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성로마제국(독일)
중세 초기에 형성되어서 1806년까지 지속한 다민족 국가이다.
독일이 중심이다. - 영주가 지배하는 작은 국가로 나뉘어져 있다.
(중심이 되는 네 나라 = 독일, 보헤미아(체코), 부르군드, 이태리)
900년 경에 프랑코 왕국이 지배하던 옛 땅에 5대 공국이 나타났다.
(프랑켄, 바이에른, 슈바텐, 작센 로타링가이)
왕위는 작센의 공작 하인리히 1세에게 있었다.
936년 – 하인리히 1세의 아들이 왕위를 이어 오토 1세가 된다.
962년 – 오토 1세가 황제가 되면서 이태리도 지배한다.
처음부터 국가 제도를 갖춘 것이 아니고, 세월이 지나면서 하나하나 갖추어 간다.
이태리 로마까지 지배하면서 교황을 새로 세워(요한 12세 폐위) 레위 8세이다.(963)
오토 1세 – 오토 2세 –오토 3세로 이어진다
오토 3세는 자기의 4촌을 교황으로 임명하여 그레고리 7세 이다.
신성로마제국이 로마를 지배하면서 로마 귀족이 반란을 일으켰다.
로마에서 교황을 마음대로 세우니 동로마 제국과도 틀어졌다.
독일 왕은 주교도 자기가 임명하면서 교황과 틀어진다,
하인리히 4세가 주교를 멋대로 임명하자 교황 그레고리 7세가 파문한다.
많은 제후가 교황을 따르자 하인리히 4세는 교황이 머무는 카놋사 성 밖에서 끌어앉아 빌었다
(카놋사 굴욕)
힘을 키운 하인리히 4세는 군사로 교황을 공격하여 복수했다.
1122년 — 주교 서임 문제를 교황과 황제가 협약을 맺었다.
*** 스페인 역사
1. BC 9-8세기 경 유럽 켈트 족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 들어와서
원주민과 혼합한다.
2. 2차 포에니 전쟁 때(BC218년경) 로마인이 들어와서 지배한다.
3. 5세기 경 – 게르만 족의 대이동(서고트, 반달 족 등등ㅇ)
서고트 족이 강력하여 나라를 세우고, 기독교를 받아들임
4. 711년 이슬람이 침입하자(8세기) 기독교 세력과 충돌한다.ㅣ
이슬람이 스페인 남부를 거의 800년 간 지배한다.(아랍계, 무어인 등)
5. 특히 무어인이 반도의 대부분을 정복한다.(우마이아 왕조의 일파이다.)
6. 이슬람이 처음에는 기독교와 유대인에 관대했으나 점차 압박을 가하지
많은 사람이 이슬람으로 개종
이슬람화된 남부를 안달루시아라고 했다. 코로도바가 수도이다.
==> 서유럽 문화 + 이슬람 문화 ==> 독창적인 문화를 형성
7. 반도의 북부지역은 레온, 카스티야, 아라곤 등의 기독교 국가가 있다.
이때 기ᅟᅩᆨ교 국가의 지속적인 영토 확장 --- 레콘카스티 라고 한다.
8. 그라나다 왕국의 함락 ( ) -- 레콘카스티가 끝이 난다.
9. 레콘키스티가 끝나면서 기독교로 개종을 거부하는 이슬람과 유대인을 추방
종교재판을 열었다.
10. 1469 -- 아라곤의 페르디난드와 카스티야 이사벨라 영왕이 결혼-->통일국가
통일국가의 명칭으로 이스파냐 라는 단어를 만들었다
이사벨라 여왕이 권력이 세고, 남성 이상의 결단력이 있었다고 한다.
페르디난드와 이사벨라는 르네상스를 이끄는 신흥군주가 된다;
11. 1492 -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12. 신대륙에서 부가 유입 — 유럽의 강력한 국가가 된다.
13. 1516 – 네델란드 통치자인 함스브르크 가의 카를로스 1세(칼 5세)가
페르디난드를 이어서 왕위에 오른다.
* 서양어 표기에 charles를 독일식으로는, 칼 이고, 영국식으로는 찰스이고,
프랑스 식은 샤를이다. 스페인읜 카를르스 이다.
14. 막대한 부로 범선을 만들어서 미국의 남서부 바다, 필립핀, 마리아나 제도까지 차지
이 시기를 역사상 스페인의 황금기라고 한다
15. 스페인이 전성기를 누리는 시대에는 수많은 전쟁을 치루었다.
16. 1588 — 수페인의 무적함대, 영국 엘리지베스 1세에게 패배
스페인의 합스부르크 가는 땅에 떨어진 자기네의 위신을 세우려 카톨릭을 등에 업고
수많은 전쟁에 참여한다. 특히 네델란드 지역의 신교도와 전쟁을 지루하게 했다.
