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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불교학자 46. 미즈노 코겐(水野弘元) / 한상희
빨리불교 연구에 뛰어난 업적 남기다
1.
우리는 어떤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의 실력을 인정하고 그가 보여주는 노력의 결과에 만족하며 그에 대한 신뢰를 지니고 있을 때, ‘믿고 ~하는’이라는 표현을 붙여 이야기하곤 한다. 믿고 보는 배우, 믿고 듣는 가수, 믿고 읽는 작가처럼 말이다. 만약에 이처럼 ‘믿고 보고·듣고·읽는 불교학자’를 꼽는다면, 누구를 들 수 있을까? 여러 뛰어난 학자들의 이름이 나오겠지만, 미즈노 코겐(水野弘元, 1901~2006)이 그 가운데 한 명일 것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미즈노 코겐은 일본의 빨리(pāli) 불교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빨리어뿐만 아니라 산스끄리뜨·한문에 대한 뛰어난 어학력과 문헌 해독력을 바탕으로, 문헌학적 연구 방법에 따라 교리와 사상의 발전을 탐구하는 견실하고 실증적인 학풍을 지닌 인물이다. 마치 영양가 있는 목초를 마음껏 먹은 젖소가 양질의 우유를 풍부하게 생산해 내듯, 그는 문헌에 입각하여 얻어진 불교의 교리와 사상을 자신의 내면에서 충분히 숙성시켜 그 진수를 자신만의 언어로 쉽고 폭넓게 풀어낸다. 그래서 교리와 사상에 대한 그의 해석은 자의적이지 않고 충분한 객관성과 설득력을 지니고 있으며, 이해하기 쉽다.
빨리 문헌을 중심으로 연구하는 필자에게 미즈노 코겐은 매우 친밀하고 고마운 학자이다.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적은 없지만, 불교 공부를 시작하고 빨리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을 때부터 그의 저서와 연구를 참고하지 않은 적이 없다. 필자에게 그는 다름 아닌 ‘믿고 보고·듣고·읽는 불교학자’인 것이다. 이러한 인물을 소개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지금부터 그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까 한다.(생애에 대해서는 미즈노 코겐이 1979년에 고마자와대학에서 강연한 내용을 담은 글 〈나와 빨리 불교〉를 참고하였다. 이 글은 1980년에 발간된 《고마자와대학 불교학부 논집》11호에 실려 있다.)
2.
미즈노 코겐은 1901년 11월19일 사가현(佐賀県)에서 태어났다. 농사를 짓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일찍부터 불교와 인연이 있었던 그는 어린 시절 그 지역의 조동종(曹洞宗) 사원에 제자로 들어가면서 출가하게 되었다. 출가하고 나서 그가 불교를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야마구치현(山口県)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이다. 그가 다녔던 학교는 조동종 제4중학림(中學林)─현재의 타가가와(高川)학원 고등학교·중학교, 옛 이름 타타라(多々良)학원 고등학교─으로, 당시 조동종에서 조동종대학(지금의 고마자와대학)을 정점으로 전국에 운영하던 4개의 중학교 가운데 하나였다. 이 학교는 일반 교과목 외에 종승(宗乘, 자기 종파의 교의)인 선학과 여승(餘乘, 다른 종파의 교의)인 불교학을 매주 한 시간씩 수업하였는데, 그는 3학년 때에 《아비달마구사론》을, 4학년 때에 《성유식론》을 배우면서 이에 관한 전문용어를 익혔다.
출가를 한 데다 일찍부터 불교학을 공부했으니 자연스레 학자의 길을 꿈꾸었을 것 같지만, 오히려 그는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공부를 그만두려 했다고 한다. 중학교를 거쳐 야마구치 고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문학부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 동아리에서는 문예잡지를 정기적으로 발간하였는데, 항상 원고 모집이 원활한 것은 아니었다. 그럴 때는 동아리 부원들이 책임지고 원고를 하나씩 쓰기도 했고, 어느 때 미즈노도 그렇게 원고 하나를 맡게 되었다. 그해 여름 방학을 반납하고 도서관에서 선학과 철학에 관한 책을 읽으며 원고를 준비했는데,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처럼 머리가 좋지 않은 사람에게는 학문을 연구하는 것이 어울리지도 않고 자신에게는 학자가 될 자질도 역량도 없다고 절감했다고 한다. 그래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좌선 수행에 매진할까 상당히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조동종의 종문 출신 가운데 대학, 특히 도쿄대학과 같은 명문 대학을 졸업한 인물이 많지 않았던 터라, 일단은 대학 진학을 하는 것이 장래를 위해 좋을 것이라는 중학교 선생님의 충고로 하는 수 없이 도쿄대학 문학부의 인도철학과(현재의 인도철학·불교학 연구실)에 입학했다.
