가는 787번, 788번 버스를 탄다. 핑시선을 탈 수 있는 루이팡 역에서 내린다. 마지막으로 루이팡역에서 스펀역으로 가는 기차를 타면 된다. 이렇게 메모를 보면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한국 총각 두 명이 우리를 부른다. 자기들이 택시를 한 대 대절했는데 동행하면 좋겠단다. 부천에서 살고 있다는 총각들이 택시를 1000(36,000원)에 흥정을 하고 있었다. 4명이 타고 나누어 요금을 지불하잖다. 스펀까지는 좀 거리가 있고 날씨도 무척 덥고, 또 차를 몇 번 갈아타고 기차를 타야하기에 흔쾌히 승낙을 하고 택시에 몸을 실었다. 시원한 에어컨이 정말 고마웠다. 새로 만들어진 고속도로 같은 도로를 달린다. 약 40분을 달려 스펀에 도착했다. 예상치 못하게 쉽게 스펀에 도착한 것이다.
스펀(十分)은 스펀로가(十分老街 스펀라오제)를 말한다. 소원을 적어 올리는 천등으로 유명한 곳이다. 스펀 기차역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작은 마을이다. 타이완 영화 <연연풍진>의 촬영지이기도 한 스펀라오제는 천등을 날리려는 사람들로 주말이면 항상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원하는 소원을 적어 하늘로 올려보내는 전등은 사실 핑시에서도 날릴 수 있지만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바로 옛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는 기찻길 때문이다. 스펀라오제의 이색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기찻길 위에서 천등을 날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상점에서는 천등뿐 아니라 다양한 기념품과 간식거리를 팔고 있다. 천등의 가격은 상점마다 단색은 100, 네 가지 색은 150으로 정찰제이기대문에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지만 잘 흥정해 보면 변동이 있다.
우리는 먼저 스펀역으로 걸어간다. 기차가 도착하고 출발하는 시간을 알아보았다. 오후 1시 45분 기차표를 예매해 놓았다. 좌석은 없다. 그냥 올라타서 좌석이 있으면 앉고 없으면 서서 간다. 여기서 둘러볼 것은 철길 주변의 상가들과 철길 위에서 등 올리기, 그리고 냇가위에 만들어진 다리 건너기, 그리고 좀 떨어진 곳에 있는 폭포에 다녀오는 것이다. 먼저 좀 떨어진 폭포에 다녀오기로 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기차역 주변에서 이벤트와 산책을 하기로 했다. 도보로 스펀가를 따라 30분 정도를 걸어간다. 이정표를 보고 가면서 묻기도 한다. 길이 잘 만들어져 있다. 고목이 있는 숲속길도 지난다. 오래된 나무에는 콩깍지 덩굴(콩란)이 가득 붙어 기생하고 있다. 일곱 빛깔 무지개 위로 떨어지는 폭포다. 이름은 스펀대폭포( 十分大瀑布). 스펀풍경구라는 글도 보인다. 스펀 역에서 제법 떨어진 스펀산수유락원에 위치한 스펀대폭포는 천등과 더불어 스펀의 명소 중 한 곳이다. 폭포는 낙차 12m, 넓이 40m로 나이아가라와 같은 세계적인 폭포와 비교하면 규모가 작고 기세가 웅장하지 않지만 일 년 내내 수량이 풍부해서 우기가 되면 물세가 더 강해져 실제 규모에 비해 웅대하고 거대하게 느껴진다. 근처에 서 있어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폭포를 구경하기 위해 걸어가는 것도 힘들지만 계단을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것이 더 힘들어 보인다.