네델란드의 입장에서느 종교전쟁이기 보다는 독립 전쟁이었다.(영국이 뒤 바주고)
17. 30년 (종교)전쟁
신, 구교 지원 세력이 맞붙은 전쟁으로
신교 세력을 은근히 지원한 프랑스가 승리하면서
유럽의 중심 세력이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이동하는 계기가 된다;
18. 스페인 전성기에 ‘돈키호테’를 쓴 셀반테스가 살았다.
====> 합스부르크 가의 이야기는 뒤에 상세히 소개합니다;
여기서 하겠습니다. 시기를 잘 맞추어서 생각을 하십시다.
****합스부르크 王家
근대 유럽사에서 권력자의 역할을 한 왕가이다.
시작은 스의스의 작은 시골 영주에서 시작하여 15세기 중반에는 오스트리아 대공으로 성장한다. 15세기 말에 권력의 위치에 들어선다.
합스부르크 가의 성립 역사
프랑스와 오늘의 독일 지역의 사이인 네델란드-벨기에-룩셈부르크를 지배하는
부르고뉴 공국이다. 상인들이 많은 세금을 내면서 힘을 가졌다.
*지배자 샤를 공이 아들 없이 딸 마리만을 남기고 죽자(1477년 전사) 마리가 왕위를 잇는다.
이 나라는 여자가 왕이 될 수 없으므로 결혼을 해야했다. 그러나 마리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상인들이 결혼하지 않으면 세금을 내지 않겠다고 협박했다.(상인은 여자가 통치하면 자기들의 장사에 많은 불리한 점이 있었다.)
1. 프랑스는 백 년 전쟁을 끝내고 발루아 가문의 루이 11세가 왕이다.
아들 샤를 8세는 겨우 8세 였으나 결혼을 신청했다.(루이 11세가 곧 죽어서 왕이 되다)
(부르고뉴 공작령은 잔 다르크를 돈을 받고 영국군에 넘겼을 만큼 프랑스와는 독립된 공국)
2.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이고, 오스트리아를 지배하는 막시밀리안 1세(18세이고, 사내답고,
미남이었다고 한다.)도 마리와 결혼을 정략적으로 추진한다.
3. 마리는 상인의 압력으로, 막시밀리안 1세를 선택한다.
막시밀리안 1세는 샤를 8세를 전쟁에서 승리한다.(1479)
4. 마리와 막시밀리안 1세는 미남왕 펠리페 1세를 낳고, 낙마 사고로 죽는다.
5, 샤를 8세는 밀라노 공부와 결혼하고, 지배권을 얻어서 이태리 침공한다.
(프랑스 역사에서 100년 전쟁을 이어서, 이태리 침공이 나온다. 침공을 한 왕이다.)
1) 막시밀리안 1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초석을 놓았다.
2) 막시밀리안 1세 + 부르군드의 마리아
*부르군드 공국은 지금의 베르룩스 3국 지역으로 마리아가 상속녀이다.
3) 막시밀리안 1세 ---> 아들 펠리페 1세 탄생
펠리페 1세는 아주 미남으로, 얼굴 값 한다고 바람을 피웠다 함.
4) 미남왕 필리페 1세 + 광녀 후아나
후아나는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카느티나)와 페르나드 왕(아라곤)의 딸로
약간의 정신이상이 있었고, 질투심도 있고, 아주 잔혹했다고 한다.
1469 – 이사벨라와 페르난도 결혼(스페인 통합)
1492 — 콜럼버스 미 대륙 발견
1498몀 – 이사벨라 여왕이 죽고, 아들마저 죽자 후아나가 상속녀가 되었다.
5) 미남왕 필리페 1세 --> 아들 칼 5세와 페르난드가 태어나다.
6)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칼 5세는 후아나의 아들로 스페인도 상속받는다.
스페인 왕의 호칭은 카를로스 1세이다.
이때 칼 5세가 가진 왕위가 17개 였고, 유럽의 최강자 였다.
칼 5세(1516-1556 재위) 재위기간에
(1) 1519 코르테스의 아즈텍 정복
(2) 1532 피사로의 잉카 제국 정복
(3) 1540 예수회 — 카톨릭의 종교개혁이
===> 대서양의 무역증가(세비아가 중심) --> 물가상승 --> 경제파산으로
* 합스부르크 가는 아래턱이 유난히 길어 얼굴 전체가 길어보인다.
아래턱과 윗턱이 맞지 않아서 음식물 씹기도 불편하고, 발음도 부정확했다.
이와 같은 열성인자는 대대로 유전했다.
7) 칼 5세(카를로스 1세) --> 필리페 2세 --> 필리페 3세 --> 필리페 4세로
8) 펠리페 2세(1556-1598)
(*펠리페도 영어식으로는 필립 이다;)
(*합스부르크 가는 결혼의 방법으로 유럽의 패권을 유지했다고 한다.
왕실도 혈통을 지키기 위해서 근친결혼을 했다. 근친결혼으로 악성 유전자가
흘러내려가서 얼굴이 길고, 아래 턱이 앞으로 튀어 나와, 밥을 씹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발언도 불확실 했고, 나중에는 저능아가 나왔다고 한다.)