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창동, 한국은행 뒤편엔 오랜 세월 넥타이부대의 입맛을 부추겨온 음식점이 즐비하다. 이곳은 원래 서울의 대표적인 유흥가였지만 1980년대 들어서면서 먹자골목으로 변신했다. 아직도 옛 정취가 많이 남아있는 북창동 음식골목에 복요리의 명문, ‘참복집’이 있다. 워낙 깊숙하게 들어앉아 웬만해서는 찾기조차 어렵지만, 30년 넘게 단골들의 사랑을 받으며 꾸준히 명성을 이어온 집이다.
참복집에서는 탱글탱글하고 찰진 복회부터 칼칼한 양념의 복불고기, 고소하고 부드러운 복튀김 등 다양한 복요리로 미식의 세계를 열어준다. 그중에서도 손님들이 가장 즐겨 찾는 메뉴는 창업 때부터 한결같은 맛을 이어오는 복지리(맑은 탕국)다. 주문을 하면 냄비에 아삭한 콩나물과 무를 알맞게 깔고 툭툭 토막 낸 복과 향긋한 미나리를 얹어 낸다. 거기에 소금 간한 맑은 육수를 부어 즉석에서 끓이면서 먹는 식이다. 살짝 데쳐진 미나리로 먼저 입맛을 상큼하게 열고, 담백한 국물을 훌훌 떠서 하얀 복 살과 곁들여 먹으면 생선인데도 비린내 없이 신선한 맛이 일품이다. 이 집의 복 살은 기름기 하나 없는데도 폭신하면서 쫀득하게 씹히는 식감이 끝내준다. 살을 다 먹은 다음 연두부처럼 부드러운 이리를 맛본다. 한입에 쏘옥 안기는 크리미한 감촉과 고소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마지막에 밥을 볶아주는데 이 또한 별미다.
중국 북송의 문장가 소동파는 “사람이 한 번 죽는 것과 맞먹는 맛”이라며 복어 요리를 극찬했다. 어디 맛뿐이랴. ‘동의보감’에서는 ‘허한 것을 보하고 습한 것을 없애며 허리와 다리의 병을 치료한다’고 명시돼 있다. 뿐만 아니라 성인병 예방에 좋고 숙취를 개운하게 풀어주는 효과가 뛰어나 오래전부터 애주가들에게 각광받아 왔다. 몸보신은 물론 요리법에 따라 다양한 맛을 뽐내 식도락가들 사이에선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복어 알과 내장에는 인체에 치명적인 신경독소가 들어있기 때문에 복어를 안전하게 요리하려면 정확한 지식과 경험이 필수다. 또한 육질이 워낙 단단해 고난이도의 기술과 숙련된 조리법을 갖춰야만 제대로 된 복어 요리의 참맛을 즐길 수 있다.
1986년 참복집 문을 연 신정남(72)씨는 주방에서 직접 모든 음식을 만들었다. 주 메뉴는 담백하고 시원한 복지리로, 입소문을 타면서 미식가들의 발길을 끌어모았다. 음식 내용이 실속 있고 크게 부담 없이 제맛을 내는 편안한 집으로 장안에서 손꼽히는 복지리의 명가가 되었다.
자연산 참복을 고집하는 이유
▲ 참복집의 대표이자 주방장 윤명자씨.
10년 전부터 참복집을 이어온 2대 사장 윤명자(59)씨도 앞치마를 동여매고 직접 모든 음식을 만들고 있다. 이 집을 하기 전 20여년간 이미 음식점을 해왔던 윤씨는 손질이 까다롭고 값비싼 복이야말로 주인이 직접 다루어야 안심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식당 벽면에는 그녀의 복 전문 조리사 자격증이 걸려있다. 여러 차례 낙방의 고배를 마셨지만 될 때까지 해보자는 오기와 끈기로 취득한 땀 맺힌 자격증이라고 한다. 윤씨는 창업주에게 복지리의 비법을 전수받은 데 이어 복회와 복불고기 등 몇 가지 메뉴를 더해 코스요리까지 개발했다. 지금은 접시 무늬가 훤히 비칠 정도로 얇은 회를 척척 뜨지만 처음에는 단단한 복으로 회를 뜨는 일이 무척 어려웠다. 손이 서툴러 제 모양이 안 나올 때면 단골손님들에게 비싼 회를 서비스로 주면서 내공을 쌓아야 했다.