다시 걸어서 스펀로가로 왔다. 천등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 관광객이 많다. 한글로 읽어보니 내용들이 재미있다. 천등에 기록된 글은 다양하다. ‘수능대박’ ‘사업번창’ ‘가족 행복 만땅’ ‘건강하고 부자 되자’ ‘대만은 너무 더워 다시 안 온다.’라는 글도 보인다. 기찻길 위에서 천등을 올리다가 기차가 들어오면 모두 철길을 벗어난다. 기차가 들어오는 것도 재미있다. 새롭게 태어난 스펀의 현수교인 정안적교(精安吊橋)는 좀 오래 되 보인다. 스펀역을 빠져 나오면 오른쪽에 정안 현수교가 보인다. 총 길이 128m로 스펀과 난산리(南山里)를 잇는 다리다. 1947년에 지어진 정안현수교는 당시 탄광을 운송하기위해 지어진 일반 다리였는데, 탄광 채굴이 멈춘 후에는 보수공사를 거쳐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지금의 현수교로 다시 태어났다. 스펀 기차역과 라오제 바로 옆에 있고 흰색과 푸른색이 조화를 이룬 이 다리는 스펀의 또 다른 기념사진을 찍는 스폿이 되었다.
다리를 건너갔다가 돌아와 간식 가게들을 기웃거렸다. 깨를 솔솔 뿌려 식욕을 자극하는 뼈 없는 닭 날개 볶음밥이 눈에 들어와 식욕을 자극한다. 닭 날개 안에 볶음밥이 들어있는 것이다. 김치 볶음밥이 들어있는 것을 선택했다. 엄청 맛있다. 꼭 우리 맛이다. 베이컨과 야채, 계란이 들어있는 볶음밥 맛도 있다. 인기가 좋은지 사람들이 줄을 선다. 대나무 통에 소원을 담아 매달아 놓은 것이 많이 보인다. 고소하고 담백한 땅콩 아이스크림도 사 먹는다. 다양한 샤오츠(간식)들로 관광객들의 발길을 유혹하는데 그중 한국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있는 땅콩 아이스크림이다. 커다란 땅콩엿을 대패로 얇게 갈아 전병 위에 듬뿍 뿌린 후 아이스크림을 얹어 돌돌 말아주는 땅콩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아이스크림의 달콤함과 땅콩엿의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조화를 이루어 입 안에서 나도 모르게 행복한 비명이 흘러나온다. 맛도 일품이지만 만드는 과정도 재미있다. 먹고 구경하고 즐기다보니 오후 1시 45분이 다 되었다.
이제 기차를 타러 간다. 벌써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다. 양 방 향으로 모두 기차가 다닌다. 지우펀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루이팡역으로 간다. 작은 기차가 도착했다. 서둘러 기차에 올라타니 자리가 있다. 기차는 실내도 예쁘게 디자인 되어 있다. 둥근 장식으로 중국풍이 난다. 택시를 합승했던 부천 총각들도 보여 반가웠다. 우리가 탄 기차는 평계선(平溪線 핑시선)열차다. 소박하고 조용한 마을 사이로 떠나는 열차여행을 즐기는 코스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핑시선은 평일에는 고즈넉한 마을 이었다가 주말이 되면 로컬기차를 타며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이곳을 구경하려는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핑시선 로컬 기차는 원래 20세기 초 이곳에 탄광업이 발달하면서 운송목적으로 운행되었던 기차였는데 1992년 들어서 탄광업의 몰락과 동시에 존폐위기에 처했다가 정부의 노력으로 지금의 관광열차로 변모하여 타이완 대표 관광지 중 한 곳으로 자리매김 했다. 고양이 마을 허우통, 라오제 사이에 들어서 있는 철로가 매우 이색적인 스펀, 천등축제로 유명한 핑시와 핑시선의 종점인 징통까지 각각의 마을이 저마다 매력을 지닌 핑시선이다. 핑시선은 팔저(八墸 빠두)역에서 징통까지 총 12개 역을 왕복하는 구간을 일컫는다. 그중 관광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핑시선 구간은 루이팡에서 징통까지 총 9개의 역으로 이어진 구간이다. 허우통, 스펀, 핑시, 징통 이렇게 네 곳이 가장 유명하다.