당시 인도철학과의 주임교수는 기무라 타이켄(木村泰賢)이었고, 범문학과(현재의 인도어·인도문학 연구실)의 다카쿠스 준지로(高楠順次郎)는 정년을 앞두고 있었다. 또한 빨리어는 나가이 마코토(長井真琴), 중국불교는 도키와 다이조(常盤大定)가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수업을 들으면서 불교라는 것이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국, 스리랑카 등의 많은 외국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있고, 한문으로 쓰인 불전만이 아니라 빨리어와 산스끄리뜨어로 쓰인 문헌이 있으며, 특히 스리랑카·미얀마·타이 등지에 현재 남방불교라고 불리는 빨리어를 중심으로 한 불교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연구실에 즐비하게 늘어선 책들이 보여주는 불교의 세계는 더 이상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알던 불교가 아니었던 것이다. 미즈노는 새롭게 펼쳐진 이 세계에 매우 흥미를 느껴, 학문을 그만두고 좌선 수행을 하려던 마음은 눈 녹듯 사라졌다.
3.
미즈노 코겐은 나가이 마코토와 다치바나 슌도(立花俊道)에게서 빨리어를 배웠다. 나가이는 도쿄대에서 빨리어 수업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미즈노는 1학년 때부터 그의 수업을 들으며 빨리어를 익혔다(산스끄리뜨어는 2학년 때 다카쿠스 준지로에게 배웠다). 그러다가 다치바나에게서도 빨리어를 배울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그가 철학을 공부하거나 빨리어에 흥미를 갖고 있는 학생들을 위하여 무료로 빨리어 수업을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고마자와대학과 와세다대학에서 강의하며, 미즈노가 머물던 고마고메(駒込)의 기치조지(吉祥寺)에 있는 센단(旃檀) 기숙사에서 10분 정도 되는 거리에 있는 사스가야초(指ヶ谷町)의 일련종(日蓮宗) 절에서 방을 빌려 지내고 있었다. 여기서 매주 금요일 저녁에 2시간씩 빨리어 수업이 이루어졌다. 수업에서 강독한 텍스트는 다치바나가 런던에서 직접 가지고 온 《숫따니빠따(Suttanipāta)》로, 어려운 운문의 해석을 위해 주석서까지 참고해 가며 2년여에 걸쳐 텍스트의 대부분을 강독하였다고 한다. 수업에는 여러 명의 학생이 참여하였지만, 그 가운데 빨리어를 중점적으로 공부하는 학생은 미즈노 혼자밖에 없었다. 사실상 다치바나는 미즈노를 위해서 수업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후에 미즈노가 남전대장경(南伝大蔵経)의 《숫따니빠따》를 번역할 때, 이 수업이 매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나가이 마코토와 다치바나 슌도는 당시 일본의 빨리 학계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던 인물이다. 나가이 마코토는 유럽에서 일본으로 ‘빨리학’을 처음 가져온 다카쿠스 준지로의 문하생 가운데 빨리 문헌을 전공한 유일한 학생이었다. 그는 율장 주석서인 《사만따빠사디까(Samantapāsādikā)》의 서문을 번역·연구하여 도쿄대에서 학위를 받았는데, 이 문헌은 다카쿠스가 유럽에서 유학할 때 그 번역이 한역 대장경의 《선견율비바사(善見律毘婆娑)》라는 것을 입증한 문헌이다. 그때까지 유럽 학계에서는 빨리어에서 한역되어 대장경에 남아 있는 문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정설이었기 때문에, 이는 대단히 큰 학문적 성과였다. 다카쿠스는 빨리성전협회(Pāli Text Society)로부터 《사만따빠사디까》의 교정본을 의뢰받게 되는데, 이에 대한 실제 작업은 나가이가 맡아 다카쿠스와의 공역으로 먼저 네 권의 교정본을 출간하였다. 이후 미즈노가 이 작업을 이어받아 미얀마 간행본과 타이 왕실판에서 로마자화하여 세 권을 더 출간하였다.
