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145
“일종의 놀이야. 근처에 사는 꼬맹이들이 도전해오는 바람에 물러서기가 곤란해서 시작했는데 뜻밖에도 평이 괜찮네. 그걸 읽으려고 멀리서도 오니까 말이야. 뭐가 좋은지는 나도 모르겠어. 그런데 요즘은 꼬맹이들도 짓궂은 내용을 써서 넣어 놓는 통에 나도 머리를 써야 해서아주 힘들어.”
쓴웃음을 짓기는 하지만 아버지의 표정에는 생기가 넘쳤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누나의 말을 거짓이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새롭게 삶의 보람을 안겨준 고민 상담은 처음엔 놀이 비슷했지만 얼마 지나서부터는 진지한 고민이 들어왔다. 그렇게 되니 다른 사람들 눈에 띄는 상자로는 곤란할 것 같아, 셔터의 우편물 투입구와 우유 상자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바꿨다고 한다. 하지만 재미있는 고민이 들어오면 지금처럼 벽에 붙이는 모양이다.
아버지는 찻상 앞에 반듯하게 앉아 팔짱을 끼고 있다. 편지지를 펴놓았지만 펜을 잡을 생각은 없는 듯했다. 아랫입술을 조금 내밀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뭘 그리 깊이 생각하세요?” 다카유키가 말했다. “내용이 복잡해요?”
p.146
아버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가 보낸 거야. 이런 문제가 제일 힘들어.”
연애 문제인가. 중매결혼을 한 아버지는 결혼식 당일까지 어머니를 제대로 몰랐다고 한다. 그런 시대를 살아온 사람에게 연애 문제를 상담하다니, 어지간히도 상식이 없는가 보다.
“그냥 대충대충 쓰세요.”
“무슨 소리냐. 그럴 수는 없지.” 아버지는 약간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다카유키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일어섰다. “맥주 있죠? 좀 마실게요.”
아버지의 대답이 없었지만 냉장고를 열었다. 문 두 개짜리 이 구식 냉장고는 2년 전에 누나가 냉장고를 새로 바꿀 때 쓰던 걸 가져온 것이다. 그 전까지는 1960년에 구입한 문 하나짜리를 사용했다. 다카유키는 그때 대학생이었다.
냉장고에는 중간 사이즈의 차가운 맥주가 두 병 있었다. 술을 좋아하다보니 냉장고에 맥주가 떨어지지 않는다. 예전에는 단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기무라빵집의 단팥빵을 엄청 좋아하게 된 것은 예순이 넘어서였다.
우선 한 병을 꺼내 마개를 땄다. 그리고 찬장에서 컵 두 개를 꺼내 찻상 앞에 앉았다.
“아버지도 마실 거죠?”
“아니, 지금은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