우리는 서방(瑞芳 루이팡)역에서 내렸다. 역에서 내려 잘 못 나가 뒷문으로 나가고 말았다. 다시 지하도를 이용해서 정문 역 광장 쪽으로 나갔다. 역 앞 버스정류장에 가서 물어보니 지우펀으로 가는 788번 버스는 역을 등지고 오른쪽으로 좀 걸어 올라가라고 한다. 용엄궁 사원이 있다. 걸어가다가 페밀리 마트 편의점에 들어가 다시 물어보니 직원이 친절하게 밖에 까지 나와 알려준다. 정류장 같지 않은 정류장에서 잠시 기다리니 버스가 온다. 기사에게 목적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이 버스는 진과스 까지 가는 버스다. 좁은 시내를 벗어나자 산비탈 길을 넘고 빙글빙글 돌아 올라간다. 무덤들이 많이 보이는 데 무척 화려한 것도 있다. 무덤이 화려하면 내세에도 화려하게 잘 산다는 생각을 갖고 있단다. 부자들만 좋겠다.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지우펀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린다. 구분(九分 지우펀)은 영화 <센과 치히로> <비정성시>의 흔적이 있는 곳이다. 환상이 현실이 되는 곳이란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환상적인 애니매이션의 배경이 된 곳이라 더욱 찾아보고 싶었다. 타이베이 북부에 위치한 지우펀은 항상 안개가 자욱하고 자주 비가 내리는 마을로 과거에 이곳에 아홉 가구만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은 외지에서 물건을 구입해 올 때 항상 서로 사이좋게 아홉 개로 나눠 가졌다고 해서 ‘지우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렇게 아홉 가구만 살던 지우펀에 청나라 시절 금광이 발견되면서 사람들이 너도 나도 골드러시로 지우펀과 진과스에 몰려 들었다. 그로인해 지우펀은 ‘샤오상강(작은 홍콩)’ 혹은 ‘샤오샹하이(작은 상해)’라고 불렸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채광 산업이 시들해지며 사람들도 떠나면서 폐광촌으로 변했다. 그러다 1989년 타이완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영화 <비정성시>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수상하면서 영화의 촬영지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옛 모습을 간직한 좁은 골목의 지산제와 홍등이 양 옆으로 걸려있는 스치루는 전통 찻집들이 지우펀 너머 보이는 아름다운 전망을 배경으로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또한 우리나라 드라마 <온에어>도 이곳에서 촬영했는데 곳곳에 촬영 흔적을 만나볼 수 있다. 지우펀의 메인 도로인 지산제는 특산품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로 늘어서 있는데 사람이 많을 경우 지산제 끝에서 다시 돌아오지 말고 스치루쪽으로 내려가서 버스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좋다. 지산제를 걷다보면 스치루를 만나는데 조금더 앞으로 가면 멋진 바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뷰포인트가 있다.
버스에서 내려 조금 올라가니 지우펀의 여행이 시작되는 지산제 입구가 있다. 기산가(基山街 지산제) 입구에는 황금산성이라는 글이 씌어있다. ‘지우펀 옛 거리’라고도 불리는 지산제는 지우펀에서 가장 많은 여행객이 찾는 곳이다. 너무 사람이 많아 지옥펀이라고도 하는데 계단이 힘들어 지옥펀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세븐일레븐 편의점 옆의 좁은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구불구불하게 뻗어있는 골목 사이로 특산품 가게부터 기념품 매장, 샤오츠(간식) 등 지우펀의 유명한 맛집과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상점들 대부분이 몰려 있는 그야말로 지우펀 상권의 중심이다. 엄청 사람이 많아 그냥 밀려간다. 지산제는 다양한 샤오츠뿐만 아니라 특색있는 기념품들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곳곳에 숨어 있기 때문에 천천히 둘러보는 것이 좋다. 아내도 뭔가를 찾고 있다. 작은 가게로 들어간다. 드디어 찾았단다. 손에 끼고 맛사지를 할 수 있는 작은 지압기다. 하나는 본인이 사용하고, 다른 하나는 선물 준다고 2개를 손에 들고서 무척 기뻐했다.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각종 간식거리들이 정말 많다.