한편 다치바나 슌도는 조동종 대학을 졸업하고 스리랑카로 건너가 4~5년간 빨리어와 산스끄리뜨어, 그리고 초기불교를 공부하였다. 그 후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대학교에서 빨리 불교로 학위를 받았다. 문법서인 《빨리어문전(巴利語文典)》을 출간하였고, 후에 국민문고 간행회에서 출판한 《국역대장경》의 많은 부분을 빨리어에서 일본어로 번역하였다. 율장의 《마하왁가(Mahāvagga, 大品)》와 《쭐라왁가(Cullavagga, 小品)》 및 경장의 《담마빠다(Dhammapada, 法句經)》 《숫따니빠따(經集)》 《테라가타(Theragāthā, 長老偈)》 등 《담마빠다》 외에는 다치바나가 처음으로 일본어로 옮기면서 빨리어의 대가로 널리 알려졌다.
미즈노는 대학에 들어오면서부터 빨리어와 빨리 불교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는데, 중학교 때 아비달마와 유식을 배웠던 영향인지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빨리 아비담마 철학에 매료되었다. 그는 대학의 연구실에서 많은 책을 빌려 읽으면서 그의 연구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책 한 권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남방불교의 교리를 짧고 명료하게 정리한 후대의 논서 《아비담맛타상가하(Abhidhammatthasaṅgaha, 攝阿毘達磨義論)》의 영역인 Compen-dium of Philosophy였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남방불교에도 북방불교의 아비달마나 유식의 학설과 비슷한 ‘불교의 심리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를 비교하는 연구를 하고자 마음먹었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빨리 불교를 아비달마 및 유식과 관련시킨 내용의 졸업 논문 〈빨리 불교의 심식론(心識論)〉으로, 이것이 명저 《빨리 불교를 중심으로 한 불교의 심식론》의 모태가 되었다.
4.
1928년 26세로 미즈노 코겐이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즈음, 다카쿠스 준지로는 정년을 맞이했다. 다카쿠스는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蔵経)의 편집·출판이라는 업적을 남긴 대학자로, 산스끄리뜨와 빨리 등에 의한 새로운 학문을 도입하고 신진학자를 양성하는 등 일본의 불교학계와 인도 철학계의 발전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가 정년을 맞자, 제자들과 친구들은 그의 뛰어난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남전대장경의 일본어 번역본 출간을 계획하였다. 새로운 한역 대장경의 출판 외에 빨리 불전인 남전대장경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그가 유학에서 돌아왔을 때부터 계속하고 싶어 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업에는 그의 제자들을 비롯하여 스기하라 운라이(荻原雲来), 다치바나 슌도, 아카누마 치젠(赤沼智善), 우이 하쿠주(宇井伯寿), 나가이 마코토, 기무라 타이켄, 니시 기유(西義雄), 마스나가 레이호(増永霊鳳) 등 우수한 학자들이 참여하였다. 물론 미즈노 코겐도 가장 막내로 참여하였다. 그가 담당한 번역은 《숫따니빠따》와 그 주석서 성격을 띤 《닛데사(Mahāniddesa와 Cullaniddesa)》 《위숫디막가(Visuddhimagga, 淸淨道論)》 《아비담맛타상가하》 그리고 《자따까(Jātaka, 本生經)》의 일부였다. 남전대장경의 일본어 번역본은 1935년에서 1941년에 걸쳐 총 70권(65卷 70冊)으로 간행되었다.
한편 그가 대학원에서 공부한 지 3년 되던 해인 1930년의 5월 어느 날, 그의 지도교수였던 기무라 타이켄이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이후의 지도교수는 우이 하쿠주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승(師僧)마저 그의 곁을 떠났다. 미즈노는 학문과 종문의 스승을 동시에 잃어 매우 상심이 컸다고 한다. 이때 그는 실업가이면서 불교 연구 활동도 함께 한 하야시야 토모지로(林屋友次郎)를 만나게 되었다.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불교의 가르침이 삶에 주는 선한 영향력을 확신했던 하야시야는 미즈노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는 등 직간접적으로 경제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은 인물이다. 미즈노는 20년 이상 그와 알고 지내면서 경제적으로는 물론 인생관에서도 적지 않은 가르침을 얻었다고 하며, 어떤 의미에서 지금의 자신이 있는 것은 하야시야의 덕분이라고 말했다.
