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외가 있다면 다람쥐를 들 수 있다. 사람들은 다람쥐를 대할 때 야생동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다람쥐라면 ‘쳇바퀴’를 떠올리듯 소유하고 기르고 싶은 동물로 겹쳐 본다. 외국에서 수입된 동물을 제외한다면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애완용으로 길렀던 동물이 바로 다람쥐인 것이다. 손바닥 안에 충분히 들어가는 앙증맞은 크기, 황갈색 바탕에 다섯줄의 검은 색 줄무늬는 뚜렷한 색 대비를 보여준다. 그 뿐인가, 큰 눈과 탐스런 꼬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흔히 그렇듯 아름다운 것은 추한 존재와 비교함으로써 그 가치를 가진다. 다람쥐를 시궁쥐나 곰쥐와 비교해 보면 사람들이 다람쥐에게 호의적인 이유를 알 것이다. 다람쥐는 우리나라 거의 전역에 분포하는 흔한 동물이다. 제주도에는 본래 다람쥐가 없었으나 기르던 개체가 탈출하거나 의도적으로 방사함으로써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
볼 주머니엔 도토리 6개 정도 저장 가능
다람쥐는 산림동물이지만 키 큰 나무가 빽빽한 숲에는 드물다. 대개 숲이 끝나는 가장자리나 숲속의 공터를 좋아하며, 가까운 곳에 계곡이나 샘 등 물이 있는 곳을 좋아한다. 다람쥐는 낮에 활동하는 동물이지만 직사광선에는 약하다. 또 습기를 싫어해 작은 면적에 빛과 어둠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을 좋아한다.
다람쥐의 기본 식성은 식물성으로 각 종의 종자나 과실, 꽃, 싹과 어린잎을 먹는다. 그러나 버섯은 거의 먹지 않는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초봄에는 교목의 싹과 어린잎을 먹는다. 잎이 자라 딱딱해지면 먹지 않으며 꽃을 찾아다닌다.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과실과 종자에 대한 비중이 한층 높아진다. 곤충과 그밖의 무척추동물도 기회가 있으면 즐겨 먹는다. 거미, 매미, 딱정벌레, 개미의 유충, 나방의 유충과 번데기, 달팽이도 먹으며, 때로는 도마뱀이나 갓 태어난 작은 뱀도 잡아먹는다.
다람쥐는 사람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스스로 접근할 때도 있다. 설악산 한계령과 중청봉 사이의 등산로에는 다람쥐가 흔히 눈에 띈다. 등산객들은 등산 도중 휴식을 취하는데, 그때 다람쥐가 곁에 와 있음을 뒤늦게 알아챈다. 가지고 온 김밥이나 초콜릿을 먹고 있으면 팔을 뻗어 잡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오는 녀석도 있다.
녀석들이 원하는 건 사람이 아니라 간식이다. 모든 다람쥐가 그런 건 아니지만 그 중에는 등산객이 주는 간식을 목적으로 접근하는 녀석이 있다. 간식을 먹고 있는 등산객을 바라보는 그 큰 눈망울에 대개는 항복하고 먹던 걸 던져준다. 이 때 여러 마리의 다람쥐가 있다면 한 판 싸움이 벌어진다.
설악산 희운각대피소 주변에 사는 다람쥐 몇 마리는 사람이 비스킷을 들고 있으면 아예 손에 난짝 올라붙는다. 비스킷을 쥐고 짐짓 놓아주지 않으면 입으로 물고 당기는 한편 앞발로는 사람 손을 떼밀기까지 한다. 장난치지 말고 어서 과자를 내놓으라는 투다.
도시공원이나 사찰에 사는 다람쥐도 사람 곁에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모두 사람의 친절과 다람쥐의 학습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먹이를 발견한 다람쥐는 보통 그 자리에서 먹지 않고 입 안에 있는 볼주머니에 먹이를 채운다. 좌우에 있는 볼주머니에는 모두 6개의 도토리를 넣을 수 있다. 그 후 안전한 장소에 가 먹이를 갉아 먹거나 나중을 위해 땅에 숨긴다.
먹이 저장은 늘 하는 행동이지만 겨울을 앞 둔 10월에 가장 활발하다. 이렇게 저장된 먹이는 다른 설치류에게 먹히기도 하며, 다음 해 봄 먹이가 부족한 시기에 요긴하게 쓰인다. 찾지 못한 종자는 봄에 새싹이 나므로 식물의 재생과 분산에 도움을 준다. 도토리가 짙은 갈색으로 변할 때쯤 다람쥐는 무척 바빠진다. 또 이 시기에 다람쥐가 가장 자주 눈에 띈다. 그만큼 활동량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숲에서 도토리 줍기 “이제 그만!”