이렇게 정신없이 걸어가다가 홍등이 걸려있는 수기로(豎崎路 스치루) 입구를 놓치고 말았다. 다시 거슬러 올라와 겨우 입구에 섰다. 지산제를 따라가다 계단을 내려가면 양 옆으로 걸린 홍등과 옛 정취가 담긴 건물들이 들어선 스치루를 만난다. 계단이 급경사에 만들어져 있는데 항상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독특한 분위기 탓에 각종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 장소로 인기가 많다. 스치루에서는 어느 곳에서 사진을 찍어도 될 만큼 배경 하나하나가 멋지다. 그러나 베스트 샷을 남기고 싶으면 홍등이 들어오는 시간까지 기다리란다. 붉은 노을빛에 어둠을 밝히는 홍등은 어떠한 보정도 필요 없을 정도로 사진 속 주인공을 돋보이게 해준다. 스치루 옆으로 분위기 좋은 찻집들이 들어서 있는데 대부분 전망이 좋아 잠시 들러 차 한 잔 마시며 쉬어간다. 석탄 수레를 밀고 있는 광부 동상이 있는 곳에서 잠시 여유를 갖는다.
길을 잘 몰라 다시 계단을 올라가 지산제를 거꾸로 걸어간다. 시냇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분이다. 다시 정류장으로 와서 내렸던 곳에서 버스를 타고 진과스로 향했다. 진과스는 더 올라가야 한다. 금과석(金瓜石 진과스)는 고즈넉한 황금도시다. 지우펀에서 차량으로 약 10여 분 정도 떨어진 진과스는 금광이 발견되어 한때 지우펀과 함께 골드러시로 사람이 몰렸던 황금도시다. 그렇게 번영을 누렸던 진과스는 20세기 후반에 금광이 고갈되면서 폐광되고 말았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 지우펀이 관광지로 인기를 얻자 정부는 폐광도시인 진과스를 관광산업 도시로 탈바꿈시키면서 점차 관광객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진과스에는 예전 일본인들이 머물면서 사용했던 목조 건물들과 채광에 쓰였던 철길이 남아 있어서 지우펀과는 다른 매력이 있는 도시다.
입구에 들어서니 황금박물관이 있고 이어서 금과석 열차역이 있다. 예전에 광물을 운반하던 기찻길이 아직도 길게 이어져 있다. 광부의 모습이 동상으로 만들어져 세워져 있다. 고상하고 아늑한 여관인 태자빈관(太子賓館 타이즈빈관)이 나온다. 1922년에 지어진 태자빈관은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 황태자 히로히토가 이곳 탄광으로 시찰 오는 것을 대접하기 위해 지어진 여관이다. 하지만 이후 황태자가 방문하지 않아 주인 없는 여관으로 불렸다. 전형적인 일본식 목조 건물 형식의 태자빈관은 주로 전나무와 삼나무를 사용해서 지었는데 그중 황태자의 침실은 고급 향나무를 사용했다. 침실뿐 아니라 거실, 응접실, 서재 등 모든 구조가 매우 우아하고 정갈하다. 태자빈관을 둘러보고 있으면 독특한 점을 발견 할 수 있는데 바로 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에 홈을 낸 후 연결하는 방식으로 지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내부는 관람할 수 없지만 백년 고목과 연못이 잘 어우러진 정원을 한 바퀴 둘러보면서 가볍게 산책하기 좋다.