미즈노 코겐은 대학을 졸업하고 세타가야(世田谷)중학교(지금의 고등학교)에서 매주 5~6시간 정도 7년간 수업을 했다. 그러다가 1935년 그의 나이 33세 때 고마자와 대학의 예과(학부에 들어가기 전의 예비교육 과정, 현재는 폐지됨)에서 빨리어 수업을 맡게 되면서 대학 강의를 시작하게 된다. 1940년에는 고마자와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이후 고마자와대학 홋카이도(北海道) 교양부장, 이와미자와(岩見沢) 고마자와 단기대학장을 역임하였다. 그 사이 도쿄대학에도 강사로 출강하게 되어 1959에서 1962년 사이에는 도쿄대학 문학부 교수직을 겸임하였다. 1976년에 고마자와대학 부학장, 1982년에 총장이 되었고, 1983년에는 고마자와대학을 퇴임하고 동 대학 명예교수가 되었다.
5.
미즈노 코겐은 귀중한 연구 업적을 다수 남겼다. 1996년에서 1997년에 걸쳐 전 3권으로 출간된 《미즈노 코겐 저작 선집》의 제3권에 수록된 〈주요 업적 일람〉에 따르면, 1995년까지 그가 남긴 저서는 25권, 원전 번역서 13권(공역·부분 번역 포함), 논문 139편, 소고 70여 점 정도이다. 이 업적들은 분야별로 분류하여 제1권 서두의 〈연구의 회고〉에서 소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출판 연도 생략)
1. 빨리와 한역 논서 연구: 《빨리 불교를 중심으로 한 심식론》 〈비유사와 성실론〉 〈심·심소에 관한 유부·경량부의 논쟁〉 〈남방상좌부 논서해설〉
2. 남전대장경 관련, 빨리어 관련 연구: 《숫따니빠따》 《쭐라닛데사》 《마하닛데사》 《위숫디막가》 《아비담맛타상가하》 번역, 《남전대장경 총색인》 《빨리어 사전》 《빨리어 문법》
3. 빨리어와 한역 불전: 〈선견율비바사와 Samantapāsādikā〉 〈해탈도론과 Visuddhimagga〉 〈의족경과 Aṭṭhakavagga〉 〈나선비구경과 Milindapañha)〉
4. 법구경 관련: 《법구경의 연구》(〈우다나(Udāna)와 법구〉 〈법구경에 대하여〉 〈한역 법구경의 번역 성립에 대하여〉 등 수록)
5. 그 밖의 문헌 연구: 〈범문 대사(大事)에 대하여〉 〈전법륜경에 대하여〉 〈정법염처경에 대하여〉 〈사리불아비담론에 대하여〉 〈무애해도에 대하여〉
6. 중국불교 관련: 〈한역 중아함경과 증일아함경〉 〈금강삼매경〉 〈52위 등의 보살계위설〉
7. 그 밖의 논문과 저술
① 제파 공통의 아비달마 교리 관련: 〈원시불교에서의 마음〉 〈불교에서의 색(물질) 개념에 대하여〉 〈심불상응법에 대하여〉 〈무위법에 대하여〉 〈시설(paññatti)에 대하여〉 등
② 일반 불교 교리 관련: 〈업에 대하여〉 〈무아와 공〉 〈원시불교에서의 깨달음〉 등
③ 불교의 교리·교세 등의 역사 관련: 〈초기불교의 인도 유통 분포에 대하여〉 〈불교를 중심으로 한 세일론의 역사〉 〈부파불교에서 대승불교로의 전개〉 등
④ 계율 관련: 〈계에 대하여〉 〈불교의 상가에 대하여〉 등
⑤ 선 관련: 〈전법게의 성립에 대하여〉 〈선종 성립 이전의 중국 선사상사 서설〉 등
⑥ 어학·문헌 관련: 〈경집의 게와 타 문헌의 대조표〉 〈Pāli, Sanskrit, Prākrit 상호관련어의 어형 및 어의의 이동(異同)에 대하여〉 등
⑦ 그 외 저술: 《인도불교 역사의 성격》 《원시불교》 《석존의 생애》 《불교란 무엇인가》 《불교입문》 《수증의(修證義)의 불교》(수증의: 메이지 시대에 쓰인 조동종 경전 가운데 하나), 《수증의 강설》 《인생의 이정표》 《불교의 기초지식》 《불교 주요 용어의 기초지식》 《불교의 원점》 《경전, 그 성립과 전개》 《불교의 진수》 《석존의 생애와 사상》 등