9월부터 다람쥐는 겨울잠 준비에 돌입한다. 먼저 동면용 굴을 정하고 보수를 마친 다음 마른 잎으로 ‘이불’을 마련한다. 그런 다음 겨우내 먹을 먹이 저장에 들어간다. 먹이는 볼주머니로 운반하며, 저장량은 평균 1.2kg으로 이를 신갈나무 열매로 환산하면 약 300~330개 정도가 된다. 저장되는 먹이는 도토리나 밤과 같은 견과류가 대부분이며, 썩기 쉬운 과실이나 곤충은 저장하지 않는다. 다람쥐가 먹이를 저장하는 것은 곰이나 오소리처럼 몸에 지방을 축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면굴은 길이가 1.5~2m 정도로 구조는 간단하다. 입구를 지나면 잠자리 겸 먹이창고가 있고 그 옆이나 아래 통로 끝에 화장실이 위치한다. 겨울잠을 시작하면 굴 입구를 흙으로 막아 다른 다람쥐나 설치류의 침입을 막는다. 먹이 저장에서 보듯이 다람쥐의 겨울잠은 불완전 동면이다. 보통 열흘에 한 번 잠에서 깨어나 먹이와 눈을 먹고 배설한다.
겨울잠에 들어가는 시기는 지역별이나 성별에 따라 차이가 난다. 암컷이 가장 먼저 겨울잠에 들어가고 어른 수컷이 가장 늦게까지 활동한다. 대개 영상 7~0℃ 사이에 모습을 감춘다.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는 이듬해 눈이 녹기 시작할 때다. 수컷은 암컷보다 20일 정도 일찍 깨어난다. 수컷이 암컷보다 늦게 겨울잠에 들어가 일찍 깨어나는 것은 교미 전략의 일환이다. 다람쥐는 작은 몸집에 비해 행동권이 넓고 암컷은 매년 집을 바꾼다. 따라서 수컷은 확실한 교미를 위해 암컷의 겨울집을 확인해두고 일찍 일어나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암컷은 겨울잠에서 깨어난 뒤 며칠만에 발정이 시작된다. 수컷이 이 때 타이밍을 놓치면 그 해는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한 마리의 암컷 주위에 여러 마리의 수컷이 모이면 교미 순위를 놓고 수컷끼리 심하게 싸운다. 임신한 암컷은 매우 공격적으로 변해 자신의 영역권에 다른 다람쥐가 침입하면 상대가 누구든 쫓아낸다.
교미 후 30일이 지나면 3~7마리의 새끼를 낳으며, 생후 한 달쯤 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새끼는 생후 두 달이면 독립한다. 다람쥐의 천적은 족제비나 삵 또는 맹금류가 해당되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는 사람이 가장 큰 천적(?)이었다. 애완용으로 수출하기 위해 많은 수를 생포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다람쥐는 본래 홋카이도에서만 서식했다. 그러나 현재 혼슈에는 탈출하거나 의도적으로 놓아 준 다람쥐가 증가해 서식지를 넓혀가고 있다. 일본 혼슈의 다람쥐 중에는 지난 80년대 이전 우리나라에서 수출한 다람쥐의 후손들이 섞여 있을 것이다.
다람쥐의 먹이 하면 바로 떠오르는 열매가 도토리다. 상수리나무로 대표되는 도토리가 열리는 5종의 나무는 야생동물을 끌어들이는 나무로 유명하다.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를 참나무라 흔히 뭉뚱그려 부르는데, 참으로 이름 한 번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도토리는 다람쥐 뿐 아니라 청설모를 비롯한 거의 모든 설치류가 좋아하며, 사슴과 노루도 잘 먹는다. 특히 멧돼지와 곰은 도토리에 의존한 삶을 산다. 원앙이와 어치 등 여러 산새들도 도토리를 무척 좋아하는 데서 보듯이 도토리가 풍성한 숲에서는 다양한 동물을 볼 수 있다. 필자도 침엽수만으로 구성된 숲에는 잘 가지 않는다. 동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가을철 산에 가서 재미로 도토리 몇 알 주워 오는 건 그냥 봐 줄 수 있다. 그러나 흔들어 떨구겠다고 돌로 나무줄기를 짓이기며 도토리를 줍는 싹쓸이 행위는 사라져야 한다. 그런 행위를 본 다람쥐는 이렇게 말 할 것이다.
“고마 해라. 니 마이 묵었다 아이가.”<계속>
/ 글·사진 최현명 조경·동물연구가·<야생동물 흔적도감>(최태영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