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있는 세계사]
[닉슨 독트린(1969)]
동·서 데탕트 물꼬 튼 선언,
美·中 수교로 이어졌죠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만났지요. 북한과 미국 정상이 한자리에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인데요. 미국과 북한 사이 적대적 분위기 속에서 불안했던 사람들은 회담을 반기기도 했죠.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예전 사회주의 국가들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킨 미국의 닉슨 대통령과 비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닉슨 대통령이 재임하던 시기 전후로 세계정세는 어땠는지 살펴볼까요?
◇트루먼 독트린과 냉전의 시작
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전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진영으로 나뉘어 있었어요.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트루먼은 사회주의 진영의 위협이 있는 나라에 미국이 경제적·군사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발표합니다. 이를 '트루먼 독트린'이라고 부르는데 독트린(doctrine)은 국제사회에서 한 나라가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정책상의 원칙을 말해요.
그 후 미국과 소련이 엄청난 비용을 들여 서로의 진영을 지원해주며 대치하게 되었지요. 양 진영이 날카롭게 대립하던 당시의 상황을 냉전(cold war)이라고 해요. 진영 간 갈등은 계속됐고 베트남이 사회주의 국가가 되어버릴 상황에 처하자 미국은 베트남에 많은 군대를 보내 긴 전쟁을 치르게 돼요.
▲ 1972년 중국을 찾은 리처드 닉슨(왼쪽) 미국 대통령이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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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부터 6·25전쟁, 베트남전쟁에 이르기까지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전쟁을 겪게 되자 대다수의 미국인은 보다 평화로운 사회 질서를 바라게 되었지요. 닉슨은 그러한 상황에서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리고 그때의 미국은 전쟁을 지속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어요. 베트남전쟁 전, 그러니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은 전 세계 금의 70% 정도를 보유할 정도로 막대한 경제호황을 누리고 있었어요. 하지만 대규모 복지정책과 베트남전쟁은 미국 경제를 정부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붙이고 있었어요. 다른 나라에 대한 지원으로 엄청난 비용이 쓰이는 걸 싫어하는 여론도 있었지요.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69년 여름 닉슨은 아시아에서 미국이 어떠한 역할을 맡을지를 새로 정한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게 됩니다. 괌에서 발표해 '괌 독트린'이라고도 불리는 이 원칙엔 '미국이 베트남전쟁과 같은 군사적 개입을 피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아시아 국가들이 스스로 내란이나 침략에 대처해야 한다'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어요. 미국이 중요한 역할은 하겠지만 다른 국가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을 피하자는 것이었지요.
◇탁구 경기로 시작한 '핑퐁 외교'
이전까지 미국은 중국을 마치 존재하지 않는 국가처럼 취급했어요. 하지만 닉슨 독트린 이후 중국이 미국 탁구 대표단을 초청해 친선 경기를 벌이는 일도 생겨요. 미국이 중국에 대한 무역 제한 조치를 해제하기도 하면서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아나갔죠. 대통령이 직접 중국을 공식 방문하기도 하면서 초보적인 단계의 외교 관계를 시작해요. 탁구팀 간 교류가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핑퐁 외교'라고 하지요. 결국 1979년 새해에 미국과 중국은 서로를 인정하고 수교를 하게 됩니다.
원수지간이나 다름없던 소련과의 관계도 부드러워지게 돼요. '전략 무기 제한 협정'이라는 조약을 맺어 서로를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 수를 더 이상 늘리지 않기로 합의하지요. 비록 냉전이 완전히 끝나진 않았지만 그 전보다 전쟁의 위협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이렇게 닉슨 독트린 이후 자유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 간 긴장이 완화되는 분위기를 데탕트(Détente)라고 부른답니다. 프랑스어로 긴장의 완화 혹은 휴식을 뜻해요.
베트남에서는 미국이 군대를 철수합니다. 1973년 1월 파리에서 미국·남베트남·북베트남이 베트남전쟁을 끝내기로 하는 평화협정을 맺어요. 그 후 단계적으로 베트남에 주둔한 군대를 미국 본토로 옮겨옵니다. 미국 군대가 철수한 이후 남베트남과 북베트남 사이 전쟁이 다시 시작됩니다. 결국 사회주의 정권이던 북베트남이 베트남을 다시 통일하는 데 성공해 오늘날 베트남이 되었어요.
◇닉슨 독트린이 일으킨 나비효과, 킬링필드
▲ 킬링필드 때 학살당한 희생자들의 유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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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베트남에서 군대를 철수하자 캄보디아에서는 미국에 우호적인 정권이 무너지고 크메르 루주(Khmer Rouge)라는 사회주의 정권이 만들어져요. 이 정권은 캄보디아 곳곳에서 수 백만명 되는 국민을 탄압하고 학살했어요. 특히 지식인이나 부자들에 대한 탄압이 심했는데 그저 안경을 썼다는 이유로 애꿎은 사람을 잡아간 적도 있다고 해요. 당시의 통계 자료가 없어 희생자 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자료에 따라서는 자국민의 3분의 1 이상일 수도 있다고 하네요. 아직까지도 캄보디아에 남아 있는 고문 도구들이나 살아남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당시 끔찍했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어요.
결국 크메르 루주의 잔인한 학살은 이웃 국가인 베트남의 침공을 불러와요. 캄보디아에 사는 베트남 사람들까지도 무자비하게 탄압했기 때문이에요. 베트남은 자신의 공격이 정당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크메르 루주가 했던 학살을 국제사회에 알립니다. 많은 기자가 캄보디아의 킬링필드들을 돌아보며 취재했고 이를 바탕으로 크메르 루주의 만행이 세상에 널리 알려질 수 있었어요.
☞워터게이트 사건과 닉슨의 사임
1972년 6월 미국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노린 비밀 공작반이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 체포됐어요.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닉슨 정권의 여러 비리가 드러나 결국 1974년 닉슨이 대통령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안영우·명덕고 역사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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