1) 이 가운데 미즈노 코겐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박사학위 논문인 《빨리 불교를 중심으로 한 심식론》(1964)이다. 이 책은 우여곡절 끝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는데, 원고가 탈고된 것은 1943년이었으나 전쟁의 영향으로 1949년 봄에야 도쿄대학에서 학위를 받을 수 있었고, 여러 사정으로 출판이 미뤄져 탈고로부터 거의 20년 만인 1964년에야 비로소 출간될 수 있었다. 이 책은 남방 상좌부 교리상의 가장 큰 특징인 ‘심식론’을 니까야(nikāya)에서부터 앗타까타(aṭṭhakathā)와 강요서에 이르기까지 빨리 불교의 역사적 발전에 따라 교리사적으로 검토하고, 이것을 유부 등 북전의 다른 부파의 교설 및 대승 유식파의 논서와 비교하며 상세하게 연구한 것이다. 연구 대상의 범위가 지니는 웅대함과 언어학적·문헌학적 근거에 입각한 논술의 엄격함에서 비견할 만한 서적이 없는 명저이다. 또한 그가 80세에 출간한 《법구경의 연구》(1981)는 빨리·산스끄리뜨·쁘라끄리뜨·한역의 《법구경》 게송을 엄밀히 비교·검토한 연구를 담고 있다. 이는 《법구경》을 주제로 한 연구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으로, 그의 불교 문헌학의 정점을 잘 보여주는 연구라고 할 수 있다.
미즈노 코겐이 남전대장경에 기여한 업적은 《숫따니빠따》 등의 번역만이 아니다. 빨리 문헌의 일역을 참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남전대장경 총색인》을 만든 인물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남전대장경은 여러 사람에 의해 번역이 이루어지다 보니, 각 권의 말미에 첨부된 색인의 형식이나 선별 기준 등이 일정하지 않았다. 미즈노는 그것을 보고 남전대장경 70권 전체에 대한 통일되고 일관성 있는 종합적인 색인이 필요함을 통감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출판사에 직접 색인 작업을 제안하였고, 대장경 70권 전체를 하나하나 읽어 나가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용어 및 어구를 일정한 기준으로 선택하고 통일된 형식으로 정리하였다. 이렇게 완성된 원고는 전쟁의 영향으로 작업한 지 십수 년이 지난 1959~1961년에 출간되었다.
미즈노 코겐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업적이 바로 《빨리어 사전》과 《빨리어 문법》의 집필이다. 미즈노는 1935년부터 고마자와 대학에서 빨리어를 가르쳤고 1948년부터는 도쿄대학에서도 빨리어 수업을 하였는데, 두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적당한 문법서와 독본이 없다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한다. 나가이 마코토의 《팔리어 독습문법》은 너무 간결하였고, 다치바나 슌도의 《팔리어 문전》은 절판되기도 했지만 오래된 문법에서 산스끄리뜨어와 관련된 설명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문법서를 새로이 집필하기로 결심하고 빨리 연구의 역사와 출판된 서적, 참고서 등을 부록으로 한 《빨리어 문법》을 1955년에 출판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56년에 《빨리어 불교 독본》을 간행하였다.
