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교육학, 산수에서 수학으로!
신명 4,32-40; 마태 16,24-28 /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2025.8.8
무릇 교육은 인류가 발견한 지혜를 후대에 전달함으로써 진리를 추구하게 하는 길입니다. 따라서 교육의 첫째는 가르치는 이들이 진리를 추구하는 노선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이고, 둘째는 배우는 이들의 처지와 상태에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교육은 발달 심리학의 기본 상식에 따라 행해집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린이에 대한 교육과 청소년에 대한 교육이 같을 수 없고, 심지어 노년층에 대한 교육도 같을 수 없습니다. 초등학생들에게는 산수를 가르칩니다. 청소년들에게는 수학을 가르치지요. 산수 교육에서는 더하고 빼고 나누고 곱하는 가감승제의 내용을 가르치지만, 수학 교육에서는 방정식에서부터 미적분과 수열과 조합을 비롯한 대수학과 좌표와 삼각 함수 등 기하학도 가르칩니다.
신앙 교육에서의 산수는 기복 신앙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느님께서는 축복을 내려 주신다는 공리를 가르칩니다. 오늘 독서에서 증언하는 구약 시대의 신앙 교육이 이러했습니다. 하지만 신약 시대의 신앙 교육에서는 십자가의 신앙을 가르칩니다. 구약에 비하면 수학 수준의 신앙 교육입니다. 미적분의 사고력도 요구되고 순열과 조합은 물론 좌표와 삼각함수 정도의 논리력도 필요해집니다.
하느님께서도 구약 시대에는 모세를 통해서 당신이 행하신 수많은 기적을 상기시키심으로써 체험 교육을 주로 시도하셨습니다. 하지만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을 통해서 증거 교육을 시도하셨습니다. 체험 교육이 산수 수준이라면, 증거 교육은 수학 수준인 셈입니다.
오늘 독서인 신명기 4장의 말씀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베푸신 업적을 일깨워 주심으로써 당신 존재를 알려주시고 당신의 계명을 잘 지키도록 당부하시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믿어야 할 진리와 지켜야 할 윤리를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인류에게 계시하신 것입니다.
신약성경 특히 복음서에서 증언하는 예수님의 이야기는 구약성경에서 전해주는 하느님의 존재와 업적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향해서 구원의 진리와 윤리로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임을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이 고백해 온 전통에서는 구약의 하느님께서 예수님으로 강생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할 진리로 고백하는 한편, 하느님께서 명하신 계명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으로 그 정점에 달했으므로 이것으로 지켜야 할 윤리가 나타났다고 고백해왔습니다. 그래서 특히 오늘 복음인 마태오 복음서 16장에서는 우리는 구약 시대 이래 계시된 하느님으로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믿고 그 뒤를 따라야 하며, 그분이 보여주신 사랑이 희생의 십자가이기 때문에 누구나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그분을 따라야 함을 예수님께서 가르치셨습니다. 그 내용이,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믿을 진리와 지킬 윤리가 우리가 인생에서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이 진리와 윤리가 우리와 세상을 하느님께로 이끄는 구원의 길입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고, 그분이 보여주신 대로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을 십자가로 받아들여 살아가는 삶이 우리의 구원을 채웁니다. 사람은 저마다 인생에서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갑니다. 그리고 뒷사람들에게 발자취를 남기지요. 복음서들도 예수님의 발자취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러한 이치를 이렇게 설명한 바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1코린 13,12). 예수님께서는 이미 산상설교의 진복팔단에서 이를 명백하게 가르치신 바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
이렇게 볼 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십자가의 계명, 즉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 16,24)는 말씀은 믿는 모든 이들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진 의무입니다. 아시아의 고등 종교들, 즉 불교나 유교 또 이슬람교 모두가 선을 강조합니다. 불교는 자비를 행하라고 권유하며, 유교는 인을 행하라고 권유하고, 이슬람교도 정의를 행하라고 권유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의 계명을 따라서,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 즉 하느님의 선을 행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희생을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라고 권유합니다. 세상에서는 이익이 되지 않으면 희생을 피하지요. 속물과 의인이 이 지점에서 나누어집니다.
속물적 성향은 사람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습니다. 이를 넘어서서 의인으로 성숙할 수 있는 길은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이끄심을 받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교회가 기리는 도미니코 성인은 바로 이를 위해서 신자들에게 올바른 기도생활의 길을 가르친 인물입니다.
성 도미니코(1170~1221)는 가톨릭 신자들의 기도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수도 생활과 사목 활동을 적절하게 조화시킨 영성 생활을 실천하고자 수도회를 설립했습니다. 수도자들이 청빈, 정결, 순명의 복음삼덕에 대한 서원을 하고 관상 생활을 지향하는 것까지는 당대의 여느 수도회와 다름이 없었지만, 그 수도회의 특징은 수도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충실히 설교 준비를 하도록 교육에 힘썼다는 점이 달랐습니다. 그리하여 도미니코가 설립한 ‘설교자회’(Ordo Fratrum Praedicatorum)는 일 년 중 6개월 동안은 수도원 안에서 기도 생활에 전념하고 다른 6개월 동안은 교구와 본당을 순회하며 설교하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냈습니다. 동시에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 운동을 이끌어냈고, 특별히 묵주기도의 전통을 가톨릭교회 안에 널리 전파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의 하나인 묵주 기도가 가톨릭교회에 널리 확산되어 대중화되도록 지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또한 설교를 통한 영혼 구원이란 설립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도자들은 최선을 다해 공부해야 했고, 결국 대 알베르투스(Albertus Magnus)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와 같은 위대한 신학자들을 배출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도미니코와 그 제자들인 도미니코 수도회원들에게 적지 않은 영적 빚을 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산수 교육에만 머물지 마시고 수학 교육에로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하느님의 기적 체험에만 매달리지 마시고, 우리가 직접 십자가의 희생을 짊어지는 증거 체험에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복음화 과업은, 그것이 사회 복음화든 민족 복음화든 더 나아가서는 아시아의 복음화든, 산수가 아니라 수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