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대표적 무역항은 부산, 인천, 목포, 군산등이고 북한의 경우 진남포와 원산이며 이후 여러 곳이 개항이 된다.
개항이라 하면 기존의 부두나 접안 시설이 있겠지만 외국과의 본격적인 무역을 시작하는 것인데 인천의 경우는 서울을 견제하면서 이를 통해 무역을 하기 용이 했는데 경인선이 건설되면서 서울과의 연관관계가 더 커진다.
현재는 경기도의 수부도시가 수원이고 인천이 직할시가 되기전에도 수원에 도청이 있고 지금까지 있지만 도시의 규모나 문화, 근대식 학교의 발달 그리고 경제규모를 따져 보면 인천이 더 크고 영향력 또한 더 컸다고 본다.
일반 행정을 감당하는 경기도청은 수원에 계속 있어 왔지만 경찰청은 정부가 다시 수립되면서 인천에 있다가 80년대 초 수원으로 이동을 한다.
다음으로 각 시도별로 교육대학이 있는데 경기도의 경우 인천교대의 졸업생들이 초등학교로 많이들 발령을 받았고 이후 인천교대는 경인교대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안양에도 또 다른 캠퍼스가 있다.
현재 인천은 바다 뿐 아니라 하늘 땅을 아우르는 곳이 되었고 우리나라 3번째 도시가 되었는데 개항 이후 일본 뿐 아니라 청나라가 들어오고 거류지가 형성되는데 청나라가 망한 후엔 일본의 영향력이 강화되고 인천 이곳 저곳엔 일본인에 의해 공장이나 기업이 만들어 진다.
특히 식품과 관련된 것들이 인천에도 많이 만들어 진다.
지금도 남아있는 삼화제분 인천공장은 일본인들의 영향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건물이라 생각한다.
적벽돌로 만든 5층의 건물은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고 하는데 인천은 다른 품목도 많이 들어 오지만 밀의 수입과 가공이 흥하고 이와 관련된 음식 또한 발달한 곳인데 초기 이러한 산업을 만들고 정착시킨 이들은 일본인들이며 이들이 놓고간 다양한 부동산은 권력의 공백과 이동을 틈타 우리나라 사람들의 것이 되는데 여기엔 친일을 행하던 자들에게는 또 다른 기회였고 큰 자본을 축적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단 1957년 설립되어 현재까지 이어진 삼화제분이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