또한 빨리어 사전 역시 적당한 것이 없었기에 그는 사전 작업에도 착수했다. 《남전대장경총색인》의 제2부에 빨리어의 사전적인 어휘를 모아놓은 것과 칠더스(Childers)의 A Dictionary of the Pāli Language, PTS의 Pāli English Dictionary, 모니어(Monier)의 Sanskrit English Dictionary, 에저턴(Edgerton)의 《불교범어사전(Buddhist Hybrid Sanskrit Dictionary)》 등을 참고하여, 1968년에 빨리 삼장을 읽을 수 있을 정도의 초보적인 사전으로 《빨리어 사전》을 출판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주석서도 읽을 수 있을 만큼의 풍부한 어휘를 담고 있는 사전을 편찬하고 싶어 했다. 스스로 시간과 연령의 제약으로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지만, 2000년 마침내 어휘가 보충된 원고가 완성되고 그로부터 5년 후인 2005년 4월 증보·개정판이 출판되었다. 이 사전이 미즈노 코겐의 마지막 출판이 되는데, 그의 나이 103세였다.
2) 미즈노 코겐의 학문 영역은 빨리 불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넓은 범위의 인도불교와 중국불교에 관한 저술과 연구도 남겼는데, 먼저 인도불교 및 불교의 기본적 교리 사상과 관련된 저술로는 《인도불교사의 성격》(1952), 《원시불교》(1956), 《석존의 생애》(1960), 《불교의 기초 지식》(1971), 《불교 주요용어의 기초 지식》(1972), 《인생의 길잡이》(1969)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의 《원시불교》 《불교 주요용어의 기초지식》을 비롯하여 《불교란 무엇인가》(1965) 《불교의 원점》(1974) 《경전-그 성립과 전개》(1980) 등은 해외에서도 인정받아 영어와 중국어 그리고 이탈리아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국내에도 《팔리어 문법》(2001) 《불교 용어 기초지식》(2002) 《경전의 성립과 전개》(1996) 등 그의 저서가 번역·출판되어 있다.
한편 중국불교에 대한 연구는 그가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던 하야시야 토모시로의 연구를 도우면서 이루어졌다. 그는 하야시야의 학위 논문인 《경록(経録)의 연구》와 부논문인 《역경사 연구》를 오랫동안 도왔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불전의 한역 즉 역경과 관련된 분야에 흥미를 느꼈다. 역경사를 조사하기 위해서 《출삼장집(出三藏記集)》을 비롯한 모든 경전과 어록, 《고승전(高僧傳)》 《통고승전(統高僧傳)》 등을 연구하였고, 이를 통해 〈보리달마의 이입사행설(二入四行說)과 금강삼매경〉(1954), 〈한역 중아함과 증일아함의 역출에 대하여〉(1955), 〈선종 성립 이전의 중국 선사상사 서설〉(1956), 〈위작 법구경에 대하여〉(1961) 등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저서로 출간된 《경전-그 성립과 전개》도 이와 관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논문 역시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미즈노 코겐 저작 선집》에 엄선되어 수록된 논문에 대해서만 간략히 언급하겠다. 이 선집에는 3편의 서평을 포함한 36편의 논문이 실려 있다. 제1권 《불교 문헌 연구》(13편)에는 빨리어·인도어와 한역 불전의 관계를 폭넓게 개관한 〈불교성전과 그 번역〉, 빨리 원전과 그에 상응하는 한역 문헌을 비교 연구한 〈선견율비바사와 Samantapāsādikā〉 〈해탈도론과 Visuddhimagga〉 〈의족경과 Aṭṭhakavagga〉 〈밀린다왕문경류에 대하여〉 한역 논서와 경전에 관한 연구인 〈사리불아비담론에 대하여〉 〈잡아함경의 연구와 출판〉 〈한역 중아함경과 증일아함경〉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제2권 《불교 교리 연구》(18편)에는 불교의 생명관, 마음, 지혜(반야), 깨달음, 업, 무아와 공 등 초기불교를 중심으로 한 불교 전체의 기본적인 교리 사상에 대한 연구와 부파불교 시대의 아비달마 교리 학설의 전개 및 사상사를 논한 연구가 담겨 있다.
