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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옛님의 정취. 그 향기를 따라 원문보기 글쓴이: 선과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 764번지 금계산 봉서사. 사찰문화재 총람에서 입수한 조선 후기 석조여래좌상과 금고를 만나기 위한 길이 었다. 도로변에서 제법 긴 진입공간을 거쳐 도착한 봉서사의 첫느낌은 비구니 사찰임을 느낄 수 있었다. 봉서사鳳棲寺 봉황이 서식하는 오동나무와 먹이 대나무꽃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봉서사, 봉정사, 영명사는 의상대사의 창건설화가 공통적으로 전한다. 의상대사가 부석사에 머무르면서 종이로 봉鳳을 만들어 날려 보냈더니 200리 떨어진 안동 학가산鶴駕山에 날아 와서는 알을 까는 자리에 영봉사를 창건했다. 금계포란金鷄抱卵형의 명당이었으나 새끼는 커서 둥지를 떠나 다시 날아가더니 금계산 자락 봉서사에 자리를 잡았다. 마지막으로 봉서사를 떠나 내려 앉으니 천등산天燈山 봉정사鳳停寺라고 한다.
비구니 절집의 정갈한 분위기 포란루
봉서사와 어울리는 전각이름이다. 봉서사 진입공간이었을 것이다. 허물어진 루대를 근자에 중수한 듯 보였다. 삼층석탑은 근세작이다. 상량문에 의하면 포란루는 1918년에 지으진 전각이다.
보광전
사찰 측에서 전하는 상지上之 14년에 보광전을 중수했다는기록으로 미루어 1864년에 중수한 전각이다. 지금의 전각들은 몇해전에 중수한 듯 보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 주심포 양식의 공포를 전각이다. 이중축대를 자연석으로 쌓아 놓은 자리에 건립됐으며 외부에는 단청 외에 별다른 장엄이 보이지 않는다. 어칸은 꽃빗살, 협칸은 빗살창호로 모두 이분합문이다.
전통사찰정보에는 근세의 석고상으로 기록되어 있다 . 아래의 석조여래좌상은 뵙지 못했다. 스님에게 여쭈고 싶었지만 적막강산이었다. 출처...사찰문화재 총람
조선후기에 조성한 석조여래좌상
금고는 응향각에 있다고 했으나 응향각은 문이 잠겨져 있었다. 보광전 내부에는 금고가 아닌 징이 걸려 있다. 아래의 금고는 직접 보지 못했다. 출처...사찰 문화재 총람
1822년 조성. 임오년명 금고
2013.06.16 |
첫댓글 석고로 조성한 불상은 또 처음입니다.
포란루는 1층이 마당과 같은 높이라 평소에 보던 누각과는 느낌이 많이 다르네요. ^^*
석조여래좌상과 금고를 보러가셨다고 했는데 못보고 오셔서 아쉬웠겠습니다.
석조여래좌상......
모셔가고픈데..
선과님잠만풀어주심안되까예
쨋든 고맙습니다..()..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