계속 안으로 들어가다가 진과스의 명물인 광공식당(礦工食堂 쾅공스탕) 마주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지우펀에 비해서 마땅히 식사할 곳이 없는 진과스에 있는 식당인 광공식당은 여행객들 사이에서 흔히 ‘광부도시락 가게’라고 불리는 곳이다. 주로 흰밥에 타이완식 장아찌와 돼지고기 튀김이 얹어져 나오는 일본식 도시락 광공편당(礦工便當 쾅공비엔땅)이 이곳의 대표 메뉴다. 쾅공비엔땅은 맛도 괜찮지만 클래식한 느낌의 탄광이 프린트 된 옛날 도시락 통을 광부의 모습이 그려진 보자기에 싸서 젓가락과 함께 주는데 기념품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다. 광부 도시락 외에도 우육면도 판매하고 있으며 메뉴판에는 한글로도 표기되어 있어서 쉽게 주문할 수 있다는데 워낙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 접근하기 어려웠다. 도시락뿐만 아니라 야외 테이블도 마련되어 있어서 가볍게 차 한 잔 마시며 쉬어갈 수 있는데 시간이 없다.
황금관으로 간다. 터널 5갱도라는 표지판이 있다. 황금관은 입장료가 있다. 아내가 작년에 방문할 때는 입장료가 없었다는데, 그새 바뀌었나보다. 찬란한 황금이 기다리는 곳이다. 황금박물관 구내에 가장 유명한 황금관은 원래 타이완 금속광업회사 사무실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1층에는 광부들이 사용하던 채광 도구들, 실제 입었던 작업복, 당시 인부임을 증명하던 서류들과 사진 같은 진과스의 채광 역사와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되어있다. 2층에는 황금으로 만든 다양한 공예품들과 황금관의 하이라이트인 순도 99.9%에 무게가 220kg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금괴가 전시되어 있다. 유리관 양 옆으로 구멍이 뚫려 있어서 손을 넣어 만져볼 수 있다. 황금관 옆에는 터널 5갱도가 있는데 직접 광산 체험을 볼 수 있단다. 쓰러진 동료를 부축해 가는 동상이 있다.
이렇게 오늘 일정을 모두 둘러보았다. 해가 많이 기울어 그림자가 길다. 이제 타이베이로 돌아가야 한다. 버스정류장으로 나왔다. 고맙게도 여기에서 타이베이로 가는 버스가 있다. 1062번이다. 잠시 기다리니 버스가 들어온다. 여기가 종점이라 차는 텅 비어 있다. 편안한 맘으로 차에 올랐다. 드디어 타이베이로 간다. 해가 기울어간다. 피곤이 몰려온다. 산길을 내려간다. 지우펀에 차가 멈추더니 사람들을 많이 태운다. 바다를 끼고 돌아 돌아 내려간다. 커다란 절도 보이고 화려한 무덤들도 지나간다. 우리가 해매이던 루이팡 역에 잠시 멈춰 또 손님을 태운다. 여기서 내려 기차를 타고 가도 된다. 우리는 계속 버스에서 창밖을 보며 간다. 날이 어두워져서야 겨우 타이베이에 들어섰다. 거리의 이름을 보면서 지도를 확인하니 우리가 달려가고 있는 길이 충효동로이다. 이제 우리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어디서 내려야할지 고민하면서 간다.
SOGO백화점이 보이는 곳에서 하차를 했다. 이미 날은 어두워 네온사인이 거리에 들어와 화려하다. 전철역이 바로 옆에 있다. 충효복흥역(忠孝復興)에서 전철을 타고 중앙역에서 내렸다. 늘 다니던 길을 찾아간다. 대북지하상가 길로 걷다가 Y17출구로 나온다. 숙소로 가는 길에 도시락도 샀다. 어제 먹던 도시락이다. 숙소 옆에 있는 슈퍼에 들어가 용과 와 요플레, 쥬스를 샀다. 오늘 저녁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것은 용과다. 속이 붉은 용과와 속이 하얀 용과가 준비되었다. 용과로 입 안 가득히 채우니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것 같다. 붉은색 용과가 더 맛있는 것 같다. 하루의 일정이 너무 많아 무리를 한 것 같지만 그래도 계획한대로 잘 돌아보아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