윤씨는 무엇보다 재료 준비에 각별한 정성을 들인다. “생선이 신선해야 해요. 그래야 제맛이 나지요.” 물이 좋지 않으면 손님이 먼저 알기에 윤씨는 매일같이 깐깐하게 그날 사용할 복을 냉동이 아닌 선어(鮮魚)로만 엄선한다. 이 집에서는 겨울철 잠깐 나오는 자연산 밀복을 제외하고는 사시사철 참복을 주재료로 쓴다. 수입 복이나 양식 복을 사용하지 않고 연근해에서 나는 자연산만 고집한다. 자연산 참복은 가격은 비싸지만 복 중에서도 육질이 단단하고 담백한 맛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수컷 복어의 정소(精巢)인 이리는 미식가들조차 특별하게 치는 별미 중의 별미다. 중국 월나라의 절세미인인 서시의 가슴 같다 해서 서시유(西施乳)라는 별칭으로 에로틱하게 부른다지만 이는 와전된 것이다. 사실은 이리가 터지면 젖처럼 뽀얗게 국물이 흐려진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슴과는 상관이 없다. 이리는 끓는 물에 넣어야 터지지 않고, 살보다 더디 익기 때문에 맨 마지막에 먹어야 제맛을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참복의 산란기인 5월이 되면 복의 부위 중 가장 맛이 뛰어난 이리를 구할 수가 없다. 이리를 넣어야 국물에 고소한 뒷맛이 나는 데다가 손님들도 이리가 없을 때면 섭섭해 했다. 윤씨는 고심 끝에 이리 전용 급랭고를 구비하고 생것이 날 때 넉넉히 구입해서 저장해 두었다가 여름에도 부족함 없이 이리를 넣어준다. 냉동 이리를 사다 쓰면 간편하겠지만 직접 급랭한 것과는 맛이 천양지차라고 한다.
지리를 끓일 때 사용하는 육수는 창업 때부터 이어온 비법으로 다른 것은 아무것도 넣지 않고 오로지 바지락 조갯살만으로 감칠맛을 낸다. “복지리는 복 맛으로 먹어야지요.” 이것저것 넣은 육수는 잡내가 나서 오히려 복어 자체의 시원한 맛을 방해한다고 한다. 복지리는 신선한 복을 넉넉히 넣는 것이 최고의 맛 비결이다.
이 집에서는 실속 있는 가격에도 일인당 네 토막씩 복 살을 푸짐하게 넣기 때문에 인공조미료 없이도 진한 감칠맛이 우러난다. 회식자리에서 상사 눈치 보느라 복 살 한 토막 떠먹기 어려운 집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미나리 인심도 좋아서 원하면 얼마든지 더 얹어준다. 반찬도 모두 노련하고 깔끔한 여주인의 손을 거쳐 젓갈류, 물김치 등 5~6가지로 정갈하며 입맛을 돋운다. 특히 하룻밤 식촛물에 담가 억센 가시를 손질한 참복껍질을 미나리와 함께 무쳐 서비스로 내는 복껍질무침은 콜라겐 특유의 쫀득한 맛이 좋아 자꾸만 손이 간다. 이 또한 원하면 얼마든지 더 가져다준다.
넉넉한 인심과 변함없는 맛으로 참복집의 고객층은 꽤 두껍다. 오래된 골목이라 주차시설이 따로 없고 단독 룸도 몇 개 안 되지만 성수기에는 하루에 약 40~50㎏ 정도의 복이 나갈 정도로 북적인다. 가까운 한국은행과 인근의 언론사, 종합청사 등의 직원들이 많이 찾아오며, 직장을 옮기거나 퇴직한 이후에도 꾸준히 찾고 있다는 것이 자랑이다. 산악인 엄홍길씨, 성우 배한성씨, 탤런트 최불암씨 등 유명인 단골도 꽤 된다.
“먼저 내 맘에 들어야 손님들 맘에도 들겠지요.”
음식 하는 일이 힘들긴 하지만 자기 손으로 직접 정성껏 만들어 맛나게 대접하는 일이 행복하다는 윤씨. 근래 들어 자연산 참복이 안정적으로 공급되면서 마음이 부자가 된 듯 즐겁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