제3권 《빨리 논서 연구》(5편)에는 〈빨리 성전 성립사에서의 무애해도 및 의석의 지위〉 〈무애해도에 대하여〉 〈Peṭakopadesa에 대하여〉 〈남방 상좌부의 논서 해설〉 등 빨리 불교의 독자적인 문헌을 개별적으로 또는 전체적으로 다룬 논문이 실려 있다. 특히 마지막의 〈남방 상좌부의 논서 해설〉은 빨리 불교의 교리가 거쳐 온 발전 단계─a)니까야, b)선구적 아비담마(Paṭisambhidāmagga, Niddesa 등), c)근본 아비담마로서의 칠론, d)주석의 선구적 문헌(Nettipakaraṇa, Peṭakopadesa, Milindapañhā), e)삼장의 주석서, 특히 《위숫디막가》의 교리, f)교리강요서인 《아비담맛타상가하》의 학설─에 따라 빨리 논서 전체를 문헌학에 입각하여 계통적으로 개관한 것이다. 이 논문은 남전대장경의 번역본이 출판되기도 전인 1934년 《불교대학 강좌》에 수록되었던 원고를 증보·개정한 것으로, 선집을 간행할 때 미즈노가 가장 시간을 들이고 심혈을 기울인 원고였다고 한다.
만년이 되어서도 그는 학술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80세에 《법구경의 연구》를 출간했고, 80세에서 94세까지의 15년간 32편의 논문을 저술했다. 《미즈노 코겐 저작 선집》에 수록된 36편의 논문 가운데 7편이 만년의 시기에 저술되었으니, 실로 초인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집필한 논문은 자신의 백수(白壽)를 기념한 《불교연구》 특별호(29호, 2000년)에 게재된 〈《밀린다왕문경 주석》에 대하여〉이다. 이때가 98세였고, 이 논문을 쓴 후에 《빨리어 사전》 개정 작업을 완성하였다고 하니 놀라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1931년 30세에 발표된 첫 논문인 〈비유사와 성실론〉에서 시작하여 103세인 2005년 출간된 《빨리어 사전》 개정판의 마지막 출판에 이르기까지, 평생 한길을 걸으며 식을 줄 몰랐던 그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성실함에 고개가 저절로 숙어진다.
6.
미즈노 코겐은 《빨리어 사전》의 개정 작업을 끝냈을 때부터 점차로 몸 상태가 나빠져 2002년 7월(100세) 흉막염으로 태어나 처음으로 입원 생활을 했다. 2개월 후 퇴원했지만 이 병을 계기로 결국 자택에서 장기 요양을 시작했다. 자녀의 극진한 보살핌에도 3년 수개월에 걸친 이 요양 생활은 마지막을 맞이하였고, 천수를 누린 그는 만성호흡부전으로 설날 아침 일찍 편안하게 여행을 떠났다. 2006년 1월 1일, 그의 나이 104세였다.
모리 소도(森祖道)는 그를 추모하는 글 〈미즈노 코겐 선생님을 그리다〉(2006)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선생님을 아는 모든 사람이 인정하듯, 그의 인품은 온화하고 착실하며 원만하면서 고결하였다. 학문을 하는 이들만이 가지는 청렬함을 지니고 있었고, 겸허하며 잘난 체하는 법이 없었으며, 또한 수줍음이 많은 분이셨다. 이러한 점들은 그의 학풍이 되어 저작에서 현저하게 드러나고 있어, 나는 선생님에게서 ‘학문은 성품이다’라는 진리를 배웠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내가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배우게 된 최고의 진리는 ‘명예에 연연하지 마라’는 것이었다.
미즈노 코겐은 뛰어난 연구 성과와 업적을 남긴 훌륭한 학자이면서 고귀한 인품으로 불교를 몸소 보여준 진정한 스승이었다. 그가 더욱 인정과 존경을 받는 불교학자로 기억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 그의 연구에서 불교에 대한 지식만이 아닌, 학문을 대하는 태도와 불교학자로서 갖추어야 할 모습까지 배울 수 있을 듯하다. ■
한상희 kate1213@hanmail.net
일본 도쿄대학교에서 빨리(pāli) 문헌의 성자와 수행에 관한 연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북대학교 철학과 강사 역임. 주요 논문으로 〈아라한의 해탈에 관한 고찰-심해탈과 혜해탈〉 〈assaddha의 의미-아라한에게는 믿음이 없는가〉 〈빨리 문헌의 고뜨라부(gotrabhū)에 관한 고찰〉 등이 있고 저서로 《언어, 진실을 전달하는가 왜곡하는가》(공저)와 역서 《불교의 탄생》이 있다. 현재 경북대 인문학술원 학술연구교수, 동국대학교 WISE캠퍼스 교양융